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31화 (831/862)

31화. 세샤 (6)

“……어?”

“진짜 음악이 나오잖아?”

“누구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거 본 사람 있어?”

“어, 없습니다!”

스태프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분명히 촬영을 시작하기 전, 그들은 학교에 남은 인원이 숙직실의 당번 교사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었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가려면 운동장을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눈에 안 띌 수가 없는 데다가, 학교 자체가 언덕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담을 넘어서 몰래 숨어 들어온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카메라 뭐 해! 줌! 줌 당겨!”

기이한 상황임에도 김 PD는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챈 상태였다.

진짜 귀신이 나타났든 귀신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대박!

대박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가수들이 노래를 녹음할 때 귀신을 보거나 귀신의 목소리가 섞이면 그 음반은 대박이 난다고.

아이돌 리얼리티도 그렇다는 똑같은 징크스는 없지만, 그거야 포장하기 나름이었다.

유명 아이돌 신성찬과 차소영의 공포 학교 탐방기!

딱 들어 봐도 돈 냄새가 풀풀 나잖나?

카메라맨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면서 김 PD가 지시한 대로 음악실 쪽으로 줌을 바짝 당겼다.

환하게 켜진 창문 너머로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제를 위하여.

베토벤이 1810년도에 작곡했다던 피아노 소곡.

잔잔 한 멜로디가 한국인에게는 여러모로 익숙할 수밖에 없는 것임에도, 카메라멘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내 손바닥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헙!”

그러다 카메라맨은 자기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켜고 말았다.

커튼을 친 창문 사이로 웬 사람 그림자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사, 사람!”

“진짜…… 누가 있어?”

문제는 그 사람 그림자로 보이는 것이 일반인의 걸음걸이와는 사뭇 많이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보통 사람은 걸음을 걸을 때 정수리 부분이 위아래로 혼들거린다.

그런데 저 그림자는 이동하는 내내 미동이 전혀 없었다.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말 다리가 없는 게 아닐까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쪽을 보는데요?”

꼴깍.

신성찬은 마른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샤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서 점수를 왕창 따겠다던 포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안색이 살짝 창백해 보였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그래서 신성찬을 촬영하고 있던 1번 카메라맨은 떨리는 신성찬의 눈꺼풀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신성찬은…… 그룹 내에서도 막내 이미지와 함께 겁쟁이 캐릭터도 같이 가지고 있었다.

귀신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나?

다른 멤버들의 폭로에 의하면, 연습생 생활 시절에 같이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었는데 다른 건 다 즐겼어도 유입하게 공포 체험만 못 해 봤었다고 했다.

강제로 밀어 볼까 싶었지만, 막내의 반응이 저러다 기절하겠다 싶을 정도여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괜히 김 PD가 신성찬의 개인 리얼리티 주제로 학교 미스테리 탐방을 선택한 게 아니었다.

학교생활은 어디까지나 신성찬을 속이기 위한 가림막에 불과했을 뿐.

아니나 다를까.

신성찬이 이내 눈에 띄게 덜덜 떨고 있었다.

저러다 촬영을 멈춰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응?”

1번 카메라맨은 신성찬을 촬영하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의문을 표시하고 말았다.

신성찬 옆으로 세샤가 빠르게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별반 무섭지도 않은지 태연한 얼굴이었다.

김 PD가 재빨리 손을 뱅글뱅글 돌렸다.

세샤 담당 카메라맨과 작가에게 보내는 손짓으로, 빨리 따라붙으란 의미였다.

“안 가?”

세샤가 던진 질문에 신성찬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박유민이 고양이처럼 앙칼지게 웃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고도 점수를 딸 수 있겠냐는 장난기 섞인 도발이 보였다.

‘야,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신성찬은 다시 마음을 다잡으면서 허리를 뻣뻣하게 세웠다.

“무, 무슨 소리. 가야지. 아마 저거 스태프들이 우리 겁주려고 장난치는 걸걸? 하, 하하하.”

괜찮다며 웃고 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어째서인지 잘게 떨리고 있었다.

후들후들…….

* * *

뚜벅뚜벅.

고요하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발걸음 소리만 들렸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놀던 장소였건만.

지금은 그런 게 전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아주 한적했다.

선두는 세샤가 섰다.

그 뒤를 박유민이, 또 그 뒤를 신성찬이 선 모양새.

