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55화 (55/411)

55. 고급 요리사

나강인이 참여한 음료 CF는 촬영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 음향 엔지니어 곽유선이 감전됐다.

곽유선은 퇴원한 후에 나강인에게 연락해 식사 약속을 잡았다. 그것도 그 CF가 방영되는 날로 잡았다.

레스토랑에서 그녀가 말했다.

“밥이라도 한 끼 사드리고 싶었어요. 너무 고마워서요.”

“할 수 있으니까 한 겁니다.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 중에 나강인 씨만 절 구해주셨잖아요.”

“그 많은 사람 중에 곽유선 씨를 구할 수 있는 능력자가 나밖에 없었으니까요.”

곽유선이 웃었다.

“풋. 그날도 느꼈지만 재미있으시네요.”

나강인이 레스토랑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여긴 음향 엔지니어 월급으로 오기에는 좀 비싼 것 같은데….”

실내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대신에 분위기가 무척 고급스러웠다.

‘그때 그 건물 7층 레스토랑하고 느낌이 비슷하네. 전망은 더 좋고.’

이 레스토랑은 고층빌딩의 전망 좋은 층에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멀리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저 멀리 여의도 빌딩도 눈에 들어왔다.

곽유선이 말했다.

“생명의 은인에게 밥을 사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리고….”

그녀가 방긋 웃었다.

“어차피 돈은 우리 큰오빠 카드로 내니까요. 큰오빠한테는 이 정도는 하나도 부담 안 돼요.”

AI 전지인이 나섰다.

- 우리는 최근에 남이 사는 고급 요리를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냥 드시죠.

나강인이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AI 전지인도 맛있게 느낀다.

“그럼 뭐…. 잘 먹겠습니다.”

AI 전지인이 갑자기 보고했다.

- 영화배우 김유찬을 발견했습니다.

나강인도 방금 봤다.

김유찬이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이 레스토랑의 대표 셰프 전동선이 직접 나와 김유찬을 맞았다.

“유찬 씨. 어서 오세요.”

김유찬이 예약석에 앉으며 웃었다.

“사장님. 오늘 기대 하겠습니다.”

“좋은 재료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 디저트까지 만족하실 겁니다.”

“아. 디저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정말 맛있는 디저트를…. 어? 잠깐만요.”

김유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강인 쪽으로 걸어갔다.

“강인 씨? 이야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밥 먹으러 왔죠.”

“아. 강인 씨 같은 셰프도 다른 레스토랑에서 식사하시는군요. 정보 수집인가요?”

“그게 아니라 이분이 오늘 밥 한 끼 산다고 해서요.”

“아아.”

김유찬이 나강인의 앞에 앉아 있는 곽유선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곽유선이 다소곳한 자세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팬이에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김유찬이 물었다.

“여자친구가 계신 줄을 몰랐습니다. 은하가 이거 알면 진짜 재미있는 반응이….”

나강인이 손을 흔들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얼마 전에 조금 도와드렸더니 밥을 산다더군요.”

“에이. 아니시구나.”

곽유선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도와주신 건 아니죠. 덕분에 살았는데요.”

김유찬은 처음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그녀의 말을 듣고 뒤늦게 깨달았다.

“아. 혹시 CF 찍을 때 그 음향 엔지니어?”

“네.”

“죄송합니다. 그때 갑자기 쓰러지시는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못 봐서 몰랐습니다.”

이 레스토랑의 사장이자 대표 셰프인 전동선이 다가와 물었다.

“셰프시라고요?”

김유찬이 자랑했다.

“강인 씨의 요리와 디저트가 진짜 맛있거든요. 일단 한번 먹어보면 진짜 그 맛 못 잊습니다. 하하하.”

“우리 레스토랑에는 그럼….”

정탐이라도 하러 왔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그걸 입 밖에 낼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게다가 다른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먹으며 정보를 수집하는 건 전동선도 자주 하는 일이다. 요리사가 그런 일로 따지면 체면만 깎인다.

그렇다고 웃기만 할 생각도 없었다. 김유찬의 말투에서 나강인이 더 실력 좋은 셰프라고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구지? 국내에서 잘나가는 젊은 셰프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유학파인데 최근에 귀국했나?’

전동선이 물었다.

“요리는 어디서 배웠습니까?”

AI 전지인이 말했다.

- 야전 전술 요리법은 지구 연합 최고의 셰프들과 과학자, 엔지니어들이 함께 연구해 만들었습니다.

“그냥 혼자서 이것저것 만들었습니다.”

