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52화 (52/411)

52. 현상금

나강인이 CF 제작사 사장에게 제안했다.

“그 해커 역추적하는 거, 저한테 맡기시죠.”

안성환이 옆에서 웃었다.

“에이. 형이 보안 전문회사 일을 대신 한다고요? 농담하지 마요. 여기 계신 분들이 진짜인 줄 알아요.”

“진짜야.”

“네?”

“진짜라고.”

안성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가 주가 조작 세력에게 잡혀서 해킹 프로그램을 만들 때가 떠올랐다.

‘피시방에 설치한 해킹 프로그램이 뻗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마스크를 쓴 남자가 찾아왔었는데….’

그 남자는 어마어마한 힘으로 악당들을 때려잡고 그를 구해주었다.

안성환의 주변에도 그런 엄청난 무술 실력자가 한 명 있다.

그가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손을 올려 나강인의 입과 코를 가려보았다.

느낌이 왔다.

“헐. 형이었어요?”

“쓰읍.”

그 정도면 대답이 됐다.

“넵!”

신은하가 고개를 내밀고 물었다.

“왜? 왜? 뭔데? 뭔데?”

안성환이 신은하와 나강인을 번갈아 보았다.

“그게 그러니까….”

CF 제작사 사장은 배우인 신은하와 김유찬의 얼굴은 알지만 나강인이 누군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는 나강인이 안성환 같은 보안 전문가라고 생각했다.

사장이 선언했다.

“그 해커 새끼 지금 어디 있는지 주소만 알아내 주면 천만 원!”

“딱 좋군요.”

나강인이 매니저 박우섭의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런 후에 USB 메모리스틱을 꽂고 지난번에 역추적할 때 썼던 프로그램 몇 개를 실행했다.

안성환이 물었다.

“형. 뭘 실행한 거예요?”

“내가 만든 추적 프로그램.”

- 제가 만들었습니다.

“내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려서 만들었지.”

역추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안성환을 찾아낼 때보다 추적이 쉬웠다.

안성환은 옆에서 나강인이 하는 걸 구경했다.

옆에서 본다고 AI 전지인이 쓰는 기법을 모두 알아볼 수는 없다. 그래도 추적이 어떤 단계로 진행되는지는 알아보았다.

안성환이 옆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어? 어? 그게 왜 벌써 값이 나와요? 어? 그게 왜 그냥 뚫려요?”

“시끄러워.”

“형. 이거 다 어떻게 한 거예요?”

역추적은 AI 전지인이 다 해서 나강인은 하나도 모른다.

-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취약점을 이용해 방화벽을 돌파, 적이 이용한 서버에 침투한 후 역추적했습니다.

“그냥 잘.”

겨우 4분 만에 역추적이 끝났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적의 현재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나강인이 의자를 뒤로 돌리며 말했다.

“찾았습니다.”

안성환이 화면에 출력된 추적 결과를 보며 감탄했다.

“와아. 이게 되네.”

사장과 PD는 당황했다. 사장이 물었다.

“진짜 해커 놈이 어디에 있는지 찾은 겁니까?”

나강인이 화면에 뜬 정보를 일반적인 주소 형태로 바꾸어주었다.

“주소가…. 어? 이거 우리 동네 근처네. 지금도 새로운 정보를 빼갈 게 없는지 알아보려고 한 번씩 접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 주소에 지금 그놈이 있습니다.”

사장이 휴대폰을 들며 물었다.

“내가 이쪽 일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게 4분 만에…. 이거 진짜 확실한 거겠지요? 지금 경찰 부를 건데, 나중에 장난이라고 하면 큰일 납니다.”

“의뢰 대금은 현장을 확인하고 입금하시죠.”

“그, 그러죠.”

사장이 전화를 걸러 나갔다.

신은하가 안성환에게 물었다.

“강인 오빠가 좀 하는 거야?”

“좀이요? 아니요. 진짜 쩌는 거예요.”

