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요리사 II
사장 차동석은 신났다.
“저녁땐 재료 두 배로 사놓자!”
나강인이 말했다.
“오늘은 점심만 하는 거로.”
“어? 어? 아니, 왜?”
“할 일이 있어서요.”
차동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멈췄다.
“오늘 저녁 알바비는 따블?”
그는 오늘 두 시간 동안 초빙 요리사처럼 일했다. 그 두 시간은 시급을 2만 원으로 쳐줬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시급 4만 원의 딜이 들어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활동 자금이 부족합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콜. 그럼 다섯 시 반부터 일곱 시 반까지 두 시간만.”
사장 차동석이 얼른 조카에게 말했다.
“은서야. 빨리 안내문 붙여라. 오늘 저녁 특선 요리 판매 시간은 다섯 시 반부터 일곱 시 반까지다. 재료가 떨어지면 판매도 끝나고, 메뉴는….”
차동석이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말했다.
“오늘 하루는 전가복 스타일 잡탕밥으로 쭉 가겠습니다.”
“그치! 점심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전해 듣고 저녁때 온 사람들도 같은 거 먹어야지!”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춘 근무는 두 시간 만에 끝났다. 나강인은 오늘 네 시간을 일하고 12만 원을 받았다.
차동석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
“그럼 내일 점심도 하는 거지?”
“그건 내일 상황 봐서 결정하겠습니다.”
“어…. 그럼 예약은 못 받겠네.”
“예약이요?”
“PC 자리 예약.”
나강인은 근무가 끝난 후에 피시방 제일 구석 빈자리에 앉았다. 밥을 다 먹은 사람 중 일부가 피시방을 나가서 자리는 여유가 있었다.
“12만 원이면 초기 활동 자금은 어느 정도 확보했는데 말이야.”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물었다.
- 겨우 12만 원으로 말입니까?
“겨우라니? 내가 힘들게 번 돈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냐?”
- 오늘 요리는 제가 했습니다.
“내 손으로 했잖아.”
여기서 더 말하면 나강인이 불리해진다. 그는 얼른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우리 활동의 다음 단계는 뭐냐?”
- 아직 다음 단계로 넘어갈 만큼 정보를 수집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자료를 더 모아야지. 어젯밤에 이용한 정부 전산망은 아직 쓸 수 있냐?”
- 어젯밤에 외부에서 국가 전산망에 연결된 유지보수용 장비는 이미 접속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럼 새로운 정보를 찾아야지.”
문제가 생겼다. 모니터 속 화면이 제대로 갱신되지 않았다.
- 인터넷 접속이 끊겼습니다.
“어? 왜?”
갑자기 여기저기서 원성이 들렸다.
“어? 이거 왜 이래?”
“다 이겼는데!”
“내 펜타킬!”
나강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피시방의 모든 PC에 문제가 생겼다.
카운터에서 야간 알바 두 명이 당황한 얼굴로 상황을 수습하려고 애썼다. 오늘은 원래 근무하던 여자 알바에게 사정이 생겨서 낮 근무인 사장 조카 차은서가 밤에도 있었다.
“어? 이게 왜 이래?”
차은서가 남자 알바에게 말했다.
“너 컴퓨터 좀 다룬다며? 얼른 고쳐.”
“할 수 있으면 벌써 했지. 이건 아무래도 사람 불러야 할 거 같아.”
“지금은 밤인데 어디서?”
차은서가 당황한 상태로 고개를 둘러보다가 일어서 있는 나강인과 눈이 마주쳤다.
“아!”
차은서가 얼른 나강인에게 달려가 칸막이 너머에서 물었다.
“오빠. 컴퓨터 잘하죠?”
“내가?”
“지나가면서 보니까 무슨 프로그램 같은 거 만드는 거 같던데요.”
그가 구석 자리에 앉아있기는 하지만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화면이 조금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그걸 슬쩍 보고 해킹이라는 걸 알아채려면 상대도 해커여야 한다.
나강인이 작은 목소리로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어젯밤에 정부 전산망을 이용했잖아. 그러다 역추적 당한 건 아닐까?
- 2020년대의 보안 기술로는 우리를 역추적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확인해야겠지?”
