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영화 개봉
실제 사고 장면을 영화에 몰래 썼다가 나중에 그 사실이 밝혀지면 당연히 문제가 된다.
그래서 THO 엔터는 시사회장에서 그 사실을 공개하기로 했다. 총대는 손태민 감독이 맸다.
세트장 붕괴 장면이 실제 사고라는 걸 들은 기자들은 당황했다.
“잠깐만요. 그 장면이 실제 상황이었다고요?”
“손 감독님. 미치신 거 아닙니까?”
“아무리 영화가 중요해도 이건 아니죠!”
손태민이 미리 준비한 대답을 했다.
“우리가 일부러 무너뜨린 건 절대로 아닙니다. 사고 영상이 찍힌 것을 썼을 뿐입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부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세트장만 무너졌습니다. 그때 조금이라도 다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장면을 영화에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도 나중에 여론이 나빠질 수는 있다. 그건 그때 가서 영화사 홍보팀이 해결하기로 했다.
기자가 질문했다.
“신은하 씨! 혹시 그 일로 어떤 치료를 받으신 건 아닙니까?”
신은하가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아뇨. 저 아주 건강해요.”
“몸은 다치지 않았어도 충격이 컸을 것 아닙니까?”
“사실 전 그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잘 몰랐어요. 나중에 영상 보니까 저 되게 안전했더라고요. 저게 재촬영 첫날 일어난 일이에요. 제가 그 이후 촬영도 얼마나 잘했는데요.”
“영화를 보니 연기를 참 잘하신 건 알겠습니다만….”
영화 속 신은하는 사고로 트라우마가 생긴 배우가 억지로 연기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김유찬 씨가 그 상황에서 혼자도 아니고 신은하 씨까지 데리고 빠져나온 겁니까?”
주연배우 김유찬이 손을 흔들었다.
“에이. 제가 했으면 전 죽었죠.”
사람들이 농담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기자가 물었다.
“그럼 그건 누가 한 겁니까?”
“밥차 아저씨가 했습니다.”
“예?”
“밥차 아저씨가 저랑 몸이 되게 비슷해서 대역을 부탁드렸는데, 그게 대박이었죠. 하하하.”
기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신은하가 김유찬을 살짝 건드리며 속삭였다.
“그 이야기를 왜 굳이 여기서 해요?”
“어? 아. 말하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기자가 물었다.
“그 밥차 아저씨라는 분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김유찬이 신은하와 손태민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공식적으로는 일반인입니다.”
“예? 누구냐니까 그게 무슨….”
“저랑 되게 친합니다. 같이 술도 마셨습니다. 하하하.”
신은하가 김유찬의 팔을 다시 툭 쳤다.
김유찬이 얼른 마무리했다.
“아. 일반인의 생활이 있는 분이니까 기사에서는 좀 빼주시죠.”
***
‘햇살 좋은 날’은 처음 제작할 때부터 사람들이 기대를 많이 한 영화다.
감독은 로맨스로 유명하고 주연 배우들도 화려했다.
영화사가 100억이 넘는 제작비를 직접 투자했다는 것도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시나리오가 워낙 좋아서 직접 투자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영화 개봉 일주일 전에 중요 조연이 마약파티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 배우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을 일주일 만에 재촬영한다는 것도 기사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기대를 접었다. 그때는 인터넷 영화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댓글이 많이 달렸다.
- 그 배우가 출연한 장면이 엄청 많다던데, 언제 찍고 언제 편집하고 언제 후처리해서 극장에 거나.
- ‘햇살 좋은 날’은 손태민 감독의 흑역사가 될걸?
- 손태민 감독의 장점이 아름다운 영상인데, 그렇게 급히 찍은 영상이 아름답겠냐고.
- 아마 NG가 나도 모르는 척 그냥 찍겠지.
그 예상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손태민은 어지간한 건 그냥 넘어가곤 했다.
- 손태민만 흑역사인가? 김유찬도 흑역사 찍은 거지.
기대를 접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예매표 환불도 많아졌다.
그러다 시사회 기사가 인터넷에 떴다. 그 기사는 호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 영화가 생각보다 잘 나왔나?
- 역시 손태민 감독. 영화를 어떻게든 살렸나 봐.
물론 그런 기사를 믿지 않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 개봉일 전날 밤에 나온 기사를 어떻게 믿나요. 그거 영화사 홍보팀이 대신 써준 기사일걸요?
- 영화사는 100억이나 되는 투자금을 다 날리게 생겼으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죠.
의견이 갈리면서 댓글로 싸움이 붙었다.
그러다 부정적인 댓글을 열심 달던 사람이 선언했다.
- 내가 내일 직접 보고 오겠습니다. 보고 나서 구체적으로 까겠습니다.
이튿날 영화가 개봉됐다.
