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42화 (42/411)

42. 연기력

나강인은 복도에서 우연히 이태호를 본 것처럼 연기했다.

이태호의 뒤에서 계단을 내려오던 네 명은 처음에는 당황했다. 그러다 대화 내용을 들은 후에는 피식거렸다.

그들이 계단을 마저 내려오며 말했다.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 있었네? 건물 수색 제대로 한 거 맞아?”

“문이 잠긴 곳은 건너뛰었겠지.”

“일하는 꼴이 참 가관이다.”

“어차피 전화는 다 차단했잖아. 탈출 가능한 2층도 아니고 5층에는 한 놈쯤 남아 있어도 상관없어.”

다른 놈도 맞장구쳤다.

“맞아. 그래서 리더가 2층에만 3명을 배치한 거니까.”

나강인은 복도에서 이태호에게 표정과 손짓으로 진짜 의도를 전했다. 이태호는 그가 시키는 대로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이태호가 적의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AI 전지인은 적의 발소리를 데이터로 사용해 적이 계단 어디쯤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빠른 목소리로 보고했다.

- 적 선두 도착까지 1초!

벽 너머에 반투명한 사람 형태의 외곽선이 보였다.

AI 전지인은 적의 총구가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나강인은 적이 총을 겨누고 내려온다고 가정했다.

첫 번째 적이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며 복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나강인이 튀어나갔다.

적의 눈이 동그래졌다. 적의 소음 권총은 복도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각도로 총이 발사되면 이태호가 맞는다.

나강인이 적의 팔을 잡아 옆으로 확 젖히며 목에 팔꿈치를 박았다.

“켁!”

적은 짧은 비명과 함께 무너졌다.

적의 팔이 옆으로 젖혀질 때 권총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움직였다. 적의 권총에서 발사된 총탄이 계단을 내려오던 놈의 몸에 명중했다.

“윽!”

적은 낮은 레벨의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아음속 총탄이 적의 몸에 충격을 주긴 했지만, 그 방탄조끼를 뚫지는 못했다.

상관없었다. 나강인도 권총이 있다.

그는 기절한 놈을 방패로 삼으며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만 쏜 게 아니다. 두 발은 적의 몸통을 때려 상대가 반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뒤따라 날아간 두 발은 팔과 다리에 하나씩 박혔다. 적의 팔다리에는 방어구가 없었다.

“으악!”

적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위를 굴렀다.

좀 더 뒤에서 계단을 내려오던 두 놈은 나강인이 앞에 있던 둘과 싸우는 동안 권총을 조준했다.

나강인은 기절한 놈을 방패로 쓰고 있었다.

AI 전지인이 예상 탄도를 그렸다. 적이 쏠 수 있는 곳은 나강인의 얼굴밖에 없었다.

반면에 적들은 온몸이 노출됐다.

나강인이 유리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도 나강인이 적보다 빨랐다. 그는 계단 위에 서 있는 놈의 다리를 노렸다. AI 전지인이 명중률을 높였다.

나강인이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그의 권총에서 기분 나쁜 쇳소리가 났다. 총알이 발사되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재빨리 보고했다.

- 잼! 총알이 걸렸습니다!

“젠장!”

이젠 상대가 유리해졌다. 적의 화망에 갇히면 위험하다.

나강인이 방패로 삼았던 적을 놓고 옆으로 점프했다.

적은 아직 두 명이 남아 있었다. 적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그의 머리가 있던 곳을 지나갔다.

나강인이 벽을 밟고 위로 뛰어올랐다. 총탄이 그가 밟았던 곳에 꽂혔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몸을 뒤집었다. 그러면서 손을 뒤로 돌려 허리 뒤에 꽂아놓았던 예비 권총을 뽑았다.

AI 전지인이 적의 예상 사격 코스를 허공에 그려주었다. 여러 개의 반투명한 붉은 선이 허공에 연달아 나타났다. 그 선에 신체가 걸리면 높은 확률로 총에 맞는다. 공중에 뜬 상태에서 그걸 다 피하는 건 어려웠다.

그의 발끝이 천장에 닿았다. 그는 천장을 발로 차며 몸을 회전시켰다. 이번엔 조금 위험했다. 적이 발사한 총알이 그의 허리를 스치며 날아가 벽에 꽂혔다.

나강인도 공중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사격을 보조하긴 했지만,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권총을 쏘면 명중률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가 쏜 첫발은 빗나갔다.

적의 총탄은 그의 어깨 근처를 지나갔다.

나강인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째 총알이 적의 방탄조끼에 막혔다.

AI 전지인의 적 사격 예측에도 오차가 있었다.

적이 쏜 총탄이 예상한 코스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날아와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벽에 맞고 튄 유탄이 도로 날아왔다. 시멘트 조각까지 그를 향해 튀었다.

