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790화 (790/862)

15화. 데우스 엑스 마키나 (1)

쿠와아아!

그것은 엄청난 크기의 몸집을 자랑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덩치에서는 그보다 훨씬 막강한 기파가 흘러나왔으니.

『최초의 짐승이라더니. 확실히 상대하기가 너무 버거운데……?』

“동감입니다.”

차정우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크로노스의 목소리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우마왕을 상대하는 것은 너무나 버거웠으니까.

전투가 시작된 이후.

우마왕은 곧장 본체로 변해 차정우 일행들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최초의 짐승이자 황이 된 자라더니.

그 유구한 세월을 층층이 쌓아온 만큼, 강하기도 너무 강해서 그들로서는 너무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니만큼, 힘이 달리는 차정우 일행으로서는 방어에만 급급했다.

[최초의 짐승이 ‘낮(에로스)의 태양’을 노려봅니다!]

[최초의 짐승이 ‘낮(에로스)’을 부수고자 합니다!]

“젠장!”

차정우는 흠칫 놀라면서 몸을 최대한 뒤로 내빼야만 했다.

쿵, 쿵, 쿵!

하지만 우마왕은 그런 거구에 어울리지 않게 맹렬한 속도를 자랑했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공간이 일제히 부서지면서 간격 따위는 전부 무효화되고 말았다.

레아가 어떻게든 퀴리날레의 권능을 적극적으로 발동시켜 그의 발을 묶어 보려 해도.

[권능, ‘절대권역지정(絶對權域指定)’이 실패하였습니다!]

[권능, ‘퀴리날레의 성역 선포’가 실패하였습니다!]

[권능, ‘마도 공간 구축’이 실패하였습니다!]

……

[최초의 짐승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우마왕이 모조리 그것을 파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히려 신력을 개방하면서 발생시킨 후폭풍으로 그들을 뒤덮기까지 하니 속수무책이었다.

콰콰쾅, 쾅-

콰아아앙!

우마왕이 거대한 발굽을 지면에 내려찍는 순간, 스테이지가 크게 출렁이면서 균열이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충격파가 스테이지를 뒤흔듭니다!]

[스테이지의 일부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스테이지의 내구도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습니다!]

[경고! 과도한 플레이는 운영자 및 관리자에게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경고! 해킹 툴이 사용된 정황이 발견되어 방화벽이 최고 단계의 가드 시스템을 발동합니다!]

……

[가드 시스템이 실패하였습니다!]

[가드 시스템이 파괴되었습니다!]

우마왕은 스테이지가 자체적으로 주는 제재마저도 어렵지 않게 부숴 대고 있었다.

『저 미친 영감을 과연 어떻게 제지할지가 문제인 것 같은데……?』

크로노스는 그런 우마왕을 보면서 몇 번이나 헛웃음을 흘려야 했다.

자신의 통치기에도 동주칠마왕이 함부로 대하기 힘든 세력이긴 했다지만, 그래도 우마왕과 직접적으로 충돌해 본 적은 없어서 그를 둘러싼 수많은 소문들이 과장되었다고 여겼었건만.

이래서야 그런 소문들조차 진짜 우마왕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들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닌가?

오히려 저만한 힘을 가지고도 여태껏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게 더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우마왕이 더더욱 무섭게 느껴지면서도, 어떻게 물리쳐야만 하는 건지 갑갑해졌다.

차라리 손오공이 나서서 도와준다면 이야기가 좀 더 수월하게 풀릴지도 모르지만.

『저쪽도 저쪽 나름대로 바쁜 것 같고…….』

퍼퍼퍼펑!

손오공과 통천교주의 팽팽한 접전을 보고 있노라니 도와 달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다만, 막내아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데려왔던 녹턴이 아까 전부터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이 영 찝찝했다.

가만히 인상을 찡그리면서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 무언가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혹은 가물거리는 무언가를 억지로 떠올리려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진짜 어떻게 하지?’

이대로 있다간 정말 연우를 도와주지 못하게 될 텐데.

크로노스는 점차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들은 저 캄캄한 곳에서 홀로 싸우고 있는데, 아버지가 되어 아무것도 해 주질 못하고 있는 판국이니.

크로노스의 그런 생각을 읽은 걸까?

스퀴테를 잡는 차정우의 손길에 힘이 바짝 실렸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형은 잘 해낼 거예요.”

『……알고는 있다만.』

크로노스는 뒷말을 이으려다가 도중에 삭였다.

이 말까지 꺼내기에는 아버지로서 계속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아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마왕의 발을 묶는 거지, 쓰러뜨리는 건 아니잖아요?”

크로노스는 그제야 차정우가 단순히 자신을 위로하는 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거니?』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아아!

차정우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날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후웁!’ 하고 숨을 크게 삼키면서 하늘 날개를 크게 퍼뜨렸다.

[‘낮(에로스)’의 태양이 화려하게 빛을 발합니다!]

“귀찮게 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아요.”

[‘낮(에로스)’의 태양이 연결된 고대신들을 전부 수용하고자 합니다!]

……

[잊힌 고대신들이 호응합니다!]

[고대신, ‘오릭스’가 수많은 ‘꿈’을 전전한 끝에 처음으로 눈을 뜨며 태양을 바라봅니다.]

[고대신, ‘시벌커그’가 태양의 광도를 측정하여 자신을 수용할 수 있는지를 가늠합니다.]

