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40화 (840/862)

40화. 별의 조각 (6)

민채영이 세샤를 따라 학교를 나온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탁!

크로노스가 탁상에다 종이를 하나 올려 두었다.

그게 뭔가 싶어 레아와 아난타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종이에는 얼굴이 빛에 반쯤 흐릿하게 가려진 증명사진 세 개와 간략한 신상 명세가 인쇄되어 있었다.

“당신, 흥신소 해? 매번 예은이 돌보느라 정신없어 죽겠다더니.”

레아의 핀잔에 크로노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럼?”

“한 번 봐 봐.”

"……?"

레아는 크로노스가 왜 그러나 싶어 슬쩍 종이의 내용을 살펴봤다가 눈 을 동그랗게 떴다.

〈손재원〉

• 의뢰 대상.

• 출생 연도 확인 불가.

• 14년 전, 5월 12일 등굣길에 오른 후로 현재까지 실종 상태.

• 성격이 내성적이고 과묵한 편. 주변에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이었으며, 특이 사항으로 어린 시절 ‘국가 분류 영재’ 판정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부모가 거부하여 탈락한 전적이 있음.

• 당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해결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 혹은 피해자로 추정 중.

〈손지호〉

• 손재원의 父.

• 출생 연도 확인 불가.

• 14년 전, 동네 인근의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간 이후 현재까지 실종 상태.

• 평소 노래를 즐겨 부르며, 성격이 드세기로 유명했음.

• 유명 밴드 윌의 보컬 겸 리더. 윌은 현재 해체 상태.

• 다른 가족 관계 확인 불가.

〈서은영〉

• 손재원의 母.

• 출생 연도 확인 불가.

• 9년 전, 친구 구모 씨에게 친정에 간다는 메시지를 남긴 이후 현재까지 실종 상태.

• 자상한 성격이었다는 증언.

• 남편 손지호와 함께 밴드 월의 서브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약.

• 다른 가족 관계 확인 불가.

‘손재원’이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보이고, 그다음에 ‘손지호’와 ‘서은영’이라는 이름이 차례로 보였다.

“채영이가 찾던 아이, 계속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잖아? 그래서 뭔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사람 좀 썼어.”

"음."

“근데 정말 이상하긴 이상하더라고.”

처음에 크로노스와 레아는 민채영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이상한 불안감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지구에서 사는 평범한 인간이라면 절대 두 사람의 시야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어떻게 할 필요도 없이, 의식을 전면 개방해서 지구를 쓱 한 바퀴 둘러보기만 해도 금방 찾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두 사람의 그런 생각이 깨지게 된 건 그리 얼마 되지 않은 후였다.

몇 번씩 지구를 둘러봐도, 손재원이라는 아이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같은 이름을 쓰는 이들은 물론, 과거에 그 이름을 썼었던 이들까지 싹 다 뒤져 봤지만 없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크로노스는 학교의 시간을 되감아 손재원이 남긴 사념을 되살려 보았고, 레아는 학교에 남은 공간을 결박시켜 손재원의 이동 경로를 추측해 봤다.

그렇게 해서 손재원이 곳곳에 남긴 흔적들을 되짚어 보았고.

그 뒤에 알게 된 사실은 손재원이 결코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민채영은 분명히 말했다.

손재원은 조용한 편이어서 학교에 일찍 등교하는 것 외에는 그리 눈에 띄는 편이 아니었다고.

하지만 크로노스와 레아가 찾은 행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당신도 알잖아? 손재원이 뭔가 좀 특이하다는 거.”

손재원은 민채영이 죽은 시점을 기점으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했다.

민채영을 죽게 만든 원인이었던 계부를 몰래 살인했을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사회를 좀먹는 존재들이 있으면 직접 나서서 몰래 처치하곤 했다.

마치 미국에서 유행하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처럼.

실제로 크로노스와 레아 역시 당시에 범죄자들이 잇달아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사회가 꽤 떠들썩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고, 연쇄 범죄도 갑자기 중단되면서 미제 사건으로 남았던 것이 기억났다.