벽과 천장을 한 바퀴 돌며 회전한 나강인이 복도 벽을 발로 차 반대 방향으로 뛰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명중탄이 제대로 나왔다. 적의 다리에 총알이 박혔다.

“으아악!”

그놈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나강인이 바닥에 착지했다. 제일 뒤에 있던 놈은 위쪽 계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옆으로 뛰며 굴러떨어지는 놈의 머리를 걷어찼다. 동시에 총을 계단 위로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놈은 공격을 포기하고 올라가는 계단 뒤로 몸을 숨겼다.

AI 전지인이 재빨리 말했다.

- 적이 본대에 합류하기 전에 잡아야 합니다!

“알아!”

나강인 계단을 밟고 뛰어 올라갔다.

이태호는 복도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강인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총탄이 빗발칠 때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다 나강인이 계단을 향해 뛰는 걸 보고 다급히 말했다.

“거기 지뢰가!”

계단 뒤로 피한 놈은 부비트랩만 믿었다.

‘저놈이 계단을 밟으면 터진다!’

계단에 설치한 건 레이저 감지방식 폭발형 부비트랩이다. 사람이 계단을 지나가다가 센서의 레이저를 건드리면 미리 설치해둔 초소형 폭탄이 터진다.

그 폭탄은 크기가 워낙 작아서 화력은 약하다.

그런데 그 폭탄에는 열두 개의 다트가 붙어있다. 작은 폭탄이 터지면 그 다트 한 세트가 일제히 날아가 센서에 걸린 사람의 다리에 구멍을 뚫는다.

복면인은 폭발을 기대하며 귀를 막았다. 초소형 폭탄이라도 좁은 공간에서 터지면 귀를 다칠 수 있다.

‘놈이 무력화되면 바로 쏴버리겠….’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폭탄이 이미 터졌어야 한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전투라 놓치고 있던 것도 생각났다.

‘두 명이나 계단에서 굴렀는데도 부비트랩이 안 터졌잖아!’

그가 다급히 귀를 막은 손을 뗐다. 그런 그의 눈에 계단 위로 점프한 나강인이 보였다.

적은 급히 권총을 들며 방아쇠를 당겼다.

늦었다. 총구도 엉뚱한 방향을 향했다. 총탄은 나강인이 지나간 공간 뒤쪽 벽에 박혔다.

나강인이 공중에서 다리를 뻗었다. 발바닥에 적의 얼굴이 걸렸다. 그대로 걷어찼다.

“켁!”

마지막 놈은 고개가 뒤로 덜컥 젖혀졌다가 그 자리에 무너졌다.

나강인이 계단 난간을 발로 툭 차서 자세를 잡고 바닥에 착지했다. 그런 후에 부비트랩 쪽을 슬쩍 보았다.

부비트랩의 기폭장치는 이미 해체했다. 센서에 걸려도 폭탄은 터지지 않는다.

나강인이 위쪽을 보며 물었다.

“다른 놈은?”

- 다른 적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계단 상황을 확인했다. 무장한 복면인 넷이 자빠져 있었다. 둘은 그에게 맞아 기절했고 둘은 팔다리에 총상을 입고 신음을 흘렸다.

짧은 전투가 끝났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근접전투지원을 종료합니다.

나강인이 방금 치른 전투를 평가했다.

“역시 쏘기 전에 어디로 쏠지만 알면 총알도 피할 수 있단 말이야.”

- 제가 잘 지원해서입니다.

“리듬게임 하는 느낌으로 피하면 되더라. 공중에 선이 보이면 손가락이 아니라 몸을 비틀어 피하는 것만 달라.”

- 자연로보틱스의 근접전투지원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리듬게임과는 격이 다릅니다.

“넌 이 상황에서까지 회사 광고를 하고 싶냐?”

- 기본 옵션이라 광고를 끌 수 없습니다.

“알았다. 리듬게임 아니고 탄막게임.”

-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탄막게임은 총알을 피하는 거잖아.”

***

THO 엔터 사장 이태호는 복도에 서 있었다. 그의 위치에서는 계단 위쪽 전투는 보이지 않았다.

“와. 진짜….”

계단 아래쪽 전투만 봐도 어마어마했다.

그는 나강인이 유괴범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알지만, 총을 든 놈들하고 치고받고 싸우는 모습은 느낌이 또 달랐다.

계단이 조용해졌다. 그는 복도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고개를 살며시 내밀었다. 계단 중간 넓은 곳에 서 있는 나강인이 보였다. 벽에 발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강인이 아래쪽을 슬쩍 본 후에 다시 위쪽을 확인하며 물었다.

“이태호 사장님. 7층에서 오셨죠? 7층 정보가 필요합니다.”

“예? 예?”

“쓸만한 거 있으면 말해보세요.”

이태호가 얼른 설명했다.

“여기 이놈들은 저를 데리고 2층까지만 가기로 했습니다. 2층에도 세 놈이 있는데 그놈들에게 절 넘길 거라고 하더군요.”

