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대학생 해커
나강인이 주먹을 쥐어보았다.
“어쨌든 내가 힘이 굉장히 세다는 건 알겠어. 어쩐지 프라이팬에 밥을 가득 넣고 흔들어도 가볍게 느껴지더라.”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눈을 껌뻑거렸다. 그 무섭던 놈들이 날아가 사무실 구석에 처박혀 있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순 없다. 그의 눈에는 나강인도 그를 잡으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경찰인가? 아니면 정부 요원? 해킹했다고 날 잡으러 왔나?’
중고등학교 때 저지른 일들이 생각났다.
안성환이 다급히 외쳤다.
“전 진짜 예전에는 나쁜 짓 별로 안 했어요! 아니, 하긴 했는데요, 해킹해도 시스템을 털거나 자료를 빼가진 않았어요! 보안 점검하라고 메모만 남겨놓고 나왔단 말이에요!”
- 사실을 말하고 있을 확률 88%입니다. 화이트 해커로 추정됩니다.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넌 그런 것도 구분할 수 있냐?”
- 포로가 자백한 정보의 신뢰도 판단을 위해 표정과 행동을 분석하는 스킬이 있습니다. 포로를 궁지에 몰수록 정확도가 높아집니다.
안성환은 지금 궁지에 몰려 있다. 그래서 분석 정확도가 높았다.
“12%쯤은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거네?”
- 수많은 인간의 표정 및 행동을 100% 정확도로 분석하는 기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강인이 안성환에게 물었다.
“넌 왜 여기 있는데?”
“보안점검 알바라는 말에 속아서 왔다가 사흘째 붙잡혀 있어요.”
안성환이 양복과 셔츠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 새끼들 진짜 나쁜 놈들이에요! 이번 일 끝나도 계속 저한테 나쁜 일을 시키려고 했다고요!”
“쟤들하고 무슨 나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작전주 조작이요.”
“응? 쟤들이?”
나강인이 구겨진 놈들을 돌아보았다.
“쟤들은 그거 하기엔 좀 무식해 보이는데?”
“저한테 주식 게시판 댓글 순위를 조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했어요. 그걸 피시방에 설치하는 건 저놈들이 직접 가서 했고요.”
안정원도 자신이 조금 없어졌다.
“그니까 작전주 세력 아니에요?”
“아무래도 저것들 뒤에 누가 더 있나 보다. 쟤들은 하청이겠지.”
나강인이 이곳을 찾아온 건 그의 임시 거점인 피시방의 인터넷을 누군가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한 놈을 찾아와보니 적의 목적은 그 피시방이 아니다.
- 임시 거점의 안전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놈들을 이대로 풀어줄 순 없고, 뒤에 있는 놈들도 처리해야 하니까.”
그걸 그가 직접 할 필요는 없다.
나강인이 안성환에게 말했다.
“야.”
“예!”
“신고해.”
“예?”
“112에 전화해서 납치당했다고 해. 그리고 경찰이 오면 네가 본 거와 겪은 걸 그대로 말해.”
안성환이 망설였다.
“저, 저기, 그러면 아저씨는….”
“난 왜?”
“사람을 둘이나 저 지경으로 구겨놨으니까 혹시 아저씨도 처벌을….”
두 놈은 부서진 책상 사이에 처박혀 있었다.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강인이 물었다.
“너 내 얼굴 아냐?”
안성환이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마스크 쓰고 계시잖아요.”
“난 그냥 지나가다가 너 구해준 사람이야. 네가 얻어맞는 소리가 들려서 여기 들어와 봤는데 네가 맞고 있네? 그래서 널 구했어.”
“아! 고맙습니다!”
“스마트폰은 저놈들 거 쓰고, 얼른 신고해. 난 간다.”
안성환이 다시 당황했다.
“네? 가, 가시게요?”
“그럼 경찰 올 때까지 있겠냐?”
“아뇨. 그냥 가시는 게 낫겠어요. 저기, 근데요.”
“또 뭐?”
안성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도 저놈들 좀 때려도 돼요?”
“그냥 때리면 되지 왜 물어봐?”
“때렸다가 저놈들이 깨어나면 어떻게 해요?”
