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무빙
나강인이 물었다.
“총소리가 확실해?”
- 아닙니다. 분석이 어려울 정도로 총기 소음이 작았습니다.
“7층에서 총을 쏜 건 지금이 처음이고?”
- 조금 전에도 비슷한 소음이 있었습니다만, 그때는 잡음으로 판단했습니다.
“지금은?”
- 이곳에서 소음권총이 발사될 때의 소음과 탄두의 착탄 소음을 기본 데이터로 놓고 비교했습니다. 유리 파손과 동시에 발생한 소음이라는 점도 고려했습니다.
“네가 그렇게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면 방음이 잘된 곳이거나, 아니면 거리가 멀어서 잘 안 들리는 거겠지. 거리는?”
- 최소한 3층 이상입니다.
“넉넉잡으면 5층일 수도 있겠네.”
이 건물은 7층짜리다. 7층에는 고급 레스토랑 페넬로페가 있다.
나강인이 상황을 분석했다.
“적이 7층에서 총을 두 차례 쐈다. 여기와 같은 상황이라면 처음엔 경고용으로 쐈을 거야.”
그가 다시 위쪽을 보았다.
“그럼 두 번째는 왜 쐈을까?”
신은하가 7층으로 올라가서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총소리. 바깥 유리창이 깨졌으면 저 창문 밖으로 유리 조각이 비처럼 떨어졌겠지.”
- 7층 내부에 설치된 유리에 총격을 가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비명도 있었냐?”
- 비명으로 추정되는 소음이 있었습니다. 총에 맞은 비명인지, 단순히 놀라서 지른 비명인지는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총으로 유리 장식장을 부수면 소리가 크고 효과도 화려해. 겁주기 딱 좋지.”
- 감지한 소음 중에 유리병이 깨지는 것으로 판단할만한 것이 다수 있었습니다.
“유리로 된 와인 진열장을 부쉈겠지.”
적이 두 번이나 경고했다. 나강인이 그 이유를 추측했다.
“7층 놈들은 셔터를 내려놓고 사람들을 느긋하게 협박하고 있겠지. 덕분에 우리에게도 시간이 생겼다. 일단 이놈들부터 잡자.”
- 적들이 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이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면 민간인 사상자가 다수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술적으로 불리합니다. 천천히 확실한 기회를 보셔야 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
문제가 생겼다. 2층 카페에 있던 아이가 겁을 먹고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앙! 나 나갈래!”
무장 괴한 중 하나가 권총을 그쪽으로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시켜!”
아이 엄마는 당황해서 아이를 끌어안았다.
“괜찮아. 조용히. 응?”
“엄마! 나 무서워!”
아이의 울음은 바로 전염됐다.
지금 이 2층 카페에는 아이가 세 명이 있었다. 다른 두 아이도 울음을 터트렸다.
어른 중에도 우는 사람이 생겼다.
무장 괴한이 권총을 겨누며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 새끼들이! 조용히 하라고! 시끄러운 새끼는 다 죽여버린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적이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려 합니다!
사람들도 무장 괴한이 진짜로 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괴한의 눈빛이 워낙 살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장 괴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욕을 했다.
“이 새끼들이 지금 내 말을 무시….”
나강인이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이동하며 외쳤다.
“여기 경찰이다!”
아이를 향했던 무장 괴한의 총구가 즉시 나강인 쪽으로 돌아갔다.
“경찰?”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짓말이다.”
“이 새끼가!”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적 3명 중 1명의 총기 방향만 이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머지 두 자루의 총기는 아직 민간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강인이 두 손을 위로 들며 말했다.
“애들은 원래 무서우면 울어. 운다고 총을 쏘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아. 너희는 사람이 아닌가?”
“죽여버리겠다!”
적이 권총으로 나강인을 겨누었다. 나강인은 옆으로 움직였다. 권총이 그를 따라갔다.
다른 무장 괴한이 권총을 쏘려는 동료에게 경고했다.
“조장. 저놈 뒤쪽이 유리다.”
움직이는 사람을 정확히 쏘는 건 소총이라 해도 쉽지 않다. 권총은 명중률이 떨어진다. 선수급 사격 실력이라 해도 상대가 움직이면 빗나가기 쉽다.
권총의 명중률이 낮기는 하지만, 어차피 몇 발을 연속으로 쏘면 그중에 명중탄이 한 발쯤은 나온다. 나강인의 뒤쪽이 콘크리트 벽이라면 그냥 맞을 때까지 쏘면 된다.
그런데 나강인은 바깥이 보이는 대형 유리벽 쪽으로 움직였다. 나강인을 향해 총을 쐈는데 빗나가면 총알이 그 유리를 때리게 된다.
