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3화 (13/411)

13. 장거리 정찰

형사 박기정이 달리는 승합차 안에서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예. 가고 있죠. 에이. 그놈이 어떻게 눈치채겠어요? 예? 서장님이요? 기자들 모아놓고요? 아니, 왜요? 후우. 알았어요.”

박기정이 전화를 끊은 후에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확인했다.

“와… 씨. 우리 서장님이 방화 살인자를 빠르게 잡았다고 기자들 앞에서 신나게 자랑하셨네?”

박기정의 동기인 마약전담팀 형사가 당황해서 물었다.

“어? 그걸 왜 벌써 발표해! 우리가 지금 그 살인자 새끼한테 약 판 새끼를 잡으러 가는 중인데!”

“내 말이.”

마약과 관련된 정보는 박기정이 마약전담팀 동기에게 넘겼다.

그냥 넘긴 건 아니다. 2팀 박기정과 막내가 마약전담팀 형사들과 같이 가서 용의자를 체포하고, 실적은 두 팀이 적당히 나눠 먹기로 합의했다.

마약전담팀 형사가 짜증을 냈다.

“에이 씨. 약 판 새끼가 뉴스 보고 눈치채면 바로 튈 텐데.”

박기정이 기사를 모두 확인한 후에 동기 형사에게 말했다.

“야. 괜찮을 거 같다. 우리 서장님이 그 살인자 새끼의 이름이랑 사진은 공개 안 했어. 마약 이야기도 한마디도 안 했다. 하긴. 이 양반이 경찰 밥을 몇 년을 먹었는데 그걸 함부로 떠들겠어?”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약 판 새끼가 살인자 새끼의 방화 살인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너 지금 나랑 밀당 하냐?”

승합차를 운전하던 2팀 막내 형사가 물었다.

“그놈 있는 곳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사이렌 켜고 밟을까요?”

박기정이 구박했다.

“막내야. 그 약팔이 새끼한테 아주 도망치라고 광고를 하지 그러냐?”

“예?”

“우리가 지금 강도 잡으러 가냐? 조용히 가. 조용히. 신호 다 지키고 과속도 하지 마.”

***

마약 판매자를 잡는 건 간단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정보가 튀어나왔다.

박기정이 현장에 굴러다니던 메모지를 보며 말했다.

“야. 서울 한복판에서 마약파티가 벌어지나 본데? 이 새끼가 거기 약을 공급했다.”

“어? 진짜냐?”

“진짜인지 아닌지는 거기 가보면 알겠지?”

“지원받아야겠네. 기정아. 고맙다. 네 덕에 우리 팀 실적 아주 그냥 쫙 땡기겠어.”

“이거 왜 이래? 이것도 실적 나눠야지?”

“어…. 그게 말이야. 일이 이렇게 커지면….”

“파티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모지는 지금 나한테 있다?”

“나눠야지. 나누려고 했다. 마약파티는 언제래?”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

경찰서장은 이튿날 기자들을 모아놓고 수사 상황을 정식으로 설명했다. 이번에는 도표까지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 형사들이 마약파티 현장을 급습해 마약에 취해 있는 열한 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서장이 보여주는 도표에는 최초 방화 살인자를 체포한 때부터 이후 마약 사건을 인지한 것, 마약파티 현장을 급습해서 마약사범을 모조리 체포한 것까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나열되어 있었다.

박기정은 서장의 옆쪽에 서 있었다. 그의 옆에 있는 2팀 막내 형사는 눈이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박기정이 물었다.

“막내야. 넌 그 꼴로 카메라에 찍히고 싶냐?”

“형님. 제가 지금 아니면 언제 신문에 나겠습니까? 그리고 이게 다 영광의 상처 아니겠습니까?”

“약에 취한 연예인한테 얻어맞아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게 영광이냐?”

“흐흐. 그 새끼 운동선수 출신이더라고요. 그런데도 제가 그놈 잡았다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약까지 빤 놈을요.”

“나랑 같이 잡았잖아.”

마약파티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중에는 연예인도 있었다. 경찰은 그 연예인의 실명은 밝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알만한 사람은 그가 누군지 알았다. 인터넷에 이니셜이 떠돌았다.

경찰은 기자회견장에서 방화 살인자의 몽타주가 있다는 것도 공개했다. 그 부분은 2팀 형사 박기정이 맡아서 설명했다.

“목격자가 직접 그려준 몽타주 덕분에 용의자를 빠르게 찾아내고 이후 마약사범까지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기자가 물었다.

“목격자가 누구입니까?”

박기정은 이미 나강인의 의향을 확인했다. 나강인이 허락한 건 몽타주까지였다.

