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58화 (858/862)

58화. 혼인식 (3)

충격을 받은 건, 비단 바알과 메타트론만이 아니었다.

웅성웅성-

북적북적!

혼인식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무, 뭐야, 이거?”

“그러게 대체 무슨 일이야?”

‘그러게요. 제가 가장 묻고 싶은 말입니다.’

요르문간드는 얼빠진 얼굴이 되고 말았다.

펜리르가 계속 보이질 않아서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이런 대형 사고를 쳐 버릴 줄은!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숨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귀까지 닫아 버리고 싶었지만.

빌어먹을 만큼 뛰어난 감각은 하객들의 혼잣말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허! 아르티야와 외뿔부족의 경사에 훼방이라니! 무슨 생각인 거지?”

‘아마 아무 생각도 없을걸요?’

“그런데 재네들 아가레스랑 펜리르 아냐?”

‘알아보지 말아 주세요…….'

“그냥 그저 그런 초월자들도 아니고 저만한 거물들이 저렇게 나설 정도라면……! 혹시 이번 혼인식과 함께 아르티야와 외뿔부족 간에 우리가 모르는 물밑 협상이라도 있었나? 탑을 휘어잡을 만한, 그런……?”

‘그냥 저들은 생각이란 게 없다니까요…….'

웅성거리던 하객들은 이제 음모론까지 내놓고 있었다.

요르문간드는 그런 하객들을 일일이 찾아가 답변이라도 내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도저히 그럴 정신이 없었다.

『멋져……!』

그러던 그때, 웬 정신 나간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자, 헬이 양손을 꼭 끌어안으면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직접 마주한 꿈 많은 소녀처럼.

요르문간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멋있긴 뭐가 멋있다는 거냐!』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저항심! 사랑을 되찾으려는 강한 의지! 저런 걸 보고 어떻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어?』

『무슨 개소리야!』

요르문간드의 짜증스러운 말에 헬은 두 눈을 끔뻑거렸다.

『큰오빠는 개 맞는데?』

『……늑대겠지! 하여간 저건 그냥 단순히 행패를 부리고 싶어서 저러는 거잖아!』

펜리르의 꼬리가 프로펠러처럼 뱅그르르 돌아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나!

펜리르는 그냥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것이 즐거운 거다.

사람들의 관심은 물론, 연우의 관심도 끌어당길 겸 해서.

……사실 펜리르는 헬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갈구하는 성격이었다.

어쩌면 남매의 특징일지도.

'이대로 뒀다간 정말 니플헤임은 멸망이다!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형님을 어떻게든 끄집어내야 해!’

이쯤 되니 이 상황을 뜯어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확고하게 들었다.

하지만 펜리르가 작정하고 뛰어든 만큼, 요르문간드는 그를 막을 만한 방법이 딱히 없었다.

애당초 악력에 있어서는 펜리르가 그들 사회에서도 최고였으니까.

그래도 펜리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딱 한 명이 있다.

니플헤임의 왕이자, 그들 남매의 아버지인 로키인데…….

『푸하하핫! 역시 내 아들이야! 그래! 그냥 이렇게 심심하게 끝날까 봐 걱정했다니까? 정말로?』

그는 배꼽을 붙잡고 그냥 낄낄대고만 있었다.

입에는 오징어 다리 하나를 물고, 양다리는 쭉 뻗어서 앞쪽 의자에 걸친 자세로.

누가 봐도 이 일에 뛰어들 의사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자세.

‘씨발.’

요르문간드의 얼굴에 허탈함이 내려앉았다.

'글렀어. 죄다 글러 먹었고.’

이 사회는 조만간에 망할 거야…… 망하고말고…….

하, 하하하하…….

실의에 빠진 요르문간드가 될 대로 되라면서 헛웃음을 잔뜩 흘리는 동안.

“뭘 어쩌라는 거냐?”

연우는 인상을 확 일그러뜨리며 아가레스와 펜리르를 노려봤다.

너무 예쁘기만 한 에도라를 보면서 헤벌쭉 웃고 있다가 맞절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초를 치고 말았으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날려 버리고 싶은 것을, 날이 날이다 보니 일단 꾹 참았다.

더 큰 소란을 빚기도 싫었고.

그래도 둘을 노려보는 시선에는 짜증이 가득 어려 있었다.