복면 괴한들은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2층 사람들을 유리벽 반대쪽에 몰아넣었다. 그래서 바깥에서는 내부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유리가 총에 맞아 깨지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무장 괴한 조장이 외쳤다.
“커버해!”
다른 무장 괴한 중 한 명이 사람들을 향하던 총구를 나강인 쪽으로 돌렸다.
조장은 권총으로 나강인을 겨눈 채로 그에게 다가갔다.
“이 약삭빠른 새끼. 유리 앞에 서 있으면 내가 총을 못 쏠 거 같냐?”
적이 사용하는 아음속 저소음탄은 사람의 몸을 관통하지는 못한다. 조장은 권총을 겨눈 채로 나강인을 향해 걸어가며 웃었다.
“이 거리에서는 빗나가지 않아. 흐흐흐.”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이 근접 전투 가능 거리로 들어왔습니다.
나강인이 즉시 바닥을 박차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빨랐다. 마치 단거리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헉!”
당황한 적이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적의 손가락보다 나강인의 손이 빨랐다. 그가 적의 손목을 후려쳤다.
그가 적의 권총을 빼앗으면, 다른 두 놈을 그 총으로 쏴서 제압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 적의 총구 중 하나가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 총은 장애물에 가려져 나강인의 위치에서는 직접 쏠 수도 없다.
그가 그 적을 쐈는데 즉사하지 않으면 적이 총을 발사하면서 쓰러질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즉사한 상태에서도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다.
게다가 목격자가 많은 이곳에서 적을 사살하면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한 일이라 해도 뒷일이 굉장히 피곤해진다.
그래서 그는 적의 권총을 빼앗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나강인이 후려친 적의 손목이 뚝 부러졌다. 그 손으로 쥐고 있던 권총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튕겨 나간 권총은 카페 구석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무장 괴한 둘은 동료가 제압되고 권총이 날아가는 걸 확실히 보았다.
나강인은 지금 빈손이다. 일부러 빈손이 됐다.
사람들을 겨누고 있던 권총도 반사적으로 나강인을 향했다. 이제 사람들을 향한 총은 없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적이 쏩니다!
손목을 부러뜨린 놈을 잡아 방패로 삼으면 적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러면 총구 중 하나가 다시 사람들을 향할 수 있다.
나강인이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한 놈이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나강인을 쫓아 날아왔다.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빗나간 총알이 유리창에 박혔다.
두꺼운 통유리가 부서지지 않고 표면에 거미줄 같은 금만 조금 생겼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말했다.
- 예상대로 보호필름이 장착된 안전유리입니다! 방탄능력이 있습니다! 아음속 저소음탄에는 뚫리지 않습니다!
고속 음성은 정상 대화의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들렸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권총을 발사한 적은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런데 총에 맞은 유리가 깨지지 않았다. 손상도 작았다.
적이 안심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나강인을 노렸다.
나강인이 옆으로 뛰며 탁자를 뒤집었다.
탁자는 크기는 큰데 상판이 너무 얇았다. 재질도 원목이 아니었다. 이건 방패로 쓸 수 없다.
날아온 총알이 나무 탁자를 뚫었다.
나강인이 탁자를 하나씩 뒤집어 공중에 띄웠다. 그러면서 적을 향해 전진했다. 그가 앞으로 이동할 때마다 탁자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적의 시야를 가렸다.
탁자가 하나가 공중에 떴다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탁자가 솟아올랐다. 탁자가 다른 탁자 위에 떨어지면, 두 개의 탁자를 같이 위로 던졌다.
적의 눈에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괴수가 탁자를 뒤집으며 빠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앞쪽 공간이 온통 탁자로 가득 찼다.
겁을 먹은 적이 방아쇠를 연속으로 당겼다.
“으아아아!”
한 놈만 그러는게 아니라 두 놈 다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인질은 떠올리지도 못하고 나강인을 향해 권총을 갈겼다.
탁자들이 퍽퍽 뚫려 나갔다. 나강인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당황한 적은 탁자가 뒤집힐 때마다 그쪽으로 사격했다.
하지만 나강인은 이미 그쪽에 있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고속 음성으로 보고했다.
- 적이 제압 가능 거리에 들어왔습니다.
나강인이 즉시 탁자 옆쪽으로 튀어나갔다.
적이 급히 총구를 나강인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나강인이 더 빨랐다. 그가 적의 손목을 손으로 쳤다. 총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나강인이 발을 내질렀다. 발이 적의 배에 꽂혔다.
적의 몸이 반으로 접히며 뒤로 날아가 구석에 처박혔다.
“케엑!”
이제 한 놈만 남았다. 그놈도 방금까지 동료처럼 탁자를 항해 사격했다. 그런데 그는 좀 더 뒤에 있었다.
