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50화 (850/862)

50화. 혼인 (5)

[영혼의 일부를 되찾았습니다.]

[불일치율이 크게 저하되었습니다.]

[임시 등록되었던 테스터의 등급이 ‘플레이어’ 등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무왕은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그는 꽤나 큰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거북한 느낌이…… 많이 사라졌어.’

무왕이 자신의 상태를 일찍 눈치챌 수 있었던 건 사실 미묘한 ‘불쾌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흔히 정(精)‧기(氣)‧신(神)으로 분류되는 삼단전(三丹田)이 따로 노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정은 정신을, 기는 내공을, 신은 육체를 의미하는바.

이 세 가지는 무공을 이루는 주요 근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조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영혼에 막대한 무리가 가게 된다.

정신만 비대해지면 육체가 따라가질 못해 끝내 입마에 빠질 수도 있고, 육체와 내공이 부쩍 커진 나머지 도리어 조종간이 되어야 할 정신이 휘둘러져 광증에 젖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무왕의 육체가 딱 그 러한 상황이었다.

불일치(不一致).

정기신의 삼단전이 모두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었다.

육체에서 내공으로, 내공에서 정신으로, 정신에서 다시 육체로 연결되어야 하는 순환 고리에 마치 이물질이라도 낀 것처럼 흐름이 턱턱 걸렸던 것이다.

초월을 이루면서 그러한 불일치를 상당수 제거하긴 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런데 시스템 메시지에도 나온 것처럼 불일치율이 크게 줄어든 것이니.

‘좀 더…… 모은다면.’

무왕은 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완전(完全)에 가까워질지도.’

무왕이 실로 오랫동안 꿈꾸던 경지가 있다.

그것은 시조인 소호 금천조차도 다다르지 못했다고 알려진 궁극의 경지였다.

무(武)의 길(道)을 걷는 이라면.

무에 인생을 바친 이라면.

무에 모든 것을 건 이라면 누구나 다다르고 싶어 하는 경지.

생사경(生死境).

죽음과 삶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그 경지가 어떠한 형태인지, 무왕은 알지 못했다.

그저 완전하고 무결(無缺)할 거라고만 지레짐작하고 있을 뿐.

하지만 별의 조각을 모두 되찾고 난다면.

영혼을 완성하고, 저들이 말하는 진짜 〈첫 번째 별〉이 될 수만 있다면.

연우가 아는 ‘진짜’ 무왕이 다다랐던 ‘황’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그런다면 그 생사경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설사 그 경지를 직접 딛지 못한다고 하여도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욕심이었다.

그리고 숙원이었다.

스스로의 미래가 창창하다고 믿을 때에는 언젠가는 다다르고 말겠다며 호언장담하였었지만,  올포원이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하고 나서는 까마득하게 잊고 말았던 과거의 열망(熱望).

그것이 다시 피어났다.

오래도록 더 살고 싶다…… 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미 속세의 욕망에서 어느 정도 탈출했다고 여겼었건만.’

무왕은 자기 자신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빌어먹을 제자 놈이 다시 내 마음에다 불을 지피는구나.’

그것은 또 다른 각성이었다.

무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존재가, 나유라는 이름을 지닌 존재가, 다시 웅크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겠다고 마음먹게 된 각성.

휘휘휘휘……!

[존재의 격이 한층 더 또렷해집니다!]

『당신……?』

영매가 무왕의 그러한 마음가짐을 읽은 듯 크게 놀라는 그때.

연우는 알게 모르게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지란, 욕심이란, 엽망이란, 삶을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준다.

무왕이 새롭게 살겠노라 다짐을 하였으니, 이제 곧 탑의 세계는 그의 행보로 인해 크게 꿈틀대고 말 것이다.

아스가르드?

그깟 놈들이 아무리 다시 무왕의 앞길을 막아서려고 한들, 향상심으로 똘똘 뭉친 그를 어찌 감당할 것인가.

이전 시간대에서야 저들이 꼼수를 부려 무왕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었으나, 이제 초월을 이루고 각성까지 마친 무왕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당장 웬만한 대신격들이 몰려와도 무왕을 감당하기 힘들 게 뻔했으니까.

신? 악마?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설사 천계가 모두 다 함께 손을 잡고, 무왕을 새로운 올포원으로 여겨 앞을 가로막으려 든다고 하여도.

