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화 (3/411)

3. 임시 거점

AI 전지인이 손의 임시 제어권을 획득했다.

그의 손이 저절로 움직여 피시방 컴퓨터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했다. 화면에 인터넷 창이 떴다.

AI 전지인이 제어하는 손이 움직일 때마다 화면에 여러 가지 정보가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그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보았다. 다들 게임을 하고 있었다.

AI 전지인에 말했다.

- 모니터 쪽을 보셔야 제가 시각 정보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잠깐 본 거야.”

그가 다시 모니터를 보았다.

여러 개의 창이 뜨고 여러 개의 홈페이지가 화면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화면 갱신이 빠르긴 하지만 그도 제목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야. 봐. 지금은 2022년이 맞잖아. 역시 네 연식이 잘못 찍힌 거지?”

- 정보를 수집 중입니다.

AI 전지인은 이제는 일반 웹사이트가 아니라 외국 연구소에도 접속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한참을 그런 후에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분석 결과를 보고드립니다. 외부에서 목격한 것과 인터넷을 통해 수집되는 정보가 사실이라면, 현재는 2022년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2022년 맞아. 너만 모르고 있었어. 이 피시방만 해도 그래. 이런 인테리어의 피시방은 2020년대 스타일이거든.”

- 상실한 기억의 일부를 찾으셨습니까?

“아니. 내 이름도 기억이 안 나는데 다른 게 생각날 리가 있냐? 이건 그냥 아는 거야. 그냥.”

그는 다른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도저히 모르겠는 게 있단 말이야. 2020년대에는 너 같은 AI가 없어. 다국적기업의 대규모 데이터센터라면 혹시 모를까, 너 같은 신체삽입형 AI가 존재하는 건 불가능해.”

- 저는 생각합니다. 고로 저는 존재합니다.

“철학자 나셨네. 그 철학으로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해봐.

- 초대규모 정보조작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본 건 정보조작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야.”

- 상황 분석을 위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여긴 전쟁터가 아니고 시간도 충분한 것 같으니까, 이 피시방 장비를 이용해 계속 조사해보자.”

그가 피시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 피시방이 나한테 왜 이렇게 익숙한지부터 알아야겠는데.”

- 요원님의 잠재의식에 남은 기억일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건?”

- 정보가 부족합니다.

“모르겠으면 그냥 모르겠다고 해.”

근처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다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이 보였다.

그걸 보니 배가 고팠다.

그가 익숙한 손길로 마우스를 움직여 주문 창을 띄웠다. 다양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화면이 나타났다.

“라면이라….”

그가 라면을 주문했다.

몇 분 후에 직원이 라면을 그 자리에 가져다주었다.

그가 젓가락으로 면부터 집어 먹었다. 그렇게 몇 번 먹은 후에 두 손으로 그릇을 들고 라면 국물을 마셨다.

“크으. 맛있다.”

AI 전지인이 동의했다.

- 네. 맛있습니다.

“너도 맛을 느껴?”

- 요원님의 감각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요원님의 시각과 청각, 촉각 등을 통해 정보를 획득해야 상황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맛을 보는 건?”

- 후각은 휘발성 위험물질을 판단할 때 도움이 됩니다. 미각은 신체 기능을 파괴하는 물질을 감지하는 데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상한 음식이나 이상한 약물 감지 같은 거?”

- 정확합니다.

그가 라면을 먹으며 말했다.

“그럼 너도 같이 즐겨라. 먹는 김에 음료수도 추가로 주문하자.”

- 콜라를 추천합니다.

“응? 콜라? 추천 이유는?”

- 제가 가진 초기 데이터에는 각종 사물에 대한 기본 정보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정보 중에 콜라가 있다?”

- 콜라는 맛있는 음료 목록 상단에 있습니다.

그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네가 가진 그 정보에 콜라를 만드는 법도 있냐?”

- 있습니다. 콜라 원액에 탄산수를 섞으면 됩니다.

“아니, 그거 말고. 콜라 원액을 만드는 비법은?”

