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50화 (50/411)

50. 대학생 해커 안성환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이 제작 거점에는 화재 진압 장비가 없습니다. 소화기를 구하십시오.

그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지금 그게 문제냐? 이렇게 하면 수리된다며?”

- 장비의 상태가 예상보다 더 나쁩니다.

“네 수리 스킬은 전장에서 파괴된 장비도 고칠 수 있다며?”

- 그런 장비는 적의 공격으로 일부가 파괴된 것이지, 낡아서 부서진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 있는 장비는 주요 부품이 너무 낡았습니다.

“그래서? 이거 살릴 수는 있냐?”

AI 전지인이 큰소리쳤다.

- 물론입니다. 다만.

“다만?”

- 이곳에 있는 자재만으로는 수리가 어렵습니다. 추가 장비와 자재가 필요합니다.

“그건 어떻게 구하는데?”

-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나강인이 인상을 썼다.

“야. 이….”

신은하가 대들었다.

“왜? 왜 나한테 막 인상 쓰면서 뭐라고 하는데! 내가 망가뜨린 거 아냐!”

“후우. 너한테 한 거 아니야. 이 기계를 망가뜨린 내 안의 또라이에게 한 말이야.”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또라이 기질 같은 거 말이야?”

“아냐. 그런 건. 그냥…. 쇼핑 가자.”

신은하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쇼핑 좋아! 가자! 여기 가까운 백화점으로 갈까? 아니면 내 단골샵?”

***

쇼핑 장소에 도착한 후에 신은하가 투덜댔다.

“뭐야. 백화점이 아니잖아. 공구상가잖아.”

영화 제작을 도와주고 받은 일억 원 중 절반은 주거용 거점인 아파트의 보증금으로 썼다. 이천만 원은 제작 거점 보증금과 일 년 치 선지급 임대료로 썼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우리에게는 아직 삼천만 원의 예산이 남아있습니다. 타버린 모터를 교체해야 합니다.

“모터는 하나면 되냐?”

- 거점에 있는 다른 장비의 모터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모터는 새로 사는 게 좋습니다. 드릴 팁도 종류별로 필요합니다. 금속 자재도 모자랍니다. 물자를 서둘러 확보하십시오.

“지인아. 너도 기억을 잃어서 잘 모르겠지만, 혹시 네가 나보다 계급이 높을 수 있냐?”

- 아닙니다. 저는 요원님의 AI 부관입니다.

“부관 아닌 것 같아.”

나강인은 공구상가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물건들을 확인했다. 가게에는 물건 없이 카탈로그의 사진만 있는 것도 있었다. 모든 장비를 가게에 진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야 할 건 많은데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저 레이저 커팅 장비도 필요합니다.

“저것까지 추가하면 바로 예산 초과야.”

- 저 CNC 조각기도 필요합니다. 2020년대의 장비라서 성능이 열악하지만 저 제품이 다른 것보다는 그나마 낫습니다.

“그 열악한 성능의 CNC 하나가 우리 예산을 다 털어도 못 살 만큼 비싸다.”

- 예산이 너무 부족합니다.

“입장이 바뀐 것 같지 않냐? 내가 고르고 네가 예산 타령하면서 말려야 하는 거 아냐? 혹시 자연로보틱스에서 너를 만들 때 일부러 쇼핑본능을 넣은 거 아냐?”

말하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연로보틱스가 장비 회사들하고 뒷거래를 한 거지. ‘우리 AI에 너희 회사 제품 쇼핑본능을 넣어주겠다. 너희는 우리에게 비자금을 보내라.’ 뭐 그런 거.”

- 아닙니다.

“아니면 너를 개발한 사람이 장비에 집착하는 성격이든가.”

- 자연로보틱스의 신체삽입형 AI는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생각하며, 성격도 각각 다릅니다.

“그럼 그거네. 네가 개인적으로 저런 장비들을 좋아하는구나? 너 이제 보니까 공대 공순이네?”

- 기왕이면 공대 여신이라고 해주십시오.

신은하는 나강인을 따라다니며 공구와 장비들을 구경했다.

그녀는 이곳에 있는 상품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었다.

“어머. 전기톱 멋있다. 저게 참 좋은 대화 수단이라던데.”

그녀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가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녀의 매니저 박우섭이었다.

“여보세요.”

- 은하야. 너 지금 어디냐?

“놀고 있지. 그러니까 꼴깝 떠는 게 아니라 진짜로 놀고 있어.”

- 집에서?

“아니. 밖에서.”

- 술 마시지 말고 컨디션 관리 잘해라.

“헐. 우리 엄마인 줄?”

- 너 CF 제안 들어왔다.

신은하가 비명을 질렀다.

