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44화 (44/411)

44. 탈출 루트

무장집단의 두목 자칼의 목표는 오메가테크의 기밀 서버 접속코드다. 사장 겸 연구 총책임자인 스칼렛 켈리가 그 접속코드를 알고 있다.

자칼이 중얼거렸다.

“고문이나 직접 협박이 통할 여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는 스칼렛이 아니라 인질들을 죽인다고 협박했다.

효과는 좋았다. 스칼렛은 눈에 띄게 동요했다. 자칼은 한 시간이면 스칼렛이 접속코드를 털어놓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다 틀어졌다. 한국 경찰이 너무 빨리 건물을 포위해서 접속코드를 알아낼 시간이 없었다.

자칼은 방법을 바꾸었다. 플랜 B, C, D는 포기했다. 플랜 E의 핵심은 측근만 데리고 타깃과 함께 건물을 탈출하는 것이다.

플랜 E에서는 외부 고용 용병을 시간을 벌어줄 미끼로 쓴다. 그 용병들에게도 탈출하라는 지시를 하긴 하는데, 그 명령은 자칼이 빠져나간 후에야 전해진다.

그런 짓을 하면 용병계에 소문이 나쁘게 퍼진다. 그래서 자칼은 플랜 E를 그동안은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자칼과 부하들은 스칼렛 켈리를 데리고 건물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인질은 한 명 더 있었다.

자칼의 부하가 신은하를 향해 턱짓하며 물었다.

“보스. 저 여자는 왜 데려가는 겁니까? 우리끼리 빠져나가기도 빠듯한데.”

“그러니까 네가 리더가 못 되는 거다. 대비할 줄 모르니까.”

“아니, 뭐 그렇게까지….”

자칼이 설명했다.

“도마뱀은 위기에 빠지면 꼬리를 자르고 도망친다. 그러면 적은 그 꼬리를 보느라 도마뱀을 놓치게 되지.”

“아! 이 빌딩을 탈출하다가 경찰이 쫓아오면 저 여자를 던져주는 거군요.”

“그렇지.”

“그런데 미끼가 왜 저 여자여야 합니까?”

“도마뱀의 잘린 꼬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효과가 있겠냐?”

“아뇨.”

“꼬리의 목적은 적의 시선을 끄는 거다. 유명 여배우가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총 정도는 맞아줘야 모든 시선이 저 여자에게 쏠리지. 우린 그때 빠져나가면 돼.”

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부했다.

“역시 보스는 대단합니다.”

두 사람은 영어로 대화했다.

신은하는 영어가 약하다. 그래서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스칼렛 켈리는 알아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칼이 그런 스칼렛을 보며 서늘하게 웃었다.

“경찰이 안 쫓아오면 저 여배우는 접속코드를 알아내는 재료로 쓰면 돼.”

바로 그때 레스토랑 쪽에서 총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아무리 아음속 저소음탄을 쓰는 소음권총이라고 해도 그렇게 여러 발을 쏘면 소리를 못 들을 수가 없다.

곧바로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당황한 자칼이 권총을 레스토랑 쪽으로 향했다. 그러면서 뒤쪽에서 작업하는 부하에게 물었다.

“작업이 왜 이렇게 늦어!”

그의 부하가 벽에 얇게 발라진 인테리어용 시멘트를 긁어냈다. 그 뒤에는 가로세로 50cm 정도 크기의 환풍용 철망이 숨겨져 있었다.

부하가 전동드라이버로 나사 네 개를 풀고 환풍용 철망을 뜯어냈다.

“뚫었습니다!”

자칼이 그 구멍에 머리를 넣고 아래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그 통로는 건물 지하실까지 뻥 뚫려 있었다.

이 건물은 수직 환풍 통로가 사람이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하강 로프 설치해!”

다른 부하가 배낭에서 밧줄을 꺼내 주변 구조물에 감았다.

자칼은 부하에게 지시를 내려놓고 복도 끝을 보았다.

그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가 레스토랑에 침입했지? 경찰은 아직 밖에 있는데?”

그는 우선 신은하와 스칼렛을 탈출구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의 부하 두 명은 앞쪽에서 복도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자칼이 무전기를 켜고 1층을 호출했다.

“1층! 누군가 들어왔다!”

나강인이 1층 담당자의 목소리를 흉내 내서 대답했다.

- 그럴 리가 없다. 1층 현관은 완전히 막혀 있다.

“그럼 건물 안에 있던 놈이란 소린데….”

자칼이 무전기의 호출 채널을 2층으로 바꾸었다.

“2층! 건물 안에 누군가 있다. 거기서 빠져나간 놈 있나?”

나강인이 대답했다.

- 없다. 모든 상황은 안정적으로 통제 중이다.

자칼이 무전 채널을 계단으로 내려보낸 용병 네 명 중 조장의 것으로 바꾸었다.

“건물 안에 누군가 있다. 내려가면서 사람 그림자라도 본 적 있나?”

이번에도 나강인이 대답했다.

