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All for One (3)
비바스바트를 무시하다 못해 아예 모멸스럽기까지 한 언사. 동네 친구의 아들을 보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비바스바트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면서 상대방을 잔뜩 경계할 뿐.
그만큼 여태 그가 들었던 손오공에 대한 소문은 극악한 것들이 많았다.
대다수에 허풍이 섞여 있다 치더라도, 그중 일부만 사실이어도 당장 자신으로서는 손오공을 상대할 재간이 없었으니까. 여차하면 퇴로를 확보할 방안도 모색해야만 했다.
“오, 이것 봐라? 지호 놈 아들답지 않게 아주 차분한데? 너 정말 지호 아들 맞냐?”
손오공은 그런 비바스바트의 반응에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가 아는 천마라면 무슨 꼰대 같은 말을 하냐면서 뒷일은 생각지도 않고 머리부터 처박고 말았을 테니까. 하지만 비바스바트는 흥분하기는커녕 동요하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아니면 엄마 쪽을 닮았나?”
간만에 신나게 매타작이라도 할 수 있나 싶었는데 말이야.
손오공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여의봉을 등 뒤에다 걸면서 말했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하여간 꼬맹아, 이제 그만 빨빨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가라. 네 엄마 아빠가 걱정 많이 하신다. 속 그만 썩이고 돌아가.”
손오공은 비바스바트를 집 나간 청소년처럼 취급하며 말했다. 여차하면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겨 기절시키고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갈 태세였다.
하지만 비바스바트는 여전히 손오공을 보면서 대수인만 끌어올릴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손오공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 이내 표정이 묘하게 변하면서 짜증스럽게 뭐라고 말하려 했다. 바로 그때, 비바스바트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당신은 아시는군요.”
당신이라. 손오공의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렸다.
수없이 굴러간 ‘굴레’ 속에서도, 자신을 저렇게 부른 사람이 몇이나 되더라?
“그렇다면?”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를 만나야겠습니다.”
“싫은데?”
“말씀해 주십시오.”
“싫다고. 여기 오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너희 부자 다툼에 끼라고? 안 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군요.”
“오! 뭐, 어떻게 하려고?”
후우-
비바스바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목을 가볍게 꺾었다.
까드득. 몸이 풀리면서 마력이 원활하게 돌았다. 몸을 감싸는 배광이 짙어졌다.
“강제로 말씀하시게 만들 수밖에요.”
화아아악!
비바스바트를 중심으로 열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엄청난 격풍이 일더니 태풍이 되어 휘몰아치면서 가뜩이나 위험천만하던 행성을 통째로 흔들었다. 이대로 있다간 금세 박살이라도 날 것 같았다.
엄청난 강풍 속에서, 손오공의 기다란 백발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하지만.
히죽!
“너.”
손오공은 흥미진진해 죽겠다는 듯 웃고 있을 뿐이었다.
“지호 놈 아들이 맞긴 하구나?”
그 말과 함께.
파아앗!
비바스바트와 손오공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 * *
잠시 후, 상황을 표현하는 말은 정정되어야 했다.
그것은 격렬한 싸움, 혹은 비등한 싸움을 의미하는 ‘격전(激戰)’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일방적인 폭력.
그렇게 말해야 하리라.
“으하하핫! 너 같은 애송이가 어르신의 뒤꽁무니라도 쫓아오는 건 아직 백만 년도 이르단다!”
콰르르릉!
손오공은 그야말로 아주 ‘실컷’ 비바스바트를 두들겨 팼다. 대수인을 터뜨린다 싶으면 아무렇지 않게 피했다가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축지를 전개해서 사각지대를 밟으려 들면 둔갑술을 활용해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가 여의봉으로 하체를 세게 후려쳤다.
비바스바트는 손오공의 옷깃조차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굴욕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어떻게 한 대도 유효타를 먹일 수 없는 거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매타작(?)에 비바스바트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손오공을 이길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평수를 이룰 거란 자신감은 있었다. 만만치 않은 전력을 보여 준다면,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 힌트라도 말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는 순간, 비바스바트는 자신의 생각이 전부 헛생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그 말 아냐?”
“무슨 말을 하려고……!”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갖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
“그런데 거기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겁나 처맞으면 어떻게 될까?”
“……!”
“그러니까 가즈아아아!”
퍼퍼퍼퍼퍽!
그렇게 얼마나 두들겨 맞았을까. 비바스바트는 어느 시점부터 세상이 뱅글뱅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퍼퍼퍼퍽!
“안 돼……!”
퍼퍼퍼퍼퍽!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야……!”
퍼퍼퍼퍼퍼퍼퍽!
“안……!”
비바스바트는 어떻게든 버티고자 애썼다.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어머니 앞에 내던져져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랬다간 두 번 다시는 이런 외유도 불가능할 터였다.
그러니 어떻게든 정신을 잃지 않고, 손오공에게 달라붙어야만 했다. 그래야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아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그러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기절하지 않도록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퍼퍼퍼퍼퍼퍼퍽!