“꺅! 실장 오빠. 엄마라고 불러도 돼?”

- 너 당분간 쉬겠다고 한 건 아는데….

“해야지! 할 거야!”

- 앞으로 며칠은 금주해야 한다? 관리해야지?

“알았어. 흐흐. 드디어 영화 대박 난 약빨이 나한테까지 오는구나!”

- 너 단독은 아니고 김유찬 씨하고 같이 하는 거야.

영화에서 신은하의 비중이 주연급으로 높아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짜 주연배우인 김유찬과 비빌 수는 없다.

둘이 같은 CF에 출연하면 김유찬이 가져가는 출연료가 많아질수록 신은하의 단가는 낮아진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아싸아.”

- 그런데 내가 나강인 씨 휴대폰 번호를 몰라.

“응? 강인 오빠 번호는 갑자기 왜?”

- 광고주가 CF에 화려한 움직임을 넣자고 한대. 그리고 그 동선 기획은 ‘햇살 좋은 날’의 액션을 담당한 사람에게 맡기고 싶다네? 영화 보고 감동 받았대.

신은하도 납득했다.

“하긴. 우리 영화는 액션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긴 했지.”

- 그런데 CF 제작사가 나강인 씨의 연락처를 몰라. 그래서 거기서 우리한테 연락한 거야. 넌 알지?

“번호가 뭐 중요해? 어차피 지금 같이 있는데.”

박우섭이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 어? 뭐? 둘이 왜 같이 있는데! 어딘데!

신은하가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떼며 목소리를 키웠다.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 야! 너 이제 막 뜨는 이 중요한 순간에 스캔들로 찬물 끼얹으면….

“여기 공구 상가야!”

- 어? 어디?

“공구 상가! 스패너도 팔고 전기톱도 팔고 레이저 커팅기도 파는 공구 상가! 강인 오빠가 철공소도 하나 하는데 거기 쓰는 장비 사러 왔어!”

-아. 데이트…는 아니구나?

신은하가 작게 투덜댔다.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 응? 뭐라고 잘 안 들렸어.

“아니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 아니, 난 뭐….

“어쨌든 강인 오빠한테 물어보면 되지? 할 건지.”

- 어. 한다고 하면 회사에 들러달라고 해. 우리가 필요한 서류 같은 건 싹 다 처리해줄 테니까.

“알았어.”

신은하가 전화를 끊고 나강인에게 물었다.

“강인 오빠한테 CF 무술감독 제안 들어왔는데, 생각 있어?”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 제작 거점의 장비 확충을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CF에 나가라고? 우리 지금 잠임 침투 작전 중 아니었냐?”

- CF에 얼굴이 노출되는 것만 아니면 상관없습니다.

“네가 돈에 눈이 멀었구나?”

- 작전 예산 확충을 위한 선택입니다.

신은하가 물었다.

“왜 중얼중얼하는데?”

“해도 괜찮을지 계산한 거야.”

“참 신기한 오빠라니까. 보통은 고맙다고 밥이라도 산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시큰둥하지?”

“밥은 아직 네가 살 게 더 많이 남은 것 같다만?”

그녀가 방긋 웃었다.

“흐. 그럼 이 밥은 나중에 얻어먹기로 하고, 오늘은 내가 살게. 밥 먹으러 가자.”

나강인은 조금 찜찜했다.

지난번에 신은하가 밥을 산다고 했을 때는 밥은 못 먹고 자칼 일당과 싸우기만 했다.

“이번엔 어디로?”

“우리 회사 구내식당.”

“응? 구내식당?”

“밥 진짜 잘 나와.”

***

신은하의 소속사 SAH 엔터테인먼트는 배우와 가수 여러 명이 소속된 연예기획사다. 아이돌 그룹도 남녀 각각 한 팀씩 있다.

신은하가 나강인을 데리고 SAH 엔터로 들어가 매니저인 박우섭 실장을 찾았다.

“실장 오빠. 나 왔어.”

박우섭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 그래. 물어는 봤…. 어? 나강인 씨!”

박우섭은 신은하의 영화 촬영장에서 나강인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처음에는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가, 나강인이 그 영화의 액션 파트를 책임진다는 걸 알고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그러다 손태민 감독이 나강인만 믿고 시나리오를 다 뜯어고쳤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부터는 박우섭이 나강인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졌다. 시나리오가 바뀐 덕분에 신은하의 영화 속 비중이 조연에서 주연급 조연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조금 들렸다.

“저 사람이 그 나강인이야?”

“엄청 무섭게 생긴 사람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말끔한데?”

“지금은 저렇게 보여도 카메라만 돌아가면 붕붕 날아다닌다더라.”

“영화 보니까 진짜 액션이 엄청나긴 했지.”

