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7화 (7/411)

7. 추적

차은서는 나강인이 만든 간식을 피시방 손님들에게 돌렸다. 그런 후에 주방으로 돌아와 물었다.

“오빠. 손님들이 이 과자 이름을 알려 달래요.”

나강인도 모른다.

“어….”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정식 명칭은 따로 있습니다만, 이런 형식의 과자를 통틀어 잡탕 과자라고 부릅니다.

“잡탕 과자.”

차은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이것도 잡탕이에요?”

- 전장에서는 안정적인 식재료 공급이 어렵습니다. 야전 전술 요리는 먹을 수 있는 식재료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사용합니다.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대충 넣어서 만드는 과자야. 그래서 잡탕 과자.”

차은서가 손뼉을 쳤다.

“와. 대충 만들었는데도 손님들 반응이 정말 좋아요. 저도 맛이 진짜 궁금한데, 손님들이 자꾸 더 달라고 해서 맛도 못 봤어요.”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나강인이 밀가루를 다시 반죽했다.

“손님만 입인가? 우리도 맛은 봐야지.”

“와! 신난다!”

그녀는 신이 나서 나강인이 요리하는 걸 구경했다.

“어? 조금 전하고 반죽 색이 좀 다른 거 같아요.”

“좀 전에 나간 건 기본형 서비스. 우리가 먹을 이건 스페셜. 더 맛있지.”

“와아. 스페셜 잡탕 과자!”

그녀의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그걸 들은 손님이 얼른 주문했다.

“여기 스페셜 추가!”

나강인이 말했다.

“안 판다고 해. 오늘 서비스 요리는 끝났어.”

***

나강인은 작은 프라이팬으로 스페셜 잡탕 과자를 만들어 차은서에게 몽땅 넘겼다.

그녀가 그 과자를 먹어보고 활짝 웃었다.

“진짜 맛있어요!”

나강인도 과자를 몇 개 집어먹은 후에 피시방을 나왔다.

“내가 만들었지만 맛있네.”

- 제가 만들었습니다.

“임무 이야기나 하자.”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우리 거점을 공격한 적을 제거해야 합니다. 적이 뭘 아는지도 알아내야 합니다.

“알아. 그래서 해커 잡으러 가잖아. 안내해.”

- 길 안내 모드를 활성화합니다.

AR 렌즈를 통해 가상의 선이 나타났다. 그 선은 골목 사이로 이어져 있었다.

***

해커가 있는 곳은 낡은 상가 건물의 2층 사무실이었다.

“우리처럼 거점을 낡은 건물로 위장한 건가?”

-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적의 감시 체계는?”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 거점 주변에 CCTV가 없습니다. 외부에 노출된 경비 병력도 없습니다. 전술 탐지 장비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일부러 CCTV가 없는 곳에서 작업하겠지. 신분을 숨기고 싶을 테니까.”

나강인이 목을 슬쩍 꺾었다.

“들어가자.”

- 마스크를 착용해 주십시오.

나강인이 하얀색 마스크를 썼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길 위에 파란색 선이 새로 나타났다. AR 렌즈를 통해 보이는 가상의 선이 이번에는 건물 뒤쪽으로 이어졌다.

- 은밀한 침투 경로를 제안합니다.

“나도 저쪽으로 가려고 했다.”

낡은 상가 건물은 뒤쪽에도 계단이 있었다. 그는 그 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갔다.

좁은 복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사무실 문이 여럿 보였다.

“어디냐.”

복도의 문 중 하나에 반투명한 빨간색 테두리가 생겼다.

- 적 거점의 입구입니다.

그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 음성을 증폭합니다.

그의 귀에는 독립형 보조 모듈이 설치되어 있다. AI 전지인은 그 장치를 이용해 나강인과 대화한다. 그 모듈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청력보호 기능이 있다.

그런데 그 모듈에는 음성을 듣는 기능은 없다.

AI 전지인은 그 모듈이 아니라 나강인이 직접 들은 소리에서 음성만 골라냈다. 그런 후에 거기서 다시 잡음을 제거하고 음질을 높인 후에 음량을 키웠다. 그렇게 증폭한 음성을 다시 나강인에게 들려주었다.

그 작업은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졌다. 곧바로 문 너머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처음 들린 소리는 욕이었다.

“이 새끼야! 이거 제대로 안 되면 너 죽는다고 했잖아! 왜 이게 벌써 먹통이 돼? 죽고 싶냐?”

젊은 목소리가 다급히 설명했다.

“아직 테스트 버전이라서 안정적이지 않은 거예요. 버그만 좀 잡으면…. 으악!”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내부의 인물이 다른 사람을 발로 걷어찼습니다.

