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스포츠
강원도 세트장 납치사건 담당 형사는 모처럼 쉬는 날을 여자친구와 함께 느긋하게 보냈다.
한가로이 치킨과 맥주를 즐기는 그들의 옆에는 스마트폰이 놓여 있었다. 그 스마트폰의 라디오 어플에서 신은하와 김유찬이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이 흘러나왔다.
형사가 그 방송을 들으며 말했다.
“저 영화 우리 관할에서 찍었잖아. 내가 거기 가서 직접 만나봤는데, 야아. 배우는 진짜 배우더라. 실제로 보면 막 후광이 비쳐.”
여자친구가 물었다.
“신은하가 그렇게 예뻐?”
“어? 어? 아니. 김유찬 이야기야. 김유찬. 잘생겼더라고.”
그런데 그가 그 말을 하자마자 김유찬이 그 세트장에서 있었던 납치사건을 언급했다.
형사는 그걸 듣고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사람들이. 비공개로 수사해달라고 그렇게 사정사정하더니 이게 뭐야? 자기들이 먼저 그걸 까네?”
여자친구가 물었다.
“뭔데 그래?”
“사건 이야기야.”
그의 여자친구는 다른 때는 사건 이야기라고 하면 더 묻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건 연예인이 관련된 사건이다.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형사의 팔짱을 꼈다.
“나한테만 살짝 말해봐. 응? 김유찬이 왜? 왜?”
“어? 그게….”
형사가 머뭇거렸다. 수사 중인 사건이라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다.
그러다 방법이 생각났다.
‘가만? 김유찬이 이미 방송에서 공개한 부분은 말해도 되는 거 아냐? 어차피 자기들이 먼저 깠잖아.’
형사가 씩 웃었다.
“내가 진짜 너니까 가르쳐주는 거야.”
그는 여자친구의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동영상 링크를 하나 보내주었다.
“방금 라디오에서 말한 영상이 이거야. 이거 실제 상황이다?”
형사는 영상만 보내주고 화장실에 갔다. 여자친구는 혼자 남아서 그 영상을 보았다.
“와. 어머? 어머나! 난다! 사람이 난다!”
그녀가 동영상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몇 번 터치해서 복사한 후에, 라디오 방송 게시판에 올렸다.
“좋은 건 같이 봐야지.”
그녀가 올린 영상 게시물 아래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 와. 이거다.
- 방금 김유찬이 말한 상황이 이거 딱 맞네.
- 내 기자 친구가 전에 이 영상 출처를 가르쳐줬는데, 이거 THO 엔터에서 만든 거라던데요?
- 네? 거긴 ‘햇살 좋은 날’ 만든 영화사잖아요.
***
그 라디오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THO 엔터 홍보팀은 비상이 걸렸다.
사장 이태호가 입에서 불을 뿜었다.
“김유찬이 미쳤구나!”
홍보팀장이 맞장구를 쳤다.
“저거 미친 거 맞습니다!”
“빨리 대책을 세워봐요!”
홍보팀장이 머리를 굴렸다.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재빨리 제안했다.
“사장님. 지금 터트려야 합니다.”
“이미 터졌잖습니까!”
“그게 아니라 20일쯤 뒤에 발표하려던 그거 말입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이태호가 망설였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초반에 이슈를 장악해야 합니다. 시기를 놓치면 수습하기 어렵습니다.”
이태호가 잠시 고민하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나강인 씨. 이태호입니다.”
***
나강인은 이태호의 짧은 설명을 들은 후에 말했다.
“생각보다 늦게 알려졌네요.”
나강인이 강원도 세트장에서 납치범들을 잡은 날 그 사건이 바로 기사화될 수도 있었다. 이만큼이라도 늦게 나온 건 그동안 관계자들이 입단속을 잘해서다.
- 저희가 이 상황을 수습하려면, 저번에 말씀드린 그 방법을 지금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나강인 씨만 괜찮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시죠.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다면서요.”
- 고맙습니다!
***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가는 동안 신은하가 김유찬을 타박했다.
“아니, 유찬 오빠. 이러기야? 그 영상은 민지 생각해서 숨기기로 한 거 몰라?”
김유찬도 당황했다.
“그, 그러게? 난 그냥 그때 네가 안전했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건데…. 내가 왜 그랬을까?”
신은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아니다. 유찬 오빠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
“그, 그치? 내 잘못 아니지?”
“이런 사람을 막강한 화력이랍시고 여기로 보낸 THO 엔터 홍보팀장님 잘못이지.”
“어? 어?”
“진짜 화력이 막강하네. 생각보다 더 막강해. 그래서 게시판이 지금 펑펑 터져나가고 있잖아!”
방송 부스 방음유리 밖에서 김유찬의 매니저가 다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김유찬이 밖으로 나갔다.
“왜?”
매니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THO 엔터 홍보팀장 전화야.”