“맞아. 그러니까 그 손태민 감독님이 대본을 다 뜯어고쳤지.”

“그런데 왜 오셨지? 우리 회사하고 계약하나?”

박우섭 실장이 활짝 웃었다.

“하하하.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이거 여기로 오시게 했습니다.”

“은하가 구내식당에서 밥 사준다고 해서 왔습니다.”

“예?”

신은하가 말했다.

“내가 강인 오빠한테 밥 살 일이 많잖아.”

촬영장의 세트가 무너질 때 나강인이 신은하를 구한 건 이 회사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7층 건물 레스토랑에서 신은하를 구출한 사람이 나강인이라는 건 SAH 엔터 내에서 몇 명만 아는 비밀이다.

정부에서 그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건, 그 일을 저지른 자칼의 잔당이 남아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은하의 매니저인 박우섭은 이 회사에서 그 사건을 대충이라도 아는 몇 명 중 하나다.

“아. 하하. 밥 사드려야지. 몇 번 더 사야겠네?”

신은하가 방긋 웃었다.

“그치?”

신은하는 회사 구경을 간단히 시켜준 후에 지하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배우와 가수, 직원, 아이돌 연습생까지 다양한 사람이 이용했다.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도 그곳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신은하가 설명했다.

“배우나 가수가 근처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잖아. 그게 불편하면 여기서 먹으면 돼. 여기 꽤 맛있어.”

“그러네. 맛있다.”

“강인 오빠가 해주는 밥만큼은 아니지만.”

“원래 남이 해주는 밥이 더 맛있어.”

- 맞습니다. 여기 음식이 상당히 맛있습니다. 밥값도 공짜입니다. 자주 방문하십시오.

밥을 먹으러 온 4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이 그녀를 보고 인사했다.

“앗! 누나! 안녕하세요!”

그녀가 왼손을 흔들었다.

“어. 왔어? 밥 먹어. 난 손님이 있어서.”

4인조 여자 아이돌 그룹도 밥 먹으러 왔다가 그녀에게 인사했다.

“언니!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 어디 가나 봐? 메이크업 잘했네?”

“히히. 오랜만에 행사 잡혔어요.”

여자 아이돌 그룹은 신난 얼굴로 밥을 받으러 갔다.

신은하가 설명했다.

“우리 회사가 원래는 배우와 솔로 가수 전문인데, 아이돌 시장도 먹어보겠다고 남녀 팀을 하나씩 만들었어. 꿈은 창대했는데….”

“잘 안 됐어?”

“아주 망한 건 아니야. 행사가 어쩌다 한 번씩 잡히긴 하니까. 우리 회사는 쟤들 데뷔 전에 들어간 돈은 회사의 투자로 쳐서 회수하지 않으니까, 쟤들은 가끔 행사 한 번만 뛰어도 생활은 된대.”

“기획사들은 보통 그런 투자 시스템인가?”

“아니. 큰 회사나 좋은 회사 일부만 그렇게 해.”

“그럼 저축은?”

신은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꿈도 못 꾸지. 데뷔하면 투자금부터 먼저 회수하는 기획사 같았으면 쟤들은 아직 한 푼도 정산 못 받고 라면 먹으면서 살았을걸?”

“그럼 이 회사는 큰 회사야? 아니면 좋은 회사야?”

“중간? 탑 파이브 기획사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렇다고 크게 밀리는 건 아니고, 소속 연예인도 제법 있고, 선은 넘지 않으니까 나쁜 회사는 아니고.”

나강인이 다른 걸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다들 너보고 누나나 언니라고 부르네?”

신은하가 나강인을 째려보았다.

“쟤들이 어려서 그래! 쟤들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단 말이야!”

갑자기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안성환을 발견했습니다.

대학생 해커 안성환은 피시방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그는 이 회사 구내식당에 밥을 먹으러 왔다가 나강인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앗! 형이 왜 여기 있어요?”

“밥 얻어먹으러.”

“아. 은하 누나가 여기 소속이에요?”

신은하는 안성환과 피시방에서 인사 정도는 한 사이다. 그녀가 손을 살짝 들었다.

“안녕? 피시방 알바가 여긴 왜 왔어?”

“서버 보안 시스템 점검하러 왔는데요?”

“응?”

안성환이 설명했다.

“최근에 다른 기획사가 해커한테 털렸어요. 이 회사가 그 소문을 듣고 저를 불렀죠. 시스템 점검 좀 해달라고.”

신은하는 당황했다. 그녀는 안성환을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으로 알고 있다.

“어? 뭐? 와. 강인 오빠. 우리 회사가 선 지키는 좋은 회사라는 거 취소. 해커가 날뛰는데 우리는 피시방 알바를 불러서 그걸 막겠다니! 미친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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