“강인 오빠는 육체파잖아. 저런 건 두뇌파가 하는 거 아냐?”

“형은 진짜 육체와 두뇌가 다 쩌네요. 이건 마치….”

“마치?”

“검과 마법을 다 쓰는 마검사를 실제로 보면 이런 느낌이 들겠구나 싶은 그런 거?”

“아. 이해했어.”

안성환이 신은하를 돌아보았다.

“네? 이해했어요? 와. 누나도 마검사 아시는구나.”

“쉿.”

나강인이 PD에게 말했다.

“그럼 해커는 사장님에게 맡겨두고, 우린 CF 이야기를 계속하시죠.”

신은하의 매니저 박우섭이 물었다.

“저기, 나강인 씨. 제 노트북도 해킹당하면 곤란한데….”

“그 노트북에는 이미 이 해커의 방식으로는 뚫지 못하는 방어벽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이 끊긴 겁니다.”

대학생 해커 안성환이 자랑했다.

“제가 오전에 배포한 보안 프로그램이 그거예요.”

나강인이 설명을 추가했다.

“혹시 그게 뚫리면 바로 신호가 뜨게 제가 뭘 좀 설치해놨으니 안심하시죠.”

박우섭이 감탄했다.

“어느새 그런걸….”

“회의하시죠. 이제 인터넷에 접속해도 안 끊어질 겁니다.”

***

형사들이 오피스텔을 방문했다.

영장도 없이 찾아갔기 때문에 오피스텔 실내까지 수색할 순 없었다. 그들은 현관의 벨을 누르고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람은 형사들이 해킹 이야기를 하자마자 뒤로 나자빠졌다가, 창백한 얼굴로 줄줄 털어놓았다.

“제가요. 나쁜 데 쓰려고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궁금해서 전화번호만 뽑은 거예요. 진짜예요.”

형사 박기정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었다.

“전화번호로 뭘 하려고? 혹시 스마트폰도 해킹해서 사진을 빼가거나 도청이라도 하려고?”

“히익! 죄송합니다! 스마트폰은 되나 안 되나 보려고 그냥 장난으로 하나밖에 해킹 안 했어요!”

팀장이 말했다.

“야. 이 새끼 수갑 채워.”

해커를 차로 데려간 후에 박기정이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 그 회사는 여기에 해커가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IT 회사도 아니고 CF 제작사라면서요.”

“전문가에게 의뢰해 역추적했다더라.”

“실력 겁나 좋은 곳을 썼나 보네요.”

“그 회사는 지금 이 해커 새끼 잡으려고 회사 컴퓨터를 다 켜놓은 상태라더라. 그러니까 빨리 잡아달라고 난리였는데….”

팀장이 차에 탄 해커를 보며 말했다.

“이제 컴퓨터 꺼도 된다고 연락해야겠네.”

***

나강인은 녹색 전신 쫄쫄이를 입고 신은하와 김유찬의 움직임을 보조하기로 했다. 나강인의 모습은 나중에 CG로 지워주기로 했다.

협의를 마치고 일어났을 때 해커 체포 소식이 들어왔다.

PD가 나가서 소식을 듣고 돌아와 말했다.

“그 해커 잡았답니다. 어떤 놈이 연예인들 스마트폰을 해킹하려고 한 거라더군요. 그걸로 도청이라도 하려고 했나?”

“조사하면 다 나오겠죠. 해커 위치 확인됐으면 현상금은 바로 입금하시죠.”

PD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런데 약속한 현상금은…. 겨우 4분 일하고 천만 원은 너무 비싼 게 아닌가 하는 사장님 의견이….”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해커에게 또 털리기 싫으면 입금하셔야죠.”

“예?”

“뭐 제가 여길 턴다는 건 아니고요.”

PD에게는 그게 그 소리로 들렸다. 그가 급히 말했다.