비록 레아가 병실 신세를 지고 있을 때라 크게 관심을 기울일 겨를은 없었지만.

그런데 그게 실은 손재원이 해낸 일이었을 줄이야.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손재원뿐만 아니라 주변 가족들도 알아 봤는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어.”

크로노스는 팔짱을 끼면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뭔가 있는 것 같지?”

“손재원이란 아이가 밴드 윌의 멤버들의 자식이었구나.”

레아가 지구에서 깨어난 뒤.

그 또래가 좋아하던 가수 중 하나가 바로 밴드 월이었다.

크로노스와 결혼을 하기 전에 콘서트도 몇 번 갔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바로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리더 겸 보컬과 서브 보컬의 연애 스토리는 방송가에서도 제법 유명했었고.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 밴드 활동이 10년 넘게 중단되었던 것도 이제야 떠올랐다.

“그런데 주변 가족 관계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니. 이건 몰랐는걸.”

“더 웃긴 게 뭔지 알아? 그렇게 유명했는데 이상하게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러네.”

레아는 아주 잠깐 동안 기억을 되짚어 보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격을 이루면서 얻은 축복 혹은 저주는 바로 망각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영혼이 겪은 모든 기억은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여 원할 때는 언제든 되짚어 보는 것이 가능했다.

당시에 보았던 모든 것들이 프레임에 갇힌 동영상처럼 세세하게 남으며, 또한 그때 느꼈던 소회나 생각, 사고, 감각, 심지어 잡념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니 레아가 ‘신레아’로서 살았을 당시의 기억도 모두 선명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크로노스와 콘서트에 갔을 당시 보았던 보컬과 기타리스트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강한 햇빛으로 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재원이라는 아이…… 부모들까지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손재원이 가장 먼저 실종되고, 그다음에 다른 두 사람까지 감쪽같이 사라졌어. 심지어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전혀 소식을 모르는 듯하고.”

크로노스의 결론은 그랬다.

레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별인지 뭔지 하는 것들도 골치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미스터리에 봉착한 셈이니.

“……채영이가 ‘별의 조각’인지 뭔지 하는 것을 품었다는 것과 혹시 관련이 있는 걸까?”

“모르지, 그거야. 하지만 아예 없다고는 말 못하지 않을까?”

“음……."

“일단 섣부른 가정은 하지 말자고. 더 찾아볼 테니까, 채영이한테는 당분간 비밀로 해 두자.”

“그래.”

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부, 부, 부서지는 건 아니겠지?’

민채영은 자신의 검지를 꽉 쥐는 앙증맞은 손을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부부!”

이제 갓 돌이 지난 아기.

아직 말문이 완전히 트이지 않아 반쯤 옹알이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민채영의 가슴에 직격타를 가하고 말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아이가 있을 수 있는 건지!

세샤는 이 아이를 가리켜 ‘막내 고모’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최근에 낳은 막내라던가?

그 때문에 족보가 참 기가 막히게 꼬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어린 고모를 돌보는 세샤의 손은 항상 보석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러웠다.

“……우리 고모 또 똥 쌌네. 기저귀 갈아야겠다.”

“아부부부!”

“아악! 그거 먹으면 안 돼! 지지야, 지지!”

“찌찌?”

“지지라구!”

“찌찌!”

세샤는 한참 동안 아기와 씨름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기저귀를 다 갈았을 때는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으어…… 나의 정체는 조카인가 보모인가.”

세샤는 의자에 반쯤 널브러진 채로 한탄을 늘어놓았다.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얼굴.

누가 차연우 형제의 동생이 아니랄까 봐 어찌나 힘이 세고 활달한지.

매번 상대할 때마다 힘이 쭉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정작 막내 고모는 그런 조카의 속도 모르고 그녀와 함께 있는 걸 아주 좋아라 했지만.