직접 보고 오겠다고 선언한 사람은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관객은 몇 명 없었다. 그 사람이 피식 웃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시작부터 아주 쫄딱 망했네. 망했어.”
그는 승리를 자신하며 영화가 시작하길 기다렸다.
“광고가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
그날 오후에, 전날 영화를 직접 보고 오겠다고 선언한 사람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감상평을 적었다.
- 나를 매우 치십시오. 내가 알지도 못하면서 나댔습니다.
- 왜요? 영화가 어떤데요?
- 대박 작품입니다.
그는 왜 그 영화가 대박인지 짧은 감상평을 썼다. 내용을 미리 말해주면 욕을 먹기 때문에 순수하게 그가 느낀 감정만 적었다.
- 저는 오늘 정말 아름다운 로맨스와 유쾌한 코미디, 그리고 진짜 화끈한 액션을 봤습니다.
칭찬만 하는 글을 보고 의심하는 사람이 생겼다.
- 이쯤 되면 님이 어제 일부러 그 영화를 욕했던 거 아닌가 싶은데요? 혹시 영화사 알바?
- 직접 가서 보세요. 로맨스는 역시 손태민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액션은 ‘아니, 손태민 감독이 이걸?’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액션이 아주 미쳤습니다.
- 진짜 액션이 그렇게 좋아요? ‘햇살 좋은 날’은 로맨스코미디인데요?
- 일단 한 번 보시라니까요? 액션 진짜 쩝니다.
***
영화의 추가 촬영과 편집이 개봉 직전에 끝나는 바람에, 새 홍보 영상은 영화 개봉일이 되어서야 완성됐다.
영화사는 영화 개봉 당일에 그 홍보 영상을 인터넷에 풀었다.
홍보 영상의 내용은 로맨스가 절반이고 액션이 절반이었다. 홍보팀은 영상 하나에 두 장르를 적절히 섞었는데 그게 또 잘 어울렸다.
그리고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
무너지는 건물에서 신은하를 구출하는 장면이,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가 영화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왔다. 게시판은 즉시 불타올랐다.
-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 내가 오늘 저 영화 보고 왔는데, 그 건물 붕괴 장면은 CG가 아니면 찍는 게 불가능한데?
- 왜 불가능하죠?
- 그게 실제 상황이면, 보통은 거기서 죽어요.
- 예? 그럼 그런 잔혹한 장면을 영화에 그대로 내보냈다고요?
- 아니요. 진짜 죽었단 말은 아니고요. 실제로 보면 되게 멋있어요. 하나도 안 잔혹해요. 그런데 그건 실제 상황인 줄 모르고 봤으니까 그런 거고….
그 기사를 먼저 보고 영화를 본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도 글을 남겼다.
- 실제 상황인 걸 알고 그 장면을 보면요. 진짜 스릴 장난 아닙니다. 와. 그 장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다시 돋네.
게시판에 액션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영화 자체가 워낙 잘 나왔다. 기존에 찍었던 로맨스 버전도 잘 나왔는데 액션이 적절히 섞인 지금 영화는 더 잘 나왔다.
- 내가 장담합니다. ‘햇살 좋은 날’은 손태민 감독의 대표작이 될 겁니다.
THO 엔터 사장 이태호는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좀 있었다. 영화가 망하면 THO 엔터는 물론이고 철인기공까지 위험해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초조한 심정으로 영화 결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개봉 첫날 성적은 처참했다.
“저희 팀원들이 극장에 실사를 나가봤는데, 관객이 별로 없습니다. 텅텅 빈 영화관도 많았습니다.”
이태호가 회의실에서 그 보고를 받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이 영화 망하면 안 되는데. 본전이라도 건져야 하는데.”
홍보팀장이 말했다.
“우리 홍보팀이 최선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겁니다.”
“제발 그랬으면.”
***
나강인은 영화의 흥행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평소처럼 피시방에 있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이제 이 임시 거점을 벗어나 좀 더 안정적으로 지낼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해야 합니다.
“여긴 좀 그렇지?”
- 어디가 됐든 피시방 휴게실 간이침대보다는 편할 겁니다. 충분히 쉬어야 요원님이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산으로 새 거점을 구할 수 있나?”
- 곧 들어올 영화 출연료로 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겠습니다.
“그 돈으로 충분하겠어?”
- 부족합니다. 생활 거점만이 아니라 장비 제작용 거점도 추가로 확보해야 하는데 예산이 없습니다.
“장비라….”
- 요원님은 현재 보유 장비가 전혀 없습니다.
“없어도 불편한 줄 모르겠다.”
- 최소한의 필수 장비를 획득하거나 직접 제작해야 합니다. 장비를 제작하려면 필요한 설비가 포함된 안정적인 거점을 확보해야 합니다.
