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3화 (23/411)

23. 구조물 약점 분석

이 강원도 세트장에는 스태프도 많고 영화 촬영용 카메라도 많았다.

촬영감독이 손태민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물었다.

“우리 스태프가 찍은 이거 말이야. 어떻게 할까?”

그 영상에는 나강인이 비탈길을 뛰어 내려가는 모습과 이민지를 구출하는 상황이 모두 담겨 있었다. 아까 THO 엔터 김 과장이 형사들에게 보여준 것도 이 영상이다.

손태민이 도로 물었다.

“어떻게 하냐니?”

“이 영상도 영화에 쓸 거야?”

손태민이 영상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진짜 액션이 어마어마하지?”

“장난 아니지.”

“속도감까지 확실히 살렸고 말이야.”

“나강인 씨가 비탈길을 달릴 때 줌을 거기 맞춰 당겼거든.”

“마치 일부러 세팅하고 찍은 것처럼 잘 찍혔어.”

“이거 찍은 애가 감이 좋아.”

손태민이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톡톡 치며 말했다.

“이걸 보고 딱 좋은 추가 시나리오가 떠올랐어. 관객들이 정말 좋아할 거야. 어차피 세트장 실제 사고 영상을 영화에 넣기로 했으니까, 이걸 추가로 넣었다고 해서 욕도 추가로 더 먹진 않을 테고.”

촬영감독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넣을 거야?”

“나야 그러고 싶지만.”

손태민이 아쉬워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이태호 사장과 장미정 씨의 딸이 유괴될 뻔한 사건이잖아. 이걸 영화에 써먹겠다고 하면 그 부부가 내 목을 진짜로 조를걸?”

촬영감독은 시무룩해졌다.

“아쉽네. 이거 진짜 잘 찍혔는데.”

“이 영상 복사본 만들어서 경찰 쪽에 넘겨. 그리고 원본은 우리끼리만 보자고.”

“이것도 원본은 아니야. 파일 용량 줄인 복사본이야.”

***

형사가 나강인을 찾아와 물었다.

“아이가 유괴됐다는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질문한 형사는 살짝 당황했다.

그는 수상한 것을 봤다거나, 느낌이 이상했다는 식의 대답을 예상하고 질문했다. 종합적으로 분석했다는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다.

나강인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AI 전지인이 분석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하시는 일이?”

“밥장사입니다.”

“아, 예. 밥…. 예?”

나강인이 뒤쪽 밥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저기서.”

“그, 그러시군요. 그럼 제가 몇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나강인은 범인이 아니다. 유괴되던 아이를 구출한 시민이다.

그 과정이 워낙 스펙타클해서 형사가 찾아와 질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피의자처럼 대하진 않았다.

나강인이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이미 영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형사가 물어본 건 많지 않았다.

질문을 마친 후에 형사가 인사했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강인은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었다.

“오신 김에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만.”

“예?”

그는 형사들을 무너진 세트장으로 데려갔다.

원래는 촬영이 끝난 후에 감독에게 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형사들이 이곳에 왔으니 지금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나강인이 세트장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가 무너질 때 철제 조명이 신은하 씨가 있던 위치에 세 개나 떨어졌습니다.”

“어이구. 위험하셨겠습니다.”

“하나가 아니라 세 개나 떨어졌습니다. 마치 노린 것처럼 정확하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형사가 웃었다.

“하하. 설마 누가 일부러 그랬겠습니까? 신은하 씨가 그때 거기 있을 줄 어떻게 알고요?”

“대본에도 나와 있고, 예전에 같은 위치에서 찍은 영상도 있으니까 위치는 예상하기 쉬웠을 겁니다.”

형사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혹시 다른 단서도 있습니까?”

나강인이 잔해를 보았다. AI 전지인이 조작이 의심스러운 잔해를 몇 개 표시해주었다.

나강인은 그 부분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 이 조명의 나사는 주변 페인트가 최근에 벗겨진 느낌이지요? 여기 이 케이블은 철사 끊긴 모양이 조금 인위적으로 보이고요. 여기는 지지대가 있어야 하중을 버티는데 그게 빠져 있습니다.”

“어…. 예? 페인트에 철사….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나강인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기존 데이터를 오후 내내 틈틈이 분석해 추가 정보를 도출했습니다.

AI 전지인이 상부 구조물이 무너지기 전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허공에 띄웠다. 그 홀로그램 구조물은 세 곳이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AI 전지인이 작성한 분석 보고서도 보였다.

