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랭커-860화 (860/862)

60화. 혼인식 (5)

“선물?”

레굴루스가 고개를 외로 꼬았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헛웃음.

기도 안 찬다는 표정이었다.

“첫 번째 별을 위한 선물이라…… 그래. 장인이기도 한 너의 스승에게 줄 예물로 별의 조각이라면 아주 넘치지.”

레굴루스의 입꼬리가 세게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그 선물이 제자이기도 한 사위의 실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보지?”

따악!

레굴루스가 손가락 가법게 튕겼다.

그 순간.

콰아아앙!

갑자기 연회장 한복판이 흔들렸다.

한창 대천사와 마왕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이던 아스가르드의 하급 신 중 한 명이 폭발하고 만 것이다.

그 때문에 녀석과 겨루던 대천사는 물론, 그 주변에 있던 이들까지 깡그리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다.

쿠르르르……!

잠시 후 먼지구름이 사라지고 드러나는 광경은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런 미친!”

“신을 폭발시킨다고……?”

“폭발이 또 이어진다! 피해!”

문제는 상황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폭발을 피해 겨우 몸을 물렸던 대천사와 마왕들은 곳곳에서 이어지는 빛의 세례에 황급히 흩어져야만 했다.

아스가르드의 신들이 일제히 빛무리에 휩싸이면서 연쇄 폭발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쾅! 쾅! 과아앙!

콰아아아앙!

우르르-

“꺄아아악!”

“자네 몸이 왜 이래!”

“어, 어어어……? 진짜 왜 이러는 거지!”

“젠장!”

“도, 도망치지 마! 나 좀 구해 주고 가란 말이야! 제, 제발……! 아아아악!”

구경꾼들은 물론 초대받아 온 하객들까지 모두 연회장에서 몸을 물렸다.

아스가르드를 막아서려던 대천사와 마왕, 연우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외뿔부족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하객들은 서로를 의심해야만 했다.

무리에 섞인 몇몇이 아스가르드의 신들처럼 갑자기 폭발해 버린 탓이었다.

그 때문에 피해는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연우의 혼인은 아무도 축복해 주지 못할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파하하하! 어떤가? 모든 세계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대를 위해 이렇게 특별히 준비를 해 봤는데?”

레굴루스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였다.

그가 여태 조사한 연우는 정에 한없이 약한 사내였다.

평범한 인간이었을 때부터 동생의 복수를 위해 검을 쥐기 시작했고,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칠흑왕이 되는 길로 들어서기까지 했다.

그가 벌였던 모든 파격적인 행보의 이면에는 항상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 말인즉, 주변인들의 피해에 가장 예민한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속이 아주 썩어 문드러지고 있겠지.

레굴루스는 그렇게 연우의 심기가 흐트러질 때를 노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가 약점이 드러날 때일 테니까.

이곳에 있는 칠흑왕의 화신과 본체 간에 이어지는 채널링이 격하게 흔들리면 레굴루스도 포착할 수 있을 테고, 그럼 그는 즉시 채널링을 물어뜯고 단번에 거슬러 올라가 칠흑왕의 본체를 두들길 생각이었다.

연우가 주변을 쏙 훑어보았다.

주변 피해를 보는 그의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레굴루스는 그것이 연우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신들은 미리 포섭이라도 해 뒀었나 보지?”

“오딘의 도움이 컸지. 그거 아나? 그가 한쪽 눈에 지니고 있는 눈, 영지안(靈智眼)이라는 거, 아주 쓸모가 좋더군. 세뇌나 암시도 잘 먹히고, 격을 흔들기에도 좋았어.”

흐흐흐. 레굴루스의 웃음이 더 커졌다.

연우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딘이 한창 무왕과 겨루고 있는 곳이었다.

“쓸모없는 하급 신도 격이 격이다 보니 이런 식으로 쓰려니 쓸모가 생기긴 하더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써먹어 보라고. 그럴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없을 것 같긴 하군.”

“흐! 왜? 무섭나?”

“그건 아니고. 그냥 되돌리면 그만이니까.”

“뭐?”

레굴루스가 무슨 말이냐며 인상을 찡그리던 그때였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꿈속 세계가 정지합니다!]

눈앞에서 떠오른 메시지.

정지?

레굴루스가 인상을 찡그리다가, 멈칫거리고 말았다.

