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1층
나강인은 카페 바닥에 굴러다니는 권총들을 주워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하나는 탄창이 완전히 비어있었다. 다른 두 개의 총알을 모아도 탄창 하나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잡은 놈은 주머니에서 예비 탄창을 꺼냈었다. 나강인이 다른 놈들의 주머니도 뒤졌다. 둘 다 예비 탄창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9mm 반자동권총 3정. 탄창 3.5개. 요원님. 드디어 무기를 확보했습니다. 빼돌리십시오.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빼돌려.”
그가 권총에 새 탄창을 삽탄하며 카페 통유리를 보았다.
“지인아. 이 총으로 저거 뚫을 수 있겠냐?”
- 보호필름이 부착된 두꺼운 유리이지만, 본격적인 방탄유리는 아닙니다. 아음속 저소음탄이라도 탄창 하나를 다 쓰기 전에 뚫을 수 있습니다.
유리에는 이미 총알 자국이 하나 있었다.
“저기를 내가 때리면?”
- 요원님이 도구를 이용해 타격하면 파괴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유리창에 다가가 바깥을 보았다. 아래쪽은 건물에 딸린 작은 정원이었다.
그가 위를 슬쩍 보았다. 이 위치에서는 옥상이 보이지 않았다.
“위에는 뭐가 있으려나….”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옥상에서 지상을 조준한 무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82년에는 그런 용도에 딱 맞는 무기가 있다. 2022년에도 없는 건 아니다.
“아니면 저격수라든지.”
- 이 탈출로는 방어가 어렵습니다. 요원님은 탈출할 수 있지만, 민간인들은 위에서 내리꽂는 공격에 전멸당할 수 있습니다.
“역시 이곳을 방어 거점으로 삼고 위쪽을 공략해야겠어.”
- 유리벽을 파괴하면 경찰 등의 외부 병력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유리벽에 손바닥을 댔다.
“아니야. 이 유리는 이대로 둔다.”
-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아직 은하가 7층에 있잖아. 적이 여기 상황을 몰라야 해. 우리가 2층을 점령한 걸 알면 7층 사람들이 위험해져.”
-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내가 좀 현명하긴 해.”
- 평가를 철회합니다.
나강인이 때려잡은 무장 괴한 셋을 카페 사람들이 한쪽으로 끌어다 놓았다. 몇 사람이 끈을 가져와 기절한 놈들의 손과 발을 묶었다.
세 놈 다 머리 위까지 완전히 덮는 복면을 쓰고 있었다.
나강인이 조장의 복면을 벗겼다.
“음….”
조장의 얼굴은 조금 이국적으로 생겼다.
“조상이 동아시아 쪽에서 살았나?”
외모만 보고 국적을 판단하긴 어렵다.
그가 다른 두 놈의 복면도 벗겼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셋은 같은 지역 같은데….”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한국인이다. 하지만 한국말은 기본에 외모까지 한국인과 똑같아도 국적이 다른 나라인 경우도 많다.
“이놈들이 우리말을 잘하는 외국인이라면….”
적의 의도가 짐작이 갔다.
“뭘 믿고 한국에서 총을 들고 설치나 했더니.”
한국에서 총기 사건을 일으키면 한국 경찰의 본격적인 추격을 받는다. 총기 사건의 규모가 커서 무장공비로 의심받으면 군대가 출동한다.
“이놈들은 경찰이 눈치채기 전에 여기서 뭔가를 챙겨서 아예 외국으로 튈 생각이야. 경찰은 범인들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겠지. 안 잡힐 자신이 있으면 사람 쏘는 데도 망설임이 없겠어.”
- 아군의 화력이 부족합니다. 민간인을 무장시키십시오.
“민간인을?”
- 지구연합군의 표준 방어 전술 중 하나입니다. 민간인이 맨손으로 있다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전멸당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너도 2082년의 기억이 없다면서 그건 용케 아네.”
- 기본 전술은 초기 데이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나강인이 권총 두 자루에 탄창을 하나씩 삽탄했다.
그가 카페 사람들에게 물었다.
“권총 사격 경험 있는 분?”
몇 사람은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렸다.
네 사람은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한국에서 군대를 갖다 온 사람은 돌격소총은 잘 쏜다. 하지만 권총은 현역으로 복무해도 만져볼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AI 전지인이 조언했다.
- 적이 민간인 사이에 첩자를 심어놨을 수 있습니다. 대상자를 신중하게 선택하십시오.