- 없다. 5층도 수색을 마쳤다. 깔끔하다.

“젠장. 환장하겠네.”

그가 이번에는 7층 채널을 통해 물었다.

“레스토랑. 살아있으면 상황을 보고해라. 총소리가 왜 들린 거지?”

- 손님들이 덤벼서 그냥 쏴버렸다. 지금 상황은 안정적이다.

자칼은 당황했다.

“뭐? 이 새끼가! 사건을 너무 키우면 우리가 탈출한 후에 피곤해진다고 했잖아! 거기 있는 사람들을 죽이면 어떻게 하나!”

앞에서 권총으로 모퉁이를 겨누던 부하 두 명의 총구가 아래로 내려갔다. 레스토랑에 누가 쳐들어온 게 아니라 남겨둔 용병들이 저지른 일인 것처럼 자칼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 두 명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바로 그 순간 나강인이 모퉁이 너머에서 튀어나왔다.

적의 반응이 살짝 늦었다. 그들이 총을 다시 들고 방아쇠를 당긴 건 나강인이 복도로 완전히 진입한 후였다.

적이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에 AI 전지인이 사격방향을 예측했다. 적은 나강인의 상체를 조준했다.

나강인은 왼팔에 방탄조끼 두 벌을 방패처럼 걸고 돌진했다. 적이 발사한 총탄이 방탄조끼에 퍽퍽 박혔다.

일반인이라면 그 충격으로 균형을 잃거나 심하면 팔이 부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강인은 일반인이 아니다. 그의 근력은 인간의 한계를 한참 뛰어넘었다.

총탄은 방패를 뚫지 못했다.

여기 있는 놈들은 아래층에 있는 놈들보다 전투력이 높았다. 그들은 상체에 쏴봤자 소용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총구를 아래로 내려 나강인의 하체를 노렸다.

방탄조끼로 향하던 예측 사선이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나강인이 즉시 바닥을 박차고 벽을 밟았다. 적이 쏜 총탄이 바닥에 꽂혔다. 그는 오른쪽 벽을 밀어 차고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밟았다.

나강인은 나선을 그리며 공중을 달렸다. 적이 쏜 총탄은 그가 지나간 벽과 천장에 한 박자 늦게 박혔다.

나강인이 아래로 떨어지며 적을 걷어찼다.

“켁!”

걷어차인 놈은 벽에 처박혔다.

다른 놈이 급히 권총을 나강인 쪽으로 돌렸다.

나강인이 더 빨랐다. 그는 적을 스치듯이 지나가며 목에 팔꿈치를 박았다.

“컥!”

적은 짧은 비명과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더 뒤쪽에서 자칼과 부하가 각자 스칼렛과 신은하를 붙잡고 있었다.

나강인이 복도에서 돌진할 때 총을 쏘지 않은 건 인질들의 안전 때문이다. 그는 모든 적이 그를 향해 사격하길 바랐다.

하지만 자칼은 그의 예상과 달리 인질을 잡는 쪽을 택했다.

적들이 있는 장소는 복도보다는 넓었다.

자칼과 부하는 약간 떨어져 있었다. 적이 당황한 지금 공격해야 인질을 한 명이라도 구출할 수 있다.

우선순위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가 신은하를 향해 외쳤다.

“앉아!”

신은하가 즉시 주저앉았다.

그녀의 몸이 아래로 쑥 내려가다가, 적의 팔에 가슴이 걸렸다.

어쨌든 적의 상체가 드러났다.

나강인이 즉시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총알이 적의 방탄조끼에 퍽퍽 꽂히며 상체를 뒤로 밀어냈다.

신은하를 잡고 있던 적의 팔이 풀렸다.

나강인은 계속 전진하며 사격했다. 그러면서 신은하의 팔을 잡아당겨 등 뒤로 숨겼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격은 멈추지 않았다.

뒤로 죽죽 밀려나던 적의 양쪽 어깨에 총알이 한 발씩 박혔다.

“으아악!”

적이 뒤로 나자빠졌다.

이제 남은 적은 자칼밖에 없다.

자칼은 나강인이 신은하를 구출하는 걸 보면서도 그를 향해 쏘지 못했다.

부하가 맞을까 봐 걱정해서가 아니다. 스칼렛이 신은하처럼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쳤기 때문이다.

자칼이 반항하는 스칼렛의 팔에 총을 한 발 발사했다.

“악!”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저항을 멈췄다.

나강인이 적의 어깨에 총알을 박을 때 자칼은 스칼렛의 머리에 총을 겨누었다.

자칼이 권총을 스칼렛의 머리에 겨눈 채로 외쳤다.

“이 새끼! 넌 도대체 뭐야!”

나강인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날 방패 삼아서 내 뒤로 천천히 물러나.”

“어? 나만 가? 왜?”

“아직 구해야 할 사람이 남았잖아. 두목도 잡아야 하고.”

자칼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모든 무전이 정상….”

자칼은 뒤늦게 나강인의 허리에서 무전기를 발견했다.

