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1화 (31/411)

31. 라디오

나강인과 AI 전지인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재 상황을 잠입 침투 작전이라고 가정하고 활동 중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강인이 배우가 되어 유명해지는 것이 이 잠임 침투 작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이건 정상적인 작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배우가 돼서 장비 제작 거점 예산을 확보하는 계획은 일단 보류.”

나강인이 윤아름에게 말했다.

“그 영화에서는 잠깐 알바 한 거야.”

“배우 해도 잘할 것 같은데.”

나강인이 적당히 둘러댔다.

“배우가 되려면 연기력도 있어야 하는데, 넌 내가 대사치는 거 본 적 있냐?”

“없죠. 오빠는 연기가 안 되는구나.”

***

손태민 감독이 이태호에게 설명했다.

“나강인 씨가 마스크 때문에 표정 연기를 보여준 건 아니지만, 몸 쓰는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이태호가 물었다.

“연기를 배웠단 말입니까?”

“그건 저도 모르죠. 그래도 연기에 관심이 있으니까 몸 쓰는 연기를 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역시 손 감독님은 나강인 씨에게 배역을 정식으로 맡길 생각이신가 봅니다.”

손태민이 씩 웃었다.

“다음 영화의 액션 총괄은 당연히 나강인 씨에게 맡기고, 연기가 가능한 선에서 배역도 맡기고 싶습니다. 어쨌든 다음 영화는 꼭 나강인 씨하고 할 겁니다. 하하하.”

이태호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액션 느와르를 찍든 액션 블록버스터를 찍든 당연히 그러셔야죠. 손 감독님이 나강인 씨 싸인만 받아오시면, 우리 회사가 이번처럼 직접 투자해서 감독님의 다음 영화를 제작하고 싶군요.”

***

나강인이 윤아름에게 말했다.

“영화는 한 번 해봤으니까 됐어.”

윤아름이 입맛을 다셨다.

“아쉽다. 잘할 것 같은데.”

“난 다른 일 하느라 바쁘다.”

“맨날 노는 거 같은데.”

“노는 거 아니다.”

“그럼 뭐 하는 건데요?”

“음….”

나강인이 사실대로 말해보았다.

“지구 연합군의 특수 임무?”

윤아름이 코웃음을 쳤다.

“노네.”

***

영화 ‘햇살 좋은 날’은 관객이 빠른 속도로 늘었다. 이제 대도시에 있는 영화관은 새벽과 심야 시간대 외엔 표가 매진될 때가 많았다.

영화평도 좋았다. 전문가의 평도 좋았고 관객이 찍어주는 별점도 높았다.

손태민은 이전에도 잘나가던 로맨스 감독인데, 이젠 더 잘나갔다.

영화 관련 잡지사 기자가 손태민을 인터뷰했다.

“감독님께서는 이번 영화는 로맨스코미디 앤 액션영화라고 하셨는데요. 액션이 정말 잘 나왔다는 평이 많습니다.”

손태민이 웃었다.

“하하하. 그래서 다음에는 액션에 중점을 두고 영화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아! 벌써 새 영화를 준비하시는 건가요?”

“아직 구상만 하는 단계죠. 그게 나 혼자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

주연인 김유찬은 원래 스타급 배우다. 그런 그도 인기가 더 많아졌다는 걸 느꼈다. 그는 그걸 즐겼다.

영화 관련 잡지사 기자가 물었다.

“‘햇살 좋은 날’에서 김유찬 씨가 보여주신 강렬한 모습을 보고 반한 팬이 많다던데요.”

“하하하. 그게 어디 저만 잘해서 된 거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다들 좋아해 주시니 기쁩니다.”

“제가 먼저 손태민 감독님을 인터뷰했는데, 차기작은 본격 액션 영화로 준비하시겠다더군요. 혹시 아십니까?”

“그래요? 전화부터 해봐야겠네요.”

기자가 얼른 물었다.

“아! 김유찬 씨도 손태민 감독님의 차기작에 참여하시려는 거군요! 그래서 손 감독님한테 전화하시는 거죠?”

“아니요. 다른 분한테요.”

“네?”

“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

나강인의 휴대폰에 김유찬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유찬은 같이 술을 마신 사이라 주소록에 이름이 있었다.

“여보세요?”

김유찬이 살짝 흥분한 소리로 물었다.

- 강인 씨! 손 감독님 다음 영화에 참여한다면서요?

“손 감독님이 또 영화를 찍습니까?”

- 네? 몰라요?

“모릅니다.”

- 혹시 감독님 연락은 받았고요?

“아뇨.”

- 에이. 헛소문이었네. 나와요. 밥이나 먹죠. 내가 살 테니까.

나강인은 지금 밥장사를 준비하는 중이다.

“밥해야 해서 바쁩니다.”

***

영화 ‘햇살 좋은 날’은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손태민 감독은 원래 로맨스 영화를 잘 만들었다. 이번 영화는 로맨스코미디라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좋았다.

