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혼인 (4)
“이놈이 그〈별〉인지 뭐시긴지 하는 놈이란 말이지?”
무왕은 손으로 턱을 괸 채, 이리저리 눈앞에 있는 녀석을 살펴봤다.
그리고 그렇게 무왕의 눈길이 지나갈 때마다 티그리스는 몸을 떨 뿐이었다.
덜덜덜…….
‘치, 칠흑왕…… 이 미친 작자가……! 날 데려다 놓아도, 하필 〈첫 번째 별〉 앞에다가……!’
각 세계선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무량대수에 가까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에너지원…… ‘별의 조각’은 모든 별이 바라는 최고의 양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별이라면 누구나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러한 별의 조각을 남긴 원본(元本)은 대체 어떤 존재였는가?
이에 여러 별들은 원본에 대해 ‘첫 번째 별’이라는 이칭(異稱)을 달았고, 따로 조사를 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업적들을 맞닥뜨릴 수 있었으니.
소호 금천의 후예.
탑의 절대자.
외쁠부족의 왕.
아스가르드의 종말자.
칠흑왕의 스승…….
하나하나만 두고 봐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수준이건만, 그것들을 모두 하나로 합친 존재라니.
특히 칠흑왕의 스승이라는 것이 별들로 하여금 가장 큰 경악을 부르고 말았다.
칠흑왕…… 특히 주 자아인 연우는 천마와 함께 별들이 가장 피하는 대상이 아니던가.
아직 그들과 대적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인데, 만약 첫 번째 별이 칠흑왕의 스승이라면 필연적으로 엮일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그만한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건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그런데…….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첫 번째 별을!
‘소멸했잖아! 분명히 아스가르드의 종말과 함께 ‘황’이 되다가 소멀을 맞았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별의 조각이 그토록 무궁무진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는 것은 무왕이 살아생전에 이륵한 경지가 드높기 때문이었다.
황(皇).
별들로서도 아직까지는 까마득하기만 한 수준이기에 조각이 그토록 대단한 것인데, 연우는 그런 ‘황’을 복원해 낸 것으로 보였다.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칠혹왕이 세계와 우주의 법칙 그 자체이며, 전지전능한 힘을 품고 있다고 하여도…….
하지만 그런 의구심을 가진다고 한들, 바로 눈앞에 그 사실을 증명하는 존재가 있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무왕은 '황’의 수준이 아니긴 했다.
별.
그것도 이제야 갓 자신의 존재를 자각(自覺)한 풋내기에 불과하여 〈별빛〉이라고는 티그리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테지만…….
티그리스는 오히려 그렇기에 무왕이 더 두렵게 다가왔다.
별로 밝지도 않은 저 별빛이 마치 금방이라도 자신을 집어삼킬 것처림 보였기에.
처형대에 올라온 죄수.
딱 그런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망치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몸의 절반이 연우의 그림자에 잠겨 있는 데다가, 그곳에서부터 치솟은 신진철의 쇠사슬이 사지를 단단히 결박하고 있었으니까.
“흠……."
하지만 티그리스의 그러한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왕은 한참 동안이나 티그리스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바빴다.
“제자야.”
"예. 스승님.”
“이게 정말 나한테서 떨어져 나간 거라고?”
“정확하게는 떨어져 나간 걸 이놈이 주워 먹은 거죠.”
“그거나 저거나. 그리고 그 뒤에는 세계 하나를 멸망시켰고?”
“예.”
“그런데 왜 이렇게 병신 같냐?”
“병신이니까요.”
…….
본인을 앞에 두고 병신이니 뭐니 모욕을 늘어놓아도, 티그리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표현이 옳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래서 더 병신 같다고.”
“어떤 면에서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렇잖아. 모름지기 이 몸이 남긴 걸 주워 먹은 놈이라면, 그게 설사 똥이라 하여도 그걸 날름했으면 훨씬 더 늠름하고! 근육 빵빵하고! 얼굴도 근사해야지! 근데 이건……."
무왕은 잠시 말허리를 끊었다가 티그리스를 이리저리 살피며 뒷말을 덧붙였다.
“그냥 병신이잖아?”