전동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아. 네. 그러시군요.”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요리 좀 하는 정도겠네. 김유찬 씨는 배우라서 그런지 과장이 심하구나.’

김유찬이 말했다.

“이야아. 그때 밥차에서 먹은 그 밥은 정말 요즘도 종종 생각납니다. 그 디저트도 끝내줬는데 말이죠.”

전동선이 물었다.

“밥차요?”

“예. 강인 씨가 우리 이번 영화 추가 촬영 첫날에 강원도로 밥차를 몰고 왔거든요. 거기서 처음 강인 씨를 만났죠.”

“아아. 밥차를 하시는구나. 난 또.”

전동선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KMTV에서 주최하는 요리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거기나 나가보시죠? 유찬 씨 인맥을 빌리면 참가할 수 있을 텐데.”

김유찬은 활짝 웃었다.

“앗! 거기 나가실 겁니까? 그럼 제가 한번 본격적으로 나서볼까요? 아예 연예인 심사위원으로 제가 가서 대놓고 비리를….”

“됐습니다.”

김유찬도 비리 이야기는 농담으로 한 소리다.

“하긴. 강인 씨 요리에 비비려면 다른 참가자들이 비리라도 저질러야 할 판이죠.”

“그게 아니라 그 요리대회에 나갈 생각이 없습니다.”

전동선이 충고했다.

“쯧쯧. 음식을 파는 사람이 방송에 나갈 기회를 놓치면 어쩌잔 겁니까? 성공하고 싶으면 마인드부터 바꿔요. 자존심도 좀 내려놓고.”

김유찬은 멈칫했다.

그런 방법이 항상 정답인 건 아니지만, 꽤 많은 경우에 답이 될 수 있는 말이긴 하다. 그리고 그걸 할지 말지 선택하는 건 나강인의 몫이다.

김유찬이 멈칫한 이유는 그게 아니다. 그는 전동선의 말투가 조금 재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가벼운 사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눈치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다.

‘어라? 손님이 아니라 아랫사람을 대하는 느낌인데? 언제 봤다고?’

조금 전에 밥차라고 하니까 피식거리거나 입꼬리를 올리던 것도 생각났다.

김유찬이 일부러 실실 웃으며 말했다.

“전 셰프님. 햇살 좋은 날 아시죠?”

“물론입니다. 극장에 가서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액션씬도 훌륭했죠?”

“진짜 액션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강인 씨가 그 영화의 무술감독님이십니다.”

전동선은 당황했다

“예?”

“그 영화의 모든 액션을 강인 씨가 만들었습니다.”

전동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방금 밥차라고 하시더니….”

“밥차를 몰고 오신 것도 맞습니다. 밥하러 왔다가 우리 영화의 액션을 책임지셨죠.”

“아니, 잠깐만요. 무술감독은 원래 따로 섭외하지 않나요? 저분이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도 감독님이나 제작사가 허락해야 하지 않습니까?”

“감독님과 제작사가 강인 씨한테 제발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하신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나강인의 맞은편에서 곽유선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헐. 요리도 잘하시면서 그 영화 무술감독까지…. 소림사 주방장이세요?”

“그냥 좀 도와드린 겁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거기서도 그냥 좀 도와주신 거구나. 저 구해주실 때랑 똑같이요. 어떤 분위기였을지 짐작이 가요.”

레스토랑 문이 열리며 오규철이 들어왔다. 그가 전동선을 향해 손을 들었다.

“여어.”

오규철은 강남의 7층 건물에서 레스토랑 페넬로페를 운영한다. 그곳은 얼마 전에 국제 무장용병 조직에 의해 점령됐었다.

오늘은 페넬로페가 쉬는 날이다. 그는 쉬는 날에는 원래 남이 만든 밥을 먹는다.

전동선은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얼른 오규철 쪽으로 걸어갔다.

“형님. 오셨습니까?”

“오늘 좋은 거 들어왔다며? 기대가 많아. 아. 유찬 씨도 먼저 와 있었네?”

오규철은 방송에 자주 나가는 셰프다. 김유찬은 방송에서 알게 된 사이다. 오늘은 김유찬이 밥을 산다고 해서 이곳에 왔다.

전동선도 오규철처럼 방송에 나가고 싶다. 그래서 연예계에 아는 사람이 많은 톱스타 김유찬에게 잘 보이려고 전망 좋은 자리를 준비했다.

전동선이 그 자리로 안내했다.

“형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왜? 나 유찬 씨하고 밥 먹으러 온 거야. 유찬 씨가 저기 있….”