나강인이 바닥과 허공을 손으로 번갈아 가리켰다.

“이 조명은 저 위치에 있었을 겁니다. 여기 끊어진 케이블과 연결된 구조물은 저쯤에 있었을 테고, 여기 이건 저쪽에 있었겠죠. 물론 지지대가 빠진 채로.”

형사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세트장은 지붕까지 무너진 상태라 형사의 눈에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짜 보고 말하는 것처럼 설명하시네. 더 말씀해 주시죠.”

“이것들은 모두 상부 구조물의 안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점에 있던 것들입니다.”

“어…. 그러니까 누군가 영화 촬영 도중에 조명 같은 것만 떨어지게 조작했는데, 그게 잘못돼서 결국 천장까지 무너진 거라고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확실한 증거는 찾지 못했습니다. 증거가 잔해 속에 묻혀 있을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만약 제 말이 맞다면 그 증거는 여기 잔해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형사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지금 말씀하신 거 모두 확실합니까?”

“그럴 확률이 삼사십 퍼센트.”

“예?”

“다른 결함 때문에 그냥 무너졌을 확률이 육칠십 퍼센트.”

형사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사람을 잔뜩 긴장시켜놓고 이제 와서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의 모든 잔해를 분석한다면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겠죠.”

“아, 예. 그렇겠죠. 예에. 그럼요.”

형사는 나강인이 말한 것을 일단 수첩에 적었다. 그런 후에 눈가를 살짝 찡그린 채로 나강인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죠. 그런 게 그냥 딱 보면 계산이 되세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전투 후 현장 분석 시스템을 기반으로 적 거점 파괴를 위한 구조물 약점 분석 스킬, 아군 야전 진지 건설을 위한 스킬을 복합 사용해 계산 후 도출한 결론입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뭐, 어느 정도는?”

“밥장사라면서요? 건축 분야 기사나 기술사가 아니라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형사가 요원님의 말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그냥 그쪽으로 취미가 좀 있습니다.”

“아. 취미…. 예. 취미 좋죠. 진짜인 줄 알고 수첩에 열심히 적었는데.”

형사는 나강인의 말을 믿지는 않았다. 나강인이 제시한 근거가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렸다.

그런데 이번 일은 유괴 사건이다. 아무리 뜬구름 잡는 소리라 해도 무시할 수는 없다.

‘여기 무너진 것하고 유괴 사건에 혹시 무슨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씀하신 건 그대로 과수대에 전하겠습니다. 아. 경찰 과학수사대 말입니다. 과수대가 저를 비웃을 거 같지만.”

***

나강인이 저녁밥을 만들었다.

이곳은 산속 세트장이라 주변에 식당이 없다. 그는 조리하는 김에 현장을 조사하러 온 경찰 몫까지 음식을 만들었다.

그는 대량의 식재료를 대형 곰솥에 집어넣고 펄펄 끓였다. 조미료도 넉넉히 넣었다.

밥차 주인 김병호가 그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어? 강인 씨. 조미료를 그렇게 많이 넣으면….”

“맛있죠.”

“물론 맛있죠. 그런데 그건 적당히 넣었을 때의 이야기잖아요. 옆에서 보니까 계량도 안 하고 막 넣는 것 같은데….

“계량은 손이 알아서 합니다.”

그런 건 AI 전지인이 알아서 한다.

나강인이 곰솥을 번쩍 들고 프라이팬 다루듯이 흔들었다.

김병호가 옆에서 감탄했다.

“점심때도 놀랐지만 저녁은 더 대단하네.”

요리실력에 감탄한 게 아니다.

“그 솥이 그렇게 들고 막 흔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닌데 말이죠.”

“할만합니다.”

“하긴. 이렇게 힘이 세니까 유괴범들을 그렇게 팍팍. 키야아. 아까 진짜 멋졌습니다.”

나강인이 바로 옆 대형 궁중팬에도 다양한 재료를 넣고 조리했다. 둘 다 화력은 최대로 높였다.

그가 곰솥과 궁중팬을 교대로 제어하며 말했다.

“놀러 오셨나 보다.”

“하하. 그게 아니라요. 아. 저분들이 좀 전부터 기다리고 계시는데….”

이태호과 장미정은 나강인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자 이태호가 얼른 두 손을 흔든 후에 사람들을 향해 뻗었다.