***

안성환은 대학교 1학년 학생이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컴퓨터 바이러스나 해킹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는 보안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도 자주 올렸다. 고3이 되면서 활동을 줄였지만, 그때도 가끔 현업에 있는 사람이 남긴 질문에 답을 달아주곤 했다.

그는 올해에 대학생이 되었다. 활동량을 줄였던 보안 관련 커뮤니티도 다시 활발히 활동했다.

그러던 그에게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쪽지가 들어왔다. 며칠 정도 걸리는 회사 보안 상태 점검 아르바이트 제의였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던 중이다. 그래서 그가 잘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제안이 오자마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신나서 달려왔다.

‘대학에 오니까 진짜 일을 할 수 있어서 신났었는데.’

그런 생각으로 이곳을 찾아왔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여기는 정상적인 회사가 아니었다.

안성환은 배를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런 그의 앞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쭈그리고 앉으며 말했다.

“야. 내가 어려운 거 시켰냐? 댓글 다는 거 만들래? 그냥 ‘좋아요’와 ‘싫어요’만 조작할 수 있게 하라니까? ‘좋아요’를 많이 붙여서 댓글이 베스트에 올라가게만 하라고.”

안성환이 몸을 움츠리며 대답했다.

“어차피 댓글이나 그거나 둘 다 원리는 같아서요.”

남자가 안성환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말대답이야!”

안성환이 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외쳤다.

“악! 할게요! 할게요!”

남자가 말했다.

“원리가 같다고 결과도 같냐? 같은 닉네임으로 댓글 자주 달면 남들의 의심하는데 ‘좋아요’와 ‘싫어요’ 표시는 닉네임이 보이지 않잖아. 그럼 이게 같아? 달라?”

“다, 달라요!”

“다른 줄 알면 빨리 일어나서 저거 제대로 돌아가게 해놔! 이 새끼야!”

안성환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근데요. 저 벌써 사흘이나 여기 갇혀 있었잖아요. 그거 다 만들면 집에 보내주시는 거 맞죠?”

남자의 뒤쪽 의자에는 화려한 색 셔츠를 입은 사람이 앉아있었다. 셔츠가 잭나이프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거 제대로 못 만들면 집이 아니라 다른 곳에 보낼 수도 있지. 깊은 바다나 뭐 그런 곳. 드럼통 좋아해?”

안성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돌아가자 상대의 말이 바뀌었다.

양복이 웃었다.

“하하하. 야 이 새끼야. 얘 겁먹겠다. 우리 이제 그런 거 안 하잖아.”

“전 그런 전통적인 방식이 참 좋은데 말이죠.”

양복이 안성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겁먹지 마. 내가 너 물건만 잘 만들면 돈 많이 줘서 집에 보낼 테니까 나만 믿고 일이나 해.”

“하, 하지만….”

“내가 왜 널 죽이겠냐? 앞으로도 쭉 같이 일해야 하는데.”

안성환은 당황했다.

“예? 예?”

양복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너도 우리랑 공범이야. 걸리면 우리만 감옥 가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말이야. 이런 거 몇 번만 더 만들면 넌 졸업할 때까지 필요한 등록금은 물론이고 용돈까지 벌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 오래 가자. 흐흐흐.”

양복은 앞에서 웃으며 돈을 준다고 하고 화려한 셔츠는 뒤에서 잭나이프를 흔들었다. 이제 겨우 대학교 1학년 학생인 안성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성환이 작업하던 모니터를 보았다. 이 사람들이 조작하라고 요구한 곳은 주식 커뮤니티 게시판이다. 그것도 특정 기업 종목 분석 게시판이었다.

증권 범죄에 엮였다는 건 사흘 전에 여기 갇혔을 때부터 알았다.

안성환의 집은 지방이고 서울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올라왔다. 그가 사는 곳은 원룸 자취방이다. 그래서 그가 주말 내내 여기 갇혀 있었는데도 실종신고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알아보기 어려운 코드를 좀 심어놓으면 인터넷으로 몰래 신고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겁이 너무 나서 그런 코드를 집어넣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일만 끝나면 집에 보내줄 거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돌아가자 나쁜 놈들의 말이 바뀌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한 번에 끝나는 악몽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저절로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이 막 바닥에 떨어지려는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안성환이 고개를 돌려 문을 쳐다보았다.

마스크를 쓴 나강인이 보였다.

안성환은 절망했다.

‘일당이 더 있었어.’

양복이 셔츠에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야. 문 안 잠갔어?”

“잠갔습니다.”

“그런데 잡상인이 어떻게 들어와?”

“제가 당장 쫓아내겠습니다.”

