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드래곤 플레이트
서버실을 나온 후에 이태호가 물었다.
“나강인 씨. 방금 고치라고 하신 거 말입니다. 혹시 작업이 늦어지면 위험한 건….”
“당장 뭐가 어떻게 되는 아닙니다. 환경이 바뀌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아. 그럼 다행입니다.”
“사람이 서버실로 직접 들어와서 빼가는 건 막기 어렵지만요.”
“하하하. 침입자는 경비과에서 막겠죠.”
AI 전지인이 말했다.
- 1개월 후에 발견되는 서버 결함이 있습니다.
그건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구멍이다. 아무도 모르는 구멍까지 미리 막을 필요는 없다.
“그럼 그건 한 달 뒤에 알려주면 되겠네.”
- 그때도 돈을 벌어 예산을 확보하십시오.
“그러려고.”
보안점검이 너무 빨리 끝나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이태호가 제안했다.
“우리 회사에는 외부 방문자를 위한 테스트 사격장이 있습니다. 시간이 되시면 잠깐 들르시죠?”
AI 전지인이 다급히 말했다.
- 현재 세계의 무기를 실제로 사용해야 더 많은 정보를 더 신뢰성 있게 획득할 수 있습니다. 어서 가서 총을 쏘십시오.
***
테스트 사격장에는 다양한 권총과 소총이 비치되어 있었다. 한국군이 쓰는 K1과 K2 소총도 있고, M4나 HK416, AK 시리즈도 있었다.
이태호가 설명했다.
“철인기공은 조준기 같은 총기용 액세서리를 다양하게 만들고 방탄복도 만듭니다. 그 장비 테스트용으로 각국 총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총기 관련해서는 정부의 허가를 받았죠.”
나강인이 사격장 벽에 걸려 있는 총을 보았다.
나강인은 철인기공에서 만든 소총을 골랐다.
“그럼 이걸로 쏴볼까요?”
사격장 관리자가 다가와 잠금장치를 풀고 소총을 넘겨주었다. 탄창은 일단 관리자가 들고 있었다.
이태호가 물었다.
“강인 씨의 권총 사격술은 그날 페넬로페에서 봐서 아는데, 소총도 잘 쏘시죠?”
“글쎄요. 쏴봐야 알겠군요.”
“고정표적이 시시할 것 같으면 이동식 표적도 있습니다.”
철인기공은 사람 형태의 표적이 상하좌우로 이동하는 첨단 사격장을 갖고 있다. 그 사격장은 회사에 방문한 민간인도 쏠 수 있는 곳이라 안전장치가 다양하게 갖춰져 있었다.
나강인이 돌격소총에 30발짜리 탄창을 넣었다.
사격장 관리자가 표적 이동 속도 설정 버튼에 손을 댄 채로 이태호를 보았다.
방문객 접대용 사격을 할 때는 표적을 느린 속도로 이동시킨다. 회사에서 사격 조준기 테스트를 할 때는 고속 이동으로 설정한다.
관리자가 1번 버튼에 손가락을 댔다.
이태호가 나강인과 잠깐 이야기하더니 관리자에게 손가락 다섯 개를 세워 보여주었다.
사격장 관리자는 살짝 놀랐다.
‘5단계?’
조준기 성능 테스트에 쓰는 속도가 4단계다. 5단계로 설정하면 표적은 좌우는 물론이고 위아래로도 굉장히 빠르게 움직인다.
‘사격 선수 출신인가?’
관리자가 속도를 5단계로 설정하고 시작 버튼을 눌렀다.
사격 개시 신호가 부저음으로 들렸다.
5단계를 요구한 건 AI 전지인이다.
- 무기 테스트용 사격 모드를 시작합니다.
나강인이 움직이는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표적을 겨누면 약간의 오차는 AI 전지인이 교정해주었다.
나강인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총탄이 날아가 표적에 정확히 꽂혔다. 총소리는 크고 반동은 작았다.
전투지원 AI의 사격 보정 덕분에 조준에 시간을 길게 쓸 필요도 없었다. 나강인이 빠르게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총탄이 표적의 가슴이나 머리에 꽂혔다.