“저것들 상태 안 보이냐? 깨어나 봤자 자리에서 못 일어나. 팔로 막지도 못할 거야. 안심하고 시원하게 패.”
***
신고를 받고 출동한 근처 지구대 경찰은 현장을 보고 당황했다.
“아니, 이거 사람이….”
“구겨져 있는데요?”
“살아는 있네. 119에 연락해.”
경찰 중 한 명이 대학생 해커 안성환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안성환이 울먹이면서 그가 그동안 당한 일을 이야기했다.
“저 새끼들이요. 절 여기 가둬두고 주식 게시판을 조작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하면서 막 때렸어요. 저기 저 칼 보이죠? 실패하면 절 죽인다고도 했어요.”
“저런. 그런데 지금 직업이?”
“한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 1학년인데요.”
대학교 1학년이면 이제 겨우 미성년자를 벗어난 나이다. 아직 미성년자일 수도 있다. 미성년자라면 사건이 조금 더 심각해진다.
게다가 해킹과 증권 범죄까지 의심되는 상황이다.
단순 폭행 사건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자마자 경찰서에서 형사팀이 출동했다. 사이버 수사팀도 합류했다.
새로 도착한 형사팀의 팀장이 현장을 보며 말했다.
“이 새끼들만으로 작전주를 조작하려고 한 건 아닐 거야. 냄새가 나. 분명히 뒤에 다른 놈이 더 있어.”
형사 박기정이 맞장구를 쳤다.
“그거야 그렇겠죠.”
“그놈들이 병원에서 깨어나면 바로 물어봐. 약 기운에 정신없을 때 말을 많이 시키면 뭔가 나오는 게 있겠지.”
“알겠습니다.”
박기정이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누가 사람을 그 지경으로 구겨버린 걸까요?”
“피해자도 모르지?”
“예. 지나가다가 맞는 소리가 들려서 들어온 사람이 그 학생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그놈들을 그렇게 구겨놨다던데요?”
“그 새끼들 생명에 지장은 없다며?”
“부러진 곳은 있는데 죽진 않는답니다. 칼을 먼저 쓴 것도 그놈들이고요. 어떻게 할까요?”
“일단 CCTV 확보해서 누군지 찾아. 체포할 것까진 없지만, 아무것도 조사하지 않고 넘어가기엔 일이 좀 크잖아.”
박기정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이 건물에는 CCTV가 없는데요?”
“그럼 이 근처 CCTV를 좀 뒤져보든가.”
***
AI 전지인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 진행 방향에 CCTV가 있습니다. 우회전하십시오.
AR 렌즈에는 길 안내 경로만이 아니라 CCTV 감시 영역도 표시됐다. 피해야 할 곳과 안전한 곳이 눈에 뻔히 보이면 CCTV에 찍히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그는 목격자도 없고 CCTV도 없는 길을 통해 피시방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에 아까 이용하던 구석 자리에 다시 앉았다.
잠시 후에 오늘 늦게 온다고 한 야간 알바가 도착했다.
차은서는 그 알바에게 업무를 인계하고 나강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스페셜 잡탕 과자가 담긴 종이봉투가 있었다.
차은서가 과자를 먹으며 말했다.
“이거 진짜 맛있어요. 아껴먹는 중이에요.”
“나중에 더 만들어줄 테니까 아까지 말고 먹어.”
“아싸!”
인터넷으로 이 세상의 정보를 수집하는 작업은 옆에 사람이 있으면 제대로 하기 어렵다. 화면에 뜬 문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1초 만에 넘기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넌 땜빵 끝났다면서 왜 집에 안 가?”
“오빠 뭐 하나 궁금해서요.”
“난 그냥 논다.”
“게임은 안 해요?”
“게임?”
이 피시방 손님은 대부분 게임을 하러 이곳에 온다. 인터넷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 주식 게시판을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일 많은 건 게임을 하는 손님이다.
나강인은 그동안 정보를 수집하고 정부 전산망에 침입하는 등의 작업을 하느라 게임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다른 자리의 상황을 보았다. 한 손님이 총을 쏘며 생존하는 배틀로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 게임이 재미있어 보이네.”
차은서가 큰소리쳤다.
“제가 가르쳐줄게요!”
“응?”