“야! 이제 이만하면 됐으니까, 그만 좀 떨어져. 남자 새끼가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나 그런 취향 아니라고!”
퍼퍼퍼퍼퍽!
“이제 좀 떨어져……!”
퍼퍼퍼퍽!
“으아아! 미쳐 버리겠네!”
다행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손오공도 힘들어진다는 점이었다. 처음에야 신나게 두들겨 팼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야지. 이만하면 됐다 싶은데도 계속 달라붙는 통에 이제는 오히려 손오공의 속에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적이었다면 그냥 뚝배기(?)를 깨버리는 것으로 끝내겠지만, 이놈은 그럴 수도 없잖은가. 괜히 여기서 더 큰 상처를 입혔다간 나중에 천마에게 한 소리 듣는 것도 걱정이었다.
결국 손오공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헉, 헉, 헉……!”
손오공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질린 기색으로 비바스바트를 봐야만 했다.
“아직…… 멀었…… 습니다……!”
이미 비바스바트는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몰골이었다. 두 눈덩이는 시퍼런 멍을 달고 있고, 몸 곳곳에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였다. 과연 손짓 한 번으로 행성 하나를 날려 버리고, 신격까지 때려잡은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하지만 비바스바트는 어떻게든 버텼다. 덥수룩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빛나는 눈빛만큼은 여전히 예리했다.
“하아……!”
손오공은 이대로 있다간 정말 끝도 없겠다는 생각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면서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좁히면서 물었다.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그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는 일이었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도 가장 존귀하다고 할 수 있을 두 존재의 아들. 원한다면 얼마든지 신으로 각성할 수 있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 그냥 맘 편하게 살 수도 있을 것을, 왜 이렇게 고생을 자처하면서 사는 것인지.
처음에는 나이도 어린놈이 허파에 바람이 들어 단순히 겉멋이 든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렇게 보니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속에는 한(恨)이 있었다. 아주 짙은 한.
‘대체 무슨 일을 겪은 거야?’
비바스바트는 이제야 손오공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짰다.
“꼭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묻고 싶은 거?”
“예…….”
“그게 뭔데?”
손오공의 질문에 비바스바트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절대 말해 줄 수 없다는 듯.
손오공은 저 고집불통의 뒤통수를 다시 한 번 세게 후려갈겨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털었다. 저런 고집불통은 뭐라고 한들 도저히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탓이었다.
‘어떻게 하는 꼬락서니가 제 아버지랑 똑같냐…… 으! 하여간 부자가 쌍으로 날 괴롭혀요, 괴롭혀.’
손오공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우마왕에게 했던 짓(?)은 생각지 못한 채, 결국 손에 쥐고 있던 여의봉을 거둬들였다.
‘지호 놈한테 잔소리 엄청 듣겠군. 제수씨도 피해야겠고.’
비바스바트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것은 야마였다. 하지만 손오공은 여기서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 고집불통이, 대체 어떤 한을 품었고 어떻게 풀어 나갈지를 직접 보고 싶어졌던 것이다.
“탑.”
“……?”
난데없이 툭 던진 말. 비바스바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뜻으로 손오공을 바라봤다. 손오공이 헛소리하지 말라며 다시 주먹이라도 날리지 않을까 싶어 바짝 긴장하고 있던 탓인지, 맥락이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탑으로 가 보라고.”
“……!”
손오공은 손을 허공에다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이펙트가 비바스바트의 머리 위로 떨어지면서 모든 상처가 단번에 치료되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선술이었지만, 비바스바트는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설마 그곳에 아버지가 계시는 겁니까?”
“네 아비는 거기 없다.”
“그럼……?”
“대신에 그 빌어먹을 탑을 세운 게 네 아비지.”
두근! 두근!
비바스바트는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버지의 행방 중 일부를 찾았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손오공은 팔짱을 낀 채로 뚱한 어투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한 가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네 아비는 널 피하거나 하고 있는 게 절대 아냐. 지금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라 그런 거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말.
비바스바트의 눈이 저절로 커졌다.
“아, 아버지가 혹시 다치기라도……?”
“흐흐! 뭐? 네 아비가 다쳐? 이 우주에서? 대체 누가? 그럴 수 있는 놈 있으면 어디 소개 좀 시켜 주라. 그놈의 더러운 성질머리 꺾이는 거 나도 좀 보자.”
“그럼……?”
“잠들었거든.”
“……?”
“그게…… ■■■■■ ■■ ■■■■ ■■…… 이런 빌어처먹을! 무슨 말을 했다고 이게 ‘천기누설’씩이나 된다는 거야? 하여간……!”
손오공의 설명은 이어지다 말고 도중에 노이즈가 잔뜩 껴서 ‘인식’할 수가 없었다.
손오공은 방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잔뜩 분개했지만, 비바스바트는 놀랐던 가슴이 싸늘하게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천기누설. 신적인 존재들을 둘러싼 여러 신화들 중에는 세간에 알려졌다간 혼란을 야기할 ‘금기(禁忌)’도 있는바.
