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09화 (809/862)

9화. All for One (9)

[이곳은 19층, ‘바람의 언덕’의 관입니다.]

비바스바트는 오딘과 제우스의 끈질긴 추격을 물리치며 도착한 장소가 10층대라는 것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올림포스가 또 언제 자신들을 쫓아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름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투였다.

“괜찮아. 등잔 밑이 어둡다고, 이곳은 저쪽이 쉽게 알 수 없는 곳이니까.”

“……?”

그 말이 무슨 뜻인가 의아했던 비바스바트는, 얼마 가지 않아 정확한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반 플레이어들도 시선이 쉽게 닿지 않는 곳. 흔히 ‘쓰레기장’이라고 불리는, 폐기물을 한데 모아 둔 곳이었다. 19층에서 20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위치한 층간 세계.

이런저런 눈가림용 결계를 쳐 두고, 안쪽은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두었지만, 여러모로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정말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와! 누나다!”

“과자는? 과자는 어디 있어?”

가름이 나타나자,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들이 쪼르르 튀어나와 그녀의 주변을 뱅글뱅글 둘러쌌다.

비프로스트의 대원들도 이런 광경이 익숙하다는 듯 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이리저리 달려드는 아이들을 붙잡고 ‘풍차 돌리기’를 하거나 목말을 태워 주는 등 잘 어울려 주기까지 했다.

비바스바트 등을 16층에서 빼돌린 응원군도 그것이 아주 당연하다는 투였다.

“이 아저씨는 뭐야?”

“이 오빠는 누구야?”

아이들은 낯선 비바스바트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경계심보다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 아이들과 친하지 않은 비바스바트로서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보다 지금 그는 많은 신격들을 상대하면서 온몸에 피와 먼지를 뒤집어쓴 상태. 이런 몰골로 아이들과 놀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응? 장난감 한가득 챙겨 온 삼촌. 한번 달라고 해 봐.”

“대, 대장?”

가름이 툭 내뱉은 말에 비바스바트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황급히 그녀를 돌아봤지만, 오히려 가름은 익살맞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비바스바트는 그게 아니라는 투로 달라붙는 아이들을 말리려 했지만.

반짝반짝!

하나같이 또랑또랑하게 눈을 뜬 채로 먹이를 바라는 아기 새처럼 이쪽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아니라는 말이 섣불리 나오지 않았다.

“그, 그게……!”

비바스바트가 얼떨떨한 나머지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뗐을 무렵.

“오셨습니까, 가름?”

갑자기 이번에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쳐 보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입고 있는 옷은 남루하기 그지없었고, 병장기라고 들고 있는 무기들도 하나같이 질이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저것으로 과연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까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행색과 달리 두 눈에는 힘이 가득했다.

신전이나 농장에 ‘소유’된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건강해 보일지언정 두 눈만큼은 죽어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반대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비바스바트는 그것이 ‘자유’를 가진 이들만이, 그리고 ‘신념’을 품은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이야, 팔라르.”

가름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팔라르라고 불린 젊은 사내는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이 마을의 촌장 혹은 리더쯤 되어 보였다.

“비바, 이쪽은 팔라르. 팔라르, 이쪽은 비바스바트야. 서로 인사 나눠. 앞으로 같이 함께할 동료들이니까.”

순간, 팔라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이분이……?”

“응. 그때 말했던 그 사람이야.”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팔라르입니다.”

비바스바트는 그가 내미는 손을 맞잡았다.

그런데.

‘음……?’

분명히 그냥 악수를 나눈 것뿐인데,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비바스바트의 등골을 스쳐 지나갔다. 다만, 아주 잠깐 동안 받은 느낌에 불과해서 순간 착각한 건가 싶었다. 팔라르의 웃음은 밝았고, 두 눈에는 여전히 힘이 가득했다.

‘내가 잘못 느꼈나.’

그래도 찝찝한 마음에 비바스바트는 밝게 인사하기보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올포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팔라르는 그런 기색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그저 밝게 웃어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 * *

올포원(All for One).

레지스탕스는 자신들의 이름을 그렇게 밝혔다.

자유라는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그렇게 밝혔고, 신의 사회가 보이는 압제에 저항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저항 활동을 하려 해도, 신의 사회들이 가진 영향력을 생각하면 우리는 결국 바람 앞의 등불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 때문에 최소한의 운영 비용을 얻기 위해, 그리고 저들의 정보를 얻기 위해 그동안 가름을 비롯한 동지들이 아스가르드를 위해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올포원의 소속원들은 각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고 했다. 아스가르드의 비프로스트는 그중 일부에 불과할 뿐.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고,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위험에 처한 필멸자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게 팔라르의 설명이었다.

“다만, 한동안은 활동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가 독이 바짝 오른 것 같아서 말이죠.”

비바스바트는 어쩐지 팔라르의 웃음기 섞인 시선이 유독 자신에게 고정되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그래서 당분간 대외 활동은 조심히 하면서 저들의 수색이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

비바스바트는 팔라르가 주는 위화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크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어느 조직이나 굴러들어온 돌에 대한 배타심은 있을 수밖에 없고,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가 이렇게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도 사실 절반 이상은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그런데도 팔라르나 올포원이 비바스바트의 참여를 거절하지 않은 건, 그가 가진 전력과 명성 때문이었다.

실제로 비바스바트가 여태 소문으로만 듣던 ‘바깥 세계의 신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그를 멀리서나마 구경하고자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으니까.

