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려의 횃불 (3)
“이게 무슨……!”
인큐버스는 순간 본능적으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던 건지 재빨리 몸을 뒤로 내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새끼 아귀가 움직였다.
콰직!
“크아아악!”
인큐버스의 오른팔이 뜯겨 나갔다.
이빨 자국이 자글자글하게 남았다. 피가 튀면서 마기가 줄줄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날……! 날 감히 속여?”
“그, 그게 아, 아닐…… 꺄아아악!”
서큐버스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은 이 일과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알리려 했지만, 말을 길게 이을 수가 없었다.
‘마, 말도 안 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얌전한 아이였는데……! 나를 다시 천상으로 보내 줄, 돌아가신 아버지게 내게 주신 선물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아!’
인큐버스가 내뺀 자리로 새끼 아귀가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서큐버스의 목을 무참히 물어뜯었기 때문이었다.
서큐버스는 그 자리에서 모가지가 꺾인 채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고.
새끼 아귀는 그대로 그녀의 사체를 밟고 허공으로 날아들면서 인큐버스를 향해 다시 아가리를 크게 벌렸다.
크와아앙!
마치 먹잇감을 노리려는 맹수와 같은 모습.
귀까지 쭉 찢어지며 벌어진 아가리 속에 깊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인큐버스는 어떻게든 새끼 아귀를 떨쳐 내기 위해 갖가지 권능과 마법을 퍼부어 대면서 녀석을 막아 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마법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그대로 아가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아가리 속에 있는 저 어둠은 마치 무저갱을 보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절대 밖으로 내놓는 법이 없다는 지옥 밑바닥에 위치한 무저갱.
“마, 말도 안 되는……!”
인큐버스는 그 말을 끝으로 머리통의 절반이 그대로 뜯겨 나가고 말았다.
콰드득, 콰드득-
새끼 아귀는 마치 고무라도 씹은 것처럼 아가리 속에 들어온 것을 질겅질겅 씹어 댔다.
그리고.
‘지금!’
여태껏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연우가 즉각 나섰다.
[검붉은 구비타라]
그림자 안쪽에서 새끼 아귀를 향해 검지를 살짝 튕기자, 손가락 끝에 검뢰가 잔뜩 응축되었다가 폭발하면서 대지와 하늘을 잇는 거대한 검붉은색 기둥을 세웠다.
콰르르릉-
콰콰콰콰!
졸지에 오랜만에 만난 트라우마를 완전히 제거하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던 새끼 아귀는 그대로 기둥에 휘말리고 말았으니.
거기다 거기서 피어난 연쇄 폭발과 후폭풍이 잇달아 새끼 아귀를 몇 번씩이나 갈가리 찢어 놨다.
연우는 바로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파아앗!
[하늘 날개 - 최대 출력]
이미 7차 용체 각성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하늘 날개의 버프를 최고조로 끌어 올렸다가, 현자의 돌까지 최대로 쥐어짜면서 연쇄 공세를 퍼부어 댔다.
검뢰가 몇 번씩이나 새끼 아귀를 뚫고, 또 뚫으면서 대지에 작렬했다.
이제 땅거죽은 아예 헐거워지다 못해 아귀계라는 세계 자체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으니.
수없이 명멸하는 빛무리 속에서 아귀계를 터전으로 살아가던 아귀는 물론, 대형 마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삽시간에 쓸려나가고 말았다.
키에에엑!
어디선가, 그런 새끼 아귀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하지만 연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시 한번 더 검붉은 구비타라를 검결지로 터뜨렸다.
콰아아앙!
폭발은 세계를 둘러싸고 있던 표면을 따라 아예 그 너머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던 다른 육도까지 모조리 뒤흔들어 놓았다.
[가장 가까이 붙어 있던 ‘지옥계(地獄界)’가 거칠게 흔들리면서, 그 여파로 절반이 넘는 생명체가 절명하고 말았습니다!]
[축생계(畜生界)가 거친 혼란에 잠겨 막대한 크기의 전염병이 곳곳에 창궐했습니다!]
……
[천상계(天上界)의 위대한 신인들이 아귀계에서 벌어진 대혼란을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입니다! 참상을 확인한 신인들이 비명을 지릅니다!]
[육도를 관통하고 있던 윤환전생의 고리에 심대한 타격이 주어졌습니다!]
