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82화 (782/862)

7화. Brotherhood (1)

키아아악!

마, 말도 안 돼!

인간! 인간 따위에게!

이렇게 허망하게 당한다고? ###는 나란 말이야! 나……!

칠흑왕의 대체 자아는 끔찍한 귀곡성을 내뱉으면서 연우에게 맹렬한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녀석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당연히 그냥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바스러질 줄 알았던 존재가 오히려 그를 위협하려 들고 있었으니까.

물론, 녀석에 비하면 현재의 연우는 아주 작디작은 점에 불과했다.

아무리 여러 신화를 삼켰다고 해도, 결국 우주적인 존재인 칠흑왕의 대체 자아를 넘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칠흑왕의 대체 자아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상식적으로 이 작은 점이 자신을 전부 담아 낼 수 없어야 하지만, 그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위협.

결국 칠흑왕의 대체 자아는 처음에 자신만만하게 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오히려 연우로부터 달아나려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놔! 놓으라……!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어떻게든 연우를 떨쳐내려 했지만.

[‘하데스의 식령검’이 절대 먹이를 놓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톱니 이빨은 더더욱 세게 녀석을 물어왔다.

그리고.

모든 어둠이 결국 연우에게로 전부 귀속되었다.

[‘칠흑왕의 대체 자아’의 신화를 회수하였습니다!]

[소멸된 신화, ‘올림포스의 주신’을 회수하였습니다!]

[소멸된 신화, ‘거마신룡’을 회수하였습니다!]

[모든 신화를 회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여된 자아가 모두 복구됩니다.]

휘휘휘!

연우는 온전히 원형대로 복구되는 영혼과 육체를 느낄 수 있었다. 힘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인가?’

아니, 정확하게는 힘이 재정립되고 있었다.

스테이지 미션 내에서 승리를 거둔 인간 연우라는 정체성 아래에 다른 신화들이 차곡차곡 정립되면서 아무리 흔들어도 절대 깨지지 않을 단단한 내구도를 갖췄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신화들이 날뛰던 동굴이 사라지고, 눈앞으로 거대한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온통 구름바다로 둘러싸여 아래 지상은 전혀 보이지도 않는 곳.

하지만.

[‘려의 등불’이 앞길을 비춥니다!]

연우에게 깃들어 있던 황금색 배광이 하늘 높이 치솟더니, 그대로 아래로 천천히 내려앉으면서 구름바다를 옆으로 물리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계단을 하나둘씩 나타내기 시작했다.

마치 이곳으로 오라는 듯, 계단들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띠링!

[99층, ‘려의 무덤’의 관(關)을 통과하였습니다!]

[100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뭐?”

한순간, 연우는 자신이 메시지를 잘못 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건 분명히 탑에 있을 시절에 자주 접했던 내용의 메시지였다. 층계를 이동할 때 나타나곤 하던.

하지만 분명히 탑은 자신이 무너뜨렸을 텐데?

그런데 이게 왜……?

그것도 99층?

그런 생각들이 연달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깊게 따져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과 악마들이 살았던 ‘천계’라고 명명된 98층은 일반 플레이어들도 잘 알고 있는 세계였지만, 99층과 100층에 대해서는 그동안 알려진 게 전혀 없었다.

신과 악마들도 위로 올라가려 해 봤지만, 무엇 때문인지 가로막혀 있었다던 곳.

다만, 몇몇 대신격들은 그곳이 천마의 영역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긴 했다.

분명히 그들을 모두 탑에다 가둔 뒤로, 천마가 많은 힘을 소진 하여 휴식을 취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장소가 어딘지는 여태 몰랐으니까.

그냥 아무도 밟아 본 적이 없다던 99층에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해 보는 게 전부였다.

연우도 탑을 무너뜨리면서 올포원을 물리치고, 칠흑왕의 제지를 막는 것까지만 고려했을 뿐. 탑의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는 신경 써 보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대신격들의 말마따나 99층과 100층이 천마의 영역이라면…… 탑이 무너지고 나서서도 그곳은 어떤 형식으로든 남아 있을 게 분명한바.

