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진입
나강인이 돌려차기로 자칼의 머리를 공격했다.
자칼은 즉시 단검으로 왼쪽을 베었다. 나강인이 그대로 차면 칼날에 다리가 베인다.
나강인이 내지르던 다리를 갑자기 당겼다. 허공에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처음부터 허공을 차려던 것처럼 보였다.
자칼의 칼이 그 허공을 갈랐다.
나강인이 당겼던 다리를 다시 뻗었다. 이번에는 자칼의 다리를 가볍게 걷어찼다.
자칼은 왼쪽 위로 헛칼질을 하느라 하단을 방어하지 못했다.
“컥!”
자칼의 다리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중심은 완전히 흐트러졌다.
나강인이 중심을 잃는 자칼의 옆구리에 돌려차기를 제대로 먹였다. 방탄조끼가 옆으로 찌그러졌다.
자칼은 몸이 옆으로 밀려나는 상황에서도 칼을 크게 휘둘렀다. 목표는 나강인의 다리였지만 또 허공만 베었다.
나강인은 허공을 베는 적의 왼팔을 걷어찼다. 자칼의 대검이 손에서 빠져나와 천장에 꽂혔다.
자칼의 상태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몸은 옆으로 꺾여 있고 앞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나강인이 앞차기를 날렸다. 발뒤꿈치가 자칼의 몸통에 정확히 박혔다.
자칼은 뒤로 쭉 밀려나 벽에 충돌했다. 그런 후에 벽에 기댄 채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전투가 끝났다. 자칼은 이미 기절했다.
자칼은 전투 초반에 나강인이 어느 기관에서 나왔는지 물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피시방이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인질이 팔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응급조치가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뒤로 돌아서 레스토랑을 향해 외쳤다.
“거기 누구 있으면 구급상자라도 가져와요!”
레스토랑 대표 셰프 오규철은 아래로 내려갔다가 THO 엔터 사장 이태호를 만나고 다시 올라왔다. 그는 총격전 소리를 듣고 도로 밑으로 내려가려던 참이다.
하지만 도망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나강인의 목소리를 듣고 누가 이겼는지 깨달았다.
오규철이 급히 외쳤다.
“제가 여길 지키고 있었습니다! 약도 있습니다!”
오규철은 레스토랑에서 대형 구급상자를 찾아서 뛰어왔다.
구급상자에 수술용 바늘은 없지만 소독약은 충분히 있었다.
“바늘도 있어야 하는데.”
오규철이 레스토랑으로 뛰어가 요리용으로 쓰는 실과 바늘을 가져왔다.
나강인이 그 바늘을 반원형으로 휘었다.
상처를 꿰맬 때는 AI 전지인이 개입했다. 덕분에 실의 간격이 재봉틀로 박은 것처럼 일정했다.
스칼렛 켈리는 조금 전에 자칼이 한 말 때문에 나강인이 특수요원이라고 착각했다.
AI 전지인이 부상 정도를 설명했다.
- 뼈와 중요 혈관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나강인이 스칼렛의 팔에 붕대를 감아주며 말했다.
“상처가 깊지는 않지만, 응급조치만 했으니까 바로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녀가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했다.
“Thank you for saving my life. Special Agent.”
신은하가 말했다.
“한국말은 못 하시나 보다. 오빠. 그거 알아? 이 미국 언니 때문에 우리가 고생을….”
스칼렛이 한국어로 말했다.
“할머니가 한국분이세요.”
“어머. 한국말 진짜 잘하시네요. 호, 호호. 그런데 왜 영어로….”
스칼렛이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이분은 아마 미국 정부에서 저를 보호하기 위해 몰래 붙여준 비밀요원일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위해서 싸웠....”
“아닌데요? 이 오빠는 한국사람인데요? 완전 토종인데요? 밥장산데요? 나 구하러 온 건데요?”
***
경찰특공대는 건물 진입팀을 준비했다. 그들은 방탄조끼와 헬멧, 기관단총으로 무장했다. 일부는 기관단총이 아니라 돌격소총을 챙겼다. 돌격소총의 5.56mm 총탄은 낮은 레벨의 방탄조끼로는 막을 수 없다.
진입팀만 준비한 게 아니다. 지원팀도 있었다.
“저격수 모두 배치했습니다.”
경찰 저격수는 지상은 물론이고 근처 다른 건물 옥상에도 배치됐다.
“저 7층 건물 옥상에 올라온 놈은?”
“아직 없습니다.”
“인질을 데리고 올라오는 놈이 있을 거다. 옥상 저격팀은 긴장 늦추지 마라.”