“어…. 나중에….”
“지금 당장 안 받으면 다 엎어버리겠대.”
김유찬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아. 구 팀장님. 라디오 방송 들으셨….”
- 회사에서 사장님과 같이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사장님도 들으셨구나.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요. 잘해보려다가….”
- 우리 원래 계획은요. 영화가 대박이 나면요. 민지가 피해자가 아니라 화려한 구출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이로 인식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영화에서처럼 말이죠.
이민지는 그 영화에 출연한 아역배우다. 손태민은 이민지를 위해서 재촬영 때 시나리오를 조금 수정했다.
“다행히 영화가 대박 났으니까….”
- ‘햇살 좋은 날’은 아직 본 사람보다 못 본 사람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한 달쯤 지난 후에 공개하면 딱 좋았단 말입니다.
김유찬은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데 고개를 연달아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 다 까시죠.
“예? 뭘 까죠?”
- 그 방송에서 최대한 화려하게 그때 일을 이야기하십시오. 물론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진 마시고요. 어차피 영상에 다 남아있습니다.
“그래도 됩니까?”
- 이미 사장님도 동의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 영상을 심각한 사건으로 인식하지 않고, 멋지다고 느끼게 만드십시오. 민지 주변에서 민지를 불쌍하게 보는 게 아니라, 멋지다고 생각하게 만들란 말입니다. 그게 우리 원래 목표였으니까.
김유찬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제가 또 그런 거 잘합니다.”
홍보팀장이 단서를 달았다.
- 나강인 씨의 이름은 언급하지 마세요. 밥차 아저씨라고만 하세요. 나강인 씨에게는 그렇게 하는 조건으로 허락받았습니다.
***
김유찬이 방송 부스에 다시 들어갔다.
음악은 두 곡이 연달아 나온 후에 끝났다.
진행자가 말했다.
“유찬 씨. 음악이 나가는 동안 그 영상에 관해 물어보는 글로 게시판이 폭발할 것 같습니다.”
김유찬이 입을 열었다.
“청취자 여러분. 그 영상은 말입니다. 저희가 강원도 세트장에서 영화를 다시 찍던 첫날,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신은하는 굳이 김유찬을 막지 않았다. 김유찬이 통화하고 들어와서 대책 협의가 끝났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진행자가 슬쩍 웃었다.
“역시 그게 CG는 아니었군요. 그래도 와이어는 썼을 거 아닙니까? 하하.”
“와이어도 없었습니다.”
“예?”
“실제 상황이라니까요. 진짜로 그 비탈길을 나는 것처럼 뛰어 내려가서 달리는 차 위에 점프하고, 쇠파이프로 찍어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일어난 일도 다 진짜입니다.”
“아니, 그러다 스턴트맨이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걸 와이어도 없이 찍어요?”
“영화가 아니라 진짜 납치 상황을 찍은 영상이라니까요.”
사회자의 표정이 굳었다.
“예? 아니, 잠깐만요. 진짜 사건이었다고요?”
신은하는 김유찬이 뭘 하려는지 눈치챘다. 그녀가 얼른 지원사격을 했다.
“물론 납치범들은 현장에서 일망타진하고, 우리 아역배우는 안전하게 구출했어요. 영상 보셨으니까 아시죠? 진짜 영화 같죠? 그쵸?”
***
연예부 기자가 THO 엔터 홍보팀장의 전화를 받았다.
간단한 인사가 오간 후에 홍보팀장이 물었다.
- 전에 제가 말한 영상 기억하시죠? 사람이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들어서 쇠파이프로 세우는 영상 말입니다.
“그럼요. THO 엔터에서 찍는 영화라면서요?”
- 우리가 찍은 영화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예? 그때 분명히 THO 엔터가 공개했다고….”
- 우리가 공개한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거,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찍은 영상입니다.
기자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곧바로 진지해졌다.
“이거 되게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좀 자세히 말해주시죠?”
- 아예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드릴까요? 식사하신 후에 보시게.
기자는 멈칫했다.
‘이메일로 보낼 자료를 따로 만들었다고?’
“이거 혹시 독점 정보가 아닙니까?”
- 방금 라디오 생방송에서 공개됐습니다.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군요. 회사로 돌아가겠습니다. 바로 보내주시죠.”
***
라디오 방송이 끝났다.
방송국 엘리베이터에서 신은하가 김유찬을 타박했다.
“유찬 오빠. 미쳤어?”
“야. 난 그거 실수로….”
“이태호 사장님은 딸바보로 유명하잖아. 참 잘했다고 하셨겠다? 그치?”
“그래도 날 죽이진 않으실 건가 봐. 다 공개하고 잘 수습하라더라고.”
신은하가 손가락을 하나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아냐. 내가 볼 땐 유찬 오빠는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지금은 잠깐 생명이 연장된 것일 뿐.”
