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00화 (800/862)

25화. 에필로그, 마지막 장 (6)

연우는 차정우가 뻗은 손을 흔들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연우는 잠시 망막의 아래쪽을 차지하고 있는 메시지를 내려다봤다.

[칠흑의 변이가 이뤄지는 중입니다. 56%.]

[초월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초월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즉, 연우는 여전히 칠흑왕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

그가 바라던 대로 세계를 입맛대로 고치기 위해서는 초월을 완성해야만 했지만.

차정우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왜 이래? 그런 거 원래 신경도 안 썼던 사람이?”

그 말에 연우도 쓰게 웃고 말았다.

“……하긴 그 말도 맞긴 맞군.”

원하는 결말을 아직 이룰 수는 없어도, 그와 비슷한 결말을 갖춘 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뭐가 나쁠까.

그 세계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으며,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던 곳이라면…….

“아! 뭐 해, 진짜? 안 갈 거야? 내가 여기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개고생했는지 알아? 계획에도 없는 제자를 만들질 않나, 뭔 이상한 괴물들이랑 쌈박질하질 않나. 이럴 거면 진짜 그냥 두고 갈……!”

“간다, 가. 하여간 성깔머리하고는.”

“그쪽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요?”

두 사람은 여느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티격태격하면서 손을 맞잡았다.

연우는 동생의 도움을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칠흑왕은 이 자리에 남는다. 하지만 차연우라는 이름을, 형상을 가진 칠흑왕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아갈 뿐이었다.

[차정우가 차연우를 인도합니다.]

[차연우가 차정우의 뒤를 따라갑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칠흑왕이 계속 맞물려 돌아갑니다!]

[세계가 계속 분화합니다.]

[우주가 계속 확장됩니다.]

……

[천마가 흐뭇하게 모든 세계를 내려다봅니다.]

* * *

“으, 빌어먹을 것들.”

크로노스는 밤이 되도록 여전히 시끄럽기만 한 마당 쪽을 힐끗 노려보다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맥주 캔을 땄다.

하루 종일 씨름한 늦둥이가 겨우 잠드는 이 시간에 캔맥주를 한 잔 마시는 것. 이게 최근 들어 생긴 유일한 그만의 낙이었다.

“또 자작하시는 거예요? 빈속에 그렇게 드시면 안 좋다니까. 이거라도 하나 드세요.”

그때, 세샤가 크로노스 앞에 접시를 하나 내려다 놓았다. 버터 오징어 구이가 향긋한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입이 심심하던 차였는데. 고맙다. 너도 한잔할래?”

“제가 아니면 누가 할아버지랑 같이 마시겠어요?”

“흐흐. 맞는 말이야. 우리 손녀밖에 없지.”

크로노스와 세샤는 이제 겉보기엔 나이 차가 크게 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세샤도 많이 자랐다는 뜻. 크로노스는 그런 손녀를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한편으로는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자그마한 아이가 이제는 이렇게 어엿한 아가씨가 되어 버렸을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연우는 그런 모습을 계속 지켜보지 못했던 것이니까.

사실 연우라는 이름은 그들 가족에게 있어 떠올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잔뜩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기억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천마가 경고했을 때, 그는 사실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자식을 잊어버리는 아버지라니. 그 얼마나 끔찍한 소리란 말인가. 절대 그런 일은 죽어도 없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기억의 한 단면을 잃기는 했어도, 이제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면 괜찮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무책임한 태도였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차정우가 자주 자리를 비우고 연우를 찾으러 다니는 것도, 그냥 워낙에 공사다망한 자리에 앉아 있으니 그런가 보다 하고 여겼을 뿐.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기억이 돌아오고, 지난 시간 동안 그 소중한 것을 얼마나 까맣게 잊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때. 크로노스는 레아를 끌어안고 하루 종일 눈물만 쏟아 냈다.

못난 아버지를 용서하지 말라며, 네가 실망한 나머지 우리의 곁을 떠나더라도 부디 얼굴은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는 말만 되뇌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의 곁에 연우가 항상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이따금 우는 늦둥이를 달래고 젖병을 물릴 때면 어디선가 익숙한 시선이 느껴지곤 했었다.

혹시 알 수 없는 적에게 감시라도 당하는 건가 싶어 감각을 날카롭게 세워 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밖에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늦둥이를 달래느라 심신이 많이 피로해져서 헛것을 느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절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보이지 않던 그 시선은 이따금 복잡미묘한 감정을 담아 자신과 레아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도, 늦둥이를 볼 때면 항상 사랑스럽다거나 귀여워 죽겠다는 기색으로 바뀌었으니까.