연우는 잘게 부서진 채로 흩어지는 새끼 아귀의 신화 파편 속에서, 녀석이 원래 역사에서 이 뒤에 겪었을 일들을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몽마왕은 가장 지고한 존재라 일컬어지는 천마의 얼굴 중 하나가 이런 한낱 아귀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끼고 온갖 실험을 자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친구라고 생각했던 다른 아귀를 잡아먹게 하기도 하는 등, 인격을 파탄 나게 만드는 일들도 숱하게 벌어졌으니.
가뜩이나 친어미처럼 깊게 믿고 따랐던 서큐버스의 배신으로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새끼 아귀는 결국 가슴 속에 분노와 증오만이 남게 되고.
결국 나중에 가서는 힘을 제대로 각성하게 되면서, 모든 걸 끝장내 버리고 말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흥미를 느낀 칠흑왕이 오히려 좋은 기회다 싶어 자아로 임명하게 된 거고……?’
‘꿈’과 ‘굴레’를 어떻게든 유지하려는 천마의 얼굴이 도리어 세계를 종말로 이끌게 되어 버린다니. 이만한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
본인은 바라지 않았으나, 운명이 준 고난이 결국 대적자를 집행자로 만들어 버린 셈이었다.
새끼 아귀는 세계가 종말을 맞은 뒤로도, 심연 속에 들어가 다른 칠흑왕의 자아들을 연달아 잡아먹었다.
그것만이 녀석에게 남긴 유일한 정체성이었으니까.
그러다 현인으로서, 그리고 이블케로서 인격을 가지게 된 건 대체 얼마나 많은 ‘꿈’이 저물고 ‘굴레’가 돌아갔는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세월이 흐르고 나서였다.
그때는 이미 주 자아가 되어 버린 상태였으니.
다른 자아들은 어느 누구도 그를 꺾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도리어 다시 새끼 아귀로 되돌아가 자신들을 잡아먹으려 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런 모든 일련의 과정을 찰나 속에서 전부 훔쳐보면서.
연우는 새끼 아귀-현인이자 이블케가 여기서 바라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트라우마를 완전히 제거해서 려의 횃불을 완성하려던 것이었나?’
99층의 시련이 신화들을 되짚으면서 자신의 완전한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이라면.
100층의 시련은 그렇게 정립한 정체성을 오롯이 발전시켜 세상과 세계라는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만드는 데 있었으니.
탑을 모두 오르면 ‘신(神)’이 될 수 있다고 했던 건, 말 그대로 고고하고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게 한단 뜻이었다.
이블케 또한 바로 이런 것을 노린 것이리라.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마음 한편에 깊숙하게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제아무리 신격이라 해도 쉽게 지울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니.
그걸 말끔하게 지우고, 오롯이 서는 것.
그리하여 자신의 아픔 따윈 남지 않은 세계를 재창조하는 것.
아마도 그것이 이블케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먼저 서큐버스를 치기라도 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골치 아팠겠어.’
어쨌거나 녀석의 트라우마를 제거해 준 셈이 되니. 이블케에게 긍정적이었으면 긍정적이었지, 절대 부정적인 상황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연우는 이블케가 강림하는 타이밍을 노려서 기습을 감행했고.
녀석이 어떻게 반격하기도 전에 연거푸 몰아치면서 존재를 완전히 찢어발기는 데 성공했다.
콰르르르-
쿠쿠쿠쿠!
[‘지옥계’가 무너졌습니다!]
[‘축생계’가 무너졌습니다!]
……
[‘천상계’를 이루고 있던 골조에 커다란 균열이 가해졌습니다!]
[‘육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존재들이 칠흑왕이 주는 공포에 질립니다!]
……
[경고! ‘칠흑왕의 주 자아’를 구성하고 있던 신화가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붕괴가 시작됩니다. 탈출을 권고합니다.]
[경고! ‘칠흑왕의 주 자아’가 완전히 무너질 시, 신화 속에 갇히게 될 경우 같이 함몰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탈출을 권고합니다.]
[경고! ‘칠흑왕의 주 자아’가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경고 메시 지에도 불구하고.
연우는 자신이 찾던 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인상을 딱딱하게 굳혔다.
‘없다고?’
새끼 아귀를 몇 번씩 찢어 놨는데도 불구하고, 이블케의 근간이 될 만한 본체는 보이질 않았으니까.
‘함정!’
그 순간.
“잡. 았. 다.”
퍼어억!
“……컥!”
연우는 섬뜩한 기분과 함께 가슴을 뚫고 나온 다섯 개의 손톱을 볼 수 있었다.
등 뒤로 공간이 살짝 열리면서 이블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효효! 염탐이라니. 차연우 님에게 이런 취미가 있는 줄은 생각도 못 하였군요. 허락 없이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건 죄악이랍니다.”