“목격자 보호를 위해 신상 정보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기자분들도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나강인이 그린 초상화를 스캔해 만든 이미지 파일이 올라왔다.

- 이게 바로 그 방화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그린 범인 몽타주입니다.

곧바로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아니, 이건 너무 잘 그린 거 아닙니까?

- 사진이네, 사진. 범인의 얼굴을 아니까 바로 잡을 수 있었겠지.

- 이런 몽타주가 세상에 어디 있어? 이건 작정하고 초상화를 그린 거지.

다른 사람이 댓글을 달았다.

- 제가 그 동네 삽니다. 범인 잡기 전에 경찰이 이 초상화 같은 몽타주를 보여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러 다녔습니다. 이거 진짜입니다.

다른 게시판에서는 사건이나 범인이 아니라 그림 자체를 평가했다.

- 사진처럼 그리긴 했는데, 잘 그린 건 아닙니다. 여기엔 예술적인 게 없어요.

- 범인 잡으라고 그린 그림에서 예술을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

- 이걸 몽타주라고 부르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만?

- 몽타주든 초상화든, 예술이든 아니든, 어쨌든 잘 그린 건 맞잖아요.

- 화가 중에는 그림을 일부러 사진처럼 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그림은 멀리서 보면 사진처럼 보입니다.

- 게다가 이거 연필이 아니라 볼펜으로 그렸잖아요.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이건 미술 좀 배워본 정도로 그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분명히 기성 화가가 그렸습니다.

- 그러니까 지나가던 화가가 범인을 보고 이 초상화를 그려줬다?

- 지나가던 사람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

나강인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그 댓글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보고 화가란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가 그렸습니다.

“내 손으로 그렸잖아.”

나강인이 말을 조금 바꾸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화가란다.”

***

윤아름이 월세로 살던 원룸은 방화 살인자 때문에 사라졌다. 그녀는 방을 새로 구할 때까지 찜질방에서 지내는 중이다.

그녀는 피시방 계산대에 앉아서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경찰 발표가 첨부된 커뮤니티 게시글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글을 보자마자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방화에 살인에 마약까지. 장난 아니다.”

범인의 얼굴이라며 떠도는 초상화도 보았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불이 나기 전에 건물 앞 골목에서 초상화 속 인물과 마주친 기억이 났다.

“앗! 생각났다! 그때 골목에서 본 그 눈 풀린 남자! 그 남자가 범인이었어!”

이미 범인이 체포됐다는 건 안다. 그래도 겁이 좀 났다. 문득 불타는 건물 옥상에 갇혀있을 때가 생각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람은 겁이 나면 판단이 흐려지고 실수가 늘기 마련이다.

손님 중 한 명이 라면을 먹으며 게임을 하다가 국물을 엎지르며 비명을 질렀다.

“앗 뜨거!”

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바닥에 라면 국물이 쏟아진 게 보였다. 그녀가 얼른 키친타올을 들고 달려갔다.

“잠깐만요! 제가 갈….”

너무 서둘렀다. 그녀가 안쪽으로 달려가다가 피시방에서 나가려던 남자와 부딪혔다.

“으악!”

“꺄악!”

윤아름은 뒤로 위태롭게 밀려나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휴우.”

그런데 그녀와 충돌한 남자는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다. 그는 옆으로 넘어지며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윤아름이 얼른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남자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일어나며 말했다.

“괜찮…. 으윽! 안 괜찮은데?”

남자가 바닥에 앉은 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왼손으로는 오른손을 잡았다.

라면을 엎질렀던 손님은 자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닫고 당황했다. 그는 눈치를 살짝 살피다가 윤아름을 향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전 제가 닦을게요. 키친타올만 좀 주세요.”

넘어졌던 남자가 왼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일어났다.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일그러졌다.

“오른손이 너무 아파. 부러진 거 아냐?”

윤아름은 패닉에 빠졌다.

“진짜 손이 부러졌으면 어떻게 해! 아! 119! 119!”

구석 자리에 앉아서 정보를 수집하던 나강인이 그 소란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지인아. 저 사람 오른손 상태는? 진짜 부러졌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손의 움직임을 보면 완전 골절은 아닙니다. 통증을 호소하는 정도로 보아 뼈에 금이 갔을 수는 있습니다.

나강인이 남자에게 말했다.

“부러진 건 아닐 겁니다.”

“진짜 아픈데….”

- 부상 정도를 확인하려면 손으로 만져서 부상자의 반응을 봐야 합니다.

“제가 좀 만져보죠.”

나강인이 남자의 오른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가 반사적으로 움찔했지만 그런 반응은 무시하고 그의 손을 슬쩍 잡았다.

남자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으. 으. 아픕니다.”