그리고 늦둥이도 그런 시선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마다 방긋방긋 웃어 보였다.

꺄르르. 꺄르. 그런 웃음소리는 분명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시선에게만 향했었다.

아마도 그게 바로 연우가 아니었을까. 아니, 연우였을 것이라고 이제는 확신했다.

그가 아니라면 가족의 주변을 계속 서성이고, 집 주변만 뱅글뱅글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시선이 뚝 끊어졌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크로노스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루에도 열댓 번은 더 늦둥이를 보러 왔던 시선이 요즘은 통 느껴지질 않으니 불안할 수밖에.

혹시 여전히 근방을 서성이고 있는데도 느끼지 못했던 건 아닐까. 또 이대로 잊어버릴 거란 징조는 아닐까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번에 아들이 찾아온다면 해 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기회가 영영 사라진 건 아닌지 크로노스는 늘 좌불안석이었다.

그래도 가족들에게는 그런 조급한 심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있다지만…… 캔 맥주를 든 손은 잘게 떨려 왔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정우 녀석도 집에 들를 때가 너무 적은데. 이것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던 그때.

“응?”

세샤는 크로노스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오징어 다리를 하나 뜯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로노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똑같이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마침 문이 열리면서 차정우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

세샤는 오징어 다리를 던져두고, 차정우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

차정우는 그런 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딸, 이렇게 다 컸는데도 아빠 껌딱지면 남자친구가 싫어할 텐데. 이래도 되는지 몰라?”

“흥. 계속 그런 식으로 떠보실 거예요?”

“들켰냐?”

“아빠는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순하거든요?”

“그래서 있고?”

“말 안 해 주지, 메롱.”

차정우는 딸의 애교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다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세샤가 어제 비싼 돈 주고 한 머리라고 크게 항의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딸의 머리를 망가뜨렸다.

그렇게 부녀가 아웅다웅하는 사이, 크로노스가 조용히 다가왔다.

“이번에는 좀 많이 늦었구나.”

“뭘 좀 확인하느라구요.”

“……뭘?”

크로노스로서는 뭔가 싱숭생숭해질 수밖에 없는 말이라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정우는 태평하게 마당에서 바비큐 놀이에 여념이 없는 아르티야 멤버들을 슬쩍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왠지 소란스럽다 싶어서 빨리 왔더니. 손님들이 이렇게나 모였네. 잘됐네요. 안 그래도 다 같이 모였을 때 보여 줄 게 있었는데.”

“……?”

크로노스가 그게 뭐냐고 물으려다가 도중에 말을 뚝 멈추고 말았다.

차정우가 들어오면서 활짝 열어 두었던 현관문 바깥에서, 한 사람이 섣불리 들어오지 못하고 어색한 듯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정우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개구쟁이 같은 그와 다르게 조금 딱딱해 보이는 인상. 그러면서도 두 동공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자꾸만 혼란스럽게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사내는 무언가를 다짐한 듯, 입술을 꾹 다물면서 현관문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고.

뚜벅-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 크로노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크로노스는 한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벙긋거렸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새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불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아들이 찾아온다면 해 줘야겠다고 생각해 뒀던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모두 싹 사라져 있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인 듯, 잠시 뭐라고 말하기를 머뭇거렸고.

“삼…… 촌?”

그 어색한 분위기는 세샤가 내지른 소리에 와장창 깨졌다.

“삼촌!”

세샤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삼촌에게로 와락 안겼다. 엉엉엉. 보고 싶었어요.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그 말만 되뇌는 조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연우는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실감이 났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내 집에. 아니…… 우리 집에.

그래서 연우는 크로노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먼 여행을 갔다가, 이제야 돌아왔노라고.

크로노스의 입가에 그제야 살짝, 희미하게 미소가 맺혔다.

“그래. 어서 오려무나.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맥주 한잔할 테냐?”

크로노스가 들고 있던 맥주 캔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자, 연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침 시원한 게 마시고 싶어졌어요.”

대답하는 그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First Ending.

“이봐, 헤르메스.”

“왜 그래, 누이? 새삼 진지한 표정을 다 짓고. 원하던 대로 전부 다 잘 풀리고, 잘 끝났잖아.”