자칼은 무전기를 한 팀에 한 대씩만 주었다. 그런데 그 무전기 네 대가 모두 나강인의 허리에 걸려 있었다.

자칼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너였냐! 내 무전에 대답한 게 모두 다 너였단 말이냐!”

나강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너 잘 속더라.”

“너 도대체 누구야!”

“지나가던 카페 손님.”

자칼은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만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는 궁리했다.

‘저놈의 움직임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빨라. 권총으로 쏜다고 해도 방패로 막거나 피하겠지.’

이미 부하들이 나강인을 향해 권총을 난사했는데 명중탄은 한 발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놈을 혼자 쏴서 명중시킬 자신이 없었다.

‘정면대결은 무리다.’

탈출 통로에는 밧줄은 설치되어 있었다.

통로와의 거리도 확인했다. 여기서 점프하면 통로로 쏙 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그런 후에는 줄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나강인이 그걸 보고만 있을 리 없다.

그가 탈출구에 들어가는 데 성공한다 해도, 1층까지 줄을 타고 내려갈 때 나강인이 위에서 몇 발만 쏘면 상황은 끝난다.

‘저놈이 있는 한 탈출은 불가능하다. 저놈을 죽여야 해.’

문제는 방법이다.

‘보통 놈이 아닌데 어떻게 하면 죽….’

그의 눈에 나강인의 뒤에 있는 신은하가 보였다.

자칼의 눈이 번뜩였다.

‘저 여자! 저게 저놈의 약점이다!’

신은하는 나강인의 뒤에 숨어있다. 자칼이 머릿속으로 방법을 궁리했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자칼이 총구를 스칼렛의 머리에 댄 채로 외쳤다.

“총 버려!”

“버리겠냐?”

“안 그러면 이 여자는 죽어! 버려!”

“쯧.”

나강인이 혀를 찬 후에 권총을 아래로 툭 던졌다.

“됐냐?”

뒤에서 신은하가 비명을 질렀다.

“미쳤어? 총을 왜 버려!”

AI 전지인도 화를 냈다.

- 요원님! 미쳤습니까!

자칼이 자기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반반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총을 버렸어!’

그렇다고 방심하지는 않았다.

‘저놈 능력이면 권총 정도는 막거나 피할 거야. 그러니까 쉽게 버렸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저놈이 피하면 뒤에 있는 여자가 총에 맞는다. 그럼 저놈은 당황하겠지. 저 여자가 저놈의 약점이니까! 그때를 노려야 해!’

자칼이 스칼렛의 머리를 겨누던 권총을 나강인 쪽으로 뻗었다.

‘안 피하면 더 좋지. 그럼 저놈은 내 총에 죽….’

갑자기 눈앞에서 빛이 번뜩였다. 손이 마치 불로 지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으아악!”

그의 오른손에 잭나이프가 꽂혔다. 그건 나강인이 조금 전 레스토랑에서 빼앗은 칼이다.

나강인은 일부러 권총을 버려 적이 총구를 인질의 머리에서 떼도록 유도했다. 그런 후에 적이 총구를 그가 있는 방향으로 틀 때를 노려 잭나이프를 던졌다.

나강인이 손을 뻗으면 자칼의 권총을 쥔 손까지의 거리는 3m밖에 안 된다. 그가 나이프를 던지자마자 칼이 자칼의 손에 꽂혔다.

칼이 박힐 때의 충격으로 권총이 발사되긴 했지만 총탄은 천장에 박혔다.

권총은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나강인이 자칼을 향해 성큼 걸었다.

자칼도 스칼렛을 앞으로 밀며 뒤로 뛰었다. 이미 탈출구로 향하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나강인은 스칼렛을 슬쩍 잡아 뒤로 미끄러뜨렸다.

“받아.”

스칼렛이 신은하 쪽으로 휘청거리며 밀려갔다.

신은하가 얼른 그녀를 붙잡았다.

자칼은 나강인이 스칼렛을 잡아 미끄러뜨리는 동안 오른손에 꽂힌 칼을 뽑았다.

나강인이 다시 전진했다. 자칼이 칼을 휘둘렀다.

나강인이 몸을 옆으로 슬쩍 기울여 그 칼을 피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나강인의 신체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힘을 낼 수 있다. 그가 내지른 주먹이 자칼의 몸통에 정확히 꽂혔다.

“커억!”

자칼의 방탄조끼가 마치 폭탄 충격파라도 맞은 것처럼 반구 형태로 푹 눌렸다가, 몸이 접히며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자칼은 방탄조끼 덕분에 기절하진 않았다. 그는 바닥을 왼손으로 짚으며 서둘러 일어났다.

자칼이 소리를 질렀다.

“너 어디서 나온 새끼야? 코드네임이 뭐냐고!”

나강인이 앞으로 걸어갔다. 자칼이 허리에 꽂아둔 대검을 거꾸로 잡고 뽑아 앞을 방어했다.

자칼이 자세를 살짝 낮추며 말했다.

“난 총이 아니라 칼을 더 잘….”

나강인이 자칼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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