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15화 (15/411)

15. 카메라 액션

조감독이 제안했다.

“감독님. 이 장면은 그냥 김유찬 씨가 직접 해도 될 거 같은데요?”

감독 손태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다 김유찬까지 다치면? 주연 배우 발이 이렇게 돌아가면 우리 영화 재촬영은 그날로 완전히 끝장나는 거야!”

손태민이 모든 스태프를 향해 외쳤다.

“얼굴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가릴 거니까 안 닮아도 돼요. 체형도 너무 다르지만 않으면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몸 좀 쓸 줄 아는 사람 아무나 나와봐요! 내가 진짜 이 신세 안 잊을 테니까!”

나강인이 부상자의 발목 치료를 마치고 일어났다. 손태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강인 쪽으로 향했다.

“어?”

손태민은 나강인과 부상자의 체형이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부상자의 체형은 주연 배우와 비슷하다.

그는 이번에는 나강인과 김유찬을 비교해보았다. 다친 무술 대역배우보다 나강인의 체형이 김유찬과 더 비슷했다.

손태민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저기요. 밥차 아저씨. 혹시 무술 단증 같은 거 있습니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공식적으로 단증을 딴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비공인 단체의 단증을 땄을 수는 있습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몸은 좀 쓸 줄 압니다.”

손태민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무슨 역할인지는 구경하면서 보셨죠? 꼭 좀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진짜 시간이 없어서 그럽니다.”

나강인이 진지하게 물었다.

“일당은 줍니까?”

손태민이 다친 대역배우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여기 이 친구 받는 출연료만큼, 아니, 비상 상황이니까 따블!”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너 이런 일도 지원할 수 있냐?”

- 훈련 교본 제작용 촬영 스킬이 있습니다. 카메라에 시범 동작이 잘 찍히게 몸을 움직이는 스킬입니다.

“그것도 군용 스킬이지?”

- 물론입니다.

손태민은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혼잣말하는 걸 보고 시큰둥해 한다고 착각했다.

손태민은 영화사 사장 이태호로부터 돈을 아끼지 말고 반드시 기간 안에 재촬영과 재편집을 끝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손태민이 외쳤다.

“에이, 좋다! 따따블!”

나강인이 즉시 물었다.

“뭘 하면 됩니까?”

***

무술 대역배우는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바깥쪽으로 이동했다.

세트장은 다시 준비됐다.

이 영화에는 무술감독이 없다. 액션영화가 아니라 로맨스 영화이기 때문이다. 싸우는 장면이 필요해서 무술 대역배우를 섭외하긴 했지만, 액션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다.

조연 신은하는 위험에 처한 여자 역할을 맡았다. 지금부터 찍어야 하는 건 남자 주인공이 적 세 명을 때려눕히고 그녀를 구하는 모습이다.

지난번에 이 장면을 찍었을 때는 이곳에 네 명의 적이 있었다. 손태민이 어제 대본을 급히 수정해 마약파티 현장에서 체포된 배우를 빼고 세 명만 있는 것으로 바꾸었다.

발을 다친 무술 대역배우가 나강인에게 촬영에 들어가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말했다.

“제가 발을 다친 동작은 위험하니까 아예 빼고 나머지 동선을 설명하겠습니다.”

대역배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훈련 교본 제작용 촬영은 그렇게 찍는 게 아닙니다. 실전에 가까운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미리 합을 맞춰 움직이는 방식은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나강인이 액션 대역배우에게 말했다.

“제가 진짜 배우도 아닌데 그렇게 정해진 대로 움직이려고 하면요. 아마 어색한 연기가 대놓고 보일 겁니다. 그리고 저 세 분도 액션 전문은 아닌 것 같은데요.”

“그거야 그렇지요. 하지만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움직이기 쉬운 동선을 새로 짤 시간도 없고요.”

나강인이 배우 세 명을 보며 대안을 제시했다.

“그냥 세 분이 진짜로 저를 공격하시죠?”

세 사람은 당황했다.

“예?”

“진짜로 저와 싸울 생각으로 공격하세요. 제가 적당히 받아줄 테니까요. 그래야 더 실감이 날 겁니다.”

액션 대역배우가 말렸다.

“아니, 그게 잘되면 실감이야 나겠지만, 그러다 또 사고가 터지면 어쩌라고요.”

감독 손태민이 얼른 끼어들었다.

“나강인 씨가 실력에 자신 있으니까 먼저 제안했겠지. 잘만 되면 연기력 문제는 걱정할 필요도 없겠네요. 리허설 한 번 해봅시다.”

나강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습을 먼저 하면 진짜로 찍을 때는 실감이 안 날 겁니다. 처음부터 바로 찍으시죠.”