김유찬이 옆으로 움직이면서 그 뒤에 앉아 있던 나강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규철은 깜짝 놀랐다.

“헉!”

그는 얼른 나강인 쪽으로 가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어….”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국제 용병 조직이 점령했던 레스토랑 페넬로페의 대표 셰프 오규철입니다.

“아. 그 레스토랑에서 뵌 분이군요.”

“에. 제가 거기 대표 셰프입니다. 하하. 그때 정말 선생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앞자리에서 음향 엔지니어 곽유선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분도 좀 도와드린 거예요?”

“네, 뭐.”

오규철이 활짝 웃었다.

“좀 도와주시긴요. 목숨을 살려주셨죠.”

“어머. 저도 강인 씨가 목숨을 살려주셨는데.”

“아. 혹시 숙녀분도 무장 강도한테?”

“아뇨. 저는 고압 전기 쪽이에요.”

“아아.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된 건지는 대충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장 강도라니요?”

오규철은 멈칫했다.

나강인의 이름은 경찰이 발표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부 비밀요원이 자칼 일당을 진압했다고 알려졌다.

오규철은 그때 그곳에서 나강인을 직접 봤기 때문에 얼굴을 안다. 하지만 오규철도 나강인의 정확한 신분은 모른다.

“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 하하.”

오규철은 아예 나강인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김유찬도 얼른 그 테이블에 앉았다.

나강인이 물었다.

“그런데 레스토랑은 괜찮습니까?”

“수리가 다 끝나서 영업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 여길 찾아온 겁니다. 아.”

오규철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총알이 박혔던 곳들은 그대로 놔뒀습니다. 손님들이 신기해하시거든요. 하하.”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언제 제 가게로 오시면 제가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AI 전지인이 제안했다.

- 성의를 무시할 수 없으니, 내일 당장 가시죠.

전동선은 조금 전에 나강인에게 삐딱한 마음으로 충고한 것을 후회하는 중이다. 그는 그걸 무마하고 싶어서 제안했다.

“형님. 이 손님이 요리를 잘하신다는데, KMTV에서 주최하는 요리대회에 나갈 수 있게 형님이 힘을 좀 써주시죠?”

“어? 거길 뭐하러 나가셔?”

“예?”

오규철이 눈을 반짝이며 나강인에게 제안했다.

“제가 나가는 방송에 게스트로 한 번 나와주시면 제가 진짜 잘 모시겠습니다. 거기에 게스트가 직접 요리하는 코너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아. 역시 방송은 좀 그러신가….”

전동선의 눈동자가 더 흔들렸다.

‘뭐야? 이 형님이 왜 이런 부탁을 해?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 거야?’

레스토랑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작곡가 곽찬석은 차가 막혀 약속에 조금 늦는 바람에 주차장에서 뛰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숨을 골랐지만, 여전히 숨이 거칠었다.

셰프 전동선이 곽찬석을 알아보았다.

그는 이 어렵고 난감한 자리를 피하려고 곽찬석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아! 곽찬석 작곡가님. 기다리고….”

“잠시만요.”

곽찬석이 나강인과 곽유선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인사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곽유선이 째려보았다.

“큰오빠. 이러기야?”

나강인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조금 전에 왔습니다.”

옆에서 김유찬이 자랑했다.

“제가 강인 씨하고 놀고 있었습니다.”

곽찬석이 김유찬을 보고 살짝 놀랐다. 두 사람은 마주치면 인사는 하는 사이다.

“아. 김유찬 씨. 나강인 씨를 아십니까?”

“알죠. 아주 잘 알죠. 우리 되게 친합니다. 하하하.”

대표 셰프 전동선은 오늘 곽찬석의 예약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곽유선은 전동선이 아니라 직원이 자리로 안내했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곽찬석의 동생인 건 몰랐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틈에 전동선은 조용히 주방으로 후퇴했다. 그런 후에 예약 명부를 확인했다.

[작곡가 곽찬석 외 2명]

‘이러면 곽찬석 씨가 밥을 사는 쪽이란 소리인데?’

나강인 일행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대표 셰프 전동선이 직접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에 놓았다.

김유찬과 오규철도 같은 요리를 시켰다.

김유찬은 그의 테이블에 놓인 것과 나강인의 것을 비교해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같은 요리를 시켰는데 저 테이블이 우리보다 잘 나온 것 같은데요?”

오규철이 말했다.

“저쪽에 서비스가 많이 들어갔네요.”

“예?”

“잘 보이려고 그러나?”

김유찬은 서비스가 차이 나는 이유를 깨달았다.

“아…. 저한테도 실수 조금만 하시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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