팔라르는 자칫 결속력이 떨어질 수 있는 조직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비바스바트를 점지해 둔 것 같았다.

그리고 비바스바트도 이미 그 내용에 대해서는 가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최대한 주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비바스바트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나서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위화감을, 그리고 불안감을 해소할 길이 없었다.

* * *

비바스바트의 불안이 단순한 예감이 아니었다는 것은 금세 드러나고 말았다.

『이런 곳에 벌레들이 모여 살고 있었군. 전부 지워 버려.』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가 19층의 층간 세계까지 쫓아온 것이다. 대체 정보가 어디서 어떻게 샌 건지, 지난 십여 년 동안 잠잠했던 마을이 노출되고 말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을, 만약을 대비해 내버려 뒀다가 이번에 소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일 뿐이었지만.

“모두 도망쳐!”

“아이들부터 빠져나가게 해!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들을 막아!”

[전투가 발발합니다!]

오딘이 내던진 벼락 몇 줄기에 마을은 단박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스테이지가 붕괴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뜨거운 열폭풍이 잇달아 불어닥쳤다.

그런 위기 속에서도, 올포원의 대처는 화려하게 빛났다. 자신들이 어떻게 그 숱한 위협 속에서도 여태껏 조직을 꾸려 나갈 수 있었는지, 자유를 꿈꾸는 필멸자들의 구심점이 될 수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아이와 노인을 비롯한 비전투 인원을 먼저 소개(疏開)하고, 전투 인원들은 여러 개의 조로 나뉘어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의 시선을 돌리고 거리를 두게 만드는 등 여러 활약을 보였으니.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긴 했어도, 다행히 첫 번째 후퇴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쫓아라. 너희 모두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천마의 아들을 내 앞으로 끌고 와라.』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의 추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 * *

한 달이 흘렀다.

아스가르드와 올림포스가 파 둔 함정 때문에 올포원의 전력 중 4할에 가까운 이들이 피해를 입고 말았다.

비바스바트가 뒤늦게 나서서 남은 이들을 구하기는 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린 뒤였으니.

여태껏 계속 이어지는 추격전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올포원에 처음으로 암운이 드리웠다.

* * *

넉 달이 흘렀다.

피해가 꾸준히 누적되어 올포원의 전력 중 6할 이상이 죽거나 다친 상태였다.

올포원 내에 감돌던 암운은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제 소속원들의 마음을 좀먹어 가기 시작했다.

지치고, 쉽게 피로해졌다. 몇몇은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못하고 야밤에 도주를 시도하기도 했다.

기강을 잡기 위해 탈영병들은 붙잡아 본보기로 목을 치기도 했지만, 한번 흔들린 마음은 좀처럼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에서 투항을 권유하는 전언도 있었기에 흔들림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만큼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비바스바트와 비프로스트의 존재 덕분일 뿐. 그것마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결국 올포원은 언제부턴가 오갈 곳 없는 노약자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 되고 말았다.

* * *

일 년이 흘렀을 무렵, 올포원은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로 약소해졌다.

거기다 천마의 아들이 있다는 소문이 조금씩 신의 진영 곳곳으로 퍼지게 되면서 다른 사회에서도 속속들이 그들을 찾겠다고 모여들기 시작했으니.

멤피스, 딜문, 베다, 천교…… 단순히 몇몇 사회들의 추격을 받는 게 아니라, 탑을 지배하는 이들을 전부 적으로 돌리게 된 셈이었다.

그 때문에 올포원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포원이 무작정 당하기만 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던 세작들을 이용해 사회 내 반란을 일으키게 하는 한편, 각 층계의 여러 농장들을 차례로 급습해서 억류되어 있던 필멸자들을 대거 구출하는 등 활약상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러한 위업 한가운데에는 비바스바트가 있었으니!

그 때문에 언제부턴가 비바스바트라는 이름은 올포원과 동일시되기 시작했다.

-비바스바트가 강림하는 자리에는, 올포원이 출몰하고, 그 자리에서는 신들도 겁을 먹게 된다더라.

-올포원의 그늘에 있는 이들은 노예의 삶이 아닌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우리들의 미래는 바로 그곳에 있다.

-압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탑의 세계는 보다 높은 곳으로 오르고자 하는 수도자들의 세계.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노예로 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올포원의 이름은.

비바스바트의 이름은 언제부턴가 모든 사람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말 들었나?”

“20층 탈환?”

“그래. 멤피스가 거의 결딴 나고 말았다던데. 그 때문에 30층 이후는 지금 완전히 초비상인가 봐.”

“허……! 분명히 초월은커녕 탈각도 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한낱 인간이 그런 실력을 가질 수 있는 거지?”

“그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게 절대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지. 우리도 똑같이 탑의 초대장을 받고 들어온 ‘플레이어’인데 올포원과 다를 게 뭐가 있겠나?”

농장에 갇혀 노예로 있던 이들도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각 사회에서 통제를 해도, 올포원과 관련된 소문은 금세 그들 사이로 퍼져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결국 뜻 있는 이들이 올포원을 찾아 속속들이 모여들었고, 과거의 용기를 찾은 이들이 다시 층계에 오르기 시작했다.

[‘비바스바트’와 관련된 신화가 발생하였습니다. 고루 퍼지기 시작합니다.]

[격이 생성됩니다.]

[좌가 생성됩니다.]

……

[신앙이 모이기 시작하여 위를 탄생시킵니다.]

……

[비바스바트의 이름이 시스템에 각인되기 시작합니다!]

올포원. 비바스바트의 신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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