물론, 아가레스와 펜리르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조차 없었지만.

“어쩌긴 월 어째! 이 혼인! 반대한다고!”

왕! 왕왕!

아가레스는 양 허리에 손을 얹으며 크게 소리쳤다.

제 딴에는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고 지었지만,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그렇게 소리쳐 봤자 별로 위엄 넘치지도 않았다.

옆에서 강아지 형태로 있는 펜리르도 마찬가지.

꼬리는 왜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거냐고…….

“그러니까, 왜?”

“그냥! 그냥 반대다!”

왕왕왕!

펜리르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연우는 화안금정을 활짝 열고 두 사람을 가만히 노려봤다.

그러자 펜리르의 속마음이 훤히 드러났다.

-결혼하면 나랑 못 놀잖아! 그러니까 반대해야지!

"……."

연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둘을 봐야만 했다.

펜리르의 속내가 저러하니 아가레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냥 자기들이랑 놀자고 혼인에 깽판을 친다니, 뭔 이런 무뢰한들 이…….

‘그냥 날려 버려야겠군.’

혹시 그럴듯한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연우는 저것들을 옆으로 치워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풍성한 소맷자락을 위로 걷으면서 오른손을 꺼냈고.

“제길! 댕댕아! 조심해라! 아무래도 저놈이 언론 탄압을 하려는 것 같으니까!”

왕!

아가레스와 펜리르는 그런 연우의 모습에 낭패라는 듯이 담장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정말이지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 놈들이었다.

“……진짜 언론 탄압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지.”

연우가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려던 그때였다.

“이제 좀 그만해라, 이 미친놈들아! 진짜 세상 부끄러워 죽겠네!”

아가레스 뒤편으로 바알이 나타나더니, 그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바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놔, 이거!”

“르 인페르날은 다들 뭐 하나! 어서 이 빌어먹을 새끼 치우지 않고!”

바알은 아가레스의 저항 따윈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그를 르 인페르날의 마왕들이 있는 곳으로 냅다 던졌다.

“놓…… 읍읍읍! 으으으읍!”

아가레스가 발버둥쳤지만, 마왕들은 재빨리 포승줄로 아가레스를 칭칭 감고 입에다 재갈까지 물려서는 부리나케 자리를 떠났다.

낯짝 하나는 아주 두껍다고 자신 있어 하는 마왕들조차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최대한 빨리 장소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니플헤임도 마찬가지.

왕! 그르르-

바알의 등장에 담장 밖으로 재빨리 도망치려 했던 팬리르는 곧 요르문간드와 수하들이 만들어 낸 인의 장막…… 아니, 악마의 장막에 맞서야 했다.

다들 손에 잠자리채를 들거나 펜리르가 좋아하는 개껌을 들고 있는 등, 모양새는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들의 표정만큼은 아주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몇몇은 긴장한 나머지 마른침을 삼키기도 했다.

펜리르는 당장 비키라며 으르렁거렸다.

그 모습이 어째 귀여워 보이기도 했지만, 요르문간드의 얼굴은 온통 짜증으로 얼룩져 있었다.

『저 개새…… 아니, 개 같은 형님 좀 잡아.』

『넵!』

『네엡!』

왕! 왕왕!

『저 개소리 좀 닥치게 만들고! 왜 자꾸 말은 안 하고 저딴 컨셉을 유지하는 거야!』

펜리르와 악마들이 부딪쳤다.

우당탕탕-

와르르……!

그 광경을 가만히 보면서.

"……."

연우는 걷었던 소맷자락을 다시 풀었다.

그러고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검지로 꾹꾹 눌렀다.

* * *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개판이 따로 없구만.”

“도통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아가레스와 펜리르의 반란(?)이 아주 빠르게 진압되는 동안.

하객들은 ‘이게 대체 무슨 129?’라는 표정이 되고 말았다.

저것만 두고 봐서는 처음에 그럴듯한 이유로 거론되었던 음모론 같은 건 완전히 틀린 말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자, 하객 여러분들! 다시 이쪽에 집중해 주세용! 아주 잠깐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진압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다시 진행 시작하겠습니다용!』

하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사회를 맡은 라플라스의 안내에 따라 다시 진행되려는 혼인식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차피 이것은 외뿔부족의 행사가 아니던가.

