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화 (2/411)

2. 정보

그는 CCTV의 사각지대를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에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물었다.

“넌 목소리는 들리는데 왜 안 보이지?”

전투지원 AI가 대답했다.

- 제가 신체삽입형 인공지능이기 때문입니다.

“너 혹시 내 귓속에 있냐?”

- 아닙니다. 귀에 설치된 독립형 보조 모듈을 이용해 음성을 합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 귀에 스피커가 들어있다?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네.”

- 음성 생성은 해당 보조 모듈의 기본 기능입니다. 그 외에도 소음 차단 및 필터링 등의 청력보호 기능이 있습니다. 그 기능 덕분에 총성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대화가 가능합니다.”

“뭐냐. 이 상품 광고 같은 멘트는.”

- 기본 설정에 포함된 제품 안내 기능입니다.

“일단 우리 상황부터 파악하자.”

그가 물었다.

“네가 기억하는 가장 옛날 일은 뭐야?”

- 활동한 기록이 없습니다.

“내 몸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아?”

- 요원님의 몸에 설치된 기록도, 사용된 기록도 없습니다.

그가 간단히 결론을 내렸다.

“역시 너도 나처럼 기억을 잃은 것 같다. 메모리가 초기화됐다고 해야 하나?”

- 그렇다 하더라도 최초 기동 시기는 2082년 이후여야 합니다.

“그건 네 생각이고.”

그가 공중화장실 거울을 보았다. 젊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라는 건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거울을 보며 전투지원 AI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은?”

-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체는?”

- 사용자의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체삽입형 인공지능입니다.

“전투지원 인공지능. 줄이면 전지인. 네 이름은 이제부터 전지인이다.”

- 제 이름을 전지인으로 설정합니다. 변경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십시오. 즉시 재설정하겠습니다.

“그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구나? 블랙 파이어 드래곤으로 바꿔줄까?”

- 아닙니다. 전지인이 딱 좋습니다.

“지인아. 지금 우리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 제가 생산된 후 지금이 첫 가동이거나, 장치가 초기화되어 데이터가 모두 삭제됐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미 말한 거 말고 다른 시나리오는?

- 처음부터 생산날짜가 잘못 입력됐을 수 있습니다.

“그건 좀 그럴듯하네. 실수? 아니면 일부러?”

- 사람이 손으로 입력하는 정보가 아닙니다. 실수일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일부러 잘못 입력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럼 복구 가능한 활동 기억은?”

- 없습니다.

그가 결론을 내렸다.

“역시 아는 게 없어.”

AI 전지인이 변명했다.

- 메모리가 초기화되었습니다.

“아는 건 없어도 핑계는 잘 대.”

그가 자신의 옷을 보았다.

“이 옷은 뭐지? 이것도 기억이 안 나냐?”

- 지구 연합의 특수 작전용 군복입니다.

“그게 다냐?”

- 지구 연합 소속 전략 특수군 패치를 확인했습니다.

“그건 나도 봤다.”

공중화장실에도 날짜가 적힌 광고지가 붙어 있었다.

“일단 넌 2082년에 만들어졌다고 치자. 그럼 오늘 본 그 많은 2022년 광고들은 뭐지?”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정보가 부족해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가 지시했다.

“TV나 라디오 전파, 아니면 통신 전파를 수신해서 정보를 수집해.”

- 신체삽입형 전투지원 인공지능은 정보의 유무선 직접 입출력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습니다.

“어째서?”

- 제가 전장에서 해킹당하면 아군은 심각한 위험에 빠집니다. 가장 확실한 해킹 방지 수단은 외부 장비와의 직접 연결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럼 넌 정보 입출력이 불가능하냐?”

- 정보 입력 수단으로 사용자님의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감각을 공유합니다. 정보 출력은 사용자님의 손이나 목소리를 이용합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네가 나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려면 뭐가 필요한데?”

- 정보 수집이 가능한 시스템을 직접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런 시스템은 어디에 있지?”

- 찾으셔야 합니다.

그가 결론을 내렸다.

“첫 퀘스트군.”