“사장님이 꼭 주실 겁니다. 네. 그럼요. 당연히 주셔야죠.”

***

차에 탄 후에 신은하가 물었다.

“강인 오빠. 그놈이 혹시 내 번호도 빼갔으면 어떻게 해? 내 스마트폰도 해킹당한 거 아닌지 확인 좀 해줘.”

안성환이 물었다.

“누나. 저기서 CF 찍은 적 있어요?”

“아니. 이제 찍을 거잖아.”

나강인이 말했다.

“네 번호는 해커가 빼낸 자료에 없더라. 아직 계약 전이라 저 회사 컴퓨터에 네 자료가 없었던 거겠지.”

신은하가 물었다.

“그럼 지금은? 우리 계약할 거잖아.”

“보안업체 불러서 해결한다잖아.”

“그래도! 찜찜하니까 확인해 주면 안 될까?”

나강인이 매니저 박우섭의 노트북을 빌려 신은하의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신은하가 최신 스마트폰의 기능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습니다.

“해킹당한 흔적이?”

- 없습니다.

“없어. 깨끗해.”

신은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다행이다. 근데….”

신은하가 나강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강인이 물었다.

“왜?”

“강인 오빠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많아? 힘캐인 줄 알았는데 완전 지능캐야.”

***

사흘 뒤에 CF 촬영이 시작됐다.

신은하가 불평했다.

“이상하게 강인 오빠하고 찍을 때는 매번 마감에 쫓기는 것 같아.”

김유찬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CF 나가야 할 날짜가 코앞이래. 강인 씨를 섭외한 이유 중에 액션씬 촬영을 빨리 끝내주는 것도 있다더라.”

기존에 이 음료의 CF를 찍기로 한 배우는 사고로 입원했다. 그러고 나서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제품 출시일이 코앞에 닥쳤다.

이젠 CF를 서둘러 찍어야 방송 일정을 맞출 수 있다. 그렇다고 CF의 완성도를 포기할 수도 없다.

김유찬이 말했다.

“우리 영화가 그 완성도 높은 액션 영상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찍을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거지.”

“이 바닥에 그걸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아?”

“어. 많아.”

“잠깐. 유찬 오빠. 그럼 혹시 이번 CF에서는 우리가 덤이야?”

“덤은 아니고, 이건 우리와 강인 씨의 시너지지. 우리랑 호흡이 잘 맞잖아.”

***

CF 감독이 말했다.

“여기 음료가 있습니다. 이걸 두고 두 분이 싸우시는 거죠. 전체적인 구성이야 제가 하지만, 액션을 어떻게 할지는 나강인 씨에게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영화 ‘햇살 좋은 날’을 찍을 때는 카메라를 평균 세 대씩 사용했다. 그런데 이 CF 촬영장에는 일곱 대의 카메라가 있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영상을 잘라 붙이시려나 봅니다.”

“하하. CG로 배경을 지울 시간이 있으니까요. 나강인 씨가 그 영화를 찍으실 때보다 조건이 훨씬 좋죠.”

나강인이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지금 녹색 쫄쫄이를 입고 있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2082년에도 이런 거 입을까?”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원하는 사물을 실시간으로 합성해 영상에 넣거나 뺄 수 있는데 이런 부끄러운 의상을 왜 입겠습니까?

“너 지금 부끄럽다고 했냐?”

- 요원님이 부끄러우신 겁니다. 녹색 쫄쫄이를 입은 건 요원님이시니까요.

“아주 그냥 이럴 때만 우리가 아니라 남이지?”

신은하가 촬영장으로 들어오다가 나강인을 보고 멈칫했다. 나강인은 얼굴에도 녹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어? 설마….”

“웃지 마라.”

“꺄하하하!”

“웃지 말라고.”

김유찬이 들어오며 말했다.

“이야아. 강인 씨는 나랑 체형이 비슷해서 그런지 쫄쫄이를 입어도 느낌이 삽니다. 멋있습니다. 하하하.”

