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요리사
그가 짧게 지시했다.
“접시.”
피시방 알바 차은서가 얼른 볶음밥용 접시를 옆에 놓았다.
“여기요!”
그가 프라이팬을 들고 볶음밥을 접시에 담았다. 주걱으로 밥의 모양을 만든 후에 식재료를 다듬을 때 미리 빼놨던 채소 조각 몇 개를 접시 위에 얹어 장식했다.
“끝났습니다.”
차동석은 놀란 얼굴로 더듬거렸다.
“어? 어? 벌써….”
냉동 볶음밥을 쓰는 것보다 직접 조리한 볶음밥이 더 빨리 만들어졌다.
차은서가 손뼉을 쳤다.
“와! 플레이팅까지 완벽해!”
차동석이 얼떨떨한 얼굴로 차은서에게 말했다.
“손님에게 가져다 드려.”
“넹!”
***
게임을 하던 손님은 차은서가 볶음밥을 가져왔는데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지막 한타를 하는 중이라 시선을 돌릴 틈이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지만 그 한타는 졌다. 이제 승부는 뒤집을 수 없다.
그는 마우스에서 손을 놓으며 게임 속 팀원 탓을 했다.
“정글 차이 오지네.”
그가 투덜대며 볶음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밥이나 먹어야겠…. 어?”
그는 당황했다. 볶음밥을 주문하긴 했다. 그런데 평소에 보던 냉동 볶음밥이 아니라 굉장히 있어 보이는 볶음밥이 나왔다. 볶음밥 위에 장식된 채소 조각들의 모양도 심상치 않았다.
“어…. 전 그냥 볶음밥을 시켰는데요?”
차은서는 손님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네. 시키신 거 맞아요.”
“와….”
보기 좋은 떡이 더 맛있는 법이다. 손님은 기대하며 볶음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밥을 씹자마자 감칠맛이 났다.
‘어? 이건 고향의 맛?’
다른 익숙한 맛도 느껴졌다. 마치 식당에서 닭갈비 같은 음식을 다 먹고 밥을 볶았을 때의 눌은 볶음밥을 먹는 것 같은 맛이 볶음밥에서 느껴졌다.
그가 접시에 담긴 볶음밥을 눈으로 확인했다. 밥알 일부에서 옅은 갈색이 보이긴 하지만 하나도 타지 않았다.
어느새 입안에 넣었던 밥이 사라졌다. 그는 다시 한 숟가락을 더 떠먹었다.
맛있었다. 기름진 정도도 적당하고 미각을 자극하는 다양한 맛의 조화도 좋았다.
그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진짜 대박! 이 피시방 볶음밥 맛집이네!”
그 목소리가 꽤 컸다.
게다가 냄새까지 좋았다.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도 볶음밥 먹어야겠다.”
볶음밥 주문이 연달아 들어갔다. 순식간에 주문이 여덟 개나 되었다.
사장 차동석이 당황한 얼굴로 그에게 부탁했다.
“어…. 미안한데 지금 들어온 주문만 어떻게 좀….”
그가 AI 전지인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8인분도 만들 수 있냐?”
- 야전 전술 요리는 원래 대용량 레시피입니다.
“원래 대용량인 이유는?”
- 야전 전술 요리법의 핵심은 3가지입니다. 전장에서는 식사를 1인분씩 따로 만들 수 없으니 부대원이 다 먹을 수 있도록 한 번에 대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장에서는 오랜 시간 요리할 수 없으니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 맛있어야 합니다. 전쟁터에는 병사가 즐길 거리가 별로 없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병사의 사기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목숨 걸고 싸워 방어선을 지킨 후에, 찐 밥에 똥국 따위나 먹으면 자괴감이 듭니다.
“야전 전술 요리 스킬 그거 괜찮네.”
- 요리 스킬을 추가로 구매하시면 다양한 최신 요리도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2022년인데 네가 말한 그 요리 스킬은 60년 뒤에나 파는 거 아냐?”
- 그렇습니다.
“됐으니까 볶음밥이나 만들자. 손의 제어권을 다시 넘겨줄 테니 시작해.”
- 8인분을 만듭니까?
- 넉넉하게 10인분 만들어.
AI 전지인이 냉장고에 남은 재료를 사용해 다시 볶음밥을 만들었다.
전쟁터는 보급 상태가 나쁠 때가 많다. 그런 곳에서는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AI 전지인은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볶음밥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바닥이 깊은 프라이팬 두 개를 동시에 사용했다. 프라이팬 하나는 전기레인지에, 다른 하나는 가스레인지에 얹었다.
이번에는 재료를 먼저 넣고 볶다가 나중에 밥을 추가했다. 화력은 이번에도 최대로 높였다.
그가 주걱을 잡고 재료를 번갈아 섞었다. 이번에는 주걱이 움직이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마치 주걱을 꽂고 대충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만 해도 재료가 믹서기에 넣고 돌리듯이 휙휙 섞였다.