게다가 액션도 굉장히 좋았다.

영화 취향이 서로 다른 커플이 봐도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영화였다.

관객의 현장 반응도 좋고 평점도 좋았다. 인터넷에는 영화를 칭찬하는 글이 넘쳐났다.

그렇다고 모든 논란이 묻힌 건 아니다.

중요 조연이 개봉 직전에 마약파티에서 체포된 것을 문제 삼는 기사가 여러 번 나왔다.

[배우의 마약 사건이 터진 지 열흘도 안 돼서 영화를 개봉하는 게 과연 옳은가?]

[너무 서둘렀다. 좀 더 자중했어야 했다.]

세트장이 무너진 사고 장면을 영화에 그대로 넣은 것도 문제가 됐다.

[영화 현장의 안전 불감증. 이대로 좋은가.]

그 기사가 나간 후에 영화사 홍보팀장이 신은하에게 라디오 생방송의 게스트를 부탁했다.

“은하 씨가 나가서 해명을 좀 해줬으면 합니다. 세트장이 무너질 때 은하 씨가 거기 있었잖아요.”

“그럴게요.”

“라디오에서 이야기만 잘 해주시면 우리 홍보팀에서 잘 가공해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습니다. 그러면 상황 수습에 도움이 될 겁니다.”

신은하가 큰소리쳤다.

“저만 믿으세요. 까짓거 제가 혼자 나가서 일당백으로 다 해결할게요!”

“혼자는 아니고, 유찬 씨도 나갈 겁니다. 이 이슈는 최대 화력으로 초반에 진압해야 해서 두 분께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

인기 변화를 제일 크게 체감하는 사람은 신은하였다.

그녀는 원래 여자 주인공에게 한참 밀리는 삼각관계 조연 역할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할 때는 여주인공의 강력한 경쟁자로 바뀌어 있었다.

신은하가 피시방에 찾아와 자랑했다.

“나 전에는 신인상 후보에도 오르고 그랬거든? 그때도 잘나갔는데, 와, 이번 영화 찍고 나서 ‘그때 그건 잘나간 것도 아니었구나.’라는 걸 느낀다니까?”

나강인이 물었다.

“그럼 찾는 곳도 많겠네.”

“당연하지. 오늘도 스케줄이 두 개나 있어. 하나는 아까 했고 라디오가 하나 남았어.”

“그렇게 바쁜 사람이 여기는 왜 왔을까?”

신은하가 피시방 주방에서 잡탕밥을 먹으며 대답했다.

“오빠가 해주는 맛있는 밥 먹으러?”

“한국에 맛집이 여기만 있나?”

“이런 맛있는 요리를 파는 곳은 보통 엄청 비싸. 근데 여긴 공짜잖아.”

“그럼 돈 내고 사 먹든가.”

“직원들은 공짜로 먹던데?”

“그럼 너도 알바라도 하든가.”

신은하가 숟가락을 살살 흔들며 웃었다.

“요즘 내가 워낙 잘나가. 나 여기서 알바 하면 큰일 날 걸? 오호호호.”

“악당처럼 웃지 말고.”

“네에.”

그녀가 시계를 확인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후에 두 손을 내밀었다.

“잡탕 과자 좀 줘.”

“맡겨놨냐?”

옆에서 윤아름이 재빨리 일렀다.

“은하 언니. 그냥 잡탕 말고 스페셜로 만들어달라고 해요. 우리도 같이 먹게.”

“스페셜?”

“그거 진짜 맛있어요.”

신은하가 두 손을 꽃받침처럼 만들어 턱에 대며 말했다.

“옵빠! 은하는 스페셜 잡탕 과자가 먹고 싶어요.”

윤아름이 감탄했다.

“와. 은하 언니. 나 그거 맨정신에 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역시 배우는 다르구나.”

신은하는 당당했다.

“배우가 되면 미친년 연기도 해야 하는데 이 정도는 쉽지. 그리고 난 예쁘니까 해도 괜찮아. 근데 강인 오빠. 내 스페셜 잡탕 과자는 언제 나와? 나 방송국에 가야 하는데.”

나강인이 물었다.

“제과점에서 파는 수제 과자도 맛있을 텐데? 그냥 그거 사 먹지?”

야전 전술 요리는 대부분 그때그때 있는 재료를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든다. 그가 만든 잡탕 과자가 맛있긴 하지만, 재료에 따라 맛의 기복은 좀 있다.

게다가 전문 제과점의 수제 디저트 중에도 그만큼 맛있는 건 있다.

신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난 이게 더 좋아. 오빠 과자에서는 특별한 맛이 난다니까? 방송국에 가져가서 자랑하게 많이 만들어줘. 아주 많이.”

그녀가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이마안큼!”

“그럼 돈을 내라고.”

“앗! 지갑을 안 가져왔다!”

나강인이 윤아름에게 말했다.