- 모릅니다.

“어…. 혹시나 했다.”

잠시 후에 콜라 한 캔과 얼음이 담긴 컵을 직원이 가져다주었다.

그는 익숙한 손짓으로 캔을 딴 후에 콜라를 컵에 부었다.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그가 콜라를 입에 댔다.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쭉 마셨다.

콜라 특유의 톡 쏘는 맛과 함께 달고 청량한 느낌이 온몸에 퍼졌다.

“크아. 좋구나.”

AI 전지인이 동의했다.

- 예상한 것보다 더 좋습니다.

그가 콜라를 마시며 말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 소속 부대와 연락해야 합니다.

그가 아까 옷에서 떼어낸 부대 표시 패치를 떠올렸다. 두 개의 패치에 적힌 글을 더하면 한 문장이 나온다.

“지구 연합 전략 특수군? 거기 전화번호나 주소는 찾았냐?”

- 인터넷을 조사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2022년에 그런 게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우리가 작전 지역에 홀로 고립된 상황이라 가정한다면?”

- 먼저 현지에 은밀히 침투하여 자연스럽게 적응한 후에, 사령부와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방법은?”

- 표준 전술 프로세스를 제안합니다. 선택해 주십시오.

그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그 창에는 열두 개의 선택 목록이 적혀 있었다.

AR 렌즈라고도 불리는 시각 보조 증강 현실 모듈은 그의 눈에 장착되어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는 그가 보는 반투명 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목록 중 하나를 골랐다.

“먼저 1번. 의식주부터 해결하자. 입고 먹고 자는 걸 잘해야 체력이 유지되니까.”

- 의식주. 확인했습니다.

“그런 후에 4번. 이쪽 세계에 관한 안정적인 정보 취득 수단을 확보해야지.”

- 정보 취득 수단 확보. 확인했습니다.

“그 수단으로 이쪽 세계의 정보를 얻은 후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리하자. 그러니까 7번.”

- 현지 침투적응계획 수립. 확인했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 1번. 4번. 7번을 선택하셨습니다. 해당 프로세스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활동 자금이 필요합니다. 자금 확보 수단을 찾아 주십시오.

“1번, 4번, 7번에 활동 자금까지 모두 해결되는 장소를 찾았어.”

- 거기가 어디입니까?

“여기.”

-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개를 돌려 피시방 카운터를 보았다.

“저기 봐. 알바 모집한다잖아.”

- 추가 정보를 요청합니다.

“2020년대에는 밥을 파는 집은 보통 직원에게 밥을 줘. 여기도 음식을 팔잖아? 먹는 문제는 해결됐지.”

- 의식주 중에 음식은 해결됐습니다. 주거 공간도 필요합니다.

“안쪽 직원용 공간에 간이침대 정도는 있겠지. 내가 거기서 잔다고 하면 좋아할 거야. 가게에 비상 상황이 생길 때 직원이 많으면 대처가 더 쉬우니까.”

- 옷은 어떻게 합니까?

“알바비를 받으면 활동 자금 문제도 해결돼. 그 돈으로 옷을 사야지. 그리고 정보 취득은.”

그가 모니터를 보았다.

“여기 있는 PC를 쓰면 되고.”

AI 전지인이 동의했다.

- 이 시설은 임시 거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여기보다 나은 곳이 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시방 카운터로 걸어갔다.

알바 직원 차은서는 그가 따로 뭔가 주문하려는 줄 알고 쳐다보았다.

그가 카운터에 붙어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알바 구하시죠?”

“아, 네. 그렇긴 한데….”

피시방 사장 차동석이 주방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얼른 다가왔다.

“우리 직원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둬서요. 왜? 하시게?”

“물론입니다.”

사장 차동석은 먼저 그의 외모부터 다시 확인했다.

‘스타일 좋네. 옷도 잘 입고, 얼굴도….’

얼굴이 잘생긴 직원을 쓰면 피시방 손님이 조금 더 늘어난다. 예쁜 직원이 있으면 손님이 많이 늘어난다.