그리고 천계에서도 접근할 수 없었던 게 99층과 100층이라 한다면, 관리국에서도 손을 대지 못했던 건 똑같았을 테니 이블케가 가려던 곳이 천마의 영역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100층이라.’

연우는 계단이 향하고 있는 장소에다 시선을 던졌다.

인지 영역을 아무리 넓혀 봐도 저곳은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정말 구름과 안개로 가려 둔 것 같이 뿌옇게만 보일 뿐이었다.

[100층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연우는 그 메시지를 가만히 보다가.

“…….”

몸을 반대로 돌리더니 바닥에 털썩 앉았다.

당장 100층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말하지 않았나. 신은 고독한 법이라고. 친구와 가족을 찾는 그대는 그래서 인간이다.

그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그렇기에.

연우는 자신을 쫓아오고 있을 동생과 가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천마가 칠흑왕의 대체 자아를 보면서 가볍게 웃습니다.]

귀엽긴.

어디선가.

그런 웃음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 * *

[천마가 새로운 방문객을 유심히 살핍니다.]

“저 귀찮은 새끼는 또 스토커짓 하네. 야! 너 진짜 안 내려올래?”

손오공은 정우 등을 데리고 길을 안내하다 말고, 갑자기 망막을 채우는 메시지에 인상을 팍 찡그렸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치며 삿대질을 퍼부었지만.

[천마가 내려가기 싫다면서 심드렁하게 대답합니다.]

“뭐, 인마? 이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천마가 나이 많은 꼰대라 아주 좋겠다면서 손으로 엉덩이를 벅벅 긁습니다.]

“아오! 옛날에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던 새끼가. 손지호, 많이 컸다?”

[천마가 꼬우면 덤비라고 도발합니다.]

차정우를 비롯한 크로노스와 레아는 지금 자신들 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진짜가 맞나 조금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 혹시 제가 모르는 신격 중에 ‘천마’라는 신명을 쓰는 신격이 또 있을까요?”

『내가 알기론 없다만…….』

“에이. 그래도 있을 수 있잖아요?”

『이 아비가 지구로 떨어지고 나서 탄생한 신격이라면 모를 수도 있다만…… 그래도 저 이름을 똑같이 쓰는 놈이 있었다면 다른 신격들이 짓밟아 놓지 않았을까?』

“그, 그렇겠죠?”

『그럼…….』

“그럼 저건 대체 뭐죠?”

『나도 아까 전부터 그게 의문이긴 하다만.』

천마가 들리는 악명이나 위명과 달리 장난기 많은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누군가와 저렇게 티격태격할 수 있단 사실이 그들에게는 너무 새롭게 다가왔다.

정말 천마가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특히 천마에 의해 아들 제우스가 결국 패배하고, 올림포스가 통째로 천계에 갇힌 것을 보았던 레아로서는 더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차정우는 그 모습을 통해 이 ‘려의 무덤’이라는 장소 너머에 천마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똑같이 그런 생각이 든 녹턴도 언제부턴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던 그때.

뚝!

손오공의 걸음이 신경질적으로 멈췄다.

“이대로 쭉 가면 차연우, 그놈이 나타나니까 그냥 가면 될 거다.”

차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안 가십니까?”

“같이 갈 거다. 다만, 잠시 다 따로 분리될 거라.”

순간, 차정우의 눈이 빛났다.

“미션이나 퀘스트 같은 게 있나 봅니다.”

손오공이 짜증 섞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여기 있는 놈이 여간 까탈스러워야 말이지. 그러지 않으면 문을 절대 열어 주지 않을 거다.”

차정우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탑에서 했었던 것처럼, 똑같이 주어진 미션을 통과하라는 의미일 테지.

“미션 내용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손오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랬다간 우릴 전부 내쫓아 버리겠지.”

