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확실하게 말해서, 기타라는 건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다.
같은 재능이라면 어려서부터 기타를 잡은 사람일수록 실력을 늘리기 수월하다.
오죽하면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는 지미 핸드릭스가 15살에 기타를 시작했다는 이유로, 늦깎이 천재라 불릴 지경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나는 최고의 환경을 타고났다.
내 부모님 덕분이었다.
이번 생의 부모님 이야기가 아니다.
전생의 부모님 이야기다.
난 고아가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그런 내 부모님도 날 버릴 때 내게 선물 하나 정도는 남겼다.
브랜드도 못 알아볼 싸구려 기타 한 대였다.
‘제대로 뒤집기도 못 할 아기 때부터 기타를 만졌다고 했지.’
요컨대, 내 기타리스트 경력은 내 나이와도 일치하는 셈이었다.
“아, 아.”
나는 마이크 앞에 가볍게 숨을 토한 뒤 앞을 바라봤다.
인파가 몰리는 대학로답게 50명은 넘고 100명은 조금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긴장하기 충분할 만큼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늑하네.’
참 편안하기 짝이 없는 인파다.
전생의 나는 대형 콘서트를 기획할 때마다 만 명 단위를 염두에 두었고, 앨범 하나를 낼 때면 전 국민이 들을 걸 생각하며 작업했다.
그런 내게 있어서 이 숫자는 저녁노을만큼이나 아늑했다.
‘어떻게 연주할까.’
사실, 무대가 시작되고도 한참이나 무슨 곡을 연주할지 정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악보는 수백 개도 넘는데, 그 안에서 어느 곡이 가장 좋을지 계속해서 고민한 탓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결정했다.
‘나도 이상혁이랑 같은 곡을 연주해야겠다.’
아르페지오의 회장, 이상혁과 같은 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곡을 제대로 살릴 수 없다.
손가락이 부어올라 감각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쏘냐.
내 나름의 즉석 변주를 넣어 보기로 했다.
디링.
나는 기타를 치며 입을 열었다.
“저 호숫가의 갈대처럼.”
그 순간이었다.
시끌벅적하던 대학로 한복판에 정적이 찾아왔다.
실제로 조용해진 게 아니었다.
흡사 폭풍의 눈.
내 귓가로는 오직 내 목소리와 기타 소리만 들릴 것 같이 조용해졌다.
“그대가 바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위에 올라타 춤을 추리.”
아까 이상혁이 연주한 곡, [갈대]였다.
하지만 이 곡은 [갈대]이면서도 같은 [갈대]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갈대, 이 세상에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는 새로운 갈대였다.
“흙냄새 풍기는 그림자는 너무 멀리 누워 노을과 뒤섞이네.”
느려졌다.
이상혁의 연주가 빠른 피킹과 정교한 연주로 교과서 같은 연주를 보여 줬다면, 나는 그 반대로 갔다.
타랑.
천천히, 극히 천천히 갔다.
손가락의 감각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그만이다.
느리게, 또 느리게.
손가락이 기타에 닿는 시간을 한계까지 늘리며 피킹 한 번에도 최대한의 감성을 녹여 넣었다.
“나는 갈대, 그대는 바람. 우리는 호숫가 위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네.”
노래의 고음도 신경 쓰지 않는다.
못 올리면, 안 올리면 그만이다.
“한데 뒤섞여 손을 잡고 춤을 추네.”
고음은 좋은 무기다. 그것도 아주 쓸 만한 수단.
하지만 꼭 고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자못 고음이란 노래를 잘 소화하기 위한 표현 수단의 하나일 뿐이었다.
내게는 고음 없이도 다룰 수 있는 표현이 수도 없이 많았다.
휘파람이 그중 하나였다.
어느덧 사람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진 대학로 위로 내 연주와 휘파람 소리만이 고즈넉하게 뛰놀았다.
탁.
그렇게 곧 연주가 끝났다.
그리고 관객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환호성은 물론, 그 흔한 박수 소리조차도 없었다.
내 연주가 별로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이런 반응에 익숙하다.
저들은 정신적으로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그 반응을 못 따라가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기를 잠시.
“우와…….”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
곧 대학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제야 담담하게 인사하며 관객석의 한쪽 구석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상혁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이 이상혁이라고 했나.’
흔한 이름이라 그런지 자꾸 까먹는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의 연주는 확실히 대단했다. 아마추어치고 분명 훌륭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딱 거기까지였다.
무대가 왜 무대인가.
사람들이 왜 라이브를 보러 오는가.
음원과는 다른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 위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가수는 단순히 정교하기만 한 연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준비했다.
그렇기에 프로였다.
대충 그런 감상에 빠져 있는 참이었다.
‘아.’
나는 무대를 내려가려고 몸을 돌린 찰나에 한마디를 까먹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저기,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한창 환호하던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또 우리 팅의 식구들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을 띄웠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사실, 제가 기타가 없어서 남의 걸 빌려 쓰거든요.”
“…….”
적막해졌다.
나는 무대 앞의 모금함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푼만 주세요.”
관중들이 말없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 * *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식구들이 나를 놀란 목소리로 반겨 주었다.
“한영아!”
“너 대체 뭐야? 어디서 튀어나왔어? 왜 이렇게 잘해?”
처음으로 달라붙은 건 정의선과 윤서 선배였다.
그 둘이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너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
딱히 숨긴 적 없는데.
“연습을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잘하지? 나 막 너 프로인 줄 알았어. 혹시 기타 전공으로 하다가 전과한 거 아니지?”
“한영이 1학년이잖아.”
“그럼, 고등학생 때까지 음악 전공하다가 관뒀다거나.”
시끌시끌하다.
