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29화 (29/411)

29. 시사회

손태민은 편집과 후처리 작업을 제날짜에 마쳤다. 영화는 원래 예정된 날짜에 정상적으로 개봉하기로 했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예정됐던 시사회는 모두 취소됐다. 시사회를 해야 할 기간에 영화를 다시 찍었기 때문이다.

그 일주일 사이에 영화사 홍보팀이 홍보 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풀기는 했다. 그런데 그건 기존에 만들어둔 것에서 몇 장면만 넣고 뺀 것이라 별 반응이 없었다.

어쨌든 시사회를 안 할 수는 없었다.

‘햇살 좋은 날’의 시사회는 정식 개봉 전날 밤에 딱 한 번 열기로 했다.

나강인에게 시사회 표가 몇 장 들어왔다.

그가 피시방 사장의 조카 차은서에게 물었다.

“오늘 밤에 영화 보러 갈래?”

차은서가 처음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바로 활짝 웃었다. 그러다 얼른 표정을 도도하게 고치며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했다.

“흐응. 오늘 시간이 어떻게 되려나….”

“바쁘면 말고.”

차은서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어머. 시간 엄청 많네요. 밤에 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야간 알바 윤아름이 옆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오빠! 나는요? 나는요?”

“넌 야간 알바잖아. 일 안 해?”

“저 일주일 내내 알바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늘은 쉬는 날이에요.”

“그럼 너도 같이 가자. 표 많으니까.”

“아싸아!”

대학생 해커 알바 안성환도 손을 들었다.

“형. 표 많으면 나도요.”

“너도 노는 날이냐?”

“난 원래 바쁠 때만 띄엄띄엄 일하잖아요. 나머진 다 노는 날이죠.”

나강인이 물었다.

“그럼 너희들은 오늘 일하는 날도 아닌데 왜 여기에 있냐?”

윤아름이 당당하게 말했다.

“오빠가 혹시 저녁밥 해주나 싶어서?”

“오늘 저녁은 사 먹을 거다. 영화 보고 나서.”

윤아름이 환성을 질렀다.

“아싸! 우리 나강인 배우님이 데뷔 기념으로 쏘나 보다!”

“나 배우 아니다. 데뷔한 것도 아니고.”

“스턴트맨도 배우잖아요.”

그들은 나강인이 지난 일주일 동안 영화를 찍으러 다녔다는 건 안다. 그동안 그것 때문에 자리를 많이 비웠는데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나강인이 촬영장에서 단순 무술 대역으로 일했다고 생각했다.

윤아름이 말했다.

“오빠가 출연한 영화 시사회인데 당연히 같이 봐야죠.”

“표도 공짜고.”

“그쵸! 표도 공짜죠.”

“역시 공짜 표가 목적이구나.”

“아니죠. 영화 본 다음에 오빠가 쏘는 밥도 먹어야죠. 기왕이면 술도 같이. 치맥이 좋겠다. 아. 치맥 먹어본 지 오래됐다.”

“아름아. 넌 세상이 망해도 굶어 죽진 않겠다.”

윤아름이 활짝 웃었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히히.”

***

나강인과 피시방 삼인방은 지하철을 타고 시사회가 열리는 극장으로 이동했다.

개봉 전날 밤에 급하게 하는 시사회지만, 그래도 홍보 영상을 찍을 포토존은 마련되어 있었다.

배우들은 도착하는 순서대로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름 화제가 많은 영화인 데다가 홍보팀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기자도 많이 오고 플래시도 많이 터졌다.

윤아름이 몰려있는 사람들의 뒤쪽에서 포토존을 보며 물었다.

“강인 오빠는 저기 안 서요?”

“난 영화에 얼굴이 나온 적도 없는데 저기 왜 나가겠냐?”

“하긴. 스턴트맨까지 포토존에 서지는 않겠네.”

그들은 그곳에서 포토존에 서는 배우들을 구경했다.

새로운 배우가 등장했다. 윤아름이 손뼉을 쳤다.

“앗! 김유찬이다!”

남자 주인공 김유찬이 포토존에 올라갔다.

그는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뒤쪽에서 구경하는 나강인을 발견했다.

김유찬이 나강인을 향해 손을 크게 흔들며 활짝 웃었다.

윤아름은 신났다.

“봤어요? 김유찬 님이 저를 보고 웃었어요! 손도 엄청 크게 흔들어줘요!”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옆에서 초를 쳤다.

“너한테 하는 거 아니야. 이쪽 방향에 있는 기자들한테 하는 거야.”

기자들도 김유찬이 그들에게 손을 흔드는 줄 알았다.

“김유찬이 사람이 됐네.”

“예의가 있어.”

나강인이 말했다.

“대충 구경했으면 들어가자.”

그는 피시방 삼인방을 데리고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극장 로비에서 신은하과 딱 마주쳤다.

신은하는 나강인을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앗! 강인 오빠! 와줬구나!”

신은하와는 지난번에 횟집에 간 날 2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말을 놓았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공짜 영화표가 네 장이나 왔길래.”