“어렵네요. 알겠습니다.”

차정우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손오공을 지나쳐 어둠이 깔린 동혈 속으로 들어갔다.

크로노스와 레아도 조금이라도 빨리 아들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

“이건 뭐야?”

“이건 뭐야?”

“이 잘생긴 놈은 뭐야?”

“오. 너무 잘생겼는데. 비율도 좋고. 모델 하쉴?”

차정우는 여러 명으로 분리된 자신들을 똑같이 마주할 수 있었다.

학생 차정우.

헤븐윙.

탑의 공적.

작은 ‘굴레’의 망자.

퀴리날레의 후계자.

낮(에로스)의 주인…….

차정우라는 존재를 이루는 신화들은 각자 정체성이 판이해지고, 생각과 사고도 전혀 달랐지만.

하늘 날개를 바짝 세우면서 서로를 경계할지언정, 절대 바로 맞부딪치지는 않았다.

전투가 개시되면 모를까, 그전까지 차정우의 사고는 항상 이성이 지배했다.

어렸을 때부터 싸움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에 생긴 습관이었다.

“이름.”

“차정우.”

“키는?”

“181센티.”

“와! 나 180 넘을 수 있는 거야? 키 여기서 안 멈추는구나! 만세!”

“……저 시끄러운 놈, 옆으로 좀 못 치우나.”

“각자가 갖고 있는 신화는?”

“전 학생이요!”

“하늘 날개 펼치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는 ‘헤븐윙’이라고 봐야겠지?”

“난…….”

“난……!”

그들은 각자가 가진 기억들을 하나둘씩 늘어놓았다.

여전히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바짝 긴장하면서도, 어떻게든 말로서 서로의 결여를 채우고자 노력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우리 목표가 뭐였지?”

“인성왕 낯짝 때리는 거?”

“뭔 소리야. 인성왕 뒤통수 때리는 거지!”

“나는 말 안 듣는 인성 파탄자 새끼 어디다 가둬 놓고 싶은데.”

“난 우리 인성신, 주둥이 딱 한 대만 때려 보고 싶어. 말하는 게 늘 얄밉잖아.”

모두가 응어리로 담아 뒀던 것들을 속사포처럼 내뱉는데.

그때, 가장 어려 보이는 학생 차정우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전 형이랑 현피 떠서 이겨보고 싶어요.”

“…….”

“…….”

“…….”

그 말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두에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싶자, 한 명이 박수를 치면서 앞으로 성큼 나섰다.

“모두 기억은 조각조각 나 있어도, 생각은 동일한 것 같은데. 지금 결정에 불만 있으신 분?”

“없다.”

“없어.”

“시간 급하니까 빨리 끝내자고.”

차정우의 신화들은 빠르게 합의를 끝냈고, 저마다 몸을 등지면서 스테이지에서 스스로를 ‘퇴장’시키기 시작했다.

빛무리에 휩싸였다가, 가볍게 흩어져 사라졌다.

[‘헤븐윙’의 신화를 회수했습니다!]

[‘탑의 공적’의 신화를 회수했습니다!]

……

그리고 그들을 이루던 빛의 입자는 고스란히 학생 차정우에게로 흡수되었으니.

수많은 난관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들 나름대로 또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들은 결국 가족을 위해서 탑에 처음 입장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진짜’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학생 차정우는 다시 진짜 차정우가 되어 99층의 스테이지 미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고.

동굴이 사라진 자리로, 넓은 낭떠러지를 따라 연우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형……!”

연우를 직접 잡으러 왔던 차정우였기에, 여태 속을 썩이던 그에게 한 소리를 쏘아붙이려 했지만.

파앗!

뭔가 꺼림칙하게도, 연우가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현피 뜨고 싶다며? 붙자.”

“자, 자, 잠깐! 그게 아니잖아! 스토……!”

차정우는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연우의 주먹은 이미 면전까지 날아들고 있었다.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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