신성찬은 몇 번이고 멋있게 앞으로 나서고 싶었지만, 다리가 너무 후들거려 도무지 그러기가 어려웠다.

사실 여기까지 들어온 것만 해도 그에겐 대단한 용기였다.

세샤는 별 관심도 없었지만.

그리고 그런 세 사람의 모습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오늘 촬영, 대박이겠는데?’

김 PD는 왠지 자신이 있었다.

만사에 쿨한 것처럼 공포 체험에서도 당당하기만 한 세샤와 무대에서는 열정적이지만 학교생활은 영 허당인 신성찬.

그리고 그런 둘을 재미나게 구경하는 박유민.

이 셋의 조합은 아주 기가 막혔다.

특히 세샤가 친구라며 데려온 박유민은 화면발도 괜찮게 받는 데다가, 입담도 아주 좋아서 이번 방송이 나가고 나면 여기저기서 러브콜도 많이 받을 것 같았다.

“와아.”

“왜?”

다짜고짜 박유민이 내뱉은 감탄사에 세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멋있어 보여서.”

“뭐가?”

“귀신 안 무서워?”

“몬스터들이 더 무서워.”

플레이어들만이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었다.

“에이. 오히려 몬스터들이 널 무서워하겠지.”

“……내가 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음악실이 가까워졌다.

엘리제를 위하여는 《피아노 협주곡 제5번》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귀신이 베토벤을 참 좋아하나 보다 싶었다.

‘뭔가 감지되는 건 없어?’

「홍홍홍홍. 없어용.」

‘아까 봤던 그림자, 스태프들이 장난치는 건 아닐까?’

「그럼 제가 말씀드렸겠지용.」

쩝.

라플라스가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음악실 주변은 꼼꼼하게 살필 수 있으니까, 놈이 도망친다고 해도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예용.」

세샤는 라플라스만 볼 수 있게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음악실 문에 손을 얹었다.

“연다?”

박유민이 어서 열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신성찬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는 가운데.

드르륵.

문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어?”

“응……?”

“히이익!”

세샤와 박유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성찬이 헛바람을 들이켰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두 사람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자 왜 그러냐며 슬며시 한쪽 눈을 떴다가 놀라고 말았다.

“아, 아무것도 없네……?”

분명히 음악실의 불은 활짝 켜져 있었다.

피아노도 조금 전까지 누가 연주를 한 것처럼 덮개가 올라간 상태.

‘뒷문 꼼꼼하게 살펴.’

「하악하악하악! 세샤 님의 그런 차가운 말투…… 명령…… 소녀는 너무 행복하와요.」

으드드득!

세샤는 분위기도 파악 못 하고 헛소리만 해 대는 라플라스 때문에 이를 갈았다.

돌아가면 이번에는 진짜로 할아버지한테 저놈을 제발 떼어 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세샤와 친구들은 음악실을 샅샅이 수색했다.

그들이 들어오면서 이미 음악 소리는 완전히 그친 상태.

고요한 적막만이 흐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 지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에 공포심은 계속 자극되었다.

따라 들어온 스태프들도 때아닌 긴장감 때문에 마른침을 삼키는 가운데.

“진짜 아무도 없나?”

세샤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고민에 잠겼다.

사물함은 물론, 책상과 걸상 아래 전부 샅샅이 뒤졌다.

청소 도구함과 TV 뒤쪽까지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깨끗했다.

먼지 하나 없이.

몰래 밖으로 뭔가 빠져나갔나 싶어도 라플라스는 아니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

“우, 우와아악!”

갑자기 신성찬이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세샤와 박유민, 그리고 스태프들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돌아갔다.

“저, 저, 저, 저기……!”

신성찬이 덜덜 떨면서 검지로 가리키고 있는 곳.

복도로 나 있는 창문 너머로 무언가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게 보였다.

쿵!

쿵!

걸음걸이마다 복도가 크게 들썩이는 소리가 났다.

“꺄아악!”

“히이이익!”

“무, 뭐야?”

“진짜 귀신이야……?!”

원래는 조용히 있어야 할 스태프들까지 놀라 웅성거리고 말았다.

복도를 지나고 있던 것은 석상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근엄하게 앉아 있어야 할 세종대왕의 석상.