그렇게 젖다가 한 번씩 프라이팬을 들고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볶음밥이 위로 떠올랐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밥알은 단 한 톨도 프라이팬을 벗어나지 않았다.
차은서가 감탄했다.
“와. 마치 기계로 볶는 것 같아.”
화력을 최대로 한 덕분에 조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방 좋은 냄새가 났다.
“접시.”
차은서가 얼른 접시 여덟 개를 늘어놓았다.
그는 그 위에 볶음밥을 1인분씩 얹고 남겨둔 채소로 간단히 장식했다.
차은서는 신이 나서 그걸 주문한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돌아왔다.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손님들이 진짜 맛있대요! 다들 엄청 감탄해요!”
사장 차동석이 부탁했다.
“나, 나도 조금만….”
“처음부터 넉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접시 두 개에 남은 볶음밥을 나눠주었다.
차은서가 먼저 한 숟가락 먹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엄지를 바로 세웠다.
“대바악! 맛있어요! 우리가 팔던 냉동 볶음밥보다 훨씬 더 맛있어. 진짜 요리사세요?”
“그냥 좀 합니다.”
“이런 요리는 어디서 배웠어요?”
“전쟁터에서?”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쟁터에서는 전투식량이란 거 먹는 거 아니에요?”
“그것만 매일 먹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여유 있을 때는 밥도 해먹고 그래야지.”
그녀는 그의 말을 다르게 이해했다.
“아아. 진짜 전쟁이 아니라 삶이 전쟁이고 현실이 전쟁터라는 뜻이구나. 진짜 열심히 사셨나 보다.”
차동석은 숟가락을 들고 볶음밥을 노려보며 긴장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인데 반응들이 이렇게 좋지?’
차동석이 조심스럽게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아…. 이 맛은….”
맛있었다. 이전에 팔던 냉동 볶음밥은 물론이고 근처 식당 볶음밥보다도 훨씬 더 맛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수준의 볶음밥을 먹어본 적이 있다.
“내가 가끔 들르는 지방 소도시가 있는데, 거기 갈 때마다 찾아가는 중식당 맛집이 있어. 거기 볶음밥이 진짜 맛있어.”
차은서가 물었다.
“삼촌이 전에 말한 거기요? 볶음밥이 1인분은 주문이 안 되고 2인분부터 된다는 그곳이요?”
“어. 거기. 그런데 이 볶음밥은 그 집만큼 맛있다.”
“와아. 그럼 우리 요리사님이 그 맛집 주방장하고 실력이 동급인 거네요?”
차동석이 주방 냉장고를 힐끗 보았다.
“아니. 우리 냉장고에 있던 재료는 그곳에서 쓰는 것보다 가격이 싸. 그런데도 그 중식당처럼 맛있다고.”
차은서가 맞장구를 쳤다.
“우리 요리사 오빠는 한 번에 10인분이나 만들었잖아요. 재료도 부족하고 많이 만들기까지 했는데 그곳처럼 맛있으면 진짜 요리 실력 대박 아녜요?”
“대박이지. 아니,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이 재료로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AI 전지인이 그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말했다.
- 전장은 식재료가 풍족할 때보다 부족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맛을 끌어내는 것이 자연로보틱스의 야전 전술 요리입니다.
차은서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여기서 더 맛있어질 수도 있어요?”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조리 도구와 재료가 확보되면 더 맛있게 요리할 수 있습니다.
그가 대답했다.
“물론.”
사장 차동석이 선언했다.
“당장 채용! 지금 당장 일합시다!”
“신분증을 안 가져왔습니다만?”
“그거야 내일 가져오면 되지! 아. 이름이 뭡니까?”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대답했다.
“강인입니다.”
“강인이요?”
“나강인.”
“아아. 나강인 씨. 우리 가게에서 꼭 좀 일해줘요. 꼭.”
***
일단 머물 곳은 확보했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차동석과 차은서가 먼저 주방 밖으로 나갔다.
AI 전지인이 물었다.
- 이름이 기억나셨습니까?
나강인이 대답했다.
“아니. 물어보길래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답한 거야.”
- 이미 이름을 나강인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진짜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 나강인을 이름으로 쓰자.”
- 알겠습니다.
사장 차동석이 급히 들어왔다.
“나강인 씨. 볶음밥 주문 더 들어왔는데 할 수 있어?”
“밥솥에 밥이 없습니다만?”
“어…. 그렇지? 밥이 없지?”
“조리 도구도 더 필요합니다.”
방금은 적당한 크기의 궁중팬 두 개를 동시에 사용했다. 대용량 조리를 간편하게 하려면 더 큰 조리 도구가 필요했다.
“뭐가 필요해? 다 주문해.”
“직접 매장에 가서 보고 사겠습니다.”