또 한 번 거대한 벽을 만든다고 하여도, 무왕은 오히려 이를 즐겁다 여기며 어떻게든 뛰어넘으려 들 게 분명했다.

그리고 뛰어넘고 또 뛰어넘어 마침내 아무도 다다르지 못했던 100층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연우는 그러한 미래를 보았다.

‘이젠 걱정 없이 열어도 되겠어.’

그래서 연우는 하늘을 보며 그동안 굳게 닫아 놓았던 천계의 문을 다시 열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98층에 락(Lock)을 걸어 뒀던 것은 갑작스러운 올포원의 부재로 저들이 난리를 피울까 봐 저어되어 그런 것도 있었고, 그로 인해 자칫 존재가 위태로운 무왕에게 당장 피해가 갈까 염려되어 조치한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걱정과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되니 잠금을 해제해 주어도 괜찮으리라.

물론, 이 때문에 신과 악마들이 대거 하계로 내려오고, 필멸자와 초월자들 간의 갈등이 거세지고 말겠지만.

그로 인해 엄청난 소란이 쉬지 않고 일어나겠지만.

‘오히려 그게 탑의 본 취지에 맞겠지.’

연우는 도리어 그러한 혼란이 멀리 내다보면 더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물론, 올포원의 의견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었다.

초월자와 필멸자 간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어서 이러한 혼란은 끝끝내 초월자들의 착취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그것은 필멸자들에게 '성장’이라는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나 해당하는 이야기.

탑의 세계에서는 달랐다.

각 층계 별로 갖가지 난이도의 시련들이 존재하고, 필멸자들은 그 시련에 도전을 거듭하며 자신의 기량을 끌어을릴 수 있다.

재능과 노력만으로 언젠가 자신도 초월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연우는 필멸자들에게 이러한 희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고.

반대로 초월자들에게는 언제든 필멸자들에게 잡아먹힐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어 스스로를 재단련하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무한 경쟁으로 인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겠지만, 뭐 어떻단 말인가?

애당초 탑의 세계가 바로 그러한 곳인 것을.

각 문명과 행성에서 제일을 다투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향상심과 승부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을 초대하는 곳.

그게 바로 탑이 아니던가?

[최고 관리자 자격으로 ‘시스템 설정 및 제어’에 접속하였습니다.]

[무엇을 설정하시겠습니까?]

‘98층 잠금 해제.’

[명령을 수행합니다.]

[진행 중…….]

철커덩!

하늘에서부터 꽉 잠겨 있던 자물쇠가 열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끼긱, 끼기긱-

톱니바퀴가 억지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우우우웅-

끝끝내 잠들었던 장치가 다시 깨어났다.

[98층에 설정되어 있던 잠금장치가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하늘을 꽉 닫고 있던 보이지 않는 결계가 모두 해제되었다.

동시에 단절되었던 채널링도 일제히 연결되면서 온갖 메시지들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신의 사회, ‘올림포스’가 갑작스러운 시스템 개방에 놀라워합니다!]

[신의 사회, ‘천교’가 당신의 권한에 강한 의문을 표시합니다!]

[신의 사회, ‘아스가르드’가 하계로의 이동을 모색합니다!]

……

[악마의 사회, ‘절교’가 77층의 부재에 혼란스러워합니다!]

[악마의 사회, ‘니플헤임’이 당신에게 흠칫 놀랍니다!]

……

[모든 죽음의 신과 악마들이 당신에게 강한 소속감을 느껴 적잖게 당혹해합니다!]

……

[‘말라흐’의 서기장, 메타트론이 안경을 고쳐 쓰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 혹시나 했지만, 설마 당신의 정체는…… 천마와 칠흑왕의 싸움은 이미 미래에서 끝난 겁니까?]

[‘르 인페르날’의 수좌, 바알이 먹고 있던 딸기 케이크를 조용히 내려 놓으면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메시지: 그렇군. 이거 이번에 내려가면 나눌 이야기가 아주 많겠는데.]

메타트론과 바알은 연우로서도 도저히 잊히지 않는 존재들.

겉으로는 절대선과 절대악을 주관하면서도, 실은 천계의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배후에서 힘을 쓰고 있던 흑막.