“흐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지? 제자야, 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아뇨. 아무래도 스승님이 생각하시는 스승님의 모습과 진짜 스승님의 모습 간에 괴리가 꽤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인마? 어디 새신랑, 결혼하기 전에 그 괴리 큰 스승님한테 맴매 찜질이라도 당해 볼 테냐?”
“너무 허세 부리지 마십시오. 그러다 새신부 손 잡고 입장하실 때 화장으로 얼굴 가리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허! 이놈 보게. 이제 대놓고 패륜을 저지르겠다고 선언하네? 자고로 옛말에 스승과 아버지는 같다고 하였거늘! 거기다 사사로이 나는 이제 네게 장인이기도 하니 또 다른 아버지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이놈이?”
“해보시겠습니까?”
“오냐. 해보자!”
무왕이 한쪽 소매를 걷어 올렸고, 연우가 담담하게 검결지를 쥐면서 서로 으르렁거렸다.
그 중간에 끼여 버린 티그리스는 계속 떨 수밖에 없었다.
쿠쿠쿠쿠……!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연우가 있고, 우측으로 돌리면 무왕이 있으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딱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차라리 죽여 줘……!'
세상 누구보다 살기를 바라던 별은 이제 그냥 죽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 * *
티그리스의 소원(?)은 어렵지 않게 이뤄졌다.
『대체 당신은 나이가 몇인데 제자랑 드잡이질을 하려는 거야! 철 좀 들어! 철 좀!』
연우와 무왕이 나오기를 계속 기다리다 지친 영매가 도중에 끼어든 것이다.
무왕이 움찔거리고 말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놈이 계속 속을 긁……!”
『이제 카인은 제자이기 전에 사위야! 당신과 나의 딸, 에도라의 남편이라고!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언제까지 이놈 저놈 할 거야?』
“그, 그래도…… 제자였던 게 먼저……!"
『에도라와의 인연이 먼저였지! 그리고! 계속 쓸데없이 말꼬리 물고 늘어질래?』
“미, 미안.”
무왕은 소심하게나마 계속 저항해 보고자 했지만, 결국 영매에게 욕만 실컷 얻어먹고 꼬리를 말아야 했다.
『하여간 빨리 끝내!
“응……."
『우리 사위, 속 많이 상했지? 괜잖니? 다친 덴 없고?』
“흑흑. 마음이 많이 다쳤습니다.”
누가 봐도 국어책 읽기였지만, 장모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모름지기 사위 사랑은 장모님의 몫인 법.
『그런……! 이렇게 착한 아이를 괴롭힐 일이 뭐 있다고!』
“그래도 전 괜찮습니다.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이시니 새겨들어야지요.”
『어찌 이리 겸손하기까지 한 건지……!』
“감사합니다.”
영매가 이 자리에 있으면 안겼을 투였다.
무왕은 그런 연우를 어이없다는 투로 바라봤지만, 영매가 도끼눈으로 이쪽을 째려보고 있을 게 딱 보여서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몇 번이고 두들겨 달래 볼 뿐.
그리고 그 뒤로.
연우는 무왕과 다시 본론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놈이 가진 조각을 삼켜라?”
“예. 우선 부족한 완전성부터 채워야 하니까요.”
완전성(完全性).
확실히 무왕은 〈별〉로 초월을 이루긴 했어도, 영혼이 없으니 여러모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까지 별다른 무리 없이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 그의 자아가 단단하기 때문이었다.
“흠!”
덜덜덜.
티그리스는 자신이 이대로 산 제물로 바쳐진다는 사실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공포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성대마저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런 병신에게서 뭐가 나올 수 있겠나 싶지만…… 어쩔 수 없지.”
사실 연우로서는 그동안 티그리스를 살려 둘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그로서는 그냥 녀석을 죽이고, 영혼만 따로 소울 콜렉터에 보관해 두는 게 편했으니까.
구속력도 그것이 훨씬 좋았다.
그런데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은 어디까지나 별의 조각을 무왕에게 건네주기 위해서였으니.
스격!
['티그리스 자리’가 사망했습니다!]
무왕이 손날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티그리스의 머리가 하늘로 날았고.
