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35화 (35/411)

35. 수리 스킬

나강인은 홀로그램 영상에 나오는 그대로 폐차 직전의 차 내부를 뜯기 시작했다.

AI 전지인이 손의 움직임을 보조했다.

나강인이 분해한 부품을 낡은 탁자 위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신은하가 옆에서 물었다.

“강인 오빠. 이런 건 분해할 때 순서 적어놔야 하는 거 아냐?”

“어디서 들은 건 있구나?”

“전에 출연한 영화에서 정밀 장비를 분해하다가 순서 헷갈려서 망하는 씬이 있었거든.”

“괜찮아. 순서 다 기억하니까.”

그가 기억하는 건 아니다. AI 전지인이 모든 부품의 위치를 기억했다.

한참 작업한 후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분해 작업이 끝났습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

고장의 원인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눈앞의 영상이 바뀌었다. 차량 내부 배선에 붉은색이 칠해졌다.

- 해당 배선을 전부 교체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전선을 걷어내고 전기 재료상에서 산 전선을 새로 깔았다.

신은하가 물었다.

“일반 전선을 차에 써도 돼?”

“특성을 고려해서 샀으니까 차량 전용 전선이 아니어도 버틸 거야.”

- 배선 교체가 끝났습니다. 재조립을 시작하십시오.

나강인이 분해된 엔진룸을 다시 조립했다.

차량의 부품 중에는 조립할 때 정확한 힘을 써야 하는 것들이 있다. 너무 약하게 조이면 나중에 풀리고 너무 강해도 문제가 생긴다.

AI 전지인이 각각의 부품을 조립할 때마다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시각적으로 표시했다.

신은하는 차의 기계적인 구조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나강인이 탁자에 쌓인 부품을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도로 조립하는 걸 보며 감탄했다.

“와아. 강인 오빠 기억력 쩐다.”

엔진룸의 일부 부품은 폐차장에서 산 부품으로 교체되었다. 원래 부품보다 폐차장에서 산 것이 상태가 더 좋았다.

나강인은 조립 상태가 나쁜 것들도 찾아 다시 제대로 조였다.

그 모든 작업이 한 시간 만에 끝났다.

나강인이 장갑을 벗었다.

“끝났다.”

신은하가 의심했다.

“뭔가 되게 금방 한 거 같은데?”

“내가 원래 빨라.”

“시동 한 번 안 걸어보고 수리 끝내도 돼?”

“다 계산해서 수리한 거니까 괜찮아.”

“이거 타고 가다가 터지는 거 아냐?”

“나를 믿어라.”

- 요원님이 저를 믿으십시오.

나강인이 운전석에 앉아 차의 시동을 걸었다.

신은하의 걱정이 무색하게 시동이 부드럽게 걸렸다. 배터리를 교체한 것도 아닌데, 힘들게 시동이 걸리던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시동만 부드러운 게 아니라 엔진 소리까지 조용해졌다.

폐차 직전이던 차가 멀쩡해졌다. 이제 길에서 뻗을 염려는 없었다.

신은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녀는 차량을 정비할 줄은 모르지만, 수리를 맡겨본 적은 있다.

“와. 진짜 뭘 막 분해했다가 후다닥 조립했는데 이게 되네? 강인 오빠는 무술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자동차 정비 실력도 쩐다.”

“내가 원래 쩐다.”

“이 실력으로 상태 나쁜 중고차 사서 고쳐서 팔면 돈 잘 벌겠다.”

“내가 정비 자격증이나 경력이 없어서.”

“그럼 이런 기술은 어디서 배웠는데?”

“인터넷?”

“농담이지?”

“요즘은 동영상이 잘 나와.”

신은하가 눈썹을 모으며 고민했다. 이 기술이 동영상을 좀 본다고 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 이미 되는 걸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긴. 어떤 의료 환경이 나쁜 나라에서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수술법도 배운다더라. 수술도 하는데 차 수리도 되겠지.”

“어…. 그렇지.”

신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이렇게 빨리 수리를 끝낼 거면 이 철공소는 왜 빌렸어? 그것도 1년이나.”

“여기서 이것저것 만들어보려고.”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차량 내부에 방탄판을 설치하는 모습을 외부인이 보면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이 철공소를 빌린 건 차를 개조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가 그의 생활 거점이라면 이곳은 그의 제작 거점이다.

앞으로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장비를 여기서 만들어야 한다.

나강인은 신은하가 더 캐묻지 못하게 하려고 운전석에 앉은 채로 손짓했다.

“야. 타.”

“어느 시절 야타를 지금 해? 20세기 오렌지세요?”