지금도 기저귀를 찬 채로 일어서서는 세샤를 흔들고 있었다.

“꺄우! 조카! 조카!”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조카!”

“……왜 자꾸 삼촌이랑 아빠가 생각나는 거지.”

세샤가 뭔가 찝찝한 얼굴로 막내 고모를 바라봤지만, 막내 고모는 아주 기분이 좋을 뿐이었다.

민채영은 그런 세샤를 옆에서 빤히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저렇게 가만히 뒀다간 그대로 금방 잠들겠다는 생각에 재빨리 말을 붙였다.

「소영아.」

“응?”

「쉬고 있는데 미안한데, 마법진의 이 부분은 이렇게 획을 추가하면 되는 걸까?」

“아, 그거……."

활짝 펼친 민채영의 손바닥 위로 작은 마법진이 떠올랐다.

끽해야 4개의 획(劃)으로만 구성된 기초 마법진.

현재 민채영은 세샤로부터 마법을 배우고 있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제 몸 하나쯤은 지킬 수 있도록.

한편으로는 민채영도 마법에 깊은 홍미를 느끼는 중이었다.

생전에는 집안 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해 공부에 도저히 취미를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마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주는 듯한 날개처럼 느껴졌으니.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또한 새로웠다.

‘정말이지…… 재능은 넘쳐흐른단 말이야. 역시 그 별의 조각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그런 거겠지?’

세샤는 자신의 설명을 듣고 금세 눈을 반짝이는 민채영을 보면서 엷게 웃고 말았다.

사실 말이 기초 마법진이지, 마법에 있어 전혀 문외한이었던 이가 입문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태에서 다룬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만큼 민채영은 이해력도, 통찰력도, 그리고 암기력도 뛰어났다.

정작 그것을 해내는 민채영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살아 있을 시절에는 이렇게 머리가 좋지 않았다면서 말이다.

세샤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민채영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민채영의 잠재력이 아직 일부분밖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따금 마법 강론을 설명해 줄 때 민채영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질문 증에는 날카로운 것도 아주 많았다.

핵심만 골라서 콕콕 찌른다고 해야 하나?

이따금 세샤가 화들짝 놀랄 때도 많았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금세 바닥을 보일 것 같은데. 안 돼. 뒤처지면 안 된다구!’

덕분에 세샤는 그동안 게을렀던 마법 훈련에 있어 강한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선의의 경쟁자가 된 것이다.

“이 획의 경우에는 중심 회로를 지나잖아? 이런 건 획의 기울기에 따라 기능 면에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때 각도를 5도 정도만 살짝 우측으로 돌려도……!”

세샤가 몇 가지 설명을 덧붙여 주는 그때였다.

“……어? 왜 이러지?”

세샤는 마법진을 구성하던 마력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에 두 눈을 끔뻑였다.

마법진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마력…… 아니, 그 근원인 마나와 마나 스트림의 유동이 전부 정지했다.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붙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띠링!

[접속 중…….]

세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시스템 메시지.

연우가 거둬들였던 시스템이 다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갑자기 왜……?

「소, 소영아! 뭔가 이상한 게 떴어!」

세샤는 민채영을 다급하게 돌아봤다.

실제로 그녀 앞에는 다른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접속자를 발견하였습니다!]

[데이터가 등록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라, 세샤로서는 많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접속 완료.]

[서버가 열립니다.]

[백업되었던 플레이어 데이터가 확인되었습니다.]

……

[시스템이 재개됩니다!]

그러다 접속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순간, 세샤는 무언가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채영아,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소영아!」

민채영이 왜 그러나 싶어 화들짝 놀라 세샤를 불렀지만, 세샤는 이미 문을 나서면서 아래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빠르게 도착한 바로 그곳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이 있었다.

“삼촌!”

연우가 그녀를 보면서 반갑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 손에는 뭔가를 가득 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자신에게 줄 선물인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샤에게는 그보다 훨씬, 후어어어얼씨이인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라플라스 좀 떼 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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