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51화 (51/411)

51. 부수입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신은하에게 말했다.

“누나. 그렇게 말하면 저 상처받아요.”

“아! 미안. 난 그게 아니라…. 그치만 너 피시방 알바 맞잖아. 회사 서버 보안점검을 왜 너한테 맡겼겠어? 이게 다 돈 아끼려고….”

나강인이 끼어들었다.

“성환이는 해커야. 화이트 해커.”

“응?”

“실력 좋아.”

신은하가 눈을 껌뻑였다.

“그런 사람이 왜 피시방에서 알바를 하는데?”

“그러게.”

신은하가 안성환과 나강인을 번갈아 보다가 툴툴댔다.

“그 피시방 진짜 이상해. 강인 오빠가 거기서 밥을 파는 것도 이상한테 이젠 해커까지 알바를 하네?”

“그럴 수도 있지.”

“은서야 아저씨가 사장이고 은서는 조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진짜 이상해.”

“은서도 뭐가 있냐?”

“아냐. 아무것도.”

그녀가 안성환에게 따졌다.

“야! 넌 왜 해커인 거 나한테 말 안 했어?”

“안 물어보셨잖아요.”

“자랑할 순 있잖아. 대학생이 막 해커하고 그러면, 어? 막 자랑하고 싶고 그런 거 아냐?”

“그거야….”

안성환이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 한 알바는 증권 범죄 조직원에게 붙잡혀서 조작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조작 프로그램은 바로 그 피시방에 설치됐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자랑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안성환은 지금 다른 것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강인이 형. 내가 해커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어?”

“피시방에서는 내가 해커란 이야기는 한 적 없는데….”

낡은 사무실에 갇혀서 조작 프로그램을 만들던 안성환을 구출한 사람이 나강인이다.

그런데 나강인은 그때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나강인이 적당히 대답했다.

“어디선가 들었겠지.”

“내가요. 형을 피시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디서 봤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진짜 우리 어디서 봤죠?”

“동네에서 오다가다 만났을 거라니까.”

“그거 아닌 것 같은데….”

“밥이나 먹어. 여기 밥 맛있다.”

안성환이 SAH 엔터 구내식당의 밥을 받아서 그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와. 누나. 여기 진짜 맛있어 보여요. 우리 학교 구내식당 밥은 여기에 비하면 개밥이네.”

안성환이 반찬부터 집어 먹었다.

“와. 진짜 맛있어.”

그녀가 물었다.

“먹으면서 대답해.”

“넹?”

“너 대학교 1학년 학생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어떻게 우리 회사가 네가 해커인지 알고 불러?”

“저 중학생 때부터 인터넷 보안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활동했어요.”

“어? 너 혹시 유명해?”

“당연하죠. 저 거기서는 네임드예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알바를 할 수가 없었는데, 대학생이 되니까 제 기술을 써…. 아, 아니다. 여기 밥 맛있어요.”

신은하가 손뼉을 쳤다.

“아! 회사가 거기서 널 보고 부른 거구나?”

“그쵸. 제가 네임드이기도 하고, 또 전 당장 출동할 수 있었으니까요.”

“혹시 널 부른 이유가 그것 말고도 더 있어?”

“어…. 싸니까?”

나강인이 물었다.

“성환아. 너는 평범한 일이 하고 싶어서 피시방에 왔다며? 이 일은 별로 안 평범해 보인다?”

“그쵸. 근데요.”

안성환은 그 낡은 사무실에 갇혀 있던 며칠 동안 앞으로는 보안 관련 알바는 안 하겠다고 수십 번은 다짐했었다.

그런데 SAH 엔터는 그가 좋아하는 걸그룹의 소속사다. 인기는 별로 없는 걸그룹이지만 안성환은 그 팀이 좋았다. 보안 커뮤니티 게시판에 그 걸그룹 이야기를 남긴 적도 있었다.