- 물론입니다. 설사 정부 소속 해커의 역 해킹이 아니라 해도, 우리 임시 거점의 컴퓨터는 안정적으로 관리되어야 합니다.
“그럼 처리해.”
- 서버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차은서에게 물었다.
“서버 어디 있냐?”
피시방 안쪽에는 전체 PC를 관리하는 서버가 있다. 그는 그 서버와 직접 연결된 단말기 앞에 앉았다.
“지인아. 손 권한 넘겨줄 테니 실력 좀 보여봐.”
- 2082년의 고급 해킹 방어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의 손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움직였다.
화면에 다양한 정보가 순식간에 올라왔다. 어젯밤에 정부 전산망에 침투할 때 썼던 소프트웨어 몇 개는 모두 설치가 필요 없는 단독실행형이다. 그는 피시방에 굴러다니는 USB를 얻어 그 소프트웨어들을 복사한 후에 서버에 사용했다.
5분이 지나기 전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어젯밤 우리 활동을 역추적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행이네. 혹시나 했다.”
- 해킹 시도는 발견했습니다.
“응? 해킹? 여길? 왜? 여기 그냥 피시방 아냐?”
- 개인정보를 해킹하는 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기능이 서버의 보안 프로그램과 충돌하는 바람에 이 거점의 인터넷이 끊겼습니다.
“그런 건 원래 보안 프로그램을 피해서 작동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 누군가가 개발 도중에 이 피시방 서버를 테스트용으로 사용했을 수 있습니다.
“그 해커가 누군지 알아내.”
- 추적을 시작하겠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잠시 후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해커의 위치를 파악했습니다.
“간단한 일이구나?”
- 해커가 역추적을 피하려고 징검다리로 이용한 서버가 7개입니다. 그중 6개는 외국에 있습니다. 그걸 제가 5분 만에 모두 역추적했습니다. 자연로보틱스의 해킹 방어 및 역추적 기술이 이렇게 우수합니다.
“다 좋은데 뒤에 절반은 광고한 거지?”
- 기본 설정에 제품 홍보가 들어있습니다.
“그 설정은 못 끄냐?”
- 홍보 설정을 끄려면 자연로보틱스 본사에서 제 전용 접속장비를 새로 제작해 연결해야 합니다.
“2082년에도 만들지 않은 전용 접속장비를 2022년에 만들 수 있겠냐?”
- 고유 접속코드도 알아야 합니다.
“너 나 놀린 거구나?”
- 아닙니다.
“놀린 거 맞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나강인이 모니터를 보았다.
“그 해커 놈은 지금 어디 있지?”
- 이곳에서 가깝습니다.
“그럼 근처 피시방을 골라서 테스트한 거네. 왜 거리가 가까워야 했을까? 해커가 그 프로그램은 직접 와서 설치해야 하나?”
- 그렇습니다.
“그럼 그놈 만나러 가자. 좀 타일러야겠다.”
손님들이 항의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나강인이 지시했다.
“그 전에 우리 거점 안정화부터 하자. 여기 인터넷 도로 살려놔.”
- 설치된 해킹 프로그램을 제거하겠습니다.
그 작업은 금방 끝났다.
잠시 후에 임시 거점 피시방의 인터넷이 살아났다.
차은서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와. 대박. 오빠 요리만 잘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도 전문가였어요?”
나강인이 자랑했다.
“내가 평소에 안 해서 그렇지, 이 정도야 뭐 나한테 걸리면 간단하지.”
- 제가 했습니다.
인터넷은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손님들의 불평은 가라앉지 않았다.
“게임 하다가 끊겼는데 이거 어떻게 하냐고요!”
“10분 동안 스마트폰만 보고 있었네.”
차은서는 당황했다.
“저기, 그러니까…. 아! 10분 연장해드릴게요!”
그런다고 항의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고!”
“아! 드라마 10분이나 놓쳤어!”
“내 펜타킬!”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우리 거점에서 현지인이 소요 사태를 일으키려 한다. 조용히 해결할 방법은?”
- 식량을 제공하십시오. 낙후된 지역일수록 효과가 좋습니다.
2082년 기준으로 보면 2022년은 기술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긴 하다.