“타기나 해.”

신은하가 조수석에 타며 물었다.

“이제 우리 어디 가?”

“네 차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밥은?”

“넌 아까부터 내가 밥으로만 보이냐?”

“응.”

신은하는 차를 나강인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놓았다.

그 아파트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은하가 물었다.

“차를 이렇게 잘 고치는 거 보니까 전등 같은 것도 손볼 수 있겠네?”

“왜? 집에 전등이 나갔냐?”

“아니. 스마트폰으로 집 밖에서 전등 켜는 거. 우리 집에 그거 설치해줄 수 있어?”

“집에 그거 할 사람이 없냐?”

“몰랐어? 나 혼자 사는 여자야.”

“본가가 우리 동네라며?”

“난 부모님한테 그거 달아주러 오라고 부를 정도로 불효녀는 아냐. 그리고 내 동생은 똥손이라서 안돼. 걔가 전기 만지면 사고 나.”

“너 돈 잘 벌잖아. 그냥 사람 불러.”

“당분간은 못 불러. 지금 전기 기사 불러서 그런 거 설치하면… 운 나쁘면 인터넷에 기사가 뜰 수도 있어.”

“그런 것도 기사로 나가냐?”

“어. 예전이었다면 안 나가겠지만, 지금은 나갈 거야.”

나강인이 혀를 찼다.

“연예인은 피곤하구나. 아. 소속사에서 안 도와줘?”

“전속계약 만기가 코앞인데, 약점 잡혀서 좋을 거 없어.”

“약점?”

신은하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야기했다.

“나 요즘 꿈을 꿔. 세트장이 무너지면서 잔해에 갇히는 꿈.”

나강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말했다.

- 강렬하게 남은 기억을 꿈으로 꾼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PTSD의 증상일 수도 있습니다.

나강인이 물었다.

“그런 경우가 흔한가?”

- 전쟁터의 병사가 흔히 겪는 증상입니다. 지금 시대의 경우는 제대 후에 군대 꿈을 반복해서 꾸는 것이 일종의 PTSD 증상일 수 있습니다.

신은하는 그가 그녀에게 물어본 줄 알고 대답했다.

“요즘은 매일 꿔. 꿈속의 거긴 진짜 어두워.”

그녀는 그동안 아무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자 말이 줄줄 나왔다.

“아무것도 안 보여. 몸도 못 움직여.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목소리도 안 나와. 한참을 그러다 겨우 꿈에서 깨면 식은땀이 흘러.”

말을 쏟아낸 후에 그녀가 생각했다.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어. 어쩌면 난 그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되는 사람이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나강인이 말했다.

“집안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불을 켤 수 있게 해주면 되지? 알았어. 지금 당장 고쳐줄게.”

신은하가 환하게 웃었다.

“진짜?”

“부품부터 사야겠다.”

차가 나강인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신은하는 그녀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나강인은 차를 몰고 부품상으로 가서 필요한 것을 샀다.

신은하는 나강인이 부품상에 간 사이에 집안을 정리했다. 침대 위에 굴러다니는 속옷은 옷방에 던져놓고 방문을 꼭 닫았다.

로봇 청소기 덕분에 바닥은 평소에도 깨끗했다. 적어도 눈에 보이는 먼지는 없었다. 고가의 공기청정기가 24시간 열심히 돌아간 덕분에 집안에서 안 좋은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강인이 부품을 들고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집안을 보며 감탄했다.

“집이 참 좋다.”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이 거점을 손에 넣으십시오.

“넌 무슨 농담을 진담처럼 하냐.”

신은하가 물었다.

“어? 뭐라고?”

“아니야.”

나강인은 먼저 누전차단기를 내리고 거실과 안방의 기존 스위치부터 제거했다. 그런 후에 그 자리에 스마트폰으로 외부에서 전등을 제어할 수 있는 스위치를 달았다. 그 작업은 간단했다.

“이제 집에 들어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불을 켜. 그러면 환할 거야.”

신은하가 스마트폰으로 전등을 켜보고 활짝 웃었다.

“강인 오빠. 고마워.”

나강인이 아직 설치하지 않은 새 스위치를 집었다.

“스위치 하나 더 샀으니까 저 방에도 설치해줄게.”

나강인이 말한 방은 신은하가 속옷을 던져넣은 옷방이다.

그녀가 얼른 말했다.

“아냐! 이만하면 충분하니까 이제 저녁 먹자!”

나강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너 설마… 나보고 밥까지 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신은하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내가 진짜 맛있는 밥을!”