“내가 무슨 유산균이냐.”
***
그 영상은 이미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동안은 그 영상이 영화 홍보를 위해 CG를 섞어 만든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무슨 영화인지는 몰랐지만,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라디오 방송에서 진실이 공개되었다. 곧바로 기사도 떴다.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영상과 기사 링크가 올라오자마자 댓글이 줄줄이 붙었다.
- 와. 미친. 저게 CG가 아니라 실제로 한 거라고?
- 사람이 달리는 차 위로 뛰어내리는데 안 튕겨 나가?
- 설마. 저거 다 뻥이겠지.
- 기사가 나왔는데?
- 와. 찾아보니까 진짜네? 쩐다.
- 아니, 어떻게 살았지? 사람 맞나?
- 상대 속도가 맞았겠죠.
- 아닙니다. 차 위에 착지하는 순간에 쇠파이프를 박아넣어서 안 떨어진 겁니다.
- 이게 맞다.
- 어쨌든 목숨 걸어야 하는 일이잖아요.
- 보통은 저런 점프를 하면 죽죠.
다른 쪽으로 놀라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 ‘햇살 좋은 날’은 제작 과정이 더 영화 같은 영화였구나.
홍보팀의 노력도 성과가 있었다.
- 그러니까 저 사람이 그 밥차 아저씨라는 거죠?
- 소림사 주방장입니다.
- CIA 비밀요원이라던데?
- 산비탈을 달리고 차량 위로 날아가는 거 봤잖아요. 사람이 하늘을 날려면 뭐가 필요하다? 저게 바로 초상비와 능공허도입니다.
- 제가 정확히 압니다. 저건 에어워크입니다. NBA에서 봤습니다.
AI 전지인이 여러 인터넷 게시판을 검색했다.
- 다양한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지구연합군을 언급한 곳은 없습니다.
나강인이 말했다.
“설마 이 게시판에서 그 정보가 나오길 기대했냐? 넌 가끔 엉뚱한 데서 진지하단 말이야.”
기자들이 경찰 쪽에 관련 정보를 요청했다. 수사 중인 사건이긴 하지만 경찰도 정보를 약간 공개했다.
경찰의 발표는 굉장히 간단했다.
- 인터넷에 공개된 그 영상은 미성년자 납치사건 영상이 맞다.
- 현장에서 범인을 모두 체포했고 아이도 안전하게 구출했다.
- 아이는 건강하다.
- 범인들 외에는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 영상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는 속도를 시간과 거리를 고려해 계산해봤습니다. 와. 이거 올림픽 단거리 기록을 넘어섰는데요?
- 그거야 내리막에서 뛰니까 그렇겠죠. 올림픽은 평지에서 뛰는 거고.
- 그건 알지만, 저 속도로 내리막을 달리는데 안 넘어지고 뛴 것 자체가 대단한 겁니다. 훈련만 좀 받으면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도 딸 듯.
다른 분석도 있었다.
- 마지막에 점프한 거리 보세요. 멀리뛰기 세계 신기록입니다.
- 위에서 말했다시피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다가 아래쪽으로 점프하니까 그 거리가 나온 거라니까요. 평지에서 뛰는 거랑 달라요.
그 글을 본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내가 올림픽에 나갈 수 있냐?”
AI 전지인이 인터넷을 빠르게 검색한 후에 대답했다.
- 요원님은 올림픽 본선의 도핑 테스트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그치? 그럴 줄 알았어.”
- 예선전까지는 상황에 따라 도핑 테스트를 피할 수도 있습니다.
“됐어. 안 해.”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는 나강인이 보여준 놀라운 달리기 속도는 산비탈에서 뛰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런데 야구팬들은 다른 쪽으로 관심을 가졌다.
- 납치범을 잡을 때 돌 던진 거요. 자세가 꼭 투수가 견제구 던지는 것 같죠?
- 거리가 꽤 떨어져 있는데 돌로 정확히 손을 맞혔잖아요. 제구력 쩌네요.
- 돌을 던지고서 납치범을 향해 돌진하는 속도 보세요. 단거리 주파 능력도 엄청납니다. 1루에서 2루로 저렇게 도루하면 절대로 못 잡죠.
- 타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야구를 제대로 배우면 진짜 잘할 거 같네요.
- 타격이요? 영화에서 세트장이 무너지는 장면 안 보셨어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무거운 철제 조명들을 쇠파이프로 탕탕 쳐낸 사람이 저 사람 아니에요?
- 맞다! 그 밥차 아저씨!
- 타격도 되나 보다!
- 우리 지역 구단을 꼴찌에서 탈출시킬 히어로가 저기 있네!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물었다.
“그럼 야구는?”
- 사회인 야구는 그럴 일이 없습니다만, 프로야구는 가끔 도핑 테스트를 합니다.
“프로야구도 안 하려고 했어. 진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