“아름아. 잡탕밥 남은 거라도 뺏어라. 저건 손님이 아니다.”

***

라디오 생방송의 게스트로 신은하와 김유찬이 나왔다.

먼저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간 후에 진행자가 물었다.

“영화를 다시 찍다가 세트장이 무너진 사고 이야기를 좀 하죠. 신은하 씨는 그때 크게 다칠 뻔했죠?”

신은하가 손을 흔들며 웃었다.

“에이. 아니에요. 그때 진짜 하나도 안 위험했어요. 얼마나 든든했는데요.”

“머리 위에서 쇠로 된 조명이 막 떨어지는데도요?”

“그거 다 그분이 쾅쾅 쳐냈잖아요. 그때 거기서 그 모습을 직접 보면요. ‘아. 나는 지금 되게 안전하구나.’라는 느낌이 든다니까요?”

그 사건을 더 가볍게 만들기 위해 김유찬도 끼어들었다.

“그때 저도 그 장소에 같이 있었습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유찬 씨는 왜 영화에는 안 나왔죠?”

“그분이 은하 씨는 그렇게 멋지게 보호했지만, 전 그냥 멀리 던져버렸거든요.”

“예?”

김유찬이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좀 멋없게 날아가서 영화에는 안 나왔습니다. 하하하.”

라디오 PD가 방송 게시판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글 중 하나를 진행자에게 보냈다.

진행자가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재미있는 댓글이 올라왔네요.”

진행자가 그 글을 읽었다.

“그러니까 남자는 귀찮으니까 대충 던져버리고 예쁜 여자는 안전하게 보호했다는 거네요? 아.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청취자께서 달아주신 댓글입니다.”

김유찬이 얼른 손을 흔들었다.

“어? 아뇨. 농담입니다. 농담. 같은 장면에서 제가 두 명이 나오면 안 되니까 저부터 빠진 거죠. 절 바깥으로 던져준 분이 제 대역이었으니까요. 하하하.”

진행자가 물었다.

“그 대역배우 말입니다. 제가 듣기론 전문 배우가 아니라면서요? 밥차 아저씨라는 말도 있던데요.”

김유찬이 괜히 신나서 말했다.

“원래 제 대역배우가 다쳐서 급히 다른 대역을 찾아야 했는데, 누굴 불러올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대역을 찾았는데, 몸이 저랑 비슷하면서 운동 좀 해본 사람은 밥차 아저씨 딱 한 명이었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대역을 부탁했죠.”

“그랬는데 대박이 터진 거군요.”

“예. 저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PD가 새로운 댓글을 보냈다.

진행자가 말했다.

“새 댓글을 읽겠습니다. 에이. 난 다 알 거 같은데요. 그냥 밥차 아저씨가 어떻게 그렇게 액션을 잘하겠어요. 영화를 띄우려고 액션 잘하는 배우를 밥차에 배치한 거죠?”

THO 엔터 홍보팀장은 영화 속 사고가 실제로는 위험하지 않았다는 기사의 소스로 쓰려고 이 방송을 잡았다.

그런데 홍보팀장은 라디오 PD가 공격적으로 나오는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신은하가 재빨리 이야기의 방향을 바꾸었다.

“아까 인사드릴 때 나눠드린 과자 맛있었죠?”

진행자가 신은하의 의도에 맞춰 맞장구를 쳤다.

“진짜 맛있더군요. 그거 어디서 파는 겁니까? 방송 중에 상호를 말하면 안 되니까 나중에 저한테만 살짝 말해주시죠.”

“괜찮아요. 그건 어디서 파는 게 아니라 밥차 아저씨가 프라이팬으로 쓱쓱 만든 거니까요.”

“예?”

“그분은 우리가 세팅한 액션 배우가 아니라 진짜 요리사예요. 먹어보셨으니까 아시잖아요.”

“깜짝 놀랄 만큼 맛있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그런 시나리오까지 준비할 시간이 있었겠어요? 영화가 망하게 생겨서 재촬영하기도 바빴는데.”

“아. 그것도 그렇죠. 하하.”

신은하가 상황을 겨우 수습했다.

김유찬도 분위기를 좋게 바꾸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김유찬은 말이 머리에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튀어나갈 때가 가끔 있다. 그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꺼낸 이야기도 그랬다.

“그때 우리는 진짜 하나도 안 위험했습니다. 달리는 자동차에 점프해서 쇠파이프로 찍어 차를 세운 분인데, 위에서 떨어지는 물건 몇 개 쳐내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진행자가 손을 들며 물었다.

“어? 잠시만요. 저도 ‘햇살 좋은 날’을 봤는데,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는데요?”

“네? 어….”

신은하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얼른 이야기를 돌렸다.

“그분은 과자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요리도 진짜 잘해요.”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다.

라디오 진행자가 말했다.

“제가 최근에 그런 영상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거 다른 영화의 홍보 영상인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설마 그거… 진짜였습니까?”

이 라디오 방송은 생방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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