“아직 안 풀린 의문이 있어서.”

“의문?”

“어. 내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나?”

“무슨 기억?”

“예지몽.”

“아, 그…… 사진?”

“어. 그거.”

헤르메스는 아테나가 오래전부터 진지하게 말했던 예지를 떠올렸다. 사라진 브라함도 언젠가 비슷한 투로 말한 적이 있었다.

마치 한 장의 가족사진처럼 찍힌 그곳에는 갈리어드도, 세샤도, 아난타도, 그리고 브라함도 있다고 했었다. 연우인지 정우인지 모를 인물도 같이 행복하게 웃으면서.

문제는 그 사진 속에 있어야 할 브라함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 돌아올 수가 없었고. 연우인지 정우인지 모를 인물의 정체도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예지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에는 둘이나 되는 대신격이 공통적으로 내다보았던 것이기 때문에 찝찝한 면이 많았다.

“그거야…….”

하지만 헤르메스는 그거야 당연하지 않으냐는 듯,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우리가 아직 못 본 뒷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 * *

“거, 앞에 빤히 ‘낚시 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데도 대놓고 낚시를 하고 있는 건 대체 무슨 배짱인가?”

한강 고수부지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사내가 슬쩍 고개를 위로 들었다.

그곳에 브라함이 서 있었다.

사내, 연우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맺혔다.

“오셨습니까?”

“그래. 오긴 왔는데. 대체 무슨 마술을 부렸나?”

브라함이 눈을 떴을 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자신은 죽음, 아니, 소멸을 맞았을 텐데…… 당시의 기억까지 전부 갖추고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있었으니까.

“저도 나중에 알았는데, 제게 ‘만능 복원’이라는 권능이 있었던 거 기억하십니까?”

“자네 아버지가 남겼던 유해를 수습하면서 생성되었던 권능…… 설마?”

“예. 이데아에 기록되는 건 제 데이터만이 아니더군요.”

브라함은 그제야 이유를 깨닫고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만능 복원에는 ‘상태 회귀’라는 옵션이 있었다.

시전자의 육체와 영혼에 대한 데이터를 이데아에다 백업해 두었다가, 데이터 손실이 클 경우에 복원을 위해 사용되는 옵션이었다.

그런데 백업된 데이터에 연우의 것만이 아니라, 권속들에 대한 것도 같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우의 권속들은 그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림자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연우는 거기서 브라함의 데이터를 발견하고, 복원을 이룬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만큼 복원하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영혼도 불안정했을 테고.”

“저 명색이 칠흑왕입니다.”

“명백한 권력 남용이로군.”

“권력은 쓰라고 있는 거죠.”

브라함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런 모습이 연우답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도, 좀처럼 짐작하기 힘들 만큼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을 것 같았는데. 연우의 여전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편이 편안해졌다.

딸과 외손녀도 보고 싶었다. 두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있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여기서 왜 낚시를 하고 있나?”

“누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 누구를?”

쿵!

그때, 브라함은 지축을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황급히 옆으로 돌렸다.

산적처럼 수염을 자글자글하게 기른 떡대가 서 있었다. 관자놀이에서 난 뿔이 다른 어느 때보다 꼿꼿해 보였다.

판트는 이제 헤어졌을 때보다 훨씬 대단한 기세를 자랑했다. 이따금 아이 같던 눈매도 이제 일가(一家)를 이룬 제왕의 것처럼 단단해 보였으니. 브라함은 그런 녀석을 보면서 짧게 ‘오’하고 감탄을 터뜨렸다.

판트는 브라함에게 반갑다는 듯 눈인사만 간단하게 하고, 연우를 보면서 부리부리하게 눈을 떴다.

“오랜만이우, 형님. 그동안 잘 지내셨수?”

“그래 보이나?”

“고생 적잖게 한 얼굴이시구만. 얼굴도 많이 썩으신 것 같고.”

“너도 그렇게 만들어 줄까?”

“……뭔 말을 해도 예나 지금이나 그리 무섭게 하시우?”

판트는 그동안 강자를 찾아 숱하게 무사 수행을 다니고, 업적을 쌓으러 다녔어도 연우에게 덤빌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에 그는 기대하고 있는 게 따로 있었다.

“그보다 그 말, 사실이우?”

“어떤 거?”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한판 붙게 해 준다던 그 말.

판트는 잔뜩 들떠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평생 뛰어넘고자 애썼던 대상이 아버지이니, 연우가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소망을 어떻게든 풀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물론, 연우가 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지만.