윤아름과 안성환은 지난번에 피시방에서 신은하와 인사했다. 차은서는 신은하와 옛날부터 한동네에 살면서 알던 사이다.

차은서가 손을 흔들며 조용히 말했다.

“언니. 안녕?”

“안녕? 오는 김에 아저씨도 데려오지.”

“삼촌 바빠요.”

윤아름은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와. 은하 언니. 너무 예뻐요!”

신은하가 새끼손가락 끝을 붉은 입술에 대며 생긋 웃었다.

“훗. 내가 원래 엄청 예뻐.”

“히히. 인정!”

주연배우 김유찬이 다가오며 말했다.

“강인 씨. 방금 내가 손을 그렇게 열심히 흔들었는데 어떻게 아는 체도 안 하고 휙 들어가요? 상처받았습니다.”

“거기서 아는 체를 어떻게 합니까? 기자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 기회에 강인 씨 얼굴 좀 알리려고 그랬죠.”

윤아름은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그녀는 김유찬과 나강인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와. 강인 오빠가 김유찬 님하고 막 대등하게 이야기를 해.”

차은서도 놀란 눈으로 맞장구쳤다.

“강인 오빠 엄청 대단한 사람이 됐구나. 김유찬 님하고 아는 사이라니.”

“은서 언니. 나도 영화 찍을까? 나도 엑스트라 하면 막 배우들하고 아는 사이 되고 그러나?”

“아니. 네 이름조차 모를걸?”

“그럼 강인 오빠는 왜 김유찬 님하고 아는데?”

차은서가 잠시 생각하다 눈을 크게 뜨며 손뼉을 쳤다.

“알았다! 밥이야!”

“응?”

“강인 오빠가 처음에는 촬영장에 밥차 하러 갔잖아. 김유찬 님이 강인 오빠 밥맛을 본 거지.”

윤아름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아하! 오빠 밥맛! 그건 인정이지.”

갑자기 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초딩 이민지가 다다다 소리를 내며 달려와서 나강인에게 덥석 안겼다.

“과자 아저씨!”

나강인도 이민지를 슬쩍 안아주었다.

“넌 본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렇게 반가워해? 그동안 톡은 했잖아.”

“히히. 이러고 있으면 든든해서요.”

이태호 장미정 부부가 다가왔다.

이태호가 웃으며 말했다.

“강인 씨를 위해서 좋은 자리를 잡아놨습니다.”

나강인이 초대권을 확인했다.

“우리 좌석 번호가….”

“거긴 그냥 비워두시죠.”

이민지가 자랑했다.

“과자 아저씨 자리는 제 옆자리예요!”

윤아름이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리며 말했다.

“대박. 장미정 님하고도 아는 사이야! 은서 언니. 나 진짜 요리도 배우고 엑스트라도 할까?”

차은서가 얼른 윤아름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강인 오빠. 우린 우리끼리 보면 되니까 가세요.”

***

나강인과 이민지가 앉은 곳은 앞에서 두 번째 줄이었다.

제일 앞줄에는 감독과 주연급 배우들이 앉았다.

피시방 삼인방은 좀 더 뒤에 앉았다. 영화는 제일 앞줄보다 그쯤에서 보는 게 더 나았다.

THO 엔터는 한 번밖에 없는 시사회를 홍보에 활용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그래서 이 시사회에는 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은 유명 배우들이 많이 참석했다.

차은서가 좌우를 돌아보더니 긴장한 얼굴로 윤아름에게 속삭였다.

“아름아. 전후좌우가 다 배우들이야.”

“알아요. 엄청 좋아하는 분들인데, 여기서 싸인 받으러 다니면 민폐겠죠?”

“우린 성환이가 아니잖아? 바보짓은 하지 말자.”

윤아름이 앞쪽을 보다가 손을 맞잡았다.

“앗! 강인 오빠 앞에 있는 분, 손태민 감독님이잖아요. 뒤를 보고 강인 오빠랑 무슨 이야기를 막 하는데요?”

“와. 손태민 감독님이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강인 오빠 밥이 맛있긴 하죠. 다음에도 밥차 끌고 오란 말 하나보다. 나 진짜 저 오빠한테 요리 배워서 밥차 몰아볼까요?”

차은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인 오빠 요리법은 보통 사람은 못 배워. 양념을 계량도 안 하고 감으로 쓱쓱 넣는 데다가, 그 무거운 대형 프라이팬이나 솥을 막 흔드는 거 봐. 넌 그걸 할 수 있겠어?”

“아뇨. 하긴. 최대 화력으로 놓고 대량으로 조리하는 그 특이한 요리법은 보통 사람은 못 따라 하죠.”

손태민 감독이 나강인에게 말했다.

“강인 씨도 무대 인사를 같이하면 진짜 좋을 텐데. 지금이라도 생각이 바뀌었으면 같이 나갈까요?”

“전 배우가 아니라서 얼굴이 공개되면 일상생활이 피곤해집니다.”

손태민도 밖에 나가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그는 지하철을 타지 않는다. 김유찬이나 신은하쯤 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렇죠.”

