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홍보팀장
아무리 영화를 급하게 찍어도 밥은 먹으면서 해야 한다.
감독 손태민이 국밥을 먹으며 말했다.
“점심이 하도 맛있어서 기대 많이 했는데 말이야. 역시 저녁도 끝내준다.”
조감독이 맞장구쳤다.
“진짜 얼큰하고 맛있습니다.”
“진짜 아쉽다. 이거 내일도 먹고 싶은데, 우리 영화의 액션 파트를 책임져줄 사람한테 밥까지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조감독이 국밥을 먹으며 물었다.
“감독님. 이거 진짜 소주하고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지 않아요?”
“그치? 이건 진짜 소주가 땡기는 맛이야.”
손태민은 오늘 촬영이 끝나면 밤새 수정 시나리오를 써야 한다. 지금 술을 마시면 시나리오도 망하고 영화도 망한다.
“일주일 동안 금주라니. 진짜 아쉽다.”
영화사 사장 이태호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 영화가 완성되면, 그땐 제가 한우에 전통 소주를 살 테니까 오늘은 참으시죠.”
“하하. 역시 이 사장님은 뭘 좀 아십니다. 그때 같이 한잔하시죠?”
“그래야죠.”
이태호가 나강인이 있는 밥차로 고개를 돌렸다.
“나강인 씨도 그 회식에 오겠죠?”
“어…. 오겠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밥을 먹던 스태프가 갑자기 놀란 소리를 냈다.
“어? 이게 왜 여기 떠?”
사람들이 그 스태프를 쳐다보았다.
감독 손태민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스태프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민지 구출 영상이요.”
“야. 그거 잘 관리하라니까 왜 폰에 넣어서 보....”
“인터넷에 떴습니다!”
영화사 사장 이태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그게 어떻게 인터넷에 올라갑니까! 누가 감히 올린 겁니까!”
인터넷을 하다 영상을 우연히 발견한 스태프가 목을 움츠렸다.
“예? 그, 그건 저도 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겠지!”
이태호가 김 과장에게 지시했다.
“홍보팀에 연락해서 내 딸 영상 당장 내리라고, 아니, 내가 직접 지시하겠습니다!”
그가 회사 홍보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사장님. 홍보팀장입니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서 영상 하나 내리세요.”
- 스캔들입니까?
“스캔들이 아니라!”
이태호가 홍보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영상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그런 후에 식식거리며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분명히 이 중에 유출한 사람이 있을 거야. 배우나 스태프, 아니면 저기서 밥을 먹고 있는 형사 중에 있겠지.’
잠시 후에 홍보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홍보팀장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 사장님. 이건 언론사를 통해 나간 게 아니라 SNS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퍼진 겁니다.
“그래서요?”
- 저희가 영상을 찾을 때마다 해당 사이트에 내려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렵다는 겁니까?”
- 벌써 외국 사이트에도 영상이 올라갔습니다. 국내에서 막아봤자 외국에 나간 영상이 도로 유입될 겁니다.
이태호는 안 되는 일을 무조건 되게 하라고 소리 지르는 타입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그럼 최초 유출자부터 찾으세요.”
-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독 손태민은 누가 영상을 유출했는지 찾는다며 스태프들을 잡고 있었다.
“누구야! 자수하면 목숨은 살려준다!”
이태호가 차가운 눈으로 그 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가 장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정아. 화내지 말고 들어.”
- 또 무슨 사고 친 건 아니지?
이태호가 침을 꼴깍 삼킨 후에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친 건 아니고….”
- 그럼?
“미진이 구출 영상 말이야. 그게… 유출됐다. 인터넷에 떴다고. 너무 빨리 퍼져서 막을 수가 없어.”
- 아. 그거?
이태호가 괜히 큰소리쳤다.
“걱정하지 마! 내가 그거 유출한 놈을 찾아서 박살을….”
- 민지가 올렸어.
이태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 민지가 그 영상이 보고 싶다고 해서 보여줬더니, 얘가 기운을 차렸어. 과자 아저씨가 히어로 같다면서 신나 하더니, 인터넷에 올리겠대. 과자 아저씨의 멋진 모습을 널리 알려야 한다나?
“어? 그, 그래서?”
- 당연히 그러라고 했지.
“그, 그랬구나?”
- 왜? 무슨 문제 있어?
이태호가 스태프들에게 빨리 자수하라며 소리를 지르는 손태민을 보았다.
