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84화 (784/862)

9화. Brotherhood (3)

계단을 오르는 내내.

차정우는 형의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해. 뭔가…… 달라졌다.’

형이, 형이 아닌 것 같은 느낌.

그걸 느낀 건, 자신만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도 똑같은 것 같았다.

분명히 이전 스테이지를 통과했을 때 뭔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존재가 연우로 둔갑한 건 절대 아니었다.

그런 것도 알아보지 못하고서야 형제라고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런 성깔을 누가 닮아?’

저 특이한 성격을 모방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거였다.

“음?”

그런데 갑자기 연우가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차정우가 무슨 일인가 싶어재 빨리 현실로 돌아와 물었다. 연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부모님도 혹시 기습이라도 있나 싶어 주변을 재빨리 두리번거렸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누가 내 뒷담화를 한 것 같아서.”

“……응?”

“넌 아니지?”

“하, 하하. 무, 무슨 소리를 하, 하는 거야. 내, 내가 그럴 리가 어, 어, 없잖아.”

차정우는 순간 간담이 철렁인다는 게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관심법이라도 부리는 건지!

아무리 칠흑왕의 대체 자아라고 해도, ‘낮’의 주인이 되었을 만큼 격이 높아진 자신의 속내를 쉽게 꿰뚫지는 못할 텐데?

하지만 긴장감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는지, 목소리가 잘게 떨려서 속으로 펄쩍 뛰고 싶었다.

연우는 여전히 수상쩍다는 얼굴로 차정우를 노려봤지만, 뒤에서 무슨 일인가 가만히 보고 있는 부모님들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가볍게 혀를 차면서 다시 돌아섰다.

“걸리기만 해 봐. 아주. 제대로 박살을 내 버릴 테니까.”

“…….”

차정우는 한순간 정신이 너무 멍한 나머지 손으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저건 사람이 아냐. 분명해.’

이미 인간이 아닌 지는 오래되었지만, 저건 이미 그런 수준조차도 넘어선 게 분명하다. 차정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로써 차정우는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달라진 것 맞아. 느낌이 너무 달라.’

이걸 두고,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

단단해졌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안정화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전에 차정우가 보았던 연우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고, 무언가를 쫓아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면이 단단하질 못했다. 언제나 날을 세우고 있었고, 그 날은 어디로 튈지 몰라 옆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걱정이 들게 만들었다.

적은 물론, 형제인 자신에게 쏟아질 수도 있었고, 본인을 해칠 수도 있는 그런 날이었으니까.

그건 아마도 하루라도 더 빨리 강해져서 복수를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과, 동생과 가족들을 어떻게든 되살려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생긴 것일 테지.

그리고 그건 탑을 쓰러뜨리고, 칠흑왕의 대체 자아가 되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되살리고 나서도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더 채찍질했다.

더 빨리 달리기 위해서.

더 멀리 가기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족들을 다시 행복했던 일상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게 분명했다.

일방적인 희생.

차정우는 그것이 못내 안타까우면서도 자신이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갈등을 겪었던 요 며칠 동안, 연우는 어딘지 모르게 많은 면이 달라져 있었다.

마음가짐을 바꿨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전 스테이지를 넘어오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차정우는 지금 연우의 모습이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쫓기고 있지 않아 보였으니까.

이전보다 좀 더 여유로워 보였다.

‘형이 말했던 새로운 계획…… 성공할 수 있을까?’

그래서 차정우는 저런 형의 평온한 모습이 다시 흐트러질까 봐 그게 걱정이었다.

-초월(超越). 저는 아직까지 초월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걸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칠흑왕이라는 개념적인 존재가 주는 구속과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겠다는 뜻이 아닌가!

말이 쉬울 뿐이지, 차정우가 가진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긴 했다.

태초의 태초, 시원으로 되돌아가 천마보다도 훨씬 이전에 존재했다던 칠흑왕을 뛰어넘을 것이라니.

그게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던 것이다.

-그게 쉬워?

-어렵지.

-그럼 어떻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차정우는 연우가 해내지 못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서 여기까지 달려온 형이 아니었었다.

-이블케를 서둘러 잡고, 칠흑왕의 주 자아가 되어서 ‘굴레’를 내 손으로 잡고, ‘꿈’을 멈추는 것까지는 똑같아.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칠흑왕의 자아들을 전부 먹어 치울 거다. 단순한 자아가 아니라, 진짜가 되는 거지.

-칠흑왕, 그 자체가 되는 거구나.

자신만의 확고한 사고관과 의식을 갖고 있던 천마와 다르게, 칠흑왕은 여태 개념적으로만 움직이던 존재였다.

그건 아마도 ‘존재’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생기기 전부터 있었던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테지.

연우는 주 자아가 되어 그런 칠흑왕의 개념을 아예 근본부터 싹 다 바꿔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리빌딩(Rebuilding).

그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 쉽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그걸 두고 초월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 뒤에는 어떻게 하려고? 주 자아라고 해도 자아를 전부 소화하는 데 한참 걸릴 거고, 결국 칠흑왕이 가진 개념적인 한계에 갇혀 있는 건 똑같잖아.

그래서 차정우는 어떻게든 연우를 돕고 싶었다.

-맞아. 칠흑왕, 그 자체가 된다고 해도 결국 거기에 얽매여 있는 한 여태 그랬던 것처럼 계속 ‘꿈’을 꿔야 하는 건 똑같을 테니까.

-그럼……!

-그래서 그때부터가 가장 중요해. 여기서 초월은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뭐?

여태 차정우가 알고 있던 탈각과 초월은 ‘혼자서’만이 해낼 수 있는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이었다.