그는 일단 양쪽 팔에 붙은 패치부터 떼었다. [지구 연합] 패치와 [전략 특수군] 패치가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 옷은 다른 사람들 옷하고 디자인하고 조금 다르더라. 군복이라 그런가?”

- 이 특수 작전용 군복에는 위장용 변경 옵션이 있습니다. 탈착식이며, 형상기억 섬유를 이용한 형태 변경도 가능합니다.

그가 입은 옷은 일부분을 떼어내 뒤집거나 다른 형태로 붙일 수 있다. 그는 인공지능이 설명해주는 대로 옷의 형태를 바꾸었다. 순식간에 군복이 다른 사람의 옷과 비슷해졌다.

“이제 전산망 접속은….”

인공지능이 제안했다.

- 사람들이 초기형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장비를 사용하면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알아. 그런데 난 스마트폰이 없잖아. 빌려서 쓰면 기록이 남을 텐데, 안 좋지?”

- 이곳이 아군 진영인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권장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기록을 남기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이라…. 딱 좋은 곳이 있지.”

***

그가 피시방 앞에서 간판을 보며 말했다.

“피시방에 가면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를 쓸 수 있어.”

AI 전지인이 물었다.

- 상실한 기억을 회복하셨습니까?

“아니. 그냥 상식이 생각나네. 문제는….”

피시방은 공짜가 아니다.

“여길 이용하려면 돈이 필요해.”

그가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아까 떼어낸 패치 외에는 종잇조각 하나조차 나오지 않았다.

“일단 돈을 만 원쯤 벌어야겠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슨 방법이 좋을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앞에는 작은 돈통도 보였다. 노래를 듣던 사람 중 한 명이 거기에 지폐를 넣었다.

그가 말했다.

“나도 저렇게 노래해 볼까?”

- 이곳의 안전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얼굴을 가릴 것을 제안합니다.”

주변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마스크를 쓰면 되겠지.”

- 마스크를 먼저 확보하십시오.

근처에 홍보물을 나눠주면서 1회용 마스크를 같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그곳에 가서 광고지와 마스크를 받았다. 돈통은 근처 가게 뒤쪽 골목에서 드링크제 상자를 주워 해결했다.

***

그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 적당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노래할 장소는 확보했다. 문제는 그가 부르는 노래가 돈이 되느냐이다.

“노래는 뭘 불러야 사람들이 후원금을 줄까?”

- 어떤 노래를 부르실 수 있습니까?

“어…. 이런. 기억나는 노래가 없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AI 전지인이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 제가 지금까지 수집한 정보에서 노래 다섯 곡을 추출했습니다.

“그걸 언제 연습해서 부르냐.”

-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네가 내 입을 빌려서 노래도 할 수 있다고?”

- 발성 기관의 임시 제어권을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해.”

처음 부른 건 조금 전에 그가 지나간 가게에서 틀어놓았던 노래였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저절로 발걸음을 멈춘다.

“와. 노래 잘한다.”

“가수야?”

“누구야?”

“마스크 쓰고 마이크 없이 생목으로 부르는데도 진짜 잘하네.”

“그러게. 원래 가수하고는 목소리가 다른데 새로운 맛이 난다.”

그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는 원곡 가수와는 음색이 완전히 달랐다.

대신에 AI 전지인은 원래 가수가 불렀던 것과 똑같은 발음, 박자, 음정으로 노래했다. 그렇게 부른 노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워 듣기에도 좋았다.

“진짜 잘한다.”

구경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런데 왜 노래를 중간부터 부르지?”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현재 부르는 노래의 데이터는 30초 분량만 확보했습니다. 다른 노래로 전환합니다.

방금 부른 건 그가 길을 걸을 때 주변 가게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수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부른 부분의 앞과 뒤는 알지 못했다.

곧바로 노래가 바뀌었다. 그 노래는 그가 또 다른 가게 앞을 지나갈 때 들었다.

그런데 이번 곡은 여자 가수의 노래였다. 음색은 당연히 그의 목소리와 다르고 음역대도 남자가 부르기엔 높았다.