내 실력을 품평하다가 자기들끼리 떠들고 유추하고 아주 난리가 났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왜 그래?”
“아뇨, 그냥 옛날 생각나서.”
전생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
주로 내가 막 데뷔했던 초기에 이랬는데, 사람들이 내 연주에 놀라서는 막 칭찬을 늘어놓고는 했다.
‘막상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시기하고 욕하는 사람이 많아졌었지.’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적이 많았다.
아무튼, 이들의 반응은 내가 처음 데뷔했을 때 흔히 봤던 반응이었다.
한 점의 오염도 없는 순수한 호의.
그립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까 찾아볼 생각을 안 했네. 지금쯤 한자리씩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찾아가면 밥이라도 사 주려나? 나는 많이 사 줬는데.’
나중에 검색이나 해 봐야겠다.
당장 지금 이 몸으로 찾아가서 내가 김한석이라고 말하는 건 안 통하겠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으려니까 조은솔이 내게 말했다.
“잘했어. 아까 이상혁이 너 연주 듣고 긴장한 거 봤지?”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네 덕이야. 기선제압은 확실하게 했어. 지금 사람들 반응도 엄청 좋아.”
확실히 내 무대로 팅이 아르페지오를 꺾은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게 꼭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잘한 만큼, 우리의 다음 주자가 그만큼 비교당하기도 할 테니.
“제 다음 순서가 누구죠?”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그러자 조은솔은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민아.”
아.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성민아가 기타를 쥐고 연습하고 있었다.
딱히 축하 인사라고 할 게 없어서 이상하다 했다.
그녀는 집중에 빠져서 바깥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눈치였다.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건지.’
그렇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눈이 마주쳤다.
“…….”
“…….”
잠깐 눈싸움이 펼쳐졌는데, 이번에는 성민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멋있더라.”
“…….”
이건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아닌데.
나는 그 말이 괜히 멋쩍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내가 좀.”
“…….”
성민아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아무튼, 그녀는 기타를 들고 일어나더니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그게 살짝 신경 쓰여 조은솔에게 물었다.
“민아요. 연주 잘해요?”
“음, 글쎄?”
조은솔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신경 쓰여?”
“아뇨.”
나는 단칼에 잘랐다.
그럴 리가.
어림도 없지.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조은솔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민아 기타 잘 쳐. 사실, 너 오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신입생 중에서 제일 잘 치는 게 민아였어.”
“그래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쳤다더라. 올해 신입생 중에서만 잘 치는 건 아니고, 어쩌면 선배들 포함해서도 손에 꼽을걸.”
세상에.
나는 그녀의 말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좀 알아먹을 말을 하지.’
내가 이 동아리 사람들 실력을 모르는데, 그런 말을 들어 봐야 알아듣겠나.
나는 조은솔을 바라보다가, 그녀에게서는 더 좋은 대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아 관객석으로 걸어갔다.
“뭐 해?”
조은솔이 내게 묻길래 나는 이렇게 답했다.
“좋은 자리에서 듣게요.”
굳이 남한테 물어볼 거 없다.
내 두 귀로 직접 들어 보면 그만이다.
그렇게 관객석에 가서 올려다본 성민아의 표정은 그저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긴장이 없고 웃음도 없다.
“와.”
“쟤 예쁘다.”
외모가 튀는 탓인지 몇몇 눈 낮은 관객들이 수군거리는데, 그녀는 무표정하게 무대 의자에 앉더니 말했다.
“안녕하세요. 기타 동아리 팅의 성민아입니다.”
인사는 짧았다.
그녀는 기타 연주로 인사를 대신하겠다는 듯 곧바로 무대를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들은 그녀의 연주는.
‘잘하네.’
아르페지오의 회장, 이상혁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타다다닥, 탁. 티링, 틱.
퍼커시브(기타 바디를 두드려 타격음을 내는 주법)가 능숙한 게 독특했다.
굳이 말하자면 테크니션이라고나 할까.
기본기에 치중한 이상혁과는 다른 방면으로 뛰어났다.
‘기타에 자신감을 품을 정도는 되네.’
내 연주로 올라갈 만큼 올라간 관객들의 귀를 감동하게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할 수준도 아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했다.
‘아마추어 상위권에서 프로 하위권에 턱걸이하는 걸친 수준인가.’
은근히 즐거운 마음으로 관찰하는 사이 연주는 끝났다.
“감사합니다.”
곧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이어서 계속해서 무대가 이어졌다.
정의선은 신입생인 데다가 실력이 모자랐는지 무대에 올라가지 않았다.
윤서를 비롯해 몇몇 선배가 올라간 뒤 마지막으로 조은솔 선배가 무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실력은.
‘이 사람이 제일 잘 치네.’
조은솔은 어찌 되었든 팅에서 가장 훌륭한 실력자였다.
물론.
나는 빼고.
* * *
모든 무대가 끝났다.
“감사합니다! 오늘 저희 무대를 즐겁게 보신 분들은 다음 공연도 보러 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팅 많이 사랑해 주세요! 또 봐요!”
“누나, 동아리 홍보요! 홍보!”
“아, 중경대 학우분들은 동아리 회관에서 팅을 찾아 주세요! 신입생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일련의 무대를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자리.
내 신경은 온통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모금함이었다.
“신경 쓰여?”
“네.”
“그럼, 모금함부터 한번 보자. 원래는 다 끝나고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오늘은 한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조은솔은 무대 정리가 덜 끝난 상황인데 모금함을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오?”
그런데 천천히 액수를 확인하는 그녀의 눈빛이 점차 놀라운 감정으로 물들었다.
또 셈도 계속해서 길어졌다.
끝내, 그녀의 웃는 표정은 사라지고 놀란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야…… 뭐 이렇게 많이 모였어?”
그녀의 두 손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