[경고! 영체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경고! 신격에 막대한 손상이 이뤄졌습니다!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격을 복구하십시오!]
[경고! 적의를 띤 칠흑이 균열 사이로 강제 주입되고 있습니다! 균열이 더 커집니다! 어서 대피하십시오!]
……
새로운 내용의 경고 메시지가 망막 한쪽을 가득 채웠다.
그만큼 위태롭단 뜻이겠지.
이블케는 평상시처럼 밝은 웃음소리를 냈지만, 어쩐지 눈빛만큼은 이전보다 훨씬 흉흉해져 있었다.
타인에게는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치부가 드러난 셈이니, 화가 단단히 난 게 분명했다.
“99층에서…… 모든 신화를 합친 게 아니었…… 나?”
연우는 그 짧은 순간에도 방금 전 해치운 새끼 아귀가 분명히 이블케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확인했었다.
괜한 함정에 걸려서야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블케’는 애당초 한 명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두 명이었던 것이다.
“투 트랙(Two Track)이지요. 99층의 시련은 원래 알고 있었던 내용인지라. 아주 자그마한 술수를 부려 봤답니다. 제가 괜히 처음부터 탑의 관리자로 있었을까요?”
최초 관리자였던 만큼, 탑의 여러 시련에 대해서도 어느 누구보다 빠삭했겠지.
공략법도 제일 많이 알고 있었을 테고.
그런데도 탑을 공략하지 않고 관리자로 계속 남아 있으면서 기회를 노렸던 건, 그때까지 천마를 상대하기가 버겁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이블케는 차갑게 웃으면서 아가리를 크게 젖혔다.
마치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를 잡아먹었을 때처럼.
“그 죗값으로 당신도 먹히십시오, 차연우 님.”
무저갱을 담고 있는 거대한 톱니 이빨이 연우를 와그작 씹어먹으려는 그 순간.
“싫은데?”
연우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인데도 불구하고, 입가에 차가운 냉소를 띠고 있었다.
츠츠츠-
연우가 달고 있던 한 쌍의 하늘 날개 중 왼쪽 부위, 죽음의 날개가 갑자기 잘게 떨리기 시작한 건 바로 그때였다.
[두 개의 신위 중 하나를 강제로 분리합니다!]
[신격의 일부가 박탈됩니다!]
이블케의 손톱에 걸려 있던 연우의 육체에서 또 다른 연우가 강제로 튕겨 났다.
콰드득!
“무슨 짓을……?”
이블케가 물어뜯은 건 연우의 껍데기였을 뿐.
아니, 정확하게는 죽음의 날개를 달고 있는 허물이었다.
진짜 연우는 오른쪽 부위, 투쟁의 날개를 단 채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메시지의 내용처럼, 그는 두 개의 신위 중 죽음의 신위를 미끼로 이블케에게 던져 주고, 정작 자신은 투쟁의 신위만 가진 채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가 차갑게 웃던 그대로 용언(龍言)을 외쳤다.
“터져라.”
콰아아앙!
콰콰쾅! 콰쾅!
콰르르릉-
죽음의 날개를 품고 있던 연우의 허물이 그대로 폭발했다. 이블케가 어떻게 손을 쓸 시간 따윈 없었다. 무저갱으로 잡아먹을 수조차 없었다.
연우가 갖고 있던 ‘죽음’은 개념, 그 자체였으니.
그런 무저갱마저도 ‘죽음’을 이식시켜 버린다면, 형태를 구성하고 있던 존재 개념마저도 흩어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우는 이것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져 줌으로써, 죽음의 개념이 이블케는 물론 녀석을 구성하고 있던 신화며 신위, 신격에까지 모두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죽음’이 찬란하게 퍼집니다!]
[‘칠흑왕의 주 자아’가 ‘죽음’을 막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거스를 수 없습니다!]
[‘칠흑왕의 주 자아’가 ‘죽음’을 거스르기 위해 모든 권능을 행사합니다!]
[권능에 ‘죽음’이 이식되어 전부 무효화됩니다!]
[‘칠흑왕의 주 자아’가 ‘죽음’을 부수기 위해 모든 권한을 시도합니다!]
[권한에 ‘죽음’이 부여되어 전면 취소됩니다!]
……
[‘칠흑왕의 주 자아’가 ‘죽음’에 잠식되었습니다!]
[신화가 붕괴합니다!]
[신격이 붕괴합니다!]
[신위가 붕괴합니다!]
……
[‘칠흑왕의 주 자아’가 다루던 모든 ‘려의 등불’이 ‘죽음’으로 소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