그런데 그 높은 음역의 노래가 그의 입에서 그대로 흘러나왔다.

곧바로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

이번에도 30초 만에 노래가 바뀌었다.

이어지는 노래는 저음의 부드럽고 깊은 노래였다.

사람들은 뭔가 편안해진 얼굴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

“노래 진짜 잘하긴 하는데, 왜 메들리야?”

“맛보기인가?”

“그런데 도대체 몇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거야?”

그의 앞에는 작은 드링크제 상자가 놓여 있었다. 노래를 듣던 사람 중 한 명이 거기에 3천 원을 넣었다. 돈을 넣는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

돈통에 들어온 돈이 만원을 됐을 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최소 활동 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짧은 공연이 거기서 끝났다. 어차피 오늘 들은 노래도 떨어져 가던 참이다.

그가 입을 직접 움직였다. AI에게 부여된 임시 제어권은 그가 원하면 바로 회수된다.

“피시방 이용료와 밥 한 끼 먹을 돈은 벌었으니까.”

그가 돈통에서 만 원을 꺼낸 후에 사람들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럼 여기까지.”

공연이 너무 짧았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노래 더 해주세요!”

그가 손을 가볍게 흔들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가 그곳을 떠난 후에 구경하던 사람들도 흩어졌다. 그런데 그중 젊은 여자 두 명은 그 자리에 서서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잘 찍혔어?”

박난정이 스마트폰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하며 말했다.

“당연하지. 대박이 찍혔어.”

박난정은 첫 번째 메들리가 끝나기 전부터 영상을 촬영했다. 구경하던 사람이 많아 정면에서 찍지는 못하고 뒤쪽 대각선 방향에서 찍는 바람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찍어도 알아보긴 어려웠다.

대신에 노래는 확실히 녹음됐다.

“그거 어떻게 할 꺼야?”

“당연히 인터넷에 올려야지.”

***

인터넷 대형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영상이 올라왔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냥 부른 쩌는 메들리]

곧바로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와. 메들리 아니었으면 가수가 온 줄.

- 스피커 틀어놓은 거 아닐까? 직접 부르는 시늉만 하고 녹음한 목소리를 스피커로 몰래 튼다든지.

- 영상 어디에 스피커가 있는데요?

- 소형 스피커?

- 그런 거론 저런 소리가 안 납니다.

- 그리고 원곡 가수와 목소리가 완전히 다릅니다.

- 음성 변조 프로그램을 썼을 수도 있잖아요. 그걸 스피커로….

- 저기에는 스피커가 없다니까요. 마이크도 없고요. 완전 생음악이잖아요.

- 그럼 음악계의 재야 고수인가?

- 현직 가수일 겁니다. 노래 실력이 일반인 수준이 아닙니다.

- 현직 가수면 노래는 당연히 잘하겠죠. 그런데 남자가 저 음역대를 소화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 진짜 누구지?

***

그는 만 원을 들고 원래 목표로 했던 피시방에 들어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 시설의 이용법을 분석하겠습니다. 정보가 더 필요합니다.

“넌 이런 건 모르나 보다?”

- 저는 전투지원 AI입니다. 60년 전의 사회와 문화는 전투지원 임무와 관계없는 정보입니다.

“난 아는데.”

그는 피시방 무인계산기에 돈을 집어넣고 좌석 번호와 비밀번호를 받은 후에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이 2022년의 특정 시설 이용법을 아시는 이유를 분석할 수 없습니다.

“그냥 이러면 될 거 같더라.”

- 기억을 회복하셨습니까?

“아니.”

그가 키보드에 손을 얹은 채로 말했다.

“이제 정보 획득 수단을 얻었다. 그런데 너 이거 쓸 줄 아냐?

- 전자정보전 능력은 전투 보조 AI의 핵심 기능 중 하나입니다.

“넌 2022년의 사회와 문화는 모른다며?”

- 구형 장비 사용 기술은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럼 뭐라도 해봐.”

- 손의 임시 제어권을 요청합니다.

손의 임시 제어권은 부상자를 수술할 때도 부여한 적이 있다.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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