[고대신, ‘스타이’가 태양이 새로운 자신들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지를 판별합니다.]

……

[‘오릭스’가 부름을 승낙합니다.]

[‘시벌커그’가 부름을 승낙합니다.]

[‘스타이’가 부름을 승낙합니다.]

……

[연결된 모든 고대신이 ‘낮(에로스)’의 태양을 단순한 후계자가 아닌 완전한 전승자로 인정하였습니다!]

[고대신이 남긴 법칙과 신력이 모두 ‘낮(에로스)’의 태양에게 귀속됩니다.]

[태양의 광채가 더더욱 환해집니다!]

그때, 레아를 뒤쫓던 우마왕이 걸음을 멈추고, 차정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키보다도 훨씬 거대한 동공이 꿈틀거리면서 괴성인지 목소리인지 모를 짐승의 소리를 내뱉었다.

새. 로. 운. 태. 양. 인. 가.

어딘지 모르게 흥미로워하는 기색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그. 들.을.

좇. 으. 려. 해. 서. 야.

좋. 을. 건. 없. 을. 텐. 데.

우마왕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걱정기도 다분히 맺혀 있었다.

이제는 세계의 법칙이 되어 버린 고대신의 남은 자리마저 전부 계승해 버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절대적으로 벗어날 수 없을 속박의 굴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차정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자신을 둘러싼 배광을 더욱더 크게 화려하게 빛냈고.

[새로운 ‘황’이 탄생했습니다!]

드디어 원하던 메시지가 도출된 순간, 빛살로 변하면서 우마왕에게로 다시 달려들었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맹렬한 움직임.

『정우야, 너……!』

크로노스로서는 차정우가 이 승부를 위해 무리하게 영혼의 격을 끌어올리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곧 차정우가 내뱉은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형한테 계속 도움만 받을 수는 없잖아요? 이제는 제가 도와야지.”

『…….』

“이번엔 제가 형을 구할 겁니다.”

연우가 그동안 쉬지 않고 투쟁에 투쟁을 거듭하면서 여기까지 왔듯이, 이제는 자신이 그래야 할 차례라고 말하는 것이다.

쿠쿠쿠쿠!

촤촤촤촤-

우마왕은 삽시간에 자신의 육체 곳곳에 생채기가 남자, 눈살을 가늘게 좁히면서 우보를 잇달아 밟았다.

천마군림보의 원형이 되는 그의 권능.

[‘우보’가 발동됩니다!]

[취소되었습니다.]

[‘군림보’가 발동됩니다!]

[취소되었습니다.]

……

하지만 차정우는 우보가 공간을 장악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고, 역으로 자신이 군림보를 펼치기도 했으니.

우마왕도 그것을 파훼하고 재차 우보를 밟으면서, 둘의 대결은 어느새 일종의 술래잡기처럼 변했다.

술래와 도망자가 따로 없는 둘의 싸움은 누가 먼저 상대를 잡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무리 차정우가 체급을 크게 올려놨다고 해도, 기량 면에서는 크게 달릴 수밖에 없었으니. 레아가 계속 옆에서 서포트를 해 주면서 아들이 잡히지 않도록 만들었다.

콰콰콰콰-

스테이지를 따라 돌풍이 쉴 새 없이 휘몰아쳤다.

* * *

녹턴은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마지막 스테이지에 들어오고 나서도,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99층에 얽매여 있었다.

거기서 그가 봤던 것들이, 아직까지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으니까.

‘난…… 대체 누구지?’

녹턴은 여태 자신이 21층, 그림자 도장에서 나온 환영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페이스리스-검무신이 그렇게 말하였고, 무왕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이전 시련에서 그렇게 많은 신화들이 나왔던 거지?’

만약 그들의 말마따나 자신이 올포원-비바스바트가 남긴 환영이었다면, 그를 구성하는 신화는 그리 많지 않아야만 했다.

끽해야 환영이었을 때의 모습이나, 무왕의 제자로 있을 때의 모습이 고작이겠지.

하지만 99층에서 녹턴을 맞이한 것은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수의 자신이었다.

그것들은 모두가 각기 다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녀석은 안타까워했고.

어떤 녀석은 슬퍼했으며.

또 어떤 녀석은 질투하기도.

다른 어떤 녀석은 선망해 하기도 했다.

문제는 분명히 정체성이 결여되었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모두 그를 알아보는 눈치였다는 점이었다.

마력을 익히지 못한 듯 그저 10대 사춘기로만 보이는 신화, 두 눈에 열의가 가득 찬 청년의 신화, 염세에 찌든 신화, 분노에 젖은 신화…….

모두가 가릴 것 없이.

그렇기에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여기까지 오고 나서도, 녹턴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난, 대체 누구지?’

[천마가 당신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대체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천마가 당신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이곳에 오고 나서도 계속 따라 붙는 저 메시지는 자꾸만 그의 심기를 긁어 댔다.

어디선가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거북하기만 했다.

그동안 죽은 아들에 대한 연민이 자신에게로 전가되었다고 여기며 무시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천마가 당신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녹턴은 여전히 자신에게 고정된 천마의 시선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슴이 답답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심장을 꽉 조르는 것처럼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질문을 던지면, 저자는 과연 대답을 해 줄까?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천마가 당신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당신은 대체 저와 무슨 관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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