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 번 사는 음악천재-4화 (4/234)

4화

“후우.”

내가 기타를 손에서 내려놓은 건 거의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이었다.

연주하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하지만 기타의 쇠줄이 익숙하지 않은 손끝이 격렬한 연주를 버티지 못하고 퉁퉁 불었다.

‘몸이 연주를 못 받쳐 주네.’

한창 불이 붙었던 참이기에 이게 또 아쉬웠다.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들려면 앞으로도 고생깨나 해야겠어.’

기타뿐만이 아니다.

노래는 더더욱 그러리라.

어쩌면 노래가 기타보다도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만렙을 찍어 놓고 초보자부터 다시 키우는 느낌이군.’

나는 이제 슬슬 익숙해져 가는 요즘 표현을 속으로 되뇌며 조은솔에게 말했다.

“여기요.”

“어?”

그녀는 움찔하더니 얼빠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나는 기타를 내밀며 말했다.

“기타요. 돌려드릴게요.”

“어, 응.”

그녀는 내게서 기타를 받아가더니, 이게 자기 기타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몹시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참으로 얼빠진 사람이로다.’

저런 사람이 동아리 회장이라.

이 동아리 이름이 팅이라고 했지. 과연 제대로 된 곳이 맞기는 할까.

나는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차피 음악 동호회는 어딜 가든 거기서 거기다.

원래 집단의 수장은 꼭 유능한 사람이 맡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관계에서 두루두루 성실한 사람이 낫다.

‘그래도 기타 관리 상태를 보면 성실한 사람이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조은솔을 다시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요.”

“응?”

“그럼 저 여기 합격한 거 맞죠?”

“아! 그건 당연하지.”

조은솔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주하는 거 보니까 더 볼 것도 없겠다. 우선 입부 축하하고, 앞으로 잘 부탁할게. 다른 회원들은 나중에 소개해도 되지?”

“나중에요?”

“오늘은 다 스케줄이 있어서. 팅에는 동아리 정기 행사가 있거든. 그게 마침 내일이야.”

“알았어요. 그럼 내일 다시 뵐게요.”

나는 그녀를 뒤로하고는 동아리방을 떠났다.

* * *

자취방으로 돌아온 뒤, 나는 한동안 잊고 지냈던 목표를 다시 떠올랐다.

‘더 좋은 연주란 뭘까.’

좋은 연주.

뮤지션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욕망이었다.

더 좋은 음악, 더 좋은 노래, 더 좋은 연주를 향한 갈망.

그러한 것들이 내 몸 안에서 꿈틀거렸다.

이번 생에 들어서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것이, 기타를 손에 쥐자 다시금 깨어났다.

‘이미 전생에 한국 음악 시장의 정상까지는 갔었지.’

엄밀히 말하자면 아예 정상은 아니다.

경쟁자가 존재하는 정상이었으니.

이 둘 사이에는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최고의 록밴드를 고르라고 하면 누가 나올까.

비틀즈나 퀸, 롤링 스톤즈 같은 밴드가 나올 수도 있으리라.

저들은 모두 위대한 밴드이니 말이다.

하지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를 단 하나만 찍으라면 누가 나올까.

높은 확률로 비틀즈가 나오리라.

기타에서도 같았다.

에릭 클립튼, 제프 백, 지미 페이지.

정말 환상적인 기타리스트들이다. 나 자신도 저들의 연주는 존경해 마지않는다.

하지만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단 하나만 뽑으라면 누가 나올지는 분명했다.

‘지미 핸드릭스, 지미 핸드릭스 외에는 없지.’

이와 같이, 정상과 경쟁자가 존재하는 정상 사이에는 한없이 얇으면서도 단단한 벽이 존재했다.

나는 조은솔과의 대화를 다시금 되새기며 생각했다.

‘요즘 사람들은 김한석을 안 듣는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내가 최고의 실력자였다면 그런 말은 안 나왔으리라.

최고는 곧 클래식이 된다.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그러하듯, 진정한 최고 앞에서 세월이란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전생의 나는 클래식이 되지 못했다.

이유라면 알 것도 같았다.

나는 훌륭한 뮤지션이었을지언정, 독보적인 최고의 자리에는 다다르지 못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다시 도전해 볼까.’

나는 김한영으로서의 기억을 뒤적여 보았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이번 생의 나는 노래 자체를 풍요롭게 듣지 않았다.

유행 가요만 몇 개 듣는 정도.

하지만 노래를 열심히 듣는 사람이라면 한 명 알았다.

‘어디 보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는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왜 전화했어?]

고희범이었다.

나는 그에게 대뜸 물었다.

“희범아, 지금 가장 잘난 아티스트라면 누가 있지?”

[아티스트? 그건 갑자기 왜?]

