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점령
나강인이 말했다.
“1층을 돌아다니는 놈이 가짜 경비원이면, 진짜 경비원은 어디 있을까? 지인아. 심장박동 소리로 찾을 수 있냐?”
- 요원님의 귀가 그 정도로 좋진 않습니다.
“내 귓속에 있는 독립형 보조 모듈은 장식이냐?”
- 그 모듈에는 음파를 제어하는 기능이 있지만, 그 장치를 이용해 제가 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해킹 방지 때문에 직접 입력이 금지되어 있어서?”
- 예. 모든 정보 입력은 요원님의 감각을 통해야만 합니다.
“그럼 원래 경비원은 저 가짜부터 잡은 후에 찾아보자.”
나강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옆에 작은 장식용 화분이 보였다.
화분의 속은 비어있고 화분에 꽂힌 꽃도 플라스틱과 천으로 만든 조화였다. 그래도 화분 자체의 무게가 제법 나갔다.
나강인이 화분을 들고 짧게 말했다.
“저놈 머리에”
1층의 적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뒤통수가 보였다.
그가 앞으로 성큼 걸어 모퉁이를 벗어나며 말했다.
“꽃을 꽂자!”
그가 화분을 적을 향해 던졌다.
AI 전지인이 그의 팔 움직임을 조금 보정했다.
날아간 화분이 정확히 적의 머리를 때렸다.
“켁!”
플라스틱 화분이 튕겨 나가고 가짜 꽃이 흩어졌다.
적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흩어진 꽃이 적의 머리에 뿌려졌다.
“스트라이크!”
- 제가 팔의 각도를 조정하지 않았으면 볼이었습니다.
“니 팔뚝 굵다.”
- 저는 신체삽입형 전투지원 AI입니다. 제가 임시 제어권을 요청하는 팔뚝은 요원님의 팔뚝입니다. 그러므로 굵은 건 제 팔뚝이 아니라 요원님의 팔뚝입니다.
“그럼 널 만든 사람 팔뚝이 굵겠지.”
- 타당한 추측입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야. 넌 니 팔뚝만 아니면 되는구나?”
나강인이 기절한 놈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이 가짜 경비원은 다른 놈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이놈은 권총이 없어. 2층 놈들은 다 있었는데.”
이유는 짐작이 갔다.
“누군가 신고해서 경찰이 찾아오면, 경비원이 나와서 아무 일 없다면서 돌려보내려 했겠지. 이놈은 그런 역할을 맡았으니까 권총으로 무장할 수 없었겠지.”
그가 1층을 수색했다. 원래 경비원은 1층 구석에서 발견했다.
“지인아. 이 사람 상태는?”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살아있습니다. 약물에 의해 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약으로 경비원을 소란 없이 잠들게 하고 출입구를 차단한 거네.”
그가 경비원이 앉는 자리를 확인했다. 그곳에 출입구를 여닫는 장치가 있었다.
그걸 시험 삼아 살짝 눌러보았다. 하지만 건물 출입구 방화 셔터는 올라가지 않았다.
“안 열린다.”
- 제어 패널에 최근 외부 조작 흔적이 없습니다. 이 건물 내부에 상위 통제 권한을 가진 시스템이 있을 겁니다.
“거기서 건물 내 모든 장치를 정지시켰다? CCTV까지?”
- 적이 요원님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이 건물 특이하네. 2020년대에 이 정도 크기의 건물에 이런 수준의 중앙통제시설을 설치한 곳은 흔치 않을 텐데.”
나강인이 움직였다.
“7층에 가기 전에 통제실부터 찾자. 거기서 CCTV를 켤 수 있으면 7층 상황을 알 수 있을 테니까.”
***
나강인은 1층의 가짜 경비원과 진짜 경비원을 2층 사람들에게 넘겼다. 사람들은 가짜는 묶고 진짜는 한쪽에 눕혔다.
예비역 중위가 물었다.
“이제 1층 문을 뜯고 밖으로 나가면 되지 않을까요? 다들 여기 있는 걸 불안해하는데.”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적의 대응 수준으로 볼 때, 출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총을 사용하는 놈들입니다. 1층 문에 뭔가 설치해뒀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예를 들면 지뢰?”
“헉!”
“1층 문은 원격으로 열거나, 아니면 경찰이 와서 안전한지 확인한 후에 열어야 합니다. 위층은 이제부터 제가 확인할 테니까 지금은 여기가 제일 안전합니다.”
“아…. 그게 맞겠네요. 알겠습니다.”
이곳에는 어린이가 셋이 있다. 그중 여섯 살짜리 꼬마가 다가왔다.
“아저씨. 이거 줄게요.”
꼬마가 준 건 작은 장난감과 젤리가 같이 들어있는 어린이용 과자였다.
나강인이 과자를 받으며 씩 웃었다.
“착하네.”
그가 이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이 건물 다른 곳에도 사람이 있습니까?”