“아니. 나 지금 급하게 말려야 할 사람이 생겨서. 나중에 전화할게.”
이태호가 전화를 끊고 손태민에게 달려갔다.
“손 감독님! 잠깐 나 좀 보시죠!”
손태민은 촬영 스태프만이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소리를 질러댔다.
“감독은 여러분에게 실망했습니다!”
이태호가 다급히 외쳤다.
“감독님. 그만 하세요!”
“똥오줌 정도는 가릴 줄 알았단 말입니다!”
“그만! 그게 아니니까 그만!”
***
나강인이 없을 때는 피시방 손님이 좀 빠진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사람이 많지만 알바생이 쉴 시간은 있다.
지금은 사장 조카 차은서의 근무시간이다.
야간 알바 윤아름은 자취방이 불에 타버려서 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녀는 학교 과제를 낮에 피시방에서 했다. 약속이 없을 때도 이곳에서 놀았다.
그러다 가끔 피시방이 바쁠 때는 근무시간이 아니라도 심부름 정도는 했다. 그래야 피시방에서 밥이 나온다.
지금은 손님이 별로 없었고 주문도 없었다.
차은서와 윤아름은 카운터 자리에서 인터넷에 뜬 영상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보는 건 나강인이 도망치는 승합차를 세우고 이민지를 구출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와. 쩐다.
- 이거 영화 홍보 영상이죠?
- 당연히 영화 홍보죠. CG 아니면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 맞아요. 달리는 차 지붕에 사람이 뛰어내리는 걸 실제로 하면요. 죽어요.
- 카메라도 폰카가 아니라 영화 촬영용 카메라로 찍은 겁니다. 그래야 영상에서 이 느낌이 나거든요.
어느 장면이 CG인지 알려주는 사람도 나왔다.
- 달리는 차 위에 뛰어내릴 때하고, 차 앞쪽으로 넘어가서 쇠파이프로 엔진룸에 구멍 뚫을 때는 확실히 CG를 썼습니다.
- 그럼 산비탈에서 점프해서 달리는 차를 향해 날아가는 장면은요?
- 당연히 와이어죠. CG로 와이어만 지운 겁니다.
- 우리나라 CG 기술 정말 많이 발전했네요. 현실감이 할리우드 CG보다 낫네.
- 차에서 내린 놈들하고 싸우는 장면은 타격감이 쩝니다.
- 이거 영화 제목이 뭡니까? 개봉하면 꼭 보러 가야지.
- 아직 제목을 공개하지 않았어요.
- 우리나라 영화인 건 맞죠?
- 영상에 사용된 차가 우리나라 승합차니까 당연히 우리나라 영화겠죠. 인터넷에 홍보 영상이 올라왔으니까 영화 제목도 곧 공개될 겁니다.
차은서가 영상을 보며 말했다.
“와. 이 영화 개봉하면 꼭 보러 가야지. 아름아. 같이 갈래?”
“가야죠. 가긴 가는데요.”
윤아름이 영상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이 사람요. 강인 오빠랑 비슷하지 않아요?”
“응? 넌 얼굴이 구분이 돼?”
이 영상은 언덕 위에서 찍었다.
나강인이 산비탈을 달릴 때는 거리가 꽤 멀어서 카메라의 줌을 당기며 찍어야 했다. 게다가 그때는 나강인의 뒷모습만 나왔다.
그가 차에 뛰어들어 엔진룸을 부숴 세우고 유괴범들과 싸울 때는 옆모습이 드러나긴 했는데, 그때는 거리가 더 멀었다.
게다가 이 영상은 원본이 아니다. 영상을 참고용 복사본으로 만들 때 파일 용량을 줄였기 때문에 화질은 원본보다 떨어졌다.
그래서 인터넷에 올라온 영상만 보고 얼굴을 알아보는 건 어려웠다.
윤아름이 영상 속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강인 오빠하고 체형이 비슷하잖아요. 그리고 만약 이게 CG가 아니라면, 강인 오빠 정도는 되어야 이런 액션이 가능할걸요?”
“응? 강인 오빠 요리 실력하고 저 영상 속 액션이 무슨 상관인데?”
“그게….”
윤아름이 불이 난 건물 옥상에 갇혔을 때 나강인이 그 건물 벽을 맨손으로 타고 올라와 그녀를 구출했다. 불타는 건물을 빠져나갈 때는 나강인이 그녀를 안고 건너편 건물까지 외줄타기로 넘어갔다.