‘……멈췄다고?’

레굴루스는 자신을 제외한 주변 모든 것들이 얼음처럼 굳은 것을 보고 순간 심장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껴야 했다.

도망치던 이들도, 신의 폭발도, 먼지구름도, 튀어 오르는 돌가루도, 모두 정지되어 있었다.

단순히 능력으로 정지시킨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 자체가 단단히 고정된 것이다.

레굴루스는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연우를 바라봤고.

피식.

연우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꿈속 세계가 되감깁니다.]

연우가 허공을 짚은 오른손을 옆으로 돌리는 순간, 세상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튀어 오르던 돌가루와 조각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 다시 평평한 반석을 이뤘다.

팽창하던 먼지구름과 열풍이 되돌아와 다시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폭발에 휩쓸렸던 존재가 살아났다.

흩어진 하객들이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 연우와 에도라의 혼인을 축하해 주었고, 아스가르드 신들은 다시 하객석에 조용히 앉아 있게 되었다.

대천사와 마왕들, 외뿔부족도 더 이상 뛰어다니지 않았다.

심지어 난리를 피웠던 아가레스와 펜리르도 담장 밖으로 튕겨 난 상태였다.

그리고…… 되감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되돌려지고 또 되돌려져서 혼인식이 거행되기 전날로.

한 달 동안 있었던 여러 차례의 혼인 과정들이 있기도 전으로.

연우가 에도라에게 청혼을 하기 전으로…… 계속 되돌아가다 끝끝내 처음 연우가 이 시간대에 도착하기도 이전인 시간대에 접어들었다.

탑이 흩어지고, 르’뤼에가 꿈틀거리다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우주가 되었다.

어둠과 공히뿐인 태초 시간대의 우주.

되감기는 바로 거기서 정지했다.

"……!"

레굴루스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렸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도 안 돼. 인과율이 감당되지 않을 텐데……?”

레굴루스가 연우에게 덤벼 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그가 칠흑왕의 주 자아여도, 결국 칠흑왕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칠흑왕의 본체는 현재 르’뤼에에 잠들어 있다.

그 말인즉, 연우의 권능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단 뜻이었다.

억지로 본체를 움직이려 들면 본체가 잠에서 깨어나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다.

이것을 거스르려고 들면 인과율의 법칙에 어긋나게 되니 행동에 제약이 있을 거라 판단했던 것인데…….

지금 이것만 봐서는 시간의 축을 태초까지 되감을 수 있을 정도로 인과율에서 자유롭지 않은가!

“미안한 말인데, 인과율은 사용하지도 않았다만.”

연우는 한껏 조소를 던졌다.

“무슨 소리를……!”

“말하지 않았나? 너는 스승님께 드릴 예물이라고.”

레굴루스는 순간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어 허리를 쭈뻣 세웠다.

주변을 둘러봤다.

모든 것이 깜깜하기만 한 우주.

이것만 본다면 분명히 태초의 우주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자세히 살피니 암혹 물질들이 균일하지 않아 보였다.

마치 알 수 없는 힘으로 차원 단면이 이리저리 휘는 것 같았다.

저런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의 빛’이라는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한, 세계의 고정된 법칙은 제아무리 칠흑왕이라고 해도 함부로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곳이 칠흑왕만의 공간이 아니라면!

'공간……!’

레굴루스는 그제야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세계가 정상적으로 탄생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첸 것이다.

여기는 오리지널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세계선도 아니었다.

‘꿈’이었다.

칠흑왕이 그냥 심심풀이로 꾸는 꿈…….

파아아앗!

레굴루스는 재빨리 연우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여태 자신이 있던 곳이 덫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달아나는 수밖엔 없었다.

“느려.”

하지만 연우는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음을 한껏 던지면서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쫓아갈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이 모든 세계가 그가 임시로 만든 인형극 무대에 불과할진대, 귀찮게 뛰긴 왜 뛴단 말인가?

고오오오……!

세계가 뒤틀렸다.

법칙이 움직였다.

암흑 물질이 응집되면서 쇠사슬이 되어 레굴루스에게로 달려들었다.

화르르륵-

“제기라아아아알!”

레굴루스에게는 이 모든 일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분명히 오리지널인 것을 몇 번씩이나 확인하고 허수 세계에서부터 넘어온 것이건만.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했던 세계가 사실은 함정일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야말로 칠흑왕이 아니면 절대 부릴 수가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적인 셈이었다.