“그냥, 아무나 한번 골라줘 봐. 가능하면 기타 잘 치는 사람으로.”

[음, 잠깐 생각 좀 하자. 우선 요즘 가장 핫한 건 에드 시런이지. 그리고 또…….]

곧 고희범의 입에서 그럴듯한 사람의 목록이 몇 명이고 쏟아졌다.

그러기를 한참.

고희범은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아, 한영아, 너 혹시 지금부터 기타 배우려고 그래?]

“어.”

[크으, 기타 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해 놓고 행동으로 옮기려고 그러는구나. 네가 그래도 꺼낸 말을 책임은 질 줄 안다. 이 형은 감탄했다. 그런 의미에서 롤…….]

쓸데없는 말을 하는군.

나는 흥미가 식는 걸 느끼며 말했다.

“끊는다.”

[야, 잠깐, 잠깐만! 지금 같이 듀오…….]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듀오라.’

같이 게임이나 하자고 제안하려 했던 거겠지.

게임.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신나게 했던 걸 생각하면 좋은 취미일 텐데, 지금은 딱히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왜냐.

음악이 더 재밌기 때문이었다.

‘어디 보자.’

나는 아까 고희범이 불러준 뮤지션들을 내 귀로 직접 듣고 싶은 마음에 컴퓨터를 조작해서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딸깍.

그리고 재생한 순간이었다.

“…….”

나는 눈을 크게 뜨고야 말았다.

‘이건…… 기대 이상인데.’

뭐라고 해야 할까.

훌륭했다.

‘요즘은 음향 기술이 이렇게 발전한 건가? 아니면 뮤지션들의 실력이 늘어난 건가?’

지금, 이 음악은 내가 한창 활동했던 30년 전과 비교해서 감히 견주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내가 한창 활동했던, 천재들이 가득했던 그 시절로 가더라도 감히 최고의 자리를 넘볼 수 있을 정도.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수준인가?’

일단 더 들어봐야 알겠다.

딸깍, 딸깍.

그렇게 정신없이 찾아보기를 한참, 나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시대의 발전이 기술의 보급을 불러일으켰구나.’

이것밖에 답이 안 떠올랐다.

사실, 노래나 연주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술 싸움이다.

타고난 재능으로 어느 정도 습득 속도를 올릴 수는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시대가 흐르며 발전할 수밖에 없는 기술.

그런데 내 시대에는 이것을 익히기가 참 어려웠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익히려면 귀동냥을 하거나 이 분야의 권위자를 찾아가서 빌어야 했을 정도.

노래를 배울 곳을 찾기 힘들어, 외국 가수들의 테이프를 귀가 닳도록 반복해서 들으며 따라 불렀다.

그런데 시대가 발전하며 기술의 보급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또 효율적으로 바뀌었다.

‘노래를 가르치는 학원들이 이렇게 많아졌다니. 또 강사들 실력은 왜 이렇게 훌륭하지? 표현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발성만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인데?’

노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기타 또한 마찬가지였다.

‘강습 영상이 이렇게나 널려 있다니.’

싸구려 교본을 붙잡고 안 되는 머리로 하루종일 씨름하고, 좋은 연주를 들어보겠다고 비싼 돈 내고 멀리 찾아가던 내 시절과는 차원이 달랐다.

음향 기술, 교육 인프라, 시장의 규모까지 모든 면에서 한국 음악 시장은 30년 전과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내 감상이 어떠한가 하면.

‘훌륭하군.’

절로 웃음이 맺혔다.

‘내가 이런 음악들을 두고 저세상으로 갈 뻔했단 말이지?’

세상이 발전했다.

그 덕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잔뜩 출몰했다.

평균적인 시장의 질만 따지면 30년 전의 시장이 우물 안으로 보일 지경.

이 사실을 깨닫자 몸이 달아올랐다.

물론 반면에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그건 확실했다. 좋은 쪽으로만 발전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건 내가 다시 불러일으키면 되는 거고.’

이러나저러나 어느 쪽이든 내가 나설 이유는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밌겠다.’

다시 한번 도전자의 자리에 섰다.

그리고 이 몸은 예전에 한 번 정상에 올랐던 길을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쯤 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 하늘은 내 죽음을 반려한 거 아닐까.’

하늘이 내게 축복을 줬다.

더 좋은 환경에서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축복을.

“후우.”

나는 한참 동안 요즘 노래를 듣기를 잠시, 깊은숨을 토해내며 생각했다.

‘다시 시작해야겠군.’

그렇다면 우선은 기타부터다.

나는 통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였다.

기타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런 생각으로 고개를 돌려 자취방 구석을 보자, 먼지가 하얗게 앉은 것이 곰팡이 핀 귤껍질 같은 기타가 한 대 있었다.