무대 인사는 손태민과 배우 몇 명이 했다. 그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한 후에 실내가 어두워지고 영화가 시작했다.

영화는 처음 시나리오보다 액션이 많이 추가됐다. 그런데 그 액션이 영화와 굉장히 잘 어울렸다.

사람들은 영화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기자와 배우들이 많이 모였지만 떠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이 밝아지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 몇 명이 무대에 올라가서 그 질문에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손님으로 참석한 배우들은 시사회장에서 나왔다.

그들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와. 이거 로맨스 영화인 줄 알았는데 장르가 다르네?”

“액션 로맨스라고 해야 하나?”

“제목은 왜 ‘햇살 좋은 날’이라고 지은 거야? ‘목숨 걸고 싸우기 좋은 날’이라고 해도 되겠다.”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그들은 특히 액션 연기에 관심이 많았다.

“김유찬이 한 액션 말이야. 진짜 자연스럽더라.”

“김유찬은 몸치라서 그렇게 못해. 대역배우가 했겠지.”

“그치? 근데 무술감독이 누구야? 사람들이 싸울 때 어색함이 1도 없잖아.”

상영관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있었다.

시사회에 초대받아 온 배우가 그 배우를 발견하고 불렀다.

“형준아!”

“아. 형님. 오셨어요?”

“야. 이 영화 로맨스도 좋지만 액션이 진짜 끝내주더라. 액션 덕분에 영화가 더 살았어. 역시 손태민 감독님이야.”

“흐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데 무술감독이 누구야?”

“없는데요?”

“응? 뭐가 없어.”

“우리 영화 장르가 원래 로맨스코미디잖아요. 무술감독이 왜 있겠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배우가 물었다.

“저 영화가 어떻게 그냥 로코야? 액션 로코지.”

“그거야 사고 터져서 다시 찍을 때 액션이 추가돼서 그런 거고요.”

조연 배우가 마약파티에서 체포되는 바람에 영화의 많은 부분을 일주일 만에 다시 찍었다는 소문은 다른 배우들도 들었다. 다만 자세한 내용까지는 몰랐다.

모여있던 배우 중 한 명이 손을 살짝 들며 물었다.

“아니, 잠깐. 그 액션들이 급하게 다시 찍은 거라고? 원래 찍어둔 부분이 아니고?”

“네. 원래 대본에는 그냥 말싸움을 하거나 가볍게 주먹질하는 장면밖에 없었어요.”

“액션이 되게 많던데?”

“많죠. 그런데 그걸 일주일 만에 시나리오 다시 써서 찍고 편집까지 했다던데요. 전 재촬영에 참여 안 해서 찍는 건 못 봤지만요.”

질문한 배우가 감탄했다.

“와. 역시 손 감독님. 장난 아니다.”

다른 배우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아니야. 아무리 손 감독님이라 해도 그게 말이 되나? 액션 동선 짜는 건 뭐 그냥 되는 줄 알아? 움직임도 서로 맞춰봐야 하는데 저 많은 걸 어떻게 일주일 만에 다 찍어?”

불려온 배우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과물이 저렇게 나왔는데도 못 믿으시면야 뭐….”

다른 배우가 침을 꼴깍 삼키고 흥분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일단 믿을게. 그럼 그 일주일 동안 액션 동선 다 짜주고 액션 지도까지 해준 무술감독이 있을 거 아냐? 그분이 누구야?”

“밥차 아저씨요.”

“응?”

“저도 들은 이야기인데요. 밥차 아저씨가 밥하다가 남는 시간에 도와준 거라던데요?”

모여있던 배우들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림사 주방장이냐?”

“진짜 신기하죠?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니까요?”

백발이 성성한 배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옛날에는 빠르면 일주일에 영화 한 편이 나올 때도 있었지. 그땐 그렇게 찍기도 했어.”

모여있던 배우들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 박 선생님. 오셨습니까?”

그 배우가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은하가 납치됐다가 구출되는 장면에서 건물이 무너졌잖아. 그 건물 무너지는 장면도 설마 지난 일주일 사이에 찍었단 소리인가?”

“예. 그렇다던데요.”

“내가 요즘 최신 기술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어떤 작업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대충은 알아. 그거, CG 작업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그거 CG 아니라던데요?”

그곳에 있던 모든 배우가 당황했다. 요즘 그런 장면은 다 CG로 처리한다. 그게 상식이다.

“그럼 어떻게 그 특수효과를 다 처리했다는 거지?”

“특수효과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던데요.”

“어? 뭐?”

그 배우가 공손히 대답했다.

“실제로 세트장이 무너지는 곳에서 신은하 씨를 구출하는 장면을 영화에 그대로 썼다고 들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배우가 물었다.

“잔해가 막 떨어지는데 그걸 쇠파이프로 쳐내면서 빠져나왔잖아. 그건?”

“그것도 다 실제 상황이었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됐다던데요. 그래서 그걸 본 손태민 감독이 시나리오를 뜯어고쳐서 아예 액션을 대규모로 추가했다고….”

노배우가 당황한 얼굴로 입만 뻐끔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몇 명이나 죽었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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