“네가 져.”

“안 보고 어떻게 아우?”

“안 봐도 비디오니까.”

“흥! 그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주지.”

판트는 콧방귀를 뀌면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된장인지 아닌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건 아니었지만, 판트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모양이었다.

연우는 굳이 그 점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았다. 두들겨 맞게 될 건 녀석이지, 자신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그저…… 연인을 만나러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사자 소환을 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 방법은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건 온전한 기억과 체온을 가진 연인이었지, 다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녀와 같이 사랑을 나누고, 가족을 이루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 보고 싶었다.

예전에 가졌던 소망대로 스승님의 모습도 다시 보고 싶었고.

[칠흑의 변이가 이뤄지는 중입니다. 57%.]

‘천마처럼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연우는 세계를 이루는 시간의 축에다 손을 가져다 댔다. 예전에 천마가 그를 위해 ‘큰 굴레’를 되감아 주었던 것처럼 완전하게 잘 이뤄질지는 알 수 없었다. 한창 진행 중인 초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몰랐고.

애당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이 칠흑이니 별다른 영향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여나 무슨 변수가 발생할 수는 있었다.

어쩌면 여러 갈래로 분화한 다른 세계선이나 세계점에도 큰 파급이 미칠지도 몰랐다. 굴레를 돌린 순간 새로운 분기점이 생성되어 또 다른 세계선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고, 되감기를 한 세계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보다 더 머리 아픈 사건들을 겪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 이 세계에서 빚어진 사건들과는 전혀 다른 사건들이 벌어질 거라는 것.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간에.

판트는 이대로 고향을 떠나도 무방하다고 대답했고, 브라함은 그렇게 떠나려는 두 사람에게 잘 다녀오라며 배웅했다.

연우는 그렇게 지체하지 않고 허공에다 손을 뻗었다.

철커덩!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권능, ‘프네우마의 하늘’이 발동하였습니다.]

[‘큰 굴레’를 붙잡았습니다.]

[되감으시겠습니까?]

Second Ending

Fin.

작가 후기

2017년도 초부터 쓰기 시작했던 〈두 번 사는 랭커〉의 마지막을 뜻하는 ‘FIN’이라는 글자를 쓰는 순간, 기분이 많이 묘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제 인생에 있어서 아주 많은 변화들이 있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평생 지방에서만 살던 제가 서울에 올라와 친구들과 같이 사무실을 잡아 글을 쓰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평생 함께할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며, 20대 끝자락에 서 있던 나이가 30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과연 앞으로도 이만큼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과분한 애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빌려 독자분들께 다시 감사하단 인사드리겠습니다.

〈두 번 사는 랭커〉를 처음 기획했을 때 잡았던 테마는 바로 ‘가족애’였습니다. (연우의 인성질은 어디까지인가? 가 아닙니다ᅲᅲ)

한평생 마음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그며 살았던 주인공이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고,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연들을 만나게 되면서 점차 마음을 열게 된다…… 는 게 스토리 라인의 주요 골자였습니다. 흩어졌던 가족들을 만나고, 마음을 치료하는 과정도 세세하게 다루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지루해진 부분도 있고, 잘 표현이 되지 않아 아쉬웠던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특히 올포원과 관련된 과거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실험들을 해 보았고, 여러분들께 흥미와 재미를 드리려 노력을 해 보았는데 과연 그런 제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두 번 사는 랭커〉는 이로써 4년간 있었던 99개 챕터로 이뤄진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드디어 종착지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쉬지 않고 글을 쓸 예정이고, 연우의 이야기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초월, 8차 용체 각성의 비밀, 지구에 잠든 르’뤼에, 세계점과 세계선에 대한 복선, 이예의 목적, 아가레스의 과거…… 전부 천천히 풀어내 볼 예정입니다.

그래서 외전 준비와 함께 차기작 구상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언제 발표가 될 것이라고 확실하게 기일을 약속드리지 못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시일 내에 찾아올 것이라고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앞선 말에서 눈치챈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차기작도 〈신세기전〉, 〈두 번 사는 랭커〉, 〈검신광룡(필명이 다르지만 제 소설이 맞습니다^^…)〉에서 이어지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전작들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도록 기획하였고, 만약 보셨다면 더 재미있게 감상하실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해 두었으니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몸조심하시고, 저는 더위가 꺾일 무렵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斯道·緣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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