나는 그것을 꺼내 들고는 가볍게 현을 퉁긴 순간이었다.

‘이건 못 쓰겠네.’

소리를 한 번 듣자마자 알았다.

이건 초심자들이나 잠깐 쓰고 버릴 싸구려 기타였다.

더군다나 소리가 쩍쩍 갈라지는 걸 보니 관리 상태도 최악에 가까운 수준.

넥이 제대로 휘었다.

‘다시 사야겠다. 이것보다는 좋은 걸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머릿속으로 가진 돈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

없다.

아무리 기억을 뒤적여 봐도, 돈이 나올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대체 나는, 아니 어제까지의 나는 그동안 뭘 하면서 살았던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돈이 없었다.

기껏 해 봐야 부모님에게 지원받는 생활비에 조금의 용돈 정도가 전부.

그건 다 어디에 쓴 걸까.

이내 머릿속으로 기억이 떠올랐다.

‘스킨?’

데이터 쪼가리에 날아갔다.

‘아니, 그런 데다가 돈을 쓴다고? 왜?’

내가 한 행동인데도 이해가 안 된다.

이제 남은 잔고는 비상금 30만 원이 안 되었다.

고작 이 돈 가지고는 제대로 된 기타는 죽어도 못 산다.

‘우선은 계획 수정이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면서 결심했다.

‘돈을 벌어야겠어.’

돈을 벌 방법이라.

당장은 알바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가서 연주 좀 하겠다고 난리를 쳐 봐야, 자기 기타도 없는 사람을 믿어주지는 않겠지.

30년 전의 인연을 지금 이 몸으로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김한석의 환생이라고 난리를 치면 어떻게 될까.

정신병자 취급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리라.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군.’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게도 손을 벌릴 구석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서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나한테도 부모님이 생겼구나.’

참 복잡한 감정이었다.

27년간 고아로 살았는데, 이제는 갑작스레 부모님이 생겼다.

이 두 기억이 섞여서 심경이 복잡했다.

그분들이 내 부모님이면서 동시에 내 부모님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

이걸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떨쳐냈다.

‘이 괴리감은 차차 극복해 나가야 할 일이겠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슬슬 내가 나라는 데 적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 *

동아리 회관.

조은솔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다시 왔네?”

“네, 잠깐 고민이 있어서요.”

동아리 회관은 집에서 걸어서 불과 3분 거리가 안 되었다.

학교 바로 옆에서 자취할 때의 장점이었다.

“선배님은 집에 안 가셨어요?”

“선배님이 아니라 누나.”

“네, 은솔이 누나.”

“옳지. 아무튼, 난 원래 여기서 살아.”

“여기서 숙식한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서 살다시피 한다고.”

나는 그녀의 항변을 들으며 적당히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러자 조은솔은 의아한 듯 물었다.

“되게 자연스럽다.”

“이제 저도 여기 회원이니까요.”

“그렇기는 한데…… 그래서 고민? 뭔데?”

조은솔은 혼자서 중얼거리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말했다.

“아, 혹시 민아 이야기?”

“아뇨.”

나는 단칼에 끊었다.

아니다.

이름이 성민아였던가, 미안하지만 그 학생한테는 쥐뿔만큼의 관심조차 없다.

그런데 내 말에 조은솔이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런 걸로 치자.”

“…….”

이 사람아.

뭘 그런 걸로 쳐.

관심이 없다면 그냥 그런 줄 알 것이지 자기 혼자서 아주 꿈의 나래를 펼치고 계시네.

나는 뭐라고 반박하려다가, 그러면 오히려 더 의심만 키울 것 같아서 말았다.

“다른 게 있어요.”

“그래, 그래. 그래서 그 고민은 뭔데?”

“별건 아니고요.”

나는 툭 던지듯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기타로 돈을 벌 방법 없을까요?”

그 순간이었다.

조은솔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아까 별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니?”

“네, 별거 아니죠. 그냥 돈 벌 방법이 없는가 하는 건데.”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조은솔은 아예 폭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기타로 돈을 버는 방법이 세상에 어딨어?”

“…….”

없나?

나 때만 해도 이것저것 있었는데.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막 클럽 같은 곳에서 기타 치면 돈 주는 그런 거 없을까요?”

“몇십 년 전에는 있었겠다.”

아.

그렇네.

내가 몇십 년 전 사람이라서 잘 몰랐던 거네.

내가 그걸 몰랐구나.

어쩐지 마음이 팍 식어서 시무룩해지려는 순간이었다.

“흐음.”

조은솔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미묘한 웃음을 짓더니 말했다.

“하지만 네 실력이라면 가능할 게 있긴 하겠다.”

- 다음 화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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