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57화 (857/862)

57화. 혼인식 (2)

『……이거 혹시 ‘아 시바 꿈’이라든가 ‘형님, 이 새끼 웃는데요?’라든가 하는 결말은 아니지? 그런 거면 진짜 도서관 엎어 버릴 거야?』

샤논은 여전히 대답이 없는 두 사람을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그 말에 천마와 칠흑왕은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시바 꿈? 웃는데요? 그건 또 뭐냐?”

“……지구에서 유행했던 밈인데. 한마디로 ‘꿈’이 아니냐는 질문인 것 같네요. 아니, 그보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차정우로서는 지구에 체류한 적도 없던 샤논이 저런 유행어까지 알고 있으니 놀라울 노릇이었다.

『지금 그게 중요하냐! 뭐라고 말 좀 해 봐. 이거 ‘꿈’이야? 저 빌어먹을 주인 새끼가 칠흑왕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꿈’을 돌리기 시작한 거냐고?』

지금도 수없이 분화되는 우주는 모두 칠혹왕의 ‘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칠흑왕은 계속 잠들어 있는 것이다.

다만, 연우란 인격체가 아무렇지 않게 다닐 수 있는 건, 보통 잠든 사람들이 인식하는 자아가 있는 것과 같은 경우였다.

즉, 칠흑왕이 ‘차연우’라는 인격을 가지고 ‘꿈’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형태가 현재 오리지널 세계선의 상태란 뜻이었다.

그러니 샤논의 말만 두고 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겠지만.

샤논이 던진 질문의 요지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어떤 모종의 이유로 연우가 칠흑왕과 완전히 동화되어 저 많은 일들을 '없던 것’으로 되돌려 버렸냐는 뜻이었으니.

그렇다면 천마와 차정우가 저 일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연우의 기록만 없는 것도 절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황’은 칠흑왕의 모든 ‘꿈’에서 벗어난 존재들.

모든 ‘꿈’을 없던 일로 되돌린다고 하여도, 그들이 피해를 입을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런데.

“비슷…… 한 것 같기는 한데. 음. 이거 뭐라고 해야 하나.”

차정우는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다른 것 같아. 그렇죠?”

천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 는 거냐고! 딱 봐도 두 사람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 얼굴이구만!』

그런데.

피식.

씨익-

별안간 천마와 차정우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뭔가 불길한 생각에 샤논은 인상을 찡그렸다-애당초 그에게는 얼굴이라는 것이 없었지만, 일단 그랬다는 뜻이었다.

“그거야.”

“벌써 말해 주면 재미없겠죠?”

“고럼고럼. 자고로 옛 성현들이 이르기를, 배가 고픈 이들에게는 물고기를 내주지 말고 물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쳐 주라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알아서 알아내. 으히히!”

『……!』

샤논은 뭔 이런 사람들이 다 있냐는 투로 두 사람을 번갈아 봤지만, 천마와 차정우는 순순히 말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낚시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봐서는 어쩌면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젠장. 어쩌다 이런 인간들이랑 꼬여서는.』

샤논은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지만, 계속 안달 나서 재촉해 봤자 저들에게는 재미를 위한 땔감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서책을 다 보면 알게 되겠지.

그렇기에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건 딱 두 가지밖에 없었다.

하나는 책자를 마지막까지 읽어 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말 아무 일도 없었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뿐이었다.

* * *

외뿔부족은 혼례 과정도 몇 단계로 세분화되어 있다.

-초행(初行).

‘처음으로 간다’는 뜻으로, 신랑과 신랑 일행이 처음으로 신부집에 찾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연우에게 있어 무궐이라는 장소는 아주 익숙한 것이었는데도, 연우는 오늘따라 그곳으로 가는 길이 유달리 낯설게만 느껴졌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그 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뜻이구나.’

연우는 그제야 ‘처음’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익숙한 길이라고 하더라도, 혼인식 전과 후의 마음가짐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바.

여태까지는 연인 사이였지만, 이제부터는 부부가 되려 한다.