- 반응이 약합니다. 뼈에는 손상이 없습니다. 근육과 인대, 관절의 위치와 반응을 점검했습니다. 손목을 삐었습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좀 삐긴 했군요.”

“이렇게 아픈데요?”

- 야전 응급 물리치료를 하면 통증이 감소하고 회복이 빨라집니다.

“제가 덜 아프게 해드리죠.”

나강인이 손의 제어권을 AI 전지인에게 넘겼다.

AI 전지인이 부상자의 손을 주물러 살짝 늘어난 근육을 진정시켰다.

그저 손으로 주물렀을 뿐인데도 남자가 느끼는 통증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남자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 진짜 손이 덜 아픕니다.”

- 안정 상태로 회복하는 데 24시간이 필요합니다. 24시간 이내에 무리한 활동을 하면 부상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완전 회복에는 48시간이 필요합니다.

“내일까지는 오른손으로 힘쓰는 일은 하지 마시죠. 잘못하면 덧납니다. 이틀쯤 지나면 완전히 나을 겁니다.”

남자가 크게 당황했다.

“어? 아니, 그럼 일은 어쩝니까? 나 내일 영화 촬영 때문에 강원도에 가야 하는데!”

윤아름이 눈치 없이 물었다.

“앗! 감독님이세요?”

남자가 짜증을 냈다.

“밥차다!”

윤아름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앗! 죄송합니다!”

밥차 사장 김병호가 윤아름을 보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영화사에서 초긴급으로 추가 촬영하는 거라서 내 밥차도 오늘 급하게 섭외된 거야.”

그가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보였다.

“그런데 이런 손으로 밥을 어떻게 하냐고. 내가 빵꾸 내면 그 영화 스태프 다 굶어야 해.”

김병호의 얼굴에 체념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 난 그 영화사나 그 감독님한테는 다시는 일 못 받아. 소문나면 다른 곳 일감도 떨어지겠지.”

윤아름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잘못하면 그녀가 김병호의 생계를 끊게 생겼다.

어떻게든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그녀가 제안했다.

“제, 제가 그럼 내일 아저씨랑 같이 가서 밥을 할게요!”

김병호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요리는 좀 하나?”

“라면은 끓일 줄 알….”

“됐어!”

나강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주변은 대충 파악했으니까 다른 지역도 조사하러 갈 때가 됐지.”

AI 전지인이 동의했다.

- 장거리 정찰 목표를 제안합니다. 선택해 주십시오.

AR 렌즈가 그의 눈앞에 여러 개의 정찰 목표 목록을 띄웠다.

“그런 거 아니니까 치워.”

- 예.

눈앞에 떠 있던 목록이 즉시 사라졌다.

나강인이 밥차 주인 김병호에게 제안했다.

“내일 강원도에는 제가 가겠습니다. 가서 밥과 반찬만 해주면 되겠습니까?”

밥차 주인 김병호는 깜짝 놀랐다.

“예? 셰프님이 오신다고요?”

김병호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다. 그는 나강인의 요리를 맛본 후부터 이 피시방에 매일 들렀다. 자주 먹다 보면 뭔가 배우는 게 있을까 싶어서였다.

“셰프님이 그래 주시면 저야 좋지만….”

“오른손을 삔 건 하루만 지나면 어느 정도 안정되니까 이 문제는 그렇게 정리하고 넘어가시죠.”

“그, 그럴까요?”

윤아름이 얼른 김병호에게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김병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야 뭐, 이제 손도 별로 안 아프고, 내일 셰프님 요리하는 걸 옆에서 보면 팁 하나쯤 배울 수 있을지 모르니까 좋긴 한데…. 하, 하하.”

나강인이 물었다.

“아름아. 나한테는?”

윤아름이 손가락 끝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며 활짝 웃었다.

“오빠한테는 매우 진심 대박 고맙죠!”

***

사장 차동석은 다른 곳에서 전화로 상황을 들었다.

“어. 그래. 할 수 없지. 우리 직원이 안 다쳤으면 됐지. 그 손님한테는 피시방 일주일 무료이용권이라도 드려.”

그는 통화할 때는 대범했지만, 통화가 끝나자마자 한숨을 쉬며 크게 아쉬워했다.

“에휴. 내일은 특별 요리를 못 팔겠구나.”

나강인은 피시방에서 언제 뭘 요리할지 직접 정한다. 그가 하기 싫다고 하면 피시방 특별 요리도 없다. 그게 채용조건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조카 차은서가 차동석을 타박했다.

“그 손님이 사장인 삼촌 불러오라고 했으면 여기서 일하다 말고 피시방으로 달려가서 사과할 뻔했잖아. 강인 오빠가 출장 요리 한 번으로 해결했으니까 고마워해야지.”

차동석은 귀가 좀 얇다.

“그런가?”

“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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