나강인은 그중 두 명을 골라 물었다.
“경력이?”
“기갑여단 전차병이었습니다.”
“ROTC 중위로 제대했습니다.”
나강인이 대상자를 결정했다.
“그 정도면 무난하군요.”
AI 전지인이 물었다.
- 요원님이 이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둘 다 아이를 데리고 왔잖아. 테러리스트가 민간인 사이에 첩자를 심어둘 순 있는데, 아이까지 데리고 그러긴 어렵지. 아이는 연기를 못 하니까.”
나강인이 그들에게 권총을 하나씩 주며 말했다.
“두 사람이 이 거점을 방어하십시오.”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권총을 받았다.
“목숨 걸고 이곳을 사수하겠습니다.”
그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권총은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넘겨주지 말아야 하며, 여기는 경찰 외에는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강인이 유리벽을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유리는 쉽게는 안 부서질 겁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유리창에 종이라도 붙여서 알려요. 내가 나간 후에.”
뒤쪽에 있던 사람이 급히 손을 들며 물었다.
“아무리 방탄유리라도 총으로 계속 쏘면 부서지지 않을까요? 2층이니까 유리만 부수면 밑으로 내려갈 수 있잖아요.”
“내가 보기엔 이 건물의 다른 층도 놈들에게 점령됐을 겁니다. 어쩌면 옥상까지. 유리를 부수면 놈들이 눈치채게 되는데, 저기로 탈출할 때 놈들이 위에서 총을 쏘면 피할 곳이 없어요.”
“아….”
“그리고 저 유리를 깨면 다른 층의 놈들이 이곳 상황을 알게 되는데, 그러면 내가 움직일 때 위험해집니다. 저 유리는 절대로 깨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다급히 물었다.
“저기요. 그 말씀은 혹시 여길 나가신다는 거예요? 우리랑 같이 여기 계시면 안 돼요? 여긴 지금 사람도 많고, 그게 더 안전하잖아요.”
“난 가야 합니다.”
나강인이 위쪽을 가리켰다.
“구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
카페에 들어온 세 놈 중에 조장만 무전기를 가지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군용 무전기가 아닙니다. 개조 흔적이 있습니다.
“민수용 무전기를 사서 개조했겠지. 통신 거리는?”
- 근거리 통신용으로 추정됩니다. 확실하진 않습니다.
조장의 무전기는 멀쩡했다.
조장은 손목이 부러지고 머리를 얻어맞아 기절했지만, 다른 놈들처럼 날아가서 처박힌 건 아니다.
갑자기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카페. 위에서 소리가 좀 나던데 무슨 일이냐?
카페는 2층에 있다. 카페 아래는 당연히 1층이다.
나강인이 기절한 놈의 목을 손가락으로 슬쩍 가리켰다.
“저놈 목소리로 하자.”
AI 전지인이 말했다.
- 대상과 유사한 음성으로 변조하겠습니다.
나강인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놈들이 있어서 처벌했다.”
2층 카페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은 나강인이 말한 내용 때문에 놀란 게 아니다.
나강인의 지금 목소리는 무장 괴한 조장과 꽤 비슷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성대모사라도 한 것처럼 엇비슷했다.
음질이 떨어지는 무전기를 통해 대화할 때는 그 정도만 해도 상대를 속일 수 있었다.
- 성질대로 했구만?
“이놈들에게 우리가 세 명이 다가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겠어. 잠깐 올라와라.”
- 오케이.
나강인이 무전을 끝낸 후에 CCTV를 힐끗 보았다.
그가 이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저 CCTV는 카페에서 관리합니까?”
“아뇨. 여기 CCTV는 모두 이 건물 관리실에서 설치해준 거예요.”
누군가 CCTV로 카페 상황을 확인했다면 2층에서 일어난 일을 모를 수 없다.
“그럼 놈들은 여기를 못 보는 건가? 아니면 보고도 모른 척하는 건가?”
어느 쪽인지는 지금 올라오는 놈의 행동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그가 카페 문으로 걸어갔다.
예비역 중위가 제안했다.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그럼 여긴 누가 지키고.”
“아….”
“거점 방어도 중요하니까 두 사람은 이 카페를 사수해요. 저 창문으로 나가면 총 맞을 수 있으니까 아무도 못 나가게 하고, 내가 나가면 탁자 모아다가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그러면 선생님이 후퇴할 수도, 우리가 선생님을 지원할 수도 없잖습니까?”