부부는 더 이상 타인이 아닌 무촌(無寸)으로 한 몸과도 같은 것.

당연히 마음가짐도, 거기에 따른 발걸음도 다른 것이다.

결국 초행이란 단어는 부부가 되기 위해 내딛는 첫 길, 혹은 첫걸음이란 뜻이리라.

그렇게 연우가 무궐에 도착했을 때.

“와아아!”

“신랑, 잘생겼다!”

“아주 키도 훤칠한데?”

“캬! 우리 도도하기만 하던 공주님을 대체 누가 데려가나 싶었는데…… 정말 짝이 있긴 있었구만! 짚신도 짝이 있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근데 왜 넌 없냐?”

“시비 터냐? 이렇게 좋은 날에 아구창 털려 볼래?”

“할 수는 있고?”

“이놈이?”

“뭐, 인마?”

시끌벅적하기 그지없는 외뿔부족 부족원들의 함성과 함께 하객과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댔다.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다.

-경★ 인성황 장가가다 ★축

-이제 가면〜 언제 오나〜? 통수 칠 때〜 바로 오지〜 ♬

-어제는 오빠, 오늘은 여봉♥

하객들의 머리 위로 이상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바쁘게 펄럭이기도 했지만, 연우는 못 본 척 그냥 무시 다.

저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썼다간 정말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

아니, 사실 정확하게는 저런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는 말이 옳았다.

꿀…… 꺽!

연우는 무궐의 정문 앞에서 크게 마른침을 삼켰다.

어머니 덕분에 겨우 가라앉혔다고 생각했던 긴장감이 다시 바짝 오르고 말았다.

그렇게 몇 차례 숨을 고르고 난 뒤.

연우는 무언가를 굳게 다짐하면서 문을 활짝 열었다.

끼이익-

커다란 정문이 활짝 열리고.

중앙에 나 있는 빨간 비단길이 보이며.

좌우로 좌석을 가득 채운 하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앞에는 양가 부모님이 흐뭇한 시선으로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고 계셨다.

하지만.

연우의 눈에 그러한 광경들은 전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저 멀리, 초례상 앞에서 풍성한 소맷자락에다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는 에도라의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보는 에도라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이 모든 축제의 주인으로서 한껏 치장한 모습.

예쁘다, 아름답다, 곱다…… 에도라를 보면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직접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그저 좋다…… 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너무나 눈부셔서.

그래서 너무 좋았다.

『오흥홍홍. 신랑이 긴장한 티가 팍팍 나는데용. 이제 신랑분을 이 자리로 초대해 보겠습니다. 그럼…… 신랑, 입장!』

사회를 맡은 라플라스가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에다 크게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뺨빰뺨-

연우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 *

“호호호.”

“푸하하핫! 아무래도 본인은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하객들 사이에서 웃음이 잔뜩 터져 나왔다.

제 딴에는 표정을 수습한다고 수습했겠지만, 비단길을 걷기 시작한 연우의 표정이 참으로 볼 만했던 것이다.

적들 앞에서는 그렇게나 무심하고 가차 없던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긴장한 티를 내며 목석처럼 표정이 굳은 채로,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럽기만 한 건지.

손발이 서로 따로 노는 것이 기름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당장에라도 삐거덕 소리를 낼 것 같았다.

그러니 진즉에 연우를 잘 아는 사람들은 파안대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뭐, 우리 웃음소리도 안 들리겠지?”

“제일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오늘만 지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으휴……!”

“어머, 그게 무슨 소리에옷? 당신, 설마 지금 나랑 결혼한 거 후회하기라도 한다, 뭐 이 말이에요?”

“아, 아니, 임자…… 난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하객들이 즐거워하며 대화를 나누다 지난 추억을 떠올리면서 티격태격하기도 할 무렵.

“……너무 조용해서 어색하군.”

르 인페르날의 악마들과 함께 하객석을 채우고 있던 바알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옆에 있던 메타트론은 박수를 치다 말고, 바알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이상하잖아.”