나강인이 주방을 보았다. 고가의 주방 가전과 조리 도구들이 보였다.

“여기서 해주게?”

“사줄게!”

“응?”

“강인 오빠 음식도 진짜 맛있지만, 거기도 정말 맛있는 레스토랑이야. 거기 대표 셰프가 방송에 나오는 분이거든. 아마 먹어보면 우열을 가리기 힘들 걸?”

신은하는 나강인이 만들어주는 밥을 좋아한다.

그런데 오늘 데려가려는 레스토랑도 맛으로 유명한 곳이다.

나강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것보다 더 맛있으면 좋겠다. 나도 맛있는 거 좋아하니까.”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아! 그리고 맛있는 건 비슷해도 요리 실력은 강인 오빠가 훨씬 낫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더니?”

“요리에 쓰는 재료가 다르잖아. 그 레스토랑에선 진짜 좋은 재료만 쓰는데 강인 오빠는 동네 마트에서 대충 쓱쓱 산 거 쓰잖아. 식재료 단가가 다르다고.”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요리 종류도 많이 다르겠다?”

“대신에 엄청 맛있다는 점은 비슷하지. 그리고 비슷한 거 또 있어. 그 레스토랑도 강인 오빠처럼 셰프가 주는 대로 먹어야 해.”

그녀가 데려가려는 레스토랑 ‘페넬로페’에는 메뉴판이 없다. 그곳에서는 셰프가 그날의 요리를 정한다.

나강인도 피시방에서 특별 요리를 팔 때 메뉴 선택권은 주지 않는다. 나강인도 그날 뭘 만들어 팔지는 그가 정한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레스토랑 페넬로페는 음식값이 무척 비싸다.

신은하가 말했다.

“강인 오빠 요리를 피시방에서 그 가격 받고 파는 게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거야. 강인 오빠 요리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내가 오늘 보여줄게.”

차이점은 또 있다.

“그리고 피시방에는 없는 럭셔리가 뭔지 보여줄게.”

전투지원 AI 전지인이 말했다.

- 현지의 유흥문화를 알아야 쉽게 녹아들 수 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은 현재 활동자금으로는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정보 획득의 좋은 기회입니다.

AI 전지인은 나강인과 감각을 공유한다. 그 감각에는 맛을 느끼는 것도 포함된다.

“네가 먹고 싶은 거 아냐?”

AI 전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끄러워하기는.”

***

레스토랑 페넬로페에는 나강인의 차를 타고 갔다. 신은하는 오늘 술을 마실 생각이라 차를 가져가지 않았다.

그녀가 조수석에서 말했다.

“사실 술 마시면 대리 부르는 것도 부담되거든. 내가 취한 꼴을 모르는 남자에게 보여줄 순 없잖아.”

“연예인은 참 피곤하게 산다.”

그녀가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믿을만한 사람이 데리러 와주면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데.”

“그럴 땐 매니저 부르면 안 되나?”

“내가 내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데 매니저를 왜 불러? 그리고 소속사하고 계약만료 얼마 안 남았다니까?”

“안 되겠네.”

“그렇지만 누가 데리러 와주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지.”

“칫.”

“왜?”

“아냐.”

신은하는 투덜대려다가 갑자기 놓치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지금 연예인 생활의 불편함을 불평할 때가 아닌데? 꼬드겨도 부족할 판에?’

그녀가 얼른 말을 바꾸었다.

“강인 오빠. 대신에 얻는 게 많아.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고, 또 내가 연기한 작품을 사람들이 많이 보면 뿌듯하고.”

“어. 열심히 해라.”

“그리고 그 불편함이 싫으면 당분간은 지금처럼 뒤에서 무술감독만 하는 방법도 있어. 그럼 밖에서는 아무도 못 알아보잖아.”

“응?”

“충무로가 오빠를 부른다고.”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그건 어쩌다 알바 잠깐 한 거야.”

“지나가던 사람이 이렇게 무섭다니까. 영화 하나를 통째로 살려냈으면서.”

그녀가 중얼거렸다.

“하긴. 강인 오빠는 외제차 수리만 전문적으로 해도 돈은 많이 벌겠다. 오늘 보니까 진짜 금방 뚝딱 고치던데.”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차량 수리 시설을 소유하면 더 쉽게 장비를 제작할 수 있으며, 외제차 수리로 활동자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작게 말했다.

“그리고 차를 수리하러 온 사람이 우리 제작 거점도 보겠지. 그러다 우리가 만든 장비도 볼 테고.”

- 제안을 철회합니다. 역시 신은하의 아이디어는 쓸모가 없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