자고로 신격이란, 오롯이 홀로 설 수 있는 자만이 갖출 수 있는 것이니까.

법칙이 주는 구속과 진리가 주는 압박을 벗어나, 그것들마저 발 아래에 두어 통제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신격이었다.

그런데 연우는 그걸 처음부터 싹 뒤집어 버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정우야.

연우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

‘내 도움…….’

그 말이, 차정우의 가슴에 낙인처럼 깊게 남아 있었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차정우는 금세 그런 불길한 생각 따윈 머리를 털어 전부 쫓아내 버렸다.

할 수 있다.

그런 마음만 가슴 속에 남기고자 했다.

‘어떻게든……!’

그렇게 차정우가 굳게 다짐하면서 연우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갑자기 연우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무슨 당부의 말이라도 하고 싶은 게 있는 걸까.

그래서 가만히 쳐다보는데.

“뭘 봐?”

“…….”

순간, 차정우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희망을 불사르기는 개뿔.

역시 형제는 형제인 모양이었다.

‘확 그냥 사라지게 내버려 두는 게 속 편하지 않을까?’

* * *

계단의 끄트머리에는 거대한 석문이 놓여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문.

연우가 심연에서 칠흑왕의 자아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지나쳤던 문과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칠흑왕의 문은 새카맸던 데 반해, 이곳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석문에 그려진 성화들도 하나같이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리거나, 어둠으로 점철된 무언가와 다투는 게 대부분이었다.

연우는 그 어둠으로 표현된 부분이 바로 칠흑왕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이뤄졌을지도 모를 만큼, 아주 길게 이어진 천마와 칠흑왕의 싸움.

그것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던 셈이었다.

“…….”

“…….”

“…….”

그리고 연우를 포함한 일행들은 언제부턴가 말이 없었다.

따로 엄숙한 분위기가 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긴장감이 감돌았기 때문이었다.

[천마가 당신들을 굽어살핍니다.]

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연우는 이곳이 자신이 다다를 마지막 장소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열겠습니다.”

연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석문을 활짝 열었다.

문틈 사이로 황금색 광채가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단순히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영혼에 쌓인 악의 등이 싹 씻기는 것 같은 황홀이 찾아왔다.

그리고.

파앗!

연우는 문을 열다 말고 재빨리 자신의 목을 향해 달려드는 손날을 가볍게 낚아챘다.

『역시 제법이로군.』

웃음기가 섞인 여인의 목소리.

“통천, 너냐?”

손오공이 말을 꺼내기 무섭게, 석문이 활짝 열리면서 짙은 어둠이 촉수처럼 날아와 일행들을 노렸다.

[100층, 최종의 관에 입장하였습니다!]

[스테이지 미션이 주어집니다.]

……

[통천교주가 강림하였습니다!]

연우는 미션과 관련된 메시지를 확인해 볼 새도 없이, 그림자를 크게 움직여 일행을 위협하려던 어둠을 모조리 다 쳐 냈다.

타다다당!

동시에 손오공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콰아아앙!

황금빛으로 채워진 폭발이 일어나고 어둠이 일부 찢어지면서 통천교주가 나타났다. 바짝 일그러진 얼굴을 한 그녀를 보면서 손오공이 히죽 웃었다.

“오랜만이야, 통천?”

“너희는 끝까지 나를 못살게 괴롭히는구나!”

“누가 들으면 우리가 스토커인 줄 알겠네. 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우리가 스토커냐? 네가 하는 짓이 스토커지?”

“닥쳐라!”

콰콰쾅!

그렇게 통천교주와 손오공의 전투가 시작되는 사이.

빛의 세계가 좌우로 밀려나면서 거대한 홀이 나타났다.

마치 장엄한 신전, 아니, 궁전에라도 들어온 듯한 광경.

돔의 형태를 띤 천장에는 석문에 그려진 것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성화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려에서부터 천마로 이어지는 수많은 ‘얼굴’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었으니!

그 아래, 우마왕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저벅.

저벅.

“결국 여기까지 왔군. 그것도 상당히 많은 방문객들과 함께…….”

우마왕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연우와 일행들을 쓱 훑어보았다.

연우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블케는 어디에 있지?”

“이블케는 한창 의례를 펼치고 있는 중이라네. 아주 바쁜 상황이지. 그러니.”

쿵!

우마왕이 지팡이로 바닥을 찍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강한 압박감을 느껴야만 했다.

최초의 짐승이자 황이라는 존재가 주는 위압감은 실로 대단했다.

“이 이상, 한 발자국도 넘어갈 수 없다네.”

우마왕은 옆집 할아버지처럼 포근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을 자랑했다.

“아버지.”

『그래.』

하지만 이미 연우가 하려는 일을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마음먹은 차정우는 그런 압박과 위엄에 좌우될 인사가 아니었고.

막내아들의 생각을 읽은 크로노스가 스퀴테로 변하면서 곧바로 합일을 시도했다.

화아아아!

[‘낮(에로스)’의 태양이 세계 곳곳에 빛을 전파합니다!]

쿠르르릉!

차정우가 우마왕과 격돌을 벌인 순간, 레아와 녹턴도 도중에 끼어들었다. 레아는 공간을 제어하면서 일행들에게 버프를, 적들에게는 디버프를 실어 주는 한편, 녹턴은 빠르게 검을 뽑으면서 우마왕의 오른팔을 잘라 나갔다.

일행들은 모두 시간을 벌어 주려 했다.

그렇기에.

연우는 속으로 그들에게 모두 감사하단 말을 하면서 고개를 높이 들었다.

돔의 중심부에.

거대한 황금색 구체가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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