“난 알아서 잘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그는 카페를 나가려다가 뒤로 돌아섰다.
“누구 손거울 가지신 분? 작은 거면 좋겠는데.”
젊은 아가씨가 얼른 다가와 두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손거울이 놓여 있었다.
“제 거 쓰셔도 돼요.”
나강인이 씩 웃었다.
“고마워요.”
그녀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나강인이 카페 문을 나갔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남은 사람들이 출입문 앞에 탁자와 의자를 쌓았다.
예비역 중위가 제안했다.
“좁은 통로는 만들어두죠. 여차하면 탁자하고 의자 몇 개를 던져서 막을 수 있으니까.”
그들은 입구는 완전히 막지 않고 사람 한 명이 지나갈 공간은 남겨놓았다.
나강인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섰다.
이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이미 먹통이 됐다. 적이 올라오려면 이 계단을 통해야 한다.
아래층에서 툴툴대며 올라오는 사람 소리가 들렸다.
“카페에 우리보다 많이 갔으면서 어떻게 비무장 민간인 따위를 통제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해? 저것들 아마추어 아냐?”
나강인은 적의 혼잣말에서 정보를 얻었다.
‘아래층은 여기보다 인원이 적으며 저놈은 혼자가 아니다. 2층이 3명이니, 1층은 2명.’
다른 정보도 알아냈다.
‘저놈은 2층 동료들이 아마추어인지 프로인지조차 모른다. 예전부터 같이 일하는 동료가 아니다. 이 작전을 위해 누군가 저놈들을 모았다.’
나강인이 위쪽 상황을 분석했다.
‘7층에는 인기 배우 신은하의 예약을 날려버릴 만큼 중요한 인물이 있다.’
그 분석은 오류가 좀 있었다. 신은하의 예약을 가로챈 건 THO 엔터 사장 이태호다.
그래도 결론은 같았다.
‘그럼 두목도 7층에 있겠지.’
AI 전지인은 발소리를 데이터로 사용해 적의 현재 위치 홀로그램 영상을 만들었다. 윤곽선만 있는 사람 형상이 벽 너머에서 걸어오는 게 보였다.
- 적 접촉 2초 전!
적은 계단을 다 올라와 모퉁이를 돌다가 화들짝 놀랐다.
나강인은 적이 제대로 소리도 내기 전에 입을 왼손으로 막으며 오른손으로 목을 툭 쳤다.
“케….”
적은 신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총은 다양한 이유로 고장 납니다. 예비 권총이 필요합니다. 지금 제압한 적의 권총을 예비 무기로 사용하십시오.
“내가 카페 사람들에게 권총을 두 자루나 줄 때는 왜 안 말렸냐? 하나만 주라고 하지.”
- 민간인들은 상호 견제가 되어야 합니다. 권총 한 자루는 화력이 부족합니다. 둘 중 한 명이 총격전 상황에서 패닉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해본 말이야. 불평한 거 아냐.”
나강인이 권총을 챙긴 후에, 기절시킨 적을 질질 끌고 카페로 돌아가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즉시 적을 붙잡아 꽁꽁 묶었다. 카페 안에는 사람을 묶을만한 도구가 넉넉하게 있었다.
나강인이 다시 카페를 나와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에는 한 명.’
그는 손거울을 1층으로 슬쩍 내밀고 좌우로 움직여 상황을 확인한 후에 도로 가져왔다. 거울에 1층 모습이 보인 시간은 딱 1초였다.
AI 전지인이 거울을 통해 수집한 시각 정보를 모아 분석했다.
- 1층의 현재 상황을 재구성합니다.
곧바로 1층의 모습이 AR렌즈에 나타났다. 나강인은 계단 모퉁이 이쪽에 있는데도 벽 뒤의 1층을 볼 수 있었다.
“지인아. 이건 거의 투시 스킬인데?”
- 거울을 내밀었을 때의 이미지를 조합해 1층 가상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적의 위치가 정확히 반영되진 않았습니다.
“이놈이 움직이는 건 묘사하고 있잖아.”
반투명한 1층 홀로그램 속에는 움직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 발걸음 소리를 기반으로 예상 위치를 예측하고 움직임을 표현했습니다. 적의 위치에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1층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경비원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경비원이 적과 한 패일 확률은?”
- 이 건물에 들어올 때 확인한 경비원의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눈앞에 아까 건물에 들어올 때 본 경비원의 얼굴이 나타났다. 지금 1층에 있는 놈의 얼굴도 보였다.
다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