"……?"

“난 오딘 놈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아, 그런 말씀이시군요.”

메타트론은 그제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바알의 말마따나 오딘이 그동안 너무 조용하긴 했다.

분명히 그 성격상 연우와 무왕에게 호시탐탐 시비를 걸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게 분명한데도.

“혼인식 중에 사고 칠 가능성은 없나?”

“설마 그렇겠습니까? 아무리 오딘이 막 나간다고 해도, 이 자리를 망치겠다는 건 외뿔부족과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의미인 데다가, 다른 하객들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자살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요?”

메타트론은 말을 하며 슬쩍 아스가르드가 있는 곳을 봤다.

초대를 받은 여러 사회 중에서도 올림포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인원수를 자랑해서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가 쉬웠다.

앞쪽을 보고 있던 오딘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애꾸눈을 돌려서는 메타트론과 눈을 마주쳤다.

뭐지?

그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느냐는 듯.

덤빌 것이라면 언제든 덤벼 보라는 흉흉한 살의마저 느껴졌다.

역시 전쟁터와 전사자의 아버지라고 해야 할까?

흉흉한 기세가 웬만한 흉신에 못지 않은 수준이었다.

메타트론은 별일 아니라며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딘이 탐탁지 않은 듯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별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보십시오. 딱히 다른 수작을 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굳이 시비를 건다고 하면 혼인식 이후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딘이 분명히 안하무인인 성격인 건 사싷이었다.

하지만 그렇기만 했다면, 아스가르드라는 거대 세력을 일구지도 못했을 것이다.

“뭐, 그것도 그러네.”

바알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제 쿠키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까득!

“전 그보다 다른 쪽에서 사고를 치지 않을까 그게 더 우려됩니다만.”

메타트론은 같이 먹겠냐면서 바알이 건네는 쿠키를 사양하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뚝!

순간, 바알이 쿠키를 맛있게 먹다 말고 멈춰서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메타트론을 노려봤다.

뒤는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런 시선에 가까웠지만.

사실 메타트론도 겉보기와 다르게 그렇게 호락호락한 성격은 아니었다.

“아……!”

“아바바바! 아바바바바!”

메타트론의 입이 다시 열리자, 바알은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면서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레스 님은……."

“아바바! 아바바바바! 이상하네? 어? 어어? 왜 아무것도 안 들리지? 귀에 이명이 자꾸 생기나, 아무것도 안 들리네? 아바바? 바바바바바!”

“대체 언제 오십니까?”

“안 들려! 안 들린다고! 바바바바바!”

절대 떠올리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다는 강경한 태도.

“이제 진짜 슬슬 나타나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니플헤임 쪽에서도 혹시 일공자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조금 전에 슬쩍 저에게 묻더군요.”

“몰라!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 않다고!”

그래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메타트론 때문에 바알이 결국 참지 못하고 울컥해서는 한마디 쏘아붙이려던 그때였다.

오싹!

바알은 순간적으로 등골을 저리게 만드는 불길한 느낌에 황급히 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설마, 이 새끼가……?”

메타트론도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그쪽을 보았다.

무궐의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지금은 여러 구경꾼들이 차지하고 있는 그곳 위로 갑자기 무언가가 힘차게 떨어졌다.

쿵……!

“우갸갸각!”

“이, 이게 뭐야!”

착지 지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충격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는 가운데.

인근에 있던 하객들의 시선이 모조리 그곳으로 돌아갔다.

이토록 수많은 신과 악마들이 있는 와중에도 단연 독보적인 격을 자랑하는 이였으니까, 대체 누군가 싶었던 것이다.

그. 아니, 그들은 바로.

왕!

“……강아지?”

핵핵대며 귀엽게 웃는 펜릴과.

“감히! 이 몸의 허락 없이 결혼이라니! 난 이 결혼 반대다아아!”

다섯 살 난 아이로 변해 있는 아가레스였다.

그 순간.

메타트론은 진짜 어디론가 숨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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