그건 보통 사람은 목숨을 걸어도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지금 이 영상 속 남자도 그때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확신은 없었다.
“아무리 강인 오빠라도 이건 무리인가?”
“누가 해도 무리지. 그리고 그 오빠가 여기 왜 나와? 오늘 영화 밥차 알바 갔는데 언제 찍어서 CG 작업까지 하냐고.”
윤아름도 이 영상에 CG가 어느 정도는 들어갔다고 착각했다.
“그쵸? CG가 몇 시간 만에 뚝딱 나오는 건 아니죠? 그럼 아니구나.”
***
홍보팀장이 이태호에게 보고했다.
- 영상 전파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곧 관심을 가지는 기자가 생기고 기사도 나올 겁니다. 그럼 민지가 유괴될 뻔했다는 것도 알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책은 뭡니까?”
-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게 두는 것보다, 처음부터 우리가 의도한 방향으로 기사를 유도하는 게 낫습니다.
“어떻게 유도한다는 겁니까?”
- 영화 홍보에 끼워 넣는 겁니다. 영상을 우리 쪽에서 제일 처음 올렸으니까 어렵진 않을 겁니다.
이태호가 인상을 썼다.
“지금 내 딸이 겪은 일을 영화 홍보에 쓰란 말입니까?”
- 그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 영상이 영화 홍보용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자들도 그렇게 생각하게 우리가 먼저 소문을 퍼트리는 겁니다.
“목격자들은 입단속을 하고요?”
- 목격자는 모두 우리 쪽 사람 아니면 경찰입니다. 가능할 겁니다.
“아무리 단속해도 진실이 곧 알려질 겁니다. 목격자가 한두 명이 아닙니다.”
- 오늘 터진 사건과 예전에 이미 끝난 사건은 심각성이 다릅니다. 우린 딱 한 달이라도, 아니, 단 열흘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시간을 끄는 게 대책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 우리 영화가 대박이 나면, 민지 주변에서 민지를 피해자가 아니라 구출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이로 생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영화의 재촬영 방향이 액션인 걸 이용할 생각이군요.
- 예. 그게 최선입니다.
이태호가 잠시 고민했다.
홍보팀장의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린다는 보장은 없다. 일이 잘못되면 회사가 욕을 먹는다.
하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세요. 문제가 생기면 내 통장을 털어서라도 수습할 테니까 좀 무리다 싶은 것도 그냥 다 하세요.
-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
기자가 THO 엔터 홍보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아. 구 팀장님. 하하. 다른 기자들하고 저녁 먹으러 가는 중이죠. 오셔서 같이 한잔하시겠습니까?”
- 죄송합니다. 오늘은 저희 부서가 너무 바빠서요.
“아. 바쁘시다고요. 바쁘….”
기자의 눈이 반짝였다. 바쁘다는 사람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안부 전화일 리는 없다.
“뭐 재미있는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 오늘 인터넷에 사람이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싸우는 영상이 떴습니다.
“아. 그 영상이요? 저도 봤습니다.”
- 그거 저희가 공개한 영상입니다.
“이야아. 그게 THO 엔터에서 만드는 영화였습니까? 영상 멋지던데요. 특히 CG가 죽여줬죠. 어디에 CG를 맡긴 겁니까?”
- 아직은 자세한 걸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예? 말해줄 것도 아니면서 전화는 왜 한 겁니까?”
- 우리 회사가 만든 영화 ‘햇살 좋은 날’ 있잖습니까? 개봉이 코앞인데 좋은 기사 좀 부탁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아. 예. 제가 지금 저녁 약속이 있어서 통화는 다음에.... 하하하.”
전화를 끊은 후에 동료 기자가 물었다.
“뭔데?”
“영화 홍보해 달래. 햇살 좋은 날.”
동료 기자가 피식 웃었다.
“그 영화는 배우가 마약파티 현장에서 체포됐잖아. 어차피 망할 거 홍보는 해서 뭐하는데?”
“THO 엔터가 직접 투자해서 만든 영화잖아. 투자비를 조금이라도 건지고 싶나 봐.”
“그럼 와서 술이라도 사든가.”
“술은 안 사고 정보랍시고 자잘한 걸 하나 주네? 오늘 인터넷에 뜬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서 싸우는 영상 봤어?”
“봤지.”
“그거 THO 엔터에서 만든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