“예!”
보고를 마친 경찰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경찰특공대 대장이 현장 지휘 책임자인 경찰 간부에게 물었다.
“진입 준비는 끝났습니다. 우리 협상 전문가는 언제 온답니까?”
“조금 전에 출발했다더라. 다른 기관에서도 사람 보냈다고 하고.”
“다른 기관이요?”
“이번 사건은 사이즈가 크잖아. 자기네 사람 보낸다는 기관이 한두 곳이 아니야.”
***
경찰이 이 건물이 무장 괴한에게 장악됐다는 걸 알게 된 지 20분도 지나지 않았다. 이 지역 관할 경찰서 형사나 경찰특공대는 즉시 출동해 건물을 포위했지만, 방송국 차량은 도착하지 않았다.
근처 건물에서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찍는 사람들은 있었다. 그들은 별다른 긴장감 없이 현장을 촬영했다.
“무슨 훈련 하나?”
“오늘 민방위 날도 아닌데?”
“설마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겠지?”
“아닐걸? 뉴스는 검색되는 게 없어.”
“무슨 일인지 몰라도 동영상 잘 찍어. 약 좀 쳐서 조회수 좀 올려보게.”
***
건물을 감시하던 경찰이 짧게 외쳤다.
“1층 현관 셔터 올라갑니다!”
현장에 있는 수많은 총의 총구가 즉시 현관을 조준했다.
7층 건물을 점령한 정체불명의 집단은 총으로 무장했다고 알려졌다.
한국 경찰은 범인을 잡을 때 총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 경찰이 총을 못 쏘는 건 아니다.
경찰특공대는 대테러 특수부대이고, 형사 중에도 특수부대 출신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일반 보병부대 출신 형사도 대부분 사격은 충분히 해보고 제대했다.
다들 바짝 긴장하며 출입구를 조준했다. 방아쇠로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뒤쪽에 있던 경찰 간부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이러다 누구 하나라도 쏘면 저기서 나온 놈들은 순식간에 벌집이 되겠….”
1층 출입구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누가 봐도 비무장 민간인이었다.
현장 지휘관이 무전기에 대고 다급히 소리쳤다.
“쏘지 마! 경계만 해! 민간인이다! 아니, 민간인으로 보인다!”
밖으로 나온 사람 중 몇 명이 손을 흔들었다.
이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다른 나라에서는 꽤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손 좀 흔든다고 방아쇠를 당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여기 없었다.
경찰특공대장이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저 사람들 데려와! 상황 파악해! 저 중에 테러리스트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그룹을 잘게 나눠서 관리해! 긴장 늦추지 마!”
현장 지휘관이 지시했다.
“내부 정보가 필요해! 어떻게 풀려났는지, 안엔 어떤 놈들이 있는지, 뭐든 다 알아내!”
구출된 사람들에게 형사들이 붙었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들이 본 걸 말했다.
“총을 든 놈 셋이 카페에 들어와서 우릴 총으로 쏘려고 했거든요? 와. 그땐 진짜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 안 죽고 사셨….”
“예?”
“아, 아닙니다. 어떻게 풀려나신 겁니까?”
“갑자기 어떤 손님이 뛰어나가더니, 그 새끼들을 그냥 팍팍 때려잡는데, 와. 정말 대단했습니다.”
다른 손님도 엄지를 세웠다.
“그 아저씨 진짜 최고였어요.”
형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놈들이 총을 가지고 있었다면서요? 그 손님도 총이 있었습니까?”
“아뇨. 손님이 왜 총이 있어요?”
“그럼 그놈들이 그 손님한테 총을 쏘지 않은 겁니까? 가짜 총이었습니까?”
“진짜 총이던데요. 그 손님한테 막 쐈어요.”
“예? 그럼 그 손님은 어떻게 됐….”
“총알을 막던데요?”
“예?”
“탁자를 휙휙 던져서 막던데요.”
7층 손님도 비슷한 질문을 받고 대답했다.
“총알이요? 피하던데요?”
“예?”
“그놈들이 총을 쏘긴 쐈는데, 그걸 다 피하던데요?”
옆에서 다른 손님이 맞장구를 쳤다.
“막 날아다니면서 피했죠.”
“맞아요. 맞아. 진짜 날아다니더라고요.”
건물에서 빠져나온 사람들로부터 정보를 얻어보려고 질문했던 형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이 현장 지휘관에게 보고했다.
“손님들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
“총알을 막았답니다.”
“총알을 피했다던데요.”
“날아다녔답니다.”