[별의 조각이 드러납니다.]
털썩 하고 육체가 허물어진 자리 위로 무언가가 둥실 떠올랐다.
파아아아!
그것은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함을 가져다주는 빛.
그러면서 웅혼하고도 무한한 힘을 담고 있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끌릴 수밖에 없는 매력, 아니, 마력을 갖고 있었다.
연우마저도 홈칫 놀랄 정도이니, 아마 이 마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이게 내 영혼의 조각이란 말이로군.”
아니, 한 명 더 있긴 했다.
무왕이었다.
그는 별의 조각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왕은 존재만 따로 각성했을 뿐, 아직 영혼은 가지지 못한 상태.
그러니 더더욱 그것에 끌릴 수밖에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가만히 조각을 관찰하기 바빴다.
“이전에 죽었다던 이 몸이 참 대단했긴 대단했던 모양이구나. 단순히 티끌만으로도 이 정도라니.하하하핫!”
기분 좋게 웃는 무왕의 모습에서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묻어나는 것 같았다.
아무리 태연하게 군다고 하여도, ‘진짜’ 자신의 사체라 할 수 있는 것을 보았으니 싱숭생숭할 수밖에.
“그런데 이거 정말 그대로 먹어도 되는 거냐? 뭐 이상한 게 잔뜩 묻어 있어서 까딱했다간 큰일 날 것 같은데?”
티그리스의 조각은 절대 순수하지 못했다.
티그리스가 살아온 생애와 업적이 다 그곳에 묻어 있었으니.
오염(汚染) 혹은 변질(變質).
그렇게 표현해도 절대 이상하지 않았다.
하물며 티그리스는 남쪽 화살과 해시계까지 잡아먹은 상태.
사실 그 외에도 그동안 그가 잡아먹은 별은 아주 많았다.
그러니 그가 남긴 조각은 크기와 상관없이 오염이 극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무왕으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리 영혼을 되찾아야 하는 입장이라 하여도, 그냥 이것을 삼켰다가는 자칫 존재의 근간이 흐트러질 수도 있었으니까.
무왕이 이미 초월을 이룬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그 역시 별의 조각을 품고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순수하지 못할 수가 있었다.
“아뇨.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다 깔끔하게 씻어 놨습니다.”
“그으래?”
연우의 말에도 무왕은 팔짱을 낀 채로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얼굴이었다.
섣불리 손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이, 연우로서는 너무나 의외로 다가왔다.
'두려우신 걸까…….'
여태껏 연우가 알던 무왕은 매사에 자신만만한 모습이었건만, 어쩌면 지금 처음으로 약한 모습을 발견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왕이 정확하게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모른다.
오염되고 변질된 별의 조각을 삼켰을 때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었고, 이곳에 있는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연우는 무왕의 결정을 기다렸다.
마음가짐을 정리하는 건 온전히 그의 몫이었으니까.
『남편.』
영매는 그런 무왕의 마음을 읽고 따스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난 남편과 더 오래, 정말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같이 지내고 싶어.』
그 말이 무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좋아. 하지.”
무왕은 팔짱을 풀면서 천천히 별의 조각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두 눈은 다른 어느 때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그리고.
파아앗!
조각의 흡수는 너무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손끝이 별의 조각에 닿자마자, 빛무리가 고스란히 손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
“……뭐야, 끝이야?”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허망한 결과.
무왕은 흡수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두 눈을 끔뻑여야만 했다.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미 정화는 다 해 뒀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게, 쩝. 이럴 줄 알았으면…… 음."
“쪼셨군요.”
“……아니거든?”
“네. 이해합니다.그러실 수도 있죠.”
“야,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야!”
『당신 또 시작이야? 사위한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조금 전에 그렇게 말했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이놈이 계속 속을 긁……!”
『또!』
“그게……!”
『우리 사위, 괜찮니?』
“마음이 좀 더 많이 다쳤습니다.”
『이런!』
“아오……!”
무왕은 되돌이표만 무한 반복하는 상황에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다 연우가 아예 훌쩍이는 척 연기를 하면서도 그를 보며 씩 웃는 꼴에 한참 동안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