“이 건물은 2층은 우리 카페가 다 쓰고 7층은 레스토랑이 다 써요. 다른 층은 다 회사 사무실인데, 오늘이 토요일이잖아요. 아마 쉴 거예요.”
***
나강인이 3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대형 카페 하나가 한 층을 다 썼지만 3층은 사무실이 많았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3층에서는 사람이 만드는 소음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3층은 거의 모든 문이 모두 잠겨 있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이 열린 건 화장실밖에 없었다.
그가 화장실을 확인한 후에 말했다.
“2층 카페 사장 말대로네. 여긴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어.”
그는 4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분홍색 손거울을 이용해 계단을 슬쩍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거울에 비친 모든 사물을 조합해 계단 영상을 만들었다.
- 계단에서 특이사항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4층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4층 복도에도 사람은 없었다.
“여기도 조용하긴 한데.”
그가 4층을 뒤졌다.
4층은 3층과 달랐다. 잠금장치가 부서진 채로 문이 닫혀있는 곳이 있었다.
그는 문앞에서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전지인이 수신호를 이해하고 보고했다.
- 사람이 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설사 잠들었다 해도 이 거리라면 숨소리라도 들려야 합니다.
문이 닫혀있어 손거울은 쓸 수 없었다. 그는 권총을 쥔 채로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벌컥 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에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빠르게 훑어보았다.
시각 정보를 분석한 AI 전지인이 즉시 보고했다.
- 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강인이 권총을 아래로 내렸다.
안에는 모니터 여러 대와 컴퓨터, 서버용 렉이 있었다.
“여기가 맞는 거 같지?”
- 감시 및 제어장비를 다수 발견했습니다. 통제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놈들이 이걸 다 부숴놨네. 이러니까 여길 지키는 놈이 없지.”
통제실 내부 장비는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통신설비는 파괴됐다. 컴퓨터는 케이스가 뜯기고 내부 기판이 쪼개졌다. 저장장치도 멀쩡한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외부로 연결되는 통신용 케이블도 모조리 잘려있었다.
“아예 이 건물의 눈과 귀를 다 막아버렸어. CCTV는 물론이고 전화선과 인터넷 선까지 복구할 수 없게 해놨어. 이놈들이 내부 감시까지 포기하고 다 부숴놨으니까 나야 편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은 했다. 건물의 CCTV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2층 상황을 1층에서 모를 수가 없다.
“이놈들은 내부에서 뚫릴 걱정은 아예 안 했나 보다. 그러니까 오늘 영업하는 2층에만 무장 병력을 투입하고 나머지는 비워뒀겠지.”
- 요원님이 오늘 이 시간에 이곳에 올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역시 은하는 놈들의 목표가 아니야.”
- 당연합니다. 신은하는 전략적 가치가 없습니다.
***
건물을 점령한 무장 조직은 외부에도 감시병을 한 명 배치했다.
이 건물은 사각형이고 외벽도 네 개다. 그렇다고 감시병을 네 명이나 배치하는 건 인력 낭비다.
게다가 바깥에 있는 감시병은 얼굴에 복면을 쓰기도 어렵다. 기껏해야 마스크와 모자 정도만 써야 한다. 나중에라도 정체가 발각되지 않으려면 의심받지 않고 움직여야 하니 건물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 정찰병은 그 7층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입구만 확인했다.
그 카페 창가에 있으면 건물 입구에 접근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7층 건물의 2층 카페 유리벽은 그가 있는 곳에서는 직접 보이진 않았다.
테이크아웃 컵으로 커피를 마시며 건물 입구를 감시하던 조직원의 표정이 굳었다.
“어?”
경찰 순찰차가 정문에 도착했다. 거기서 경찰 두 명이 내렸다.
조직원은 긴장했다.
‘경찰이 왜 오지? 통신은 완전히 차단해서 신고도 못 할 텐데?’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곧바로 무전기를 켜 상황을 보고했다.
- 손님이 찾아왔다. 순찰차 한 대. 경찰 두 명.
***
건물을 점령한 무장 조직의 두목 자칼은 7층에서 무전을 받았다.
“경찰 순찰차?”
그가 7층을 보았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숨겨둔 휴대폰이 있다 해도 방해장치 때문에 어차피 통화는 어렵다.
오늘 이 건물은 2층 카페와 7층 레스토랑만 영업한다.
자칼이 2층을 점령하기로 한 부하를 호출했다.
***
나강인이 2층 조장을 제압하고 빼앗은 무전기가 울렸다.
- 2층. 카페에서 외부와 통화한 놈이 있나? 1층 현관에 경찰이 찾아왔다.
나강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정보 땡큐다. 새끼야.”
그가 AI 전지인에게 지시했다.
“지인아. 2층 조장의 목소리로 가자.”
- 2층 조장의 목소리 모사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무전기를 들고 입을 열었다. 그의 입에서 2층 조장과 비슷한 목소리가 나왔다.