김병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영화사 사장님이 여기 사람들 배고픈 걸 아시나 봅니다. 하하하.”

요리는 오래 걸리지 않아 끝났다. 나강인과 김병호가 국밥을 배식했다.

형사 두 명이 먼저 와서 국밥을 머릿수대로 받아갔다.

“잘 먹겠습니다.”

밥차 주인 김병호가 말했다.

“수고하시는데 이 정도는 드려야죠.”

다른 형사들은 팀장에게 여기서 조사한 것을 보고했다. 그중에는 나강인이 설명한 세트장 붕괴 사건도 있었다.

팀장이 물었다.

“누군가 수작을 부린 것 때문에 세트장이 무너졌을 수 있다고?”

“예. 나강인 씨가 현장을 분석했더니 그럴 확률이 삼사십 퍼센트쯤 된다던데요?”

“그걸 어떻게 분석했대?”

“건축물 구조 분석이 취미라는데요?”

형사팀장이 코웃음을 쳤다.

“취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걸 취미로 하는 사람도 있냐?”

“그러게요.”

“진짜 정체가 뭐야?”

“그냥 밥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형사들이 받아온 국밥을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형사팀장이 국밥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말했다.

“영상 봤잖아. 당연히 그냥 밥장사는 아니…. 어?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다른 형사들도 감탄했다.

“와. 이거 고향의 맛인데요?”

“형님 고향이 국밥으로 유명하다면서요?”

“어. 이 정도면 우리 고향에서도 진짜 잘하는 맛집 수준인데?”

“이야아! 여기가 그럼 맛집이네.”

팀장이 국밥을 먹으며 말했다.

“이러면 진짜로 밥장사라는 건데.”

형사팀장이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나강인은 밥차 주인 김병호와 함께 음식을 배식하고 있었다.

“신기한 사람이네.”

***

영화사 김 과장이 나강인에게 다가와 말했다.

“배식은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저희 사장님 좀…. 계속 기다리고 계신데요.”

밥차 주인 김병호가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확실히 배식할 테니까 사장님부터 만나봐요.”

나강인이 손을 닦고 밥차에서 나와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이민지의 어머니인 배우 장미정이 먼저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딸을 구해주셔서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지구 연합과 자연로보틱스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

“아이가 유괴되는 걸 알았는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겁니다.”

- 저의 우수한 전투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보통 사람은 달리는 차에 그렇게 뛰어들면 죽습니다.

장미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우리 딸을 구하려고 어떻게 하셨는지 영상으로 다 봤어요.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그 차를 세우고, 칼을 든 놈하고 싸우고…. 목숨을 거셨잖아요.”

- 구출 작전은 안정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요원님의 생명이 위험한 순간은 없었습니다.

“할만했습니다.”

장미정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목숨을 몇 번이나 거는 걸 봤는데, 그걸 그냥 할만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상대가 왜 그녀의 딸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지는 모른다.

그녀의 딸이 나강인 덕분에 무사하다. 그녀는 그거면 됐다.

장미정이 고개를 다시 꾸벅 숙여 인사했다.

“고마워요. 진짜 고마워요.”

이태호가 옆에서 같이 머리를 숙였다.

아역 배우 이민지는 나강인이 만들어준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나서 상태가 좋아졌다.

윤미정이 그런 이민지를 보며 이태호에게 말했다.

“민지 데리고 집에 가야겠어.”

이태호도 할 수 있으면 그러려고 했다.

“아까 놀라서 그런지 차에 타기 싫대. 구급차도 안 타겠다는데 어떻게 데려가게?”

“그럼 어떡하지?”

나강인이 옆에서 물었다.

“어머님의 차 내부가 납치범들의 승합차와 얼마나 다릅니까?”

“내 차는 완전 최고급 인테리어로 개조됐어요. 완전 다르죠.”

“민지가 그 차를 자주 탔습니까?”

“그럼요.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자주 탔죠.”

“그럼 괜찮을 겁니다. 어머님이 같이 타셔야겠지만.”

나강인의 말대로 이민지는 윤미정의 차는 큰 거부감 없이 탔다. 떠나기 전에 약속도 받았다.

“아저씨. 나 과자 또 만들어주기로 한 거 잊지 마요. 디저트도요.”

“미리 전화하고 와라. 내가 피시방에 없을 때가 많아.”

“네!”

이태호는 현장에 남았다. 그는 딸과 같이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상황이 변해 그가 현장에서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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