걷는 내내 훈민정음 해례본을 천천히 살피고 있던 세종대왕 석상은 비명 소리를 듣고 걸음을 뚝 멈췄다.

그러고는 천천히 음악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일행들과 석상의 눈이 마주쳤다.

씨익!

세종대왕 석상이 양쪽 입꼬리를 크게 말아 올렸다.

마치 그들이 귀엽다는 듯한 웃음.

하지만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마저도 기괴하게 보일 뿐이었다.

히이익. 꺄아악.

곳곳에서 숨을 들이켜거나 비명을 내지르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제 촬영은 혼비백산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시무룩.

세종대왕 석상은 사람들이 자신을 겁내 하니 서운했던지 조금 울상이 되었다가, 다시 해례본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쿵!

쿵!

어쩐지 당당했던 조금 전과 다르게 어깨도 비 맞은 강아지처럼 많이 축 처져 보였다.

참으로 표정이나 감정 변화가 풍부한 석상이었다.

‘변태 토끼!’

「하악하악하악. 라져 댓! 귀엽고 깜찍한 토끼 지금 출진합니당-!」

스으윽!

요즘 들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렇게 열심히 보더니, 도저히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과 함께.

세샤의 그림자가 분리되어 빠르게 미끄러지면서 문 아래를 통과했다.

세샤도 다급하게 뛰어 문을 활짝 열고는 복도로 나섰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복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석상들을.

쿵. 쿵.

떨그럭, 떨그럭-

끼아악! 끼아아악!

세종대왕 석상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순신 동상은 제자리에서 검을 계속 내려치며 검술 훈련을 하고 있었고, 과학실에서 나온 것 같은 신체 해골 뼈 모형 두 개는 웬 이상한 댄스 배틀을 벌이고 있었다.

헤드 스핀을 도는 해골과 윈드밀을 돌다가 프리즈를 보이는 해골.

세상에 해골이 비보잉이라니…….

세샤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정말 제대로 된 게 맞나 의문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신체 내부 구조가 훤히 보이는 인체 모형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마이크를 잡고 소리 없는 노래를 불러 댔고, 그 앞에는 학생들이 교실에 가져다 두었던 갖가지 캐릭터 인형들이 마치 관객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천장에는 고대 시조새의 복원 모델이라고 장식해 두었던 새들이 힘차게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고…….

하여간 제정신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보통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있지 않나?

……개판.

「우오오옹. 정말이지 개판이 따로 없네용.」

라플라스가 개판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거였다.

‘분명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면서? 저것들이 이렇게 모여드는데 여태 몰랐다고?’

「그러게 말이중. 진짜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라플라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문제는 말이종. 다들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데 저는 지금 아무것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거예용.」

‘뭐?'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래도 저의 ‘인식’을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 같은데…… 으으으음.」

라플라스는 침음을 크게 흘렸다.

어쩐지 자존심이 많이 상한 듯한 투.

세샤의 모양을 띠고 있던 그림자가 어느새 토끼의 형상을 갖추었다.

「어쩔 수 없군용.」

그러다 눈이라고 생각되는 부근에서 붉은 광채가 솟아났다.

움찔!

세샤는 그걸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이거였다.

라플라스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제 딴에는 힘을 최대한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지구쯤은 손쉽게 집어 삼킬 수 있을 만한 지고한 격을 갖춘 혼신(混神)은 단순히 의사를 내비친 것만으로도 만물을 공포에 떨게 만들 수 있었다.

「전부 먹어 치우다 보면 뭐 하나는 제대로 나오지 않겠어용?」

킬킬킬…….

활짝 열린 입술 사이로 톱니 이빨 그림자가 훤히 드러났다.

세샤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뭔가 큰일이 날 것 같았다.

* * *

그리고 잠시 후.

「자, 다들 주목, 주목! 이 귀엽고 깜찍한 토끼를 보세용! 이것이 바로 사랑스러운 브레이크 댄스랍니당!」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에다 토끼 귀 머리띠를 한 구릿빛 중년인 한 명이…… 상의를 완전히 벗어젖힌 채, 석상들의 축제에 함께 어울리면서 가슴 근육과 이두박근을 이용한 근육 댄스 장기 자랑을 보이고 있었다.

울끈불끈!

“……저 머저리를 믿는 게 아녔어.”

세샤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양손으로 얼굴을 덮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릿빛 댄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울끈불끈!

이두근박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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