“한두 명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패닉 때문에 집단 환각에라도 빠진 거 아닐까요?”
현장 지휘관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단체로 약이라도 했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환각을 일으키는 화학무기를 이용한 테러 아닐까요?”
“그런 화학무기가 있어?”
“아니면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됩니다.”
“환장하겠네. 진압팀 준비됐다고 했지?”
“예.”
“방독면도 쓰고 진입해. 혹시 모르잖아.”
***
중무장한 경찰특공대가 건물에 진입했다.
그들은 1층부터 확인했다. 외부에서 얻은 정보대로 1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2층 공간은 카페가 모두 사용한다. 그들은 2층 카페에서 제압된 무장 조직원 다섯 명을 발견했다.
카페 사장과 손님 두 명이 남아서 그들을 지켰다. 그중 두 명은 제압된 적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민간인이 권총을 빼앗아 범인들을 지키고 있다는 말은 진입 전에 이미 들었다. 그래서 대원들은 사격이 아니라 경고를 했다.
“총 버려요!”
예비역 중위가 외쳤다.
“경찰 맞습니까!”
대원들을 뒤따라온 형사가 앞으로 나가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경찰 맞습니다. 우리 옷 입은 거 보시면 아시잖습니까?”
“휴우.”
권총을 들고 있던 두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총을 내렸다. 그들은 아예 총을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 새끼들이 테러리스트입니다.”
형사가 급히 물었다.
“테러리스트요? 자백했습니까?”
“예? 아니, 총 들고 쳐들어왔으니까 당연히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아닙니까?”
건물 내부에서는 아직도 휴대폰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대원들의 무전기는 제대로 작동했다.
“2층 카페에서 용의자 다섯 확인. 제압된 상태입니다. 밖에서 들은 정보와 일치합니다.”
- 지원팀이 들어갔다. 지원팀에 인계하고 계속 올라가!
중무장한 대원들은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계속 올라갔다. 각 층의 정밀수색은 관할 경찰서의 경찰들이 맡았다.
그들은 5층과 6층 사이 계단에서 THO 엔터 사장 이태호를 발견했다.
이태호도 권총으로 적을 겨누고 있었다.
선두에 선 대원이 총을 겨누며 외쳤다.
“총 버려요!”
이태호가 얼른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만세! 왔어! 경찰이 왔다고! 진짜 힘들었습니다! 빨리 좀 오시지!”
그의 오른손에는 아직도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총 버리라고!”
“아!”
이태호가 천천히 총을 내려놓았다. 경찰특공대 팀장이 다가와 그 총을 주우며 말했다.
“선생님 그러다 총 맞습니…. 뭐야! 허리에 총이 왜 이렇게 많아!”
이태호는 나강인이 복도에 던져놓은 권총들을 모두 허리에 차고 있었다.
“이게 그러니까, 대충 관리하다가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제가 모아서….”
팀장이 그 권총을 모두 빼앗아 뒤로 넘겼다.
“진짜 이러시다가 총 맞습니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에 말려드시게요?”
“어? 아니요. 절대로 아니죠.”
경찰특공대 팀장은 계단에 쓰러진 네 명을 보며 물었다.
“이놈들은 어떻게 제압한 겁니까?”
“제가 한 게 아닌데, 그냥 팍팍 하니까 되던데요.”
팀장은 답답했다.
“밑에서 물어볼 때는 총알을 막거나 피했다더니, 여기선 팍팍이네. 그게 도대체 무슨 뜻….”
대원 중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부비트랩 발견! 폭발물입니다!”
대원들은 모두 바짝 긴장했다.
“움직이지 마! 잘못 건드리면 터진다!”
팀장이 폭발물 담당 대원에게 물었다.
“해체할 수 있겠냐?”
“할 수는 있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일단 민간인부터 대피시키고 폭발물 해체 작업을….”
이태호가 부비트랩이 설치된 계단으로 발을 뻗었다.
“이거 괜찮….”
깜짝 놀란 대원들이 뒤로 우르르 물러났다.
“어허!”
“하지 마!”
이태호가 설명했다.
“이거 이미 해체된 건데요?”
“예?”
“그냥 올라가셔도 된다고요. 7층에 있던 사람들도 다 여길 지나갔는데 안 터졌잖아요.”
경찰특공대가 드디어 7층에 진입했다.
오규철이 입구에 서 있다가 경찰특공대원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페넬로페의 대표 셰프 오규철입니다.”
대원들의 총은 모두 앞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오규철이 서 있었다.
총구의 방향을 보고 당황한 오규철이 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누군지 아시죠? 아셔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