“피시방 알바로 그 예산까지 버는 건 어렵겠지.”
- 그 방법은 너무 오래 걸립니다.
나강인은 영화 흥행에 관심이 없지만 피시방 삼인방은 관심이 아주 많았다.
윤아름이 일하다 남는 시간에 영화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며 말했다.
“그 영화 진짜 재미있는데 관객석은 텅텅 비었대요. 오빠. 어떻게 하죠?”
나강인이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해결되는 문제야?”
“당연히 아니죠. 그치만 오빠 첫 출연작이잖아요. 잘 되면 좋잖아요.”
“잘 되겠지.”
***
걱정은 기우였다.
개봉 이튿날은 입소문이 나면서 관객이 급증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매진되는 곳이 생겼다.
영화를 보러 온 커플이 불평했다.
“와. 이거 인터넷에서 대박이라고 해서 보러 왔는데 표가 없다.”
여자친구가 물었다.
“예매한 거 아녔어?”
“어제 영화관에 자리가 많이 남았다길래 그냥 와도 될 줄 알았지.”
“장난해? 우리 그럼 이제 뭐 봐?”
“내 얼굴?”
“죽는다?”
“야! 너 변했어! 전에는 나보고 귀엽다며!”
“앗! 다음 회차는 표가 남아있으니까 밥부터 먹고 오자!”
***
보고서를 확인한 이태호가 두 손을 위로 번쩍 들며 외쳤다.
“살았다!”
감독 손태민이 THO 엔터 사장실에서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채로 웃었다.
“흐흐. 그것 보십쇼. 내가 다 잘 될 거라고 했잖습니까? 우리 영화는 관객이 안 들어올 수가 없어요. 전 이거 홍보만 잘하고 개봉관만 충분히 잡으면 천만 간다고 봅니다.”
홍보는 망했지만, 개봉관은 THO 엔터가 회사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최대치로 잡아놨다. 개봉관을 너무 많이 잡아놔서 제때 개봉하지 못하면 회사가 치명상을 입을 뻔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이 잡은 개봉관 중 상당수가 관객석을 꽉꽉 채웠다. 그게 영화 개봉 3일째에 받아본 성적표였다.
이태호가 활짝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이 추세로 쭉 밀어서 천만 가야지요! 천만 감독 손태민 감독님!”
손태민이 국내에서 손꼽히는 로맨스 감독이긴 하지만, 관객 천만을 돌파한 영화는 아직 찍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손태민이 손가락 옆쪽으로 코끝을 슬쩍 문지르며 말했다.
“훗. 다음에는 본격 액션 느와르 영화를 만들어볼까요?”
“예? 손 감독님. 이번엔 다행히 잘 됐지만, 액션은 전문분야가 아니실 텐데….”
손태민이 등을 소파 등받이에서 떼며 진지하게 말했다.
“제가 예전부터 찍고 싶었던 진짜 좋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강인 씨가 액션만 맡아주면 바로 시나리오 작업을 들어갈 겁니다.”
나강인의 이름이 나오자 이태호가 태도를 바꾸었다.
“손 감독님. 그럼 그 영화도 우리랑 계약하시죠. 이번 영화로 돈 많이 벌면 그 영화에 넉넉하게 투자할 테니까, 다음 영화는 아예 액션 블록버스터로 가시죠!”
“하하하. 그럴까요?”
“그런데 손 감독님. 나강인 씨하고는 이야기가 다 된 거지요?”
“이야기는 이제 해야지요.”
“예?”
손태민이 큰소리쳤다.
“나강인 씨가 설마 이 좋은 기회를 싫다고 하겠습니까? 하하하. 아. 말 나온 김에 지금 전화를 걸어볼까요?”
손태민이 스마트폰을 꺼내 느긋하게 연락처를 열었다. 나강인의 전화번호는 이미 즐겨찾기에 등록해두었다.
손태민이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열심히 갔지만 받지는 않았다.
“어…. 안 받네요? 하, 하하. 바쁜가 봅니다.”
***
나강인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안 받을 때가 많다.
“중요한 일이면 문자라도 다시 보내겠지.”
윤아름이 영화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소식을 보며 손뼉을 쳤다.
“와. 영화 대박 났나 봐. 오빠 좋겠다.”
나강인이 말했다.
“대박 났으면 영화 찍은 사람들은 좋겠지. 난 러닝 개런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오빠도 좋죠. 다음 영화에서는 액션 대역이 아니라 정식으로 출연하는 배우를 시켜줄지도 모르잖아요.”
“음….”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영화배우로 활동하면 장비 제작 거점 확보에 필요한 예산을 지금보다는 빨리 모을 수 있을 텐데.”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너무 많은 사람이 요원님의 얼굴을 알아볼 정도로 유명해지면, 임무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알아. 역시 그건 비효율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