“어? 진짜 격투기를 잘하시나?”

“좀 합니다.”

손태민이 입술을 핥았다.

“진짜 한 방에 되면 촬영 시간을 줄일 수 있는데…. 에이. 그럽시다. 잘 안 나오면 리허설 했다 치고 다시 찍으면 되지.”

손태민이 자리로 돌아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 훈련 교본 제작용 스킬은 촬영 횟수가 늘어날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도 높아집니다.

“알아.”

- 한 번에 촬영을 끝내자고 제안하셨잖습니까?

“그래야 내가 일하는 시간이 짧아지잖아.”

AI 전지인의 대답이 평소보다 1초 정도 늦었다.

- 알겠습니다. 한 번에 끝내겠습니다.

촬영이 시작됐다.

신은하가 궁지에 몰렸다. 남자 셋이 그녀를 위협했다.

갑자기 창고 문짝이 떨어져 나가며 나강인이 세트장 안으로 들어왔다.

카메라 세 대가 동시에 돌아갔다. 하나는 신은하와 남자 셋을 찍었고, 다른 하나는 멀리서 배경이 포함되게 찍었다.

레일 위에 올려놓은 카메라 한 대는 나강인의 움직임을 옆에서 따라가며 찍었다.

나강인은 대사가 없었다.

대사는 나중에 남자 주연 김유찬이 따로 하기로 했다. 김유찬은 감독 옆에서 나강인과 똑같은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강인이 상대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세 사람은 대본에 적힌 대사를 말했다.

“이 새끼 뭐야?”

“쳐!”

그들은 셋이서 동시에 공격하면 나강인 혼자서는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바로 NG다. 그래서 배우 중 한 명이 먼저 나강인을 향해 달려갔다.

나강인은 그들에게 진짜로 공격하라고 했지만, 그 배우는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며 주먹을 날렸다. 그래서 주먹이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다.

나강인은 세 대의 영화 제작용 카메라에 그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AR 렌즈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상대의 주먹이 예상보다 느렸다.

AI 전지인이 촬영용 대응 동작을 반투명 가상 이미지로 만들어 보여주었다.

나강인은 상대의 주먹이 날아오는 속도에 맞춰 몸을 옆으로 슬쩍 비틀었다. 주먹이 그의 얼굴 옆을 지나갔다. 그는 카메라를 의식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에 적의 멱살이 닿았다.

그가 팔의 각도를 조절하며 상대의 멱살을 잡았다. 멱살을 잡는 손동작이 카메라에 선명하게 찍혔다.

그런 후에 상대의 발을 슬쩍 걸었다. 그 발동작도 카메라 렌즈에 확실히 잡혔다.

감독 손태민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나강인이 보여주는 모습이 스크린에서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감이 왔다.

‘디테일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전투씬이 나오겠는데?’

느릿하게 움직이던 나강인이 갑자기 상대의 멱살을 확 잡아당겼다.

주먹을 날린 배우는 당황했다. 몸이 갑자기 휙 끌려가는데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었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 돌아갔다.

“억!”

나강인이 배우를 옆으로 던져버렸다. 배우가 쭉 날아갔다.

감독 손태민은 배우가 또 다치는 줄 알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촬영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중단시킬 수가 없었다.

‘디테일하게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집어 던지면, 그것도 일부러 느리거나 빠르게 영상을 돌린 게 아니라 진짜 생생한 실전으로 그걸 보여주면….’

편집을 따로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이 씬은 아무것도 손대지 않아도 돼. 이미 완벽해!’

완벽한 씬을 봤기 때문에 촬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감독 손태민의 눈이 옆으로 날아간 배우를 향했다. 만약에 그 배우가 다쳤다면 아쉬워도 촬영을 중단시켜야 한다.

맨바닥에 떨어진 배우는 당황했다. 떨어질 때의 충격이 생각보다 약했다. 몸이 아프긴 한데 못 참을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뭐지? 왜 별로 안 아프지?’

그는 배우다. 여기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가는 촬영을 망치고 감독에게 찍힌다. 그는 얼른 한 방에 나가떨어진 모습을 연기했다.

손태민은 그 배우가 연기한다는 걸 눈치챘다. 배우의 연기는 자연스러웠지만, 한국 로맨스 영화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흥행 감독 손태민의 눈을 속이진 못했다.

‘안 다쳤어!’

손태민이 얼른 촬영을 계속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두 번째 배우가 뛰어나왔다.

그는 첫 번째 배우가 적당히 덤비다 크게 나가떨어지는 걸 보았다.