“이야아. 역시 전문가는 눈으로 보고 고르는구나? 사. 필요한 거 다 사. 오늘 특별 요리는 맛보기 서비스한 거라 이제 끝났다고 하지 뭐.”
사장 차동석이 조카를 불렀다.
“은서야! 카드 줄 테니까 강인 씨랑 같이 주방 도구 파는 가게에 가라. 저 앞에 커다란 도소매점 알지? 거기로 가.”
차은서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지금이요? 아싸!”
“아니. 교대하고. 너 교대시간 10분 남았잖아.”
***
10분 뒤에 두 사람은 피시방을 나왔다.
프라이팬이나 냄비 등의 주방 도구를 전문으로 파는 매장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나강인이 그 가게에 들어가 내부를 둘러보았다. AR 렌즈가 중식당에서 쓰는 대형 프라이팬과 대형 곰솥의 테두리에 반투명한 파란빛 이미지를 덧씌웠다.
- 표시한 장비들을 획득하십시오.
나강인이 그 조리 도구들을 챙겼다. 칼도 챙기고 다른 도구도 몇 개 더 챙겼다.
차은서가 프라이팬을 들어본 후에 걱정했다.
“이거 너무 무거운 거 아녜요? 여기에 아까처럼 밥 가득 넣고 흔들면 너무 무거울 텐데.”
나강인이 대형 궁중팬을 가볍게 들어 빙글 돌린 후에 도로 내려놓았다.
“가볍네요.”
“와아. 힘이 장난 아니시다.”
그녀가 나강인의 팔을 슬쩍 만져보았다.
“팔이 무슨 강철 같아요.”
대형 궁중팬은 두 개를 샀다. 다른 것도 여러 개 샀더니 가게에서 피시방으로 배달해주기로 했다.
둘은 그곳을 나와 피시방으로 향했다.
차은서가 제안했다.
“마트 들러서 장도 봐야죠. 우린 주로 냉동을 돌렸는데, 앞으로 직접 요리하실 거면 재료 더 사야 해요.”
“갑시다.”
마트에서는 다양한 식재료를 팔았다. 그가 채소코너에 도착하자 AR 렌즈가 특정 채소들의 주변에 선택 표시를 띄웠다.
- 해당 상품을 획득하십시오.
“선정 이유는?”
- 신선도입니다.
곧바로 채소 바로 옆에 반투명한 글씨가 떴다. 100%를 채운 것들도 있고, 90% 정도인 것도 있었다. 그것보다 낮은 수치의 채소는 아무것도 표시되지 않았다.
- 추천 제품의 신선도를 표시했습니다.
그는 마트의 카트에 여러 가지 식재료를 담았다. 양념도 골랐다.
“2022년의 양념은 2082년에 쓰는 것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 상관없습니다. 야전 전술 요리 스킬은 먹을 수 있는 건 다 사용합니다.
그들은 식재료를 넉넉히 샀다. 직접 들고 가기엔 양이 많았다. 그것도 마트에서 피시방으로 배달해주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차은서가 신용카드를 흔들며 말했다.
“이 카드가 일단 내 손에 들어왔으니까, 흐흐흐. 우리 커피 마시고 갈까요?”
“그 카드를 그냥 막 써도 됩니까?”
“사장님이 우리 삼촌이에요. 그러니까 그래도 돼요. 이 알바도 삼촌이 도와달라고 해서 하는 건데요.”
“커피는 피시방에도 있던데.”
“여기가 더 맛있어요. 디저트도 맛있고. 아. 혹시 디저트도 만들 줄 알아요?”
AI 전지인이 그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 맛있는 음식은 병사의 사기를 높입니다. 전쟁터에서 디저트를 제공하면 병사들은 아군의 보급 상황이 안정적이라 판단하여 사기가 오릅니다. 전황이 불리할 때는 최후의 만찬으로도 사용….
나강인이 AI 전지인의 말을 끊으며 차은서에게 대답했다.
“만들 줄 압니다.”
“우와. 어떤 거요?”
“음…. 나중에 만들어줄 테니 기대하면서 기다려요.”
“넹!”
조금 더 걷다가 AI 전지인이 말했다.
- 추가 의복이 필요합니다.
나강인도 안다. 갈아입을 옷이 있어야 한다.
바로 앞에 떨이 판매 중인 옷가게가 보였다. 그중에는 저렴하게 파는 운동복도 있었다. 떨이로 파는 것이라 상하 한 세트를 만 원이면 살 수 있었다.
그가 아까 길에서 노래를 불러 번 돈이 딱 만 원이다. 처음 피시방 사용료로 냈던 돈은 돌려받았다.
나강인이 떨이로 파는 운동복을 들었다. 가격은 만 원이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해당 의복을 구매하면 보유한 예산을 모두 소모하게 됩니다.
“알아. 근데 여기서 이게 제일 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