“저 되게 잘해요. 자. 자. 말 나온 김에 시작하죠. 계정 만들려면 인증 해야 하니까 얼른 스마트폰 꺼내요. 번호도 좀 주고.”
“스마트폰? 없는데?”
차은서는 당황했다.
“네? 아니, 왜요? 조선 시대에서 오셨어요?”
나강인이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곳에는 그의 이름으로 된 신분이 있다. 지문도 일치한다.
‘어쩌면 스마트폰도 있었겠는데?’
“잃어버렸어.”
“언제요? 오늘이요?”
“아니. 예전에.”
“그럼 새로 사야죠! 내일 당장 사러 가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휴대용 정보 수집 단말기가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이 있으면 이 거점 이외의 공간에서도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그럼 이 게임은 내일 스마트폰을 산 후에 하는 거로.”
“알았어요. 그럼 인증 안 해도 가입할 수 있는 게임을 해요.”
나강인은 결국 AOS 게임 계정을 만들었다. 외국에서 만든 그 게임은 휴대폰 없이도 계정을 만들 수 있었다.
차은서가 옆자리에 앉아서 게임 방식을 설명했다.
“다섯 명씩 두 팀으로 나눠서 서로 싸우는 거예요.”
처음에는 하는 법을 잘 몰라서 게임 캐릭터가 금방 죽었다. 캐릭터는 죽어도 다시 부활하지만 죽을 때마다 게임 속 전장 상황이 나빠졌다.
차은서가 옆에서 보면서 투덜댔다.
“아무래도 상대편 원딜이 부캐인 것 같아요.”
“부캐?”
“본 계정이 따로 있는 사람이 새로 계정을 판 거 같아요. 그럼 레벨은 초보인데 실력은 초보가 아니죠. 이 판은 망했어요.”
“그래서 우리 편이 밀리는 거구나? 어쩐지. 이게 진짜 전투면 내가 질 리가 없는데 말이야.”
“아. 저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차은서가 자리를 떴다. 게임 속 전장 상황은 점점 더 불리해지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상대 원딜이 부캐라잖아.”
- 이대로는 이 전투는 패배합니다. 손의 임시 제어권을 요청합니다. 제가 이겨드리겠습니다.
“꺼져.”
게임은 꽤 재미있었다. 나강인은 새벽까지 그 게임을 하다가 AI 전지인의 휴식 권고를 받고 잠을 자러 들어갔다.
나강인은 이튿날 점심때 두 시간 동안 피시방 요리사로 일했다.
오후에 차은서가 제안했다.
“스마트폰 사러 가요.”
“넌 일 안 하냐?”
“어제 저녁때 땜빵 해줬잖아요. 걔가 오늘은 그만큼 일찍 왔어요.”
나강인은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다. 그런데 일한 기간이 얼마 안 된다.
“음…. 스마트폰을 사기엔 아직 돈이 부족한데?”
“24개월 분할납부로 사면 돼요. 가요.”
휴대폰 매장에는 다양한 스마트폰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강인이 그걸 보며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이 중에 네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있냐?”
- 유무선 직접 연결에 의한 양방향 실시간 입출력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습니다.
“알아. 해킹 방어 때문에 그런 거. 네가 스마트폰이 있으면 좋다길래 혹시나 했다. 네가 알아서 스마트폰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줄 알고.”
그가 전시된 스마트폰들을 보며 말했다.
“뭘 살까….”
두 대의 스마트폰 위에 가상의 화살표가 떴다. AI 전지인이 AR 렌즈를 이용해 만든 증강 현실 이미지였다. AI 전지인이 지목한 두 대는 국내 대기업 두 곳에서 출시한 최신형 스마트폰이었다.
“다른 것보다 비싼데?”
- 처리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장비를 사용하면 정보 수집 효율이 높아집니다.
“어차피 내 손으로 입력해야 하잖아. 그런데도 빨라지긴 하냐?”
- 약간의 효율 향상이 예상됩니다.
“너 말이야. 그냥 최신형 스마트폰이 갖고 싶어서 그런 거지?”
- 전술적 판단을 했습니다. 더 좋은 장비는 작전 성공률을 높입니다.
“최신형이 갖고 싶은 거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