이러한 금기들은 인과율의 보호를 받아 절대 외부로 발설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이 말인즉, 아버지가 잠든 이유에는 그만큼 엄청난 비밀이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었다.
‘대체……!’
비바스바트는 그 모든 것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손오공의 말로 봐서는 천마의 얼굴들 중에서도 최강자로 꼽힌다는 그마저도 아버지를 어떻게 할 수 없는 수준인 것 같은데…… 대체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선…… 탑에 가서 뭐라도 조사해 보면 알겠지.’
단서를 얻었다면 즉각 움직여야 한다.
비바스바트는 그런 생각과 함께 상태창의 저 위에 올려 두었던 내용을 다시 소환했다.
[‘탑으로의 초대장’이 다시 도착했습니다. 승낙하시겠습니까?]
[승낙하였습니다.]
[초대가 시작됩니다.]
화아아아!
비바스바트의 전신이 한순간 빛무리에 잠겼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기 직전, 그는 손오공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손오공은 더 이상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가볍게 저으면서 몸을 반대로 돌렸다.
“한 가지만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또, 뭐?”
“탑이라는 곳, 거길 끝까지 오르면 혹시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습니까?”
손오공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조금 놀란 눈이 되었다.
그러다 가볍게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같은 애송이가 나처럼 돼? 아서라. 그러려면 백만 년은 이르니까.”
“그쯤 투자하면 되긴 된단 말씀이시군요?”
“……뭐? 하! 나 이 새끼 당돌한 것 좀 보소.”
손오공은 한쪽 입술 끝을 비틀었다.
“그때까지 나는, 뭐, 놀고먹고 있냐?”
“그럼…….”
“그래도.”
“……?”
“그쯤 되면, 내 옷깃을 건드릴 정도는 되겠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비바스바트는 가볍게 웃으면서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파앗!
그는 빛무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홀로 남은 자리.
손오공은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난 더 이상 모르겠다. 집안싸움은 이제 너희가 알아서 해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혼잣말과 함께, 그도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묻혀 완전히 사라졌다.
* * *
튜토리얼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비바스바트는 아주 크나큰 돌풍을 일으켰다.
이미 웬만한 신격쯤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만큼, 인간 영웅들의 수준에 맞게끔 설계되어 있는 튜토리얼과 저층 구간 따위는 그에게 별다른 시련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매번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사실들은 여러 신과 악마의 사회들에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되었다.
“플레이어 비바스바트? 아아, 이번에 압도적인 성적으로 튜토리얼을 통과했다던 그 작자 말인가?”
“그것참 오만한 이름을 쓰고 있군. ‘데바’의 태양신과 똑같은 이름이라!”
“흠……! 듣자 하니 곧 신격이 될지 모른다는 말이 있긴 하던데.”
“정말 그만큼 실력이 괜찮나?”
“가뜩이나 요즘 인재도 모자란데…… 진짜 재능이 있다면 데려와야겠어.”
그렇게 모두가 발 빠르게 움직이는 가운데.
비바스바트는 오히려 다른 것보다도 탑 속에 펼쳐진 세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설마…… 사멸한 줄로만 알았던 용종과 거인족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탑 속 세계는 이미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새로운 우주라 할 수 있었다.
층계 하나하나마다 도저히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스테이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존재들은 서로 다른 복잡한 사회를 구성한 채로 살고 있었다.
다만, 그만큼 드는 의문점도 있었다.
저 많은 신적인 존재들은 모두 각 신화에서는 절대자로 불리는 자들이 아닌가. 개중에는 비바스바트가 그토록 많은 우주를 전전하면서 찾고자 했지만, 결코 찾을 수 없었던 작자들도 더러 있었다.
아무리 탑의 세계가 넓다고 한들, 여러 우주를 좁다 하며 질타하고 다니던 존재들을 모두 수용하기에는 아주 비좁아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치 그 모습이.
‘저들을 일부러 이곳에다 가둬 둔 것 같은…….’
그래서 비바스바트는 당장 신들을 때려잡기보다는, 저들이 왜 탑에 갇히게 되었는지를 알아보려 했다. 저들의 약점을 알아야 어떻게든 이쪽에서도 계획을 짤 수 있을 테니까.
수십 수백 개도 넘는 저 많은 사회들을 홀로 감당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비바스바트가 아무리 초월자들에 대한 원한이 깊다고 한들, 사리 분별을 못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아니면 차라리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 유예하던가.’
여하튼 비바스바트는 실력을 최대한 숨긴 채로 뛰어난 루키 정도로만 활약상을 보였고, 곧 머지않아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아버지가 가둔 거였어.’
신들은…… 아니, 악마를 포함한 용종이며 거인족까지, 그들은 모두 ‘천마’라는 존재를 증오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천마의 혈육이라는 사실이 저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비바스바트는 자기도 모르게 등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당분간 조심히 살아야겠군.’
그것이 그가 탑에서 가장 먼저 내린 판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