이 회사 서버 담당자도 그 게시판을 가끔 들여다본다. 그는 그 게시판에서 그 걸그룹 이야기를 본 걸 기억하고 그에게 보안점검을 부탁했다.

갇혀 있을 때 한 결심은 그 걸그룹 소속사 이름을 듣는 순간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것도 깨달았다.

“이 바닥이 내 솔밭 같아서요. 송충이는 솔잎도 가끔 먹어줘야 살죠.”

안성환은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눈은 자꾸 걸그룹 쪽으로 향했다.

신은하가 그쪽을 돌아본 후에 안성환에게 물었다.

“너 쟤들이 좋니?”

“팬이에요.”

“너 내 팬이라며?”

“누나도 팬이죠.”

“그런데 왜 내 앞에서 쟤들만 보는데?”

“프프걸스는 네 명이니까 네 배 더 팬…. 앗! 혹시 누나 프프걸스랑 친해요?”

“아니. 얼굴 보면 인사나 하는 사이야. 난 배우고 쟤들은 가수잖아.”

“에이….”

“이게. 너 지금 나한테 실망하니?”

안성환이 얼른 말을 돌렸다.

“강인이 형은 여기 왜 같이 왔어요? 혹시 은하 누나랑 데이트….”

나강인이 대답했다.

“밥 사준다더라.”

“네? 밥 먹으러 여기까지 왔다고요?”

“온 김에 CF 출연 이야기도 좀 하고.”

“와. 형 드디어 CF 찍어요? 우와! 우리 피시방에서 큰 인물 났네!”

“내가 찍는 건 아니야.”

신은하가 옆에서 자랑했다.

“나랑 김유찬 오빠가 찍는 CF의 무술감독을 오빠한테 맡아달라고 광고주가 딱 정해서 의뢰했대. CF 제작사가 강인 오빠한테 하도 와달라고 사정해서, 이야기나 들어보러 갈 거야.”

나강인이 말했다.

“난 아직 간다고 안 했는데?”

“왜? CF 안 할 거야?”

AI 전지인이 말했다.

- 제작 거점의 장비를 확충하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찍으셔야 합니다.

“그래. 하자. 돈 벌어야지.”

안성환이 얼른 말했다.

“그럼 나도 가도 돼요?”

신은하가 물었다.

“응? 너 여기 일하러 왔잖아. 우린 오늘 갈 건데?”

“새벽부터 와서 어디 털린 데 없는지 싹 다 점검했죠. 다행히 없더라고요. 보안패치도 추가했고요. 더 진행하려면 제가 아니라 보안업체랑 정식으로 계약해서 해야 돼요.”

“그럼 넌 프프걸스 밥 먹는 거 보려고 남아있던 거야?”

“절 부른 분한테 물어보니까 여기서 밥 먹으면 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프프걸스는 밥 다 먹으면 오랜만에 행사 간다니까 저도 여기 더 있을 필요가 없어요. 그러니까….”

안성환이 나강인에게 물었다.

“형. 내가 오늘 형 일일 매니저 해줄까요?”

“그냥 구경하고 싶은 거 아니냐?”

“흐흐. 그쵸.”

“그냥 따라와.”

“넵!”

***

실장급 매니저 박우섭은 신은하 외에도 연예인 두 명을 더 관리하고 있다. 회사 내에서 해야 하는 일도 많다.

그래서 영화를 찍을 때는 로드 메니저가 신은하를 따라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오늘은 CF 계약 협의를 해야 해서 박우섭이 움직였다.

박우섭이 차를 운전하며 큰소리쳤다.

“그 CF 제작사에서 강인 씨에게 얕은 수작 못 부리게 제가 두 눈 부릅뜨고 확인하겠습니다. 하하하.”

“뭘 그렇게까지.”

“어차피 은하와 강인 씨가 같이 움직이면 저쪽에서 함부로 잔재주를 부리진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십시오. 이런 게 바로 윈윈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그는 손톱만큼도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다. 딱히 부탁할 생각도 없었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작게 속삭였다.