- 우리가 여길 장악할 때 통화나 톡을 하던 사람이 몇 명 있었음. 갑자기 연락이 끊긴 걸 상대편 통화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신고했을 수 있음.
***
나강인의 목소리는 2층 조장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발음과 발성 특징은 정확히 일치하는데 음색이 조금 달랐다. 마치 연예인이 성대모사를 할 때와 비슷했다.
그 목소리가 음질이 선명하지 않은 무전기에서 나왔다. 그쯤 되면 구분하기 어렵다.
자칼은 2층은 문제가 없다고 착각했다. 그가 무전기의 통신 채널을 변경했다.
“1층.”
***
나강인의 두 번째 무전기에서 자칼의 음성이 들렸다.
- 1층.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이 층별로 다른 무전 채널을 사용합니다.
“지금 날 부른 놈이 1층과 2층을 번갈아 점검하잖아. 그럼 이놈이 두목이겠네.
- 타당한 추측입니다.
“내 목소리를 1층 계단에서 올라오던 놈 목소리로 바꿔.”
- 1층 적의 목소리를 모사합니다.
나강인이 1층에 있던 놈에게서 빼앗은 무전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1층.”
- 밖에 경찰이 찾아왔다.
“알고 있음.”
- 경찰에게 내부 수리 문제로 카페 손님들을 모두 내보냈다고 말해라. 문은 업체가 보안 시스템 교체 작업 중이라 열리지 않는다고 하고.
“해결하겠음.”
***
자칼이 무전기의 송수신 스위치를 수신 전용으로 돌려놓았다. 그는 오메가테크의 사장 스칼렛 켈리의 앞에 서서 실실 웃었다.
“들었지? 경찰이 와도 영장이 없으면 이 건물에 못 들어와. 의심 가는 정황이 없고 강제로 들어올 명분도 없거든. 나중에 수색영장이 나와봤자 우린 이미 이곳에 없겠지. 그러니까 접속코드 이야기를 마저 하지.”
***
나강인이 무전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AI 전지인이 물었다.
- 1층으로 다시 이동하시겠습니까?
“아니. 시간을 좀 벌려고 놈들을 속인 거야. 우린 계속 올라간다.”
그는 천천히 5층 계단을 올라갔다.
***
조금 떨어진 카페에서 건물을 감시하던 외부 조직원은 당황했다.
경찰 한 명은 정문으로 다가갔고 다른 한 명은 건물 옆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경찰이 1층 정문 앞에 서 있는데도 안쪽에서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뭐지? 난 분명히 보고했는데?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거 맞나?”
***
건물 옆으로 걸어간 경찰이 불평했다.
“카페에서 사람들이 팔을 흔들고 있으면 카페를 빌려서 춤이라도 추는 거겠지. 뭘 그 정도로 신고를.... 어?”
투덜대며 위를 올려다보던 경찰은 당황했다.
2층 유리벽 한복판에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가 있었다. 창문에서 다급히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보였다.
창문에는 큼직한 글씨로 쓴 종이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그가 침을 꼴깍 삼키고 그 종이들을 읽었다. 다른 건물에서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읽기엔 글자가 작았지만, 1층에서 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테러리스트들이 건물 점령!]
[그놈들이 총을 갖고 있어요!]
[우린 여기서 농성 중!]
[경찰에 신고해줘요!]
그 외에도 상황을 알리는 종이가 여러 장 붙어있었다.
그 경찰은 유리창의 거미줄이 뭔지 깨달았다.
‘진짜 총에 맞은 자국?’
그는 즉시 1층 정문 앞에 있는 동료에게 무전을 보냈다.
“형님. 아무것도 모른 척하고 차로 돌아가세요. 저도 차로 갈 테니까.”
- 어? 왜?
“차에서 말씀드릴게요. 여기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 경찰은 무전을 마친 후에 2층 카페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 후에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
경찰 두 명이 경찰차로 돌아갔다. 외부 감시 조직원은 경찰차가 건물을 떠나는 걸 보고 히죽 웃었다.
“멍청한 놈들.”
그가 무전으로 보고했다.
“경찰이 돌아갔다.”
자칼이 대답했다.
- 계속 감시하라. 모든 건 계획대로 되고 있다.
***
현장을 점검한 경찰은 돌아가는 차에서 상부에 상황을 보고했다.
경찰이 현장을 확인하고 하는 보고는 일반인의 신고와는 신뢰도가 완전히 다르다.
해당 지역 관할 경찰서는 당장 난리가 났다.
“전부 권총 챙겨!”
“팀장님! 총으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상대인데 겨우 권총으로 되겠습니까?”
“우리만 가냐? 경특도 오잖아!”
***
나강인은 5층에 진입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놈들이 병력이 남아돌진 않나 봐. 그나마 다행이다.”
- 7층에는 2층보다는 많은 병력이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놈들의 목표가 7층에 있을 테니까.”
나강인은 혼자서 5층까지 점령했다.
이제 7층까지는 6층 하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