그는 나강인이 동료를 덮치는 순간 뒤로 펄쩍 뛰어 거리를 더 벌렸다. 동료가 얻어맞는 사이에 나강인을 정확히 조준했다.
적의 권총 조준선에 나강인이 정확히 들어왔다. 적은 명중을 확신하고 침착하게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붉은색 경고 표시와 함께 총알이 날아올 예상 궤적을 가상의 선으로 그려주었다. 적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시각 정보로 표시했다.
가만히 있으면 적의 총탄이 왼쪽 어깨에 명중한다.
나강인은 적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옆으로 움직이며 몸을 비틀었다.
총알이 허공을 갈랐다.
나강인이 전진했다.
적이 즉시 총구를 옆으로 조금 틀었다.
AI 전지인이 다시 예상 궤적을 그려주었다.
나강인은 적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반대 방향으로 몸을 비틀며 자세를 낮췄다. 적이 쏜 총알이 머리와 어깨 사이 공간을 지나갔다.
나강인은 계속 전진했다. 적과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다.
적은 경악했다.
‘사람이 어떻게 총알을 피해!’
당황해서 판단이 흐려졌다. 계속 상체를 노리고 쏘면 또 몸을 비틀어 피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강인은 방금 날아온 총알을 피하느라 자세가 조금 낮아진 상태였다.
적이 총구를 아래로 내려 나강인의 하체를 노렸다.
‘상체가 안 되면 하체라도!’
적이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나강인이 땅을 박차 위로 점프했다.
총알이 바닥을 때린 후에 튕겨 나가 천장에 꽂혔다.
나강인이 바닥에 착지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의 탄창이 비었습니다.
적은 권총은 슬라이드가 뒤로 젖혀진 채로 고정됐다. 그건 총알이 떨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으, 으아아….”
당황한 적이 급히 주머니에서 새 탄창을 꺼냈다. 너무 당황해서 원래 권총에 들어있는 탄창을 제거하는 것도 까먹었다. 막힌 구멍으로 탄창을 꽂으려고 애썼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나강인은 적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다.
적은 이젠 탄창을 교환해도 쏠 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적은 권총과 탄창을 나강인을 향해 던졌다.
나강인은 고개만 슬쩍 젖혀 피했다
적이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냈다. 그걸 그대로 휘둘렀다.
나강인이 안쪽으로 파고들며 칼을 휘두르는 적의 손을 잡았다.
이곳에는 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는 피를 안 보고 제압하기로 했다.
그는 적의 손목을 뚝 꺾었다. 동시에 옆구리에 주먹을 먹였다.
“케엑!”
적의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는 적의 다리를 걷어찬 후에 팔을 잡아당겨 한쪽에 쌓인 탁자로 내던졌다.
적은 탁자를 부수며 처박혔다.
‘뭐, 피는 안 보여줬으니까.’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한 후에 아이들을 향해 돌아서며 씩 웃었다.
“멋있지?”
어른들은 당황하거나 겁먹어서 말을 하지 못했다.
“어? 어?”
“바, 방금 총알을 피….”
조금 머리가 큰 아이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아저씨! 히어로 맞죠?”
“아저씨 아니고 형이다.”
그는 적 셋 중에 둘은 완전히 제압했다.
그런데 제일 처음 잡은 조장 놈은 오른손목만 부러진 상태다. 그놈이 쓰러졌다가 몸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다른 두 놈은 박살 난 후였다.
그놈이 눈알을 굴렸다. 카페 구석에 그의 권총이 떨어져 있었다.
나강인은 아이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지금 조장의 위치는 나강인의 뒤쪽이다. 나강인의 등이 보였다.
‘저놈은 지금 나를 못 봐!’
그놈은 그걸 깨닫자마자 카페 구석에 떨어진 권총을 향해 뛰어갔다.
그걸 본 사람들이 다급히 외쳤다.
“어? 저거!”
“저 새끼 잡아!”
나강인이 옆에 놓인 머그컵을 손으로 잡은 후에 몸을 뒤로 돌리며 가볍게 던졌다. 마치 투수가 견제구를 던지는 것 같았다. 날아간 게 야구공이 아니라 머그컵이라는 것만 달랐다.
단단한 도자기 컵이 적의 머리와 충돌해 화려하게 박살 났다.
달려가던 놈이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나강인이 말했다.
“저게 매를 버네.”
아이가 감탄하며 물었다.
“와! 어떻게 안 거예요? 뒤에도 눈이 있어요?”
나강인이 아이 앞에서 씽긋 웃었다.
“저 정도는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다 보여.”
AI 전지인이 AR 렌즈에 표시된 적 위치 정보를 깜빡이며 말했다.
- 제가 보여드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