나강인이 사람들에게 제안했다.
“간단한 간식을 서비스로 제공하겠습니다.”
간식이라는 말에 펜타킬을 외치던 손님이 물었다.
“간식이 뭔데요?”
“직접 만든 수제 간식입니다.”
지금 피시방 손님 대부분은 오늘 저녁때 나강인의 요리 맛을 본 사람들이다.
“와! 그럼 저야 좋죠!”
나강인이 먹을 걸 만들어준다고 하자 항의하던 사람들은 즉시 입을 닫았다. 싱글벙글 웃는 사람도 있었다.
피시방에 조금 전에 들어온 손님이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
“간식이 뭔데 그 사납던 분위기가 이렇게 확 바뀌어요?”
“뭔진 모르죠.”
“예?”
“그치만 진짜 셰프가 만들어주는 건데 맛있겠죠.”
***
나강인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간단히 만들 수 있는 간식을 제안해.”
AR 렌즈 덕분에 눈앞에 간식 리스트가 주르륵 나타났다. 사진과 간단한 설명도 첨부되어 있었다.
- 전장에서 인기 있는 간식 리스트입니다. 현재 거점에서 식재료를 보유한 것만 제시했습니다. 선택해 주십시오.
그가 그중 하나를 골랐다.
“3번으로 가자.”
- 재료비가 제일 적게 드는 간식을 고르셨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그거 혹시 예산을 절약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말이냐?”
-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탁월한 선택이라며. 네가 그런 칭찬 하는 거 처음 들었다.”
3번 간식은 병사에게 탄수화물을 공급하기 위해 밀가루를 베이스로 만드는 음식이다.
그가 밀가루를 반죽하며 차은서에게 말했다.
“프라이팬 네 개를 꺼내서 가스레인지와 전기레인지에 얹어놔. 화력은 최대로 놓고.”
“넵!”
AI 전지인이 그의 손을 움직여 밀가루에 설탕과 고춧가루, 조미료와 향신료 등을 추가했다. 냉장고에 있던 과일주스도 넣고 MSG도 적당히 사용했다.
차은서가 물었다.
“생과일도 아니고 슈퍼에서 파는 과일주스를 넣어서 익히면 이상한 신맛 나는 거 아녜요?”
- 자연로보틱스의 야전 전술 요리 스킬은 보존형 식재료의 부정적인 맛을 안정적으로 제거합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잘 만들면 돼.”
“앗. 저 프라이팬에서 연기 나요!”
- 재료를 투입하겠습니다.
야전 전술 요리법에는 최대 화력으로 대량의 요리를 빠르게 만드는 레시피가 많다. 이번 요리도 마찬가지였다.
간식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프라이팬을 들어 도마 위에 뒤집었다. 마치 두툼한 부침개나 팬케이크처럼 생긴 음식이 도마 위에 툭 떨어졌다.
그가 식칼의 칼끝으로 그 간식을 쓱쓱 그었다. 간식이 바둑판 모양으로 잘게 갈라졌다.
그가 도마를 들었다. 바로 옆에는 커다란 통이 놓여 있었다. 그가 그곳에 잘린 과자를 쏟아부었다.
그는 다음 프라이팬의 내용물을 도마로 옮기며 말했다.
“손님들에게 나눠줘. 난 계속 자를 테니까.”
“넹!”
차은서가 건빵 모양으로 잘린 과자를 접시에 나눠 담아 가져갔다.
손님들은 그 간식을 받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게 뭐야? 건빵이야?”
“크기만 건빵이고 모양은 살짝 다른데? 가운데 구멍 두 개가 없잖아.”
“색도 건빵이랑 달라.”
“먹어도 되는 거겠지?”
손님이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 씹었다.
“어?”
맛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그걸 보고 따라서 하나 집어먹었다. 그러고 나서 감탄했다.
“와. 이거 맛있네.”
“진짜. 매콤하면서도 살짝 새콤하고 거기다 단짠까지. 와. 무슨 이런 맛이 있지? 이거 이름이 뭐예요?”
손님들의 반응이 좋았다. 차은서가 활짝 웃었다.
“우리 셰프 오빠한테 물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