나강인이 내부를 훑어보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 거점에서 무장 2명, 비무장 추정 1명을 발견했습니다.

나강인의 눈에 있는 AR 렌즈에는 가상의 이미지를 현실 위에 덧씌워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셔츠를 입은 놈의 잭나이프에 빨간색 윤곽선이 나타났다. 다른 놈의 옷에도 잭나이프 모양의 가상선이 그려졌다.

사무실 내부에는 책상 세 개와 노트북 몇 대, 그리고 라면 냄비와 휴대용 가스레인지 등이 있었다. 일반적인 사무실이라고 보기엔 너무 휑했다. 규모도 작았다. 여기에 비하면 그가 임시 거점으로 삼은 피시방은 첨단 기지나 마찬가지였다.

나강인이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건 뭐 가내수공업 해커냐?”

해커라는 단어를 말하자마자 양복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너 뭐하는 새끼야?”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현지 잠입 적응 임무 중입니다. 목격자를 제거하거나, 신분을 위장해야 합니다.

세 가지 대응 방안이 눈앞에 주르륵 떴다. 그런데 그중에는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나강인이 겁에 질린 대학생 해커 안성환을 가리켰다.

“복도를 지나가는데 사람 패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왔다. 들어올 때 들었는데 뭘 조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며?”

그런 대사는 AI 전지인이 제안한 시나리오에 없었다.

- 제가 제안한 것보다 현재 상황에 더 적절한 위장 시나리오입니다.

양복이 차가운 눈빛을 한 채로 입만 실실 웃었다.

“이 새끼. 들어도 못 들은 척 그냥 지나갔어야지 왜 기어들어 와? 그렇게 보지 말아야 할 걸 보니까 처맞잖아?”

양복이 갑자기 옆으로 움직이며 외쳤다.

“저 새끼 잡아!”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셔츠가 책상을 뛰어넘으며 나강인의 정면으로 달려갔다. 그놈은 오른손에 잭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사무실이 워낙 좁아서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졌다.

화려한 셔츠를 입은 부하가 칼을 위로 들며 욕을 내뱉었다.

“이 새…”

나강인이 셔츠의 배를 콱 걷어찼다. 내지르는 발이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다.

“꾸에엑!”

덤비던 부하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 책상 사이에 처박혔다.

책상 하나가 박살 났다.

양복은 이미 옆으로 이동했다. 나강인은 한쪽 발을 앞으로 쭉 뻗은 상태였다.

양복이 재빨리 안주머니의 잭나이프를 잡아 꺼냈다. 양복은 칼날을 세우며 공격 성공을 확신했다.

‘저렇게 한 다리로 서 있을 때 찌르….’

나강인의 앞차기가 순식간에 옆차기로 바뀌었다. 다리를 당겼다 뻗은 것도 아니고 그대로 옆으로 휘두르듯이 돌려찼다.

양복의 옆구리에 그 발에 걸렸다. 마치 해머에 맞는 것 같은 충격이 두목을 때렸다.

“케엑!”

양복의 몸뚱이가 옆으로 접히며 날아가다가 책상을 박살 내며 구석에 처박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무장한 적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나강인이 다리를 옆으로 쭉 뻗은 상태로 물었다.

“야. 내 발차기 말이야. 좀 많이 강해 보이지?”

- 보통 인간이 힘껏 찬 발차기의 3배의 힘을 사용하셨습니다.

“난 그냥 가볍게 찼는데?”

- 요원님의 신체는 근력이 강화되어 있습니다.

“스테로이드?”

- 요원님에게 적용된 근력 강화에 그런 비효율적인 약물은 사용되지 않습니다.

나강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네. 내 눈이나 귀에만 뭔가 설치된 게 아니라, 내 다리에도 뭔가 했지?”

- 그렇습니다.

“환장하겠다. 2082년에는 다들 몸을 막 개조하고 사냐?”

- 신체 강화 기술은 의료용과 군용으로 나뉩니다. 의료용은 치료 목적으로 널리 사용되지만, 군용은 지구 연합의 엄격한 관리하에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됩니다.

“내 몸에 적용된 건 군용이다?”

- 그렇습니다.

“군용이 의료용보다 세겠지?”

- 물론입니다. 의료용은 약해진 인간의 근력을 일반인 수준으로 돌려놓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만큼 부작용이 적고 안전합니다. 반면에 군용은 출력의 단위가 완전히 다릅니다.

“대신에 군용은 위험하겠네? 군대 물건을 믿어도 되나? 찜찜한데?”

- 전략 특수군의 장비는 믿으셔도 됩니다.

“근거는?”

- 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널 보니까 더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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