특이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특성을 고려해 봤을 때, 작은 이벤트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았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이 자리의 가장 큰 어른이라 할 수 있을 크로노스 부부와 무왕 부부도 껄껄 웃어 대기만 할 뿐,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고.

『자자, 그럼 이제 신랑 신부 맞절을 거행할……!』

그렇게 라플라스가 마이크를 입에다 가까이 붙이면서 진행을 이어 가려는 그때였다.

파아앗-

별안간 하객석에서 무언가가 번쩍거린다 싶더니.

스격!

라플라스의 안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뚱이가 반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푸우우우……!

검은 그림자 입자가 피가 솟구치듯 분수처럼 위로 쏟아졌다.

갑자기 벌어진 일.

하객들은 잠시 자신들이 뭘 잘못 봤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꺄아아악!”

“또 뭔……!”

“습격이다! 습격이야!”

그러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이들이 내지른 비명과 함께, 하객석의 머리 위로 다른 빛무리들이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헤임달, 토르, 프리그, 티르…….

아스가르드의 신들이었다.

“모두.”

원래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자리하고 있던 하객석에는 오딘만이 홀로 앉아 있었다.

한쪽 다리를 꾄 채로.

“죽여라. 한 놈도 빠짐없이.”

[아스가르드의 천벌이 개시됩니다!]

끼아아아!

우르릉, 콰콰광!

콰콰콰콰-

오딘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격의 기세는 폭풍이 되어 삽시간에 연회장과 무궐을 뒤덮었다.

귀곡성이 음산하게 울려 퍼지고, 강풍 사이사이로 벼락이 쉴 새 없이 내리꽂혔다.

오딘의 신위는 죽음을 몰고 다니는 폭풍우.

당연히 그 파괴력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이것들이!”

바압은 아가레스를 처리하다 말고 오딘이 일으킨 소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아가레스야 그냥 생각 없이 저지른 사고라 치부할 수 있어도, 오딘과 아스가르드의 훼방은 절대 그딴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르티야와 외뿔부족에 대한 선전 포고였으며, 말라흐와 르 인페르날을 포함한 여러 사회들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짓이었다.

천계 전체를 대상으로 전쟁을 치르겠노라는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르 인페르날의 마왕들은 들으라-!』

이에 바알은 다른 어느 때보다 크게 분노했다.

진언(眞름)이 섞인 그의 목소리에는 마기가 듬뿍 담겨 있었다.

그의 외침이 하늘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이에 모든 마왕이 고개를 위로 들었다.

지금 이 순간.

난리를 피우던 아가레스도 미동조차 없는 상태로 바알을 바라봤다.

수장 바알의 명령은 절대적인 것.

그동안 아가레스가 많은 소동을 피우긴 했어도, 그는 자신의 책무를 절대 회피하지 않았다.

『감히 우리가 있는 곳을 엉망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은 우리 르 인페르날을 능멸하는 처사나 다름없는 터!』

아스가르드의 신들을 모두시 바알의 두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찢어 죽여라.』

『명!』

『명!』

팟!

파아앗-

마왕들이 모두 아스가르드 신들을 잡기 위해 달렸고, 아가레스도 아이의 형상을 풀고 본체로 돌아가면서 십여 개나 되는 검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감히 이 몸의 것을 건드리려 해?』

아가레스의 두 눈이 흉흉하게 빛났다.

[아가레스가 권능, 흉신악살을 드러냅니다!]

『찢어 죽이다 못해 아주 갈기갈기 조각내 주지.』

고오오오-

아가레스를 필두로, 달려들던 르 인페르날의 악마들이 일제히 아스가르드의 신들의 뒤를 바짝 따라붙으면서 공격을 개시했다.

퍼퍼퍼펑-

“말라흐의 대천사들도 르 인페르날을 당장 도우십시오!”

메타트론의 명령에 따라 미카엘을 비롯한 대천사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다만, 분노에 눈이 먼 바알과 다르게 메타트론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뭔가 이상합니다. 아스가르드 분들의 눈에 이지가 느껴지질 않아요.’

오딘이 아무리 오만하다고 해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선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쿠르르릉……!

하지만 의문과 상관없이 소동은 계속 커져만 갔다.

무궐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하하. 이제 슬슬 가 볼까?”

사자자리가 수하들과 함께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폭풍우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아주 천천히.

저벅.

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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