‘진짜 해보자는 거야?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 배우는 한 방 제대로 먹일 작정을 하고 나강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나강인이 그 팔을 덥석 잡았다. 그러면서 주먹이 날아온 방향으로 일부러 미끄러졌다. 레일 위의 카메라는 나강인을 따라 이동하던 중이다.

카메라와 나강인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촬영감독은 지금 카메라에 어떤 모습이 찍히는지 깨달았다.

‘카메라를 열 대쯤 반원형으로 배치해서 저 둘의 모습을 빙 돌아가며 찍는 것처럼 찍히겠는데?’

나강인이 상대 배우의 팔을 잡아당겨 공중으로 크게 띄웠다. 그런 후에 바닥에 패대기쳤다. 배우가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는 발을 뻗어 상대의 몸통을 걷어찼다.

사람들의 눈에는 나강인이 상대 배우를 마치 죽일 것처럼 내던진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떨어지는 사람을 걷어차기까지 했다.

다들 경악했다. 입을 떡 벌린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에는 손태민도 촬영을 급히 중단시키려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막 소리를 지르려던 손태민이 멈칫했다.

‘어? 비명은?’

그렇게 패대기쳐지고 걷어차였으면 당연히 질러야 할 비명이 들리지 않았다. 배우가 기절했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멀쩡히 깨어 있는 게 보였다.

바닥에 패대기쳐진 배우도 당황했다.

‘어? 어?’

아프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어디 부러진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 배우는 마음의 준비를 조금은 하고 있었다. 그는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고 진짜 한 방에 무력화된 것처럼 바닥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연기했다.

카메라는 계속 돌아갔다.

손태민이 얼른 그대로 진행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이판사판이다! 이제 못 멈춰!’

마지막 배우는 당황했다. 그는 먼저 나가떨어진 두 명이 다치지 않았다는 걸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히 겁을 먹었다.

“으, 으아아!”

겁먹은 배우가 소리를 지르며 두 주먹을 번갈아 마구 휘둘렀다. 공포에 질린 그 모습은 평소 그의 연기력을 한참 넘어섰다.

나강인은 탄력 있게 휘어지는 허리와 적절히 비트는 어깨의 움직임만으로 주먹을 피했다.

이번에는 바로 반격하지 않았다. 일부러 상대 배우가 계속 주먹을 휘두르게 유도했다. 큰 동작으로 연달아 날아오는 주먹은 유연한 허리를 자랑하며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사람들의 눈에는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주먹이 매번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격투기를 따로 수려한지 않은 보통 사람이 온 힘을 다해 큰 동작으로 주먹을 휘두르면, 보통은 금방 지친다.

나강인은 상대의 주먹을 다섯 번 피했다. 여섯 번째 공격에서 상대의 주먹 스피드가 조금 떨어진 게 보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AI 전지인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라는 신호를 AR 렌즈를 통해 보냈다.

그는 주먹을 날리는 상대의 팔과 옆구리를 붙잡고 다리를 걸며 옆으로 넘어뜨렸다. 상대 배우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악!”

감독 손태민은 그 순간 주먹을 꽉 쥐었다.

‘딱 좋은 순간에 끊었어! 주먹을 너무 오래 피하면 그것도 이상…. 헉?’

나강인이 넘어지는 배우의 배를 무릎으로 올려쳤다. 그렇다고 진짜로 친 건 아니다.

그는 배우의 배에 무릎을 슬쩍 대고 위로 밀었다. 붙잡은 팔과 옆구리에도 힘을 줘 남자의 몸이 공중으로 뜨게 만들었다.

세 번째 배우는 나강인의 무릎에 맞는 순간 다른 배우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몸은 위로 날아가는데 아프지가 않았다.

그 배우의 몸이 위로 붕 떴다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강인이 상대의 팔과 옆구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떨어지는 속도를 줄였다.

세 번째 배우는 결국 바닥에 떨어졌다. 나강인이 속도를 줄여주긴 했지만 맨바닥에 떨어졌는데 아프지 않을 순 없다. 하지만 이 정도는 참을만했다.

그가 완전히 제압된 것처럼 연기하며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도 안 다쳤겠는데?’

감독 손태민이 주먹을 연달아 쥐었다 폈다. 배우가 맞을 때마다 당장 중지시키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이 씬 전체를 단 한 부분도 포기할 수 없었다.

손에서 땀이 났다.

“계속해. 계속 연기해. 자연스럽게 계속.”

나강인이 상대 배우 셋을 쓰러뜨린 후에 신은하에게 걸어갔다.

“구하러 왔다.”

신은하는 다른 배우 세 명이 진짜로 얻어맞은 줄 알았다.

그녀가 겁먹은 눈으로 나강인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저, 저는 살려주는 거죠?”

그런 대사는 대본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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