“그런 후에는요?”

“이놈들은 머리에 뒤집어쓰는 복면을 몇 장 더 가져왔습니다. 그걸 2층에 있는 민간인들에게 씌워서 1층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습니다.”

“그럼 1층 밖으로 인질들과 같이 나가는 건 2층에서 교대한 놈들이겠군요.”

“네. 거기다 1층에서도 한 명 보충한다고 하던데요.”

“이 사장님은요?”

“저, 저요?”

“왜 데려간 겁니까?”

“아! 저는 복면 없이 밖에 나가서 바깥에 있는 경찰에게 요구사항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탈출에 필요한 차량을 가져오라고 하라던데요.”

나강인이 적의 의도를 추측했다.

“민간인들에게 복면을 씌우고 앞에 세우면,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민간인들부터 맞을 겁니다.”

“어? 잠깐만요. 총격전이요? 저도 밖에 나가는데요?”

“이 사장님은 얼굴이 노출됐으니 경찰이 조준해서 쏘진 않겠죠.”

“아니, 그래도 빗나가는 총알이라는 게 있는데….”

“제가 지금 이놈들을 잡았으니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아. 그렇죠. 그러니까 저놈들은 저는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스피커로 쓰고, 민간인은 복면을 씌워 총알받이로 쓰려던 거군요.”

“다른 목적도 있습니다. 경찰은 자기들이 민간인을 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후부터는 진짜 적을 봐도 사격을 극도로 자제하겠죠. 구분이 안 되니까요.”

“와. 지독한 놈들…. 어? 강인 씨. 만약 총격전이 벌어지면 저놈들도 위험해지는 거 아닙니까?”

“밖에 나가는 건 2층에 있는 세 놈. 그리고 1층에 있는 둘 중 한 놈. 그놈들은 적의 핵심 멤버가 아닙니다. 총에 맞아도 되는 걸 보면 용병이겠죠.”

“용병이요? 우리나라에 용병이 있습니까?”

나강인이 한 놈의 마스크를 벗겼다. 동양인의 얼굴이 나왔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동양계 용병을 골랐을 겁니다. 그러면 복면만 벗지 않으면 범인은 모두 한국인으로 알려질 테니까.”

“왜 그렇게 한 걸까요?”

나강인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경찰이 벌써 이 건물을 포위했을 리 없다. 포위는커녕 신고조차 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래야 경찰이 이 사건을 한국인이 저지른 범죄로 보고 수사하는 동안, 이놈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럼 이건 미제 사건이 되는 겁니다. 국내를 아무리 뒤져도 범인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아…. 치밀한 놈들이네요. 그래서 이놈들이 한국말로 계속 떠든 거군요.”

“목격자들에게 이게 한국인이 저지른 범죄라는 인식을 계속 심어줘야 하니까요.”

***

관할 경찰서 형사는 팀장의 지시를 받고 나강인의 신원을 조회했다.

그는 인터넷에 있는 차량 납치 동영상을 예전에 봤다. 그래서 나강인이 잘 싸운다는 건 안다.

그런데 나강인의 신원조회를 서둘러 해봐도 특수부대 경력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형사팀장은 보고를 받고 나서 걱정했다.

“이 사람 무술 실력이 대단한 건 알아. 아는데, 그래도 총 든 놈들에게 덤비면 총에 맞을 거야.”

“아무리 잘 싸워도 아마추어인데 설마 총 앞에서 그러겠습니까?”

“그치? 총을 가진 놈들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설마 덤비진 않겠지?”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러면 죽는데.”

***

이태호가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2층 사람들도 위험합니다. 어떻게 구출할 방법이 없을까요?”

나강인이 대답했다.

“2층은 괜찮습니다.”

“예?”

“이미 다 정리했으니까.”

이태호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정리라는 게 무슨 뜻인지….”

“1층에서 2명, 2층에서 3명의 적을 잡았습니다. 2층에 있는 사람들에겐 권총 두 자루를 줬으니까 돌발상황이 생겨도 쉽게 뚫리진 않을 겁니다.”

이태호는 당황했다.

“어, 어?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는 7층에서 들은 게 있다.

“두목이 1층과 2층에 무전기로 상황을 물어보고 나서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던데요?”

갑자기 쓰러진 놈이 갖고 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 상황 보고하라.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전지인에게 지시했다.

“무전기 가진 놈 목소리 모사해.”

그런 후에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5층에 두 놈이 있어서 제압했음. 우리 피해는 없음.”

- 층별 수색은 제대로 했을 텐데?

“벽에 걸린 그림 뒤에 작은 창고가 있음.”

- 거길 놓쳤군. 해결했으면 됐다. 시간이 없으니 5층만 빨리 수색하고 이상 없으면 계속 진행해.

무전기가 조용해졌다.

이태호가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가, 강인 씨. 방금 그거 저기 기절한 저놈 목소리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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