“지인아. 상대가 계약서에 잔재주 부리면 알아볼 수 있지?

- 못 알아봅니다.

“응? 잠입 침투를 하다 보면 계약서도 쓰고 그래야 하지 않냐?”

- 요원님이 여러 번 읽어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문장은, 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연로보틱스의 신체삽입형 AI는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문장을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너 가끔 나한테 말을 좀 막 하는 게 감정 담아서 하는 거였구나?”

- 오해이십니다.

“그럼 그냥 나한테 막 한 거구나.”

이제 계약서 분석에 AI 전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건 알았다. 플랜 B가 필요하다.

나강인이 매니저 박우섭에게 제안했다.

“저도 윈윈 좋아합니다. 운전은 제가 할까요?”

***

광고주는 유명한 음료 회사였다.

CF 제작사 회의실에서 PD가 광고 콘셉트를 간단히 설명했다.

“김유찬 씨와 신은하 씨가 음료수 한 병을 놓고 화려하고 치열하게 싸운 후에, 승자가 음료수를 마시는 거죠. 김유찬 씨가 이기는 버전 두 개, 신은하 씨가 이기는 버전도 두 개를 찍을 계획입니다.”

CF 경험이 거의 없는 신은하가 물었다.

“네 개나 찍어요?”

“CF가 TV로 나갈 때는 그중 하나씩만 내보내고, 인터넷에는 네 개 모두 연속으로 나가게 할 겁니다. 물론 인터넷은 순서를 다양하게 조합해서요.”

김유찬과 신은하는 소속사가 다르다.

김유찬이 CF 콘셉트를 보며 말했다.

“액션을 어떻게 할지는 없네요?”

“그건 나강인 씨에게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저희도 ‘햇살 좋은 날’에서 나강인 씨가 어떤 활약을 하셨는지 들었거든요. 하하하.”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지인아. 훈련 교본 제작용 촬영 스킬에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짜주는 것도 있냐?”

- 있습니다.

“됐네.”

- 다만, 신은하와 김유찬의 신체능력으로는 그 동작을 소화하기 어려울 겁니다.

“어….”

CF 제작 PD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혹시 문제가 될 만한 거라도 있습니까?”

“액션을 짜는 건 어렵지 않은데, 두 사람이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예? 영화에서는 해냈잖습니까?”

“그땐 제가 김유찬 씨의 대역을 했지요. CF를 대역 써서 찍을 순 없을 텐데요?”

PD가 난감해했다.

“아…. 그럼 이걸 어쩐다…. 빨리 찍어야 하는데…. 김유찬 씨가 열심히 하면 ‘햇살 좋은 날’처럼 멋진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요?”

김유찬의 매니저가 손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그 영화의 액션이 어떤 액션인데 그걸 유찬이가 직접 합니까? 그러다 유찬이 죽습니다.”

김유찬이 반박했다.

“형.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그래서 직접 하게?”

김유찬이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생각해봤는데, 실수하면 진짜 죽을 거 같아.”

CF 제작 PD는 초조해졌다.

이번에 광고를 의뢰한 음료 회사는 취급하는 상품이 많다. 그래서 이번처럼 큰 광고 외에도 자잘한 광고를 많이 만든다. 그 광고들도 따내려면 이번 광고를 잘해야 한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나강인 씨도 CF에 출연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만.”

그건 곤란하다.

나강인이 물었다.

“CG는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까?”

“네?”

“제가 두 사람 사이에서 움직임을 도와주면, 나중에 촬영본에서 제 모습만 지울 수 있습니까?”

PD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물론이죠! 얼굴까지 다 뒤집어쓰는 녹색 쫄쫄이를 입고 하시면 됩니다!”

“됐네요. 그럼.”

“그렇게 하면 그 영화처럼 멋진 액션이 가능할까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이 직접 연기하는 것만은 못하지만, 가능합니다.