“오지 마라!”

레굴루스는 이리저리 피해도 악착같이 달라붙는 쇠사슬에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퍼퍼퍼퍼펑-

타다다당!

주먹을 거칠게 내질렀다.

그러자 공간이 왜곡되고 파괴되면서 쇠사슬이 잇달아 튕겨 났다.

하지만 그래도 쇠사슬은 다시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쾅, 쾅, 쾅아아앙!

쐐애애액-

“왜 열리질 않는 거야!”

레굴루스는 발목을 노려 오는 쇠사슬을 신경집적으로 걷어차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조금 전부터 허수 세계로 통하는 문을 어떻게든 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외부와의 연결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마치 단단한 무언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 미안하지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할 거야. 이 세계는 이미 다른 곳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따로 관리되고 있으니까.”

이미 이 세계 자체가 폐쇄된 감옥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아아아악!”

레굴루스의 괴성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연우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짙어지기만 했다.

‘역시 이 방법이 옳았어. 꽤 큰 파리가 꼬여 들었으니.’

티그리스를 잡고 난 뒤.

연우는 별들이 어떻게든 자신이나 무왕을 노릴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저들의 목표는 결국 다른 별의 조각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전지전능을 획득하여 새로운 세계의 ‘유일신’이 되는 데에 있었으니까.

그래서 연우는 대어를 낚기 위해 자신을 미끼 삼아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오리지널과 똑같은 형태의 ‘꿈’을 놓아 별들의 이목을 사는 한편, 여기서 실제처럼 움직이기도 했다.

무왕의 부활, 집안의 상견례, 에도라와의 혼인…… 그 모든 것들은 오리지널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이면서도, 그가 막연하게 꾸던 ‘꿈’의 일부였으니.

결국 이렇게 사자자리라는 대어를 낚게 되어, 연우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꿈’이었다고 해도, 감히 자신의 혼인식을 망가뜨리려 한 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냥 단순히 잡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아주 영혼까지 비틀어 쥐어짜서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토설하게 만들어야 했다.

허수 세계로 접근하는 방법부터, 놈들을 찾을 수 있는 방법까지, 전부…….

“빌어먹으으으을! 죽어라아아앗!”

결국 레굴루스는 자꾸만 불어나는 쇠사슬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던지, 아예 연우에게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얼굴에 핏대가 잔뜩 선 것을 봐서는 여태 연우에게 농락당하기만 했단 사실이 원통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연우는 가볍게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저 멍청한 놈은 본인이 먼저 자신을 도발하려 했던 건 기억도 하지 못한단 말인가?

자신만 피해자랍시고 날뛰는 꼴이 우습기만 했다.

좌르르르륵!

쇠사슬이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처럼 레굴루스를 덮쳤다.

레굴루스의 주먹이 연우의 코앞에서 정지했다.

녀석의 전신이 빳빳하게 굳었다.

부르르.

어떻게든 연우의 얼굴을 후려갈기고 싶어 하는 손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하지만 신진철에 신병이 구속된 이상, 신력을 끌어올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터였다.

이미 녀석은 누에고치처럼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 한쪽 눈만 외부로 드러난 상태였다.

“개…… 같은……!”

분노에 젖은 눈에 핏대가 잔뜩 서 있었다.

“칭찬 고많게 받아들이지.”

연우의 싸늘한 조소와 함께.

촤르르륵-

철컹, 철컹, 철커덩!

구속구의 잠금장치가 단단히 잠기면서 공허가 활짝 열렸다.

마치 맛있는 음식을 탐하려는 것처럼.

“최대한 조심히 옮겨야겠군. 예물에 상처가 나면 안 될 테니까.”

연우의 조소는 그제야 흐뭇한 미소로 변했다.

* * *

탁!

차정우는 보고 있던 책을 조용히 덮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쩐지 두 눈은 썩은 동태 눈처럼 흐리멍덩했다.

“대체 누가 악역이고 누가 선역인 거야……."

『쿵짝 쿵짝 쿵짜짜 쿵짝! 네 박자 속에〜♬ 인성도 있고, 통수도 있고, 연우도 있네〜♪』

샤논은 뒤에서 오랜만에 아주 걸쭉하게 한 곡조를 뽑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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