“쫄쫄이 한 벌 더 가져올까요?”

“아니, 전 그건 좀…. 제가 그래도 톱스타인데 어떻게 그런 걸….”

“그런 걸 난 지금 입고 있는데…. 후우.”

나강인이 한숨을 푹 내쉰 후에 선언했다.

“오늘 촬영은 참 힘들 겁니다.”

“저런. 쫄쫄이가 불편하신가 봅니다.”

“내가 아니라 두 분이 힘들 겁니다.”

“어…. 예?”

신은하가 얼른 말했다.

“옵빠. 난 살살. 난 이상하단 말은 안 하고 웃기만 했잖아. 응?”

“네가 더 나빠.”

촬영 준비는 속속 진행됐다. 음향 장비도 배치됐다.

CF 배경음악 담당자는 젊은 여자였다. 그녀가 나강인을 보더니 방긋 웃었다.

나강인이 말했다.

“저 여자도 나 보고 웃는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웃기긴 합니다.

“시끄러워.”

촬영이 시작됐다.

이 음료 광고를 위해 만든 음악이 흘러나왔다.

신은하와 김유찬은 상대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공격했다.

신은하는 요가와 필라테스로 단련된 유연한 몸으로 발차기를 주로 날렸다. 김유찬은 여러 가지 손 공격과 방어 기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타격감이 살지 않는다.

나강인이 둘 사이에서 액션을 조율했다. 그는 신은하의 다리를 툭 쳐서 발차기 방향을 바꾸었다. 그녀의 발이 날카로운 각도로 김유찬의 얼굴을 향했다.

나강인이 김유찬의 상체를 뒤로 밀었다. 김유찬의 몸이 뒤로 조금 젖혀졌다. 그녀의 발이 그의 얼굴 앞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다.

나강인이 이번에는 김유찬의 등을 앞으로 밀었다. 뒤로 젖혀진 그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김유찬은 즉시 손날을 세워 신은하를 노렸다.

나강인이 신은하의 어깨를 슬쩍 밀었다. 신은하가 뒤로 조금 밀려났다. 김유찬의 손날이 허공을 갈랐다.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나강인이 보조해준다고 해서 두 사람이 몸에 힘을 빼도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동작 하나하나를 힘껏 펼쳤다.

힘만 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나강인이 그들을 이리저리 밀어댈 때 중심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만큼 힘이 더 들어갔다. 집중력도 잃지 않아야 했다.

나강인이 말했다.

“이 컷은 여기까지.”

두 사람이 동시에 헉헉댔다.

신은하가 하소연했다.

“강인 오빠. 힘들어 죽을 거 같아.”

나강인이 타박했다.

“방금 그 씬 겨우 2초짜리다.”

“방금 그 2초를 위해서 연습을 열 번이나 했잖아. 그것도 쉬지도 않고 연속으로 열 번!”

“그래야 몸에 익어. 지금 네 수준에서는 쉬면 바로 까먹는다.”

김유찬도 항의했다.

“강인 씨. 영화 찍을 때는 모든 씬을 한 번에 다 끝냈으면서, 이 CF는 찍는 씬마다 왜 이렇게 반복 연습이 많은 겁니까?”

“영화는 내가 직접 뛰었으니까 그런 거고요.”

그때는 한 번에 끝내야 나강인도 편했다.

“지금은 두 사람을 연습시켜야 그림이 나오니까 그런 겁니다.”

AI 전지인은 한술 더 떴다.

- 훈련병들의 훈련 태도가 불량합니다. 근접전 훈련 단계를 2레벨로 높이십시오. 훈련하면서 흘린 땀이 많을수록 전장에서 피를 덜 흘립니다.

신은하가 물었다.

“강인 오빠. 설마 쫄쫄이 보고 웃었다고 이러는 거 아니지?”

“내가 너 많이 봐주고 있는 거야.”

“거짓말! 이게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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