나강인이 대답했다.

“제가 직접 하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그림이 나올 겁니다.”

이야기가 긍정적으로 진행됐다.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이 노트북을 열며 말했다.

“그럼 이제 구체적인 출연 조건 이야기를 하시죠. 아. 여기 와이파이 비번 좀 알 수 있을까요?”

PD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다. 박우섭이 그걸 노트북에 입력해 인터넷을 연결했다.

“음? 인터넷이 연결됐다가 왜 금방 끊기지?”

그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 SAH 엔터에 보안점검을 하러 온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구석에서 회의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보안 전문가 친구. 이거 좀 봐줄 수 있어요?”

“넵!”

안성환이 얼른 노트북 앞에 앉았다.

“노트북에 뭘 많이도 깔아도 놓으셨네요. 이러면 속도가 느려…. 어?”

안성환의 표정이 굳었다. 박우섭이 물었다.

“왜 그래요?”

“제가 오늘 회사에 보안 프로그램 쭉 돌린 거요. 여기에도 까셨잖아요?”

“받자마자 깔았지. 내가 또 보안 하나는 확실한 사람이거든.”

“그게 인터넷을 끊은 건데요?”

박우섭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 깔라며? 깔라고 해서 깔았는데 왜 문제가 생겨? 이 친구 이거 이상한 거 깔아준 거 아냐?”

“그게 아니라….”

“아, 됐어요. 그럼 그거 지워줘요.”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경고했다.

“그걸 지우면 해커한테 이 노트북 다 털릴 걸요?”

“어? 그게 무슨….”

“그 프로그램이 해킹 공격을 감지하자마자 자동으로 인터넷부터 끊은 거라서요.”

“응? 난 와이파이에 연결만 했는데요?”

“방금 여기 와이파이에 연결하자마자 바로 공격당했어요.”

“말도 안 돼. 왜 내 노트북만….”

“설마 실장님 노트북만 공격했겠어요? 와. 요즘 연예인 소속사를 해킹하는 놈이 있다더니, 그놈이 이젠 CF 제작사까지 노리나 보네요.”

PD가 당황해서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러니까 우리 회사가 지금 해킹당하고 있다는 겁니까?”

“그쵸.”

“우리 회사에는 전산실이나 서버 같은 건 따로 없는데요?”

“그럼 이 회사의 모든 PC가 탈탈 털렸겠죠.”

PD는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설마 오전에 컴퓨터가 느려졌던 게…. 하지만 이제 멀쩡해져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안성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해커가 가져가고 싶은 자료는 오전에 이미 다 털렸으니까 그런 거겠죠.”

“그, 그럼 지금 인터넷을 끊어봤자… 소용없겠네요?”

“그렇죠.”

“아! 이럴 때가 아니지!”

PD가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잠시 후에 사장이 뛰어들어왔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 PC가 모두 해킹됐다니!”

안성환이 장담했다.

“제가 보기엔 거의 백 프로인데요.”

“도대체 어떤 새끼가!”

“그걸 알면 잡았죠.”

사장이 시뻘게진 얼굴로 제안했다.

“그 해커 새끼 잡읍시다!”

“예?”

“역추적하자고요! 어디 사는 새끼인지 찾아만 내세요. 그러면 경찰이 잡아오고 우리 변호사가 박살 낼 겁니다.”

“전 방어 전문이지 역추적 전문이 아닌데요?”

해킹도 잘하긴 하지만 그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당연히 역추적 비용은 주겠습니다!”

“역추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거 하려면 수사기관의 협조도 좀 받아야 편하거든요.”

“방법이 없겠습니까?”

“사람 불러야 해요. 전문업체 부르면 될지도 몰라요. 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AI 전지인이 얼른 제안했다.

- 요원님. 제작 거점에 필수 장비를 보충하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저 돈을 우리가 먹자고?”

- 군사용 전투지원 AI의 강력한 해킹방어 능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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