동시에 우라노스의 동료로서 아주 긴 시간 동안 이 우주를 지키려 하고, 탑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사람들을 지키고자 했던 수호자들이 아니던가.

사실 연우도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 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바알의 말마따나, 그들 간에 나눌 이야기가 아주 많지 않을까?

[최고 관리자의 자격으로 메타트론과 바알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메시지: 언제든 마음 편하게 오십시오. 조부님의 벗으로 두 분을 대하겠습니다.]

[메타트론이 흠칫 놀랍니다.]

[바알이 콧노래를 홍얼거리면서 당신이 좋아할 만한 쿠키 세트를 정리합니다.]

* * *

“천계를 열었다는 건, 반대로 76층에 강제로 머물러 있던 이들도 계속 올라가게 하겠다는 의미겠지?”

무왕은 역시 무왕이었다.

98층으로의 출입이 해제된 순간, 연우의 노림수를 단박에 꿰뚫어 봤다.

“원하시던 것 아니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무왕을 팔짱을 낀 채로 활짝 웃었다.

“원했지. 아주 간절하게 원하고말고.”

"……."

“나는 무의 왕이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금칠을 한 게 아니라, 탑의 모든 사람이 이 몸에게 경외의 뜻으로 가져다 바친 말이다.”

무왕의 두 눈이 생기로 활활 타올랐다.

꿈틀.

연우는 언젠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에 보았던 ‘짐승’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무왕의 또 다른 자아이자 거울이라 할 수 있는 영역.

“그러한 내가 무의 끝을 밟지 못하고 있다. 무로 이뤄진 이 탑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장벽에 부딪혀 힘없이 이러한 시골에 갇혀 있다. 이렇게 한심한 꼴을 두고 어찌 무의 왕이라 자처할 수 있겠느냐?”

잠들었던 맹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하지만 이제 새로운 길이 열렸음이니. 이를 그냥 두고 보기만 한다면, 그러한 별칭은 갖다 버리고 그냥 뒷방 늙은이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붕정만리(臟程萬里)라 하였다.

대붕이란 거대한 새는 대개 둥지에 가만히 틀어박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아, 평소엔 그 새의 나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대붕이 날개를 활짝 펼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날개는 얼마나 큰지 눈으로 확인이 어려울 정도고, 한번 날게 되면 하늘을 온통 뒤덮는 구름처럼 된다[顧之背 不知其幾千里世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그리하여 대붕의 날갯짓으로 인해 3천 리의 파도가 일어나고, 대붕은 그러한 날갯짓으로 9만 리를 넘게 날아오르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를 것이다. 정복하기 위해서. 시조이셨던 소호 금천보다도 더 높은 곳에 올라, 이 탑이 이토록 낮았구나 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

무왕의 맹수는 바로 그러한 대붕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나 대붕은 날개를 꿈틀거리기 전에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고 싶어했다.

“나는 아직 그동안 나를 가로막았던 장벽을 제대로 넘지 못하였구나.”

그동안 대붕의 발을 묶어 뒀던 사슬은 사라졌다.

하지만 대붕은 순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동안 자신을 묶어 뒀던 사슬의 주인을 찾고 싶어 했다.

“제자가 고이 닦아 준 길을 고스란히 밟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오히려 편하겠지. 하지만 스승이 되어서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구나.”

그러지 않는다면 언제 다시 그 사슬에 묶일지 모르니까.

“끝끝내 장벽을 넘지 못한 상태에서 탑이라는 새로운 장벽을 넘으라고? 개소리지. 그게 어찌 가능할까. 첫 번째 계단을 밟지 못하였는데, 두 번째 계단으로 바로 넘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다 미끄러지기 십상이지.”

대붕은 새롭게 날갯짓을 하기 전에 모든 걸 털고 가기를 바랐다.

“그러니.”

훌훌 털고, 어느 누구도 다다를 수 없을 만큼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리라.

“네게는 불편한 일일지 모르나, 도와준 김에 이 스승이 첫 번째 계단도 제대로 밟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느냐?”

올포원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 승부를 벌이고 싶다.

연우는 그러한 말뜻을 깨달을 수 있었고.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러한 스승의 마음을 잘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샤와 함께 곧 이곳으로 넘어올 테니, 그때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이제.

새롭게 깨어날 무왕을 위해 마지막 남은 미련을 씻겨 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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