차동석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활짝 웃었다.

“이력서는?”

“없습니다.”

“어…. 이력서야 쓰면 되지. 그럼 민증만 확인하고….”

“민증은 안 가져왔습니다.”

차동석은 멈칫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여기는 원래 사장은 가끔 들르고 평소에는 아르바이트 직원들만으로 돌아가는 피시방이다. 차동석은 평소에는 다른 곳에서 다른 일을 한다.

오늘은 직원 한 명이 갑자기 그만둬서 사장이 땜빵을 나왔다. 그래서 그는 지금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차동석이 말했다.

“요즘 신분증 안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야 많으니까 뭐.”

그래도 주민등록증은 확인해야 한다. 알바비를 정식으로 지급하려면 개인정보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동석이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혹시 요리는 좀 하나? 우리가 음식도 파니까 프라이팬 정도는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병사의 컨디션 관리를 위한 야전 전술 요리 스킬이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좀 합니다.”

“여기가 피시방인데, 컴퓨터는 좀 다루고?”

그의 몸에는 2082년식 전투지원 AI가 들어있다.

“좀 다룹니다.”

그들이 대화하는 사이에 음식 주문이 들어왔다. 볶음밥이었다.

이 피시방은 업소용 냉동 볶음밥을 조리해서 판다. 전자레인지로 조리하는 게 더 간단하지만 여기서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냉동 볶음밥을 볶는다.

차동석이 물었다.

“이런 거로 요리 실력 테스트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프라이팬 쓸 줄 아는지만 보려고. 볶음밥 할 수 있지요?”

“물론입니다.”

그가 카운터 안쪽에 있는 주방으로 걸어갔다.

주방에는 업소용 가스레인지와 인덕션 방식 전기레인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볶음밥 만들어봐. 맛있게.”

- 야전 전술 요리를 시작합니다. 손의 임시 제어권을 요청합니다.

“허락한다.”

전지인은 먼저 프라이팬을 전기레인지 위에 얹고 화력을 최대로 높였다.

- 냉장고 앞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그가 냉장고 앞으로 걸어갔다. 손이 저절로 움직여 문을 열었다. 일반 식재료가 꽤 있었다. 그 식재료를 적당히 꺼내 조리대 앞으로 이동했다.

차동석은 당황했다. 당연히 냉동 볶음밥을 볶을 줄 알았는데 그가 멀쩡한 식재료를 가져왔다.

“어? 그게 아니….”

이미 조리는 시작됐다. 칼을 쓰는 손이 너무 빨라 칼날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다다다닥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순식간에 잘 다듬어진 볶음밥 재료가 나왔다.

차동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구경했다.

그가 식용유 병을 잡고 옆으로 툭 흔들었다. 병에서 빠져나온 기름이 프라이팬 위에 정확히 떨어져 퍼졌다.

그런 후에 밥솥에서 밥을 1인분만 펐다.

프라이팬이 빠르게 가열되면서 기름 온도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도마 위의 재료와 양념, 밥을 모두 섞은 후에 프라이팬에 한꺼번에 부었다. 그런 후에 주걱만 이용해 재료를 섞었다.

왼손으로는 하얀 조미료를 적절한 위치에 조금씩 뿌렸다. 그러다 한 번씩 프라이팬을 들고 흔들어 재료를 통째로 섞어주었다.

그 모든 동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손이 굉장히 빨랐다.

최대 화력의 전기레인지는 프라이팬을 순식간에 고온으로 가열했다. 그런 온도로 계속 조리하면 식재료가 쉽게 탄다.

그런데 그가 조리하는 볶음밥은 밥알이 타지 않았다. 재료를 섞는 솜씨가 너무 완벽해서 밥알이 딱 타지 않을 만큼만 익었다.

알바생 차은서가 주방에 따라 들어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우와. 요리사세요?”

지금 그의 두 팔은 AI 전지인이 제어하는 중이다. 정작 그는 요리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

그가 편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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