표적 밑에 설치된 센서가 명중 여부를 판정했다. 명중할 때마다 점수판에 점수가 올라갔다.
순식간에 30발을 사격한 나강인이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철인기공에서 좋은 총을 만들었군요. 내구성은 아직 모르겠지만 쏘는 대로 잘 맞네요.”
이태호가 점수판을 보았다. 30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와…. 권총을 잘 쏘니까 소총도 잘 쏠 줄은 알았지만, 만발을 쏠 줄은 몰랐습니다.”
거의 움직이지 않는 1단계 표적이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5단계 사격 모드였다.
사격장 관리자도 점수를 보고 당황했다.
“겨우 10초 만에?”
나강인은 초당 3발을 쏘았다. 그렇게 쏘려면 차분히 조준할 틈도 없이 방아쇠를 부지런히 당겨야 한다.
“진짜 국가대표 사격 선수 출신인가?”
나강인이 총을 내려놓고 사격장을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서 특이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의 목적이 뭔지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방탄조끼 테스트도 여기서 합니까?”
이태호가 그쪽을 돌아본 후에 설명했다.
“저건 철인기공이 만든 게 아닙니다. 개인이 직접 만든 방탄조끼를 가져와서 테스트하는 겁니다.”
“개인이요?”
“저런 장비를 만드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각자 자기 나름의 이론으로 수제품 장비를 만듭니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사격 테스트 자체가 어렵잖습니까? 그래서 그럴 땐 우리 회사에 찾아옵니다.”
“여기 오면 테스트를 해줍니까?”
“신청하면 사격장과 총만 빌려주는 겁니다. 인증서는 따로 발급하지 않습니다.”
이태호가 왜 그런 일을 하는지도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가 옛날에 장비를 만들 때 테스트 문제로 아쉬운 일을 정말 많이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좀 편하게 개발하라고, 그냥 테스트 장소만 빌려주는 거죠.”
“아아.”
“물론 비용은 받습니다. 총알값이나 사격용 더미 값은 공짜가 아니라서요. 일반 표적은 저렴한데 더미 인형은 가격이 좀 나갑니다.”
나강인은 지금 왼팔에 오늘 아침에 완성한 방탄 팔뚝보호대를 차고 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우리 드래곤 플레이트도 실사격 테스트를 해야 합니다.
“네가 만든 건데도 자신이 없냐?”
- 제작 장비의 성능이 워낙 떨어져서 성능 확인이 필요합니다.
“뭐 굳이 그렇게까지….”
- 방탄조끼가 설계와 달리 총탄을 방어하지 못하면 요원님 몸에 구멍이 납니다.
“하자. 테스트 꼭 해야지. 넌 실수를 자주 하니까.”
나강인이 이태호에게 말했다.
“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가시죠.”
철인기공의 사격장 방문자는 그곳에서 하는 모든 행동을 공개해야 한다. 총으로 숨어서 뭔가 하는 걸 회사가 허용할 리 없다. CCTV는 사격장 전체에 빈틈없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구경하는 것을 막아서도 안 된다. 그게 이 사격장 이용 조건이다.
직접 만든 수제 방탄조끼를 테스트하러 온 민간인 제작자는 성능을 숨기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대놓고 자랑했다.
“제가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는 7.62mm를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저 방탄조끼 이름이 우리 것하고 같네?”
AI 전지인이 대답했다.
- 저건 드래곤 플레이트 초기형입니다.
“어? 그럼 저 사람이 원형 개발자냐? 와. 내가 오늘 유명인을 만났….”
- 아닙니다.
“아니구나.”
- 수작업으로 비슷한 초기형을 만든 사람은 옛날부터 많았습니다. 드래곤 플레이트라는 이름도 흔히 사용합니다.
“근데 저건 우리 거랑 모양이 좀 다르다. 저건 거의 어린갑 아냐?”
어린갑은 조선 시대에 쓰던 갑옷이다.
- 초기형은 그런 형태가 많습니다.
“그럼 저 방탄조끼는 성능이 어떨 거 같냐?”
- 초기영 드래곤 플레이트는 소재와 구조에 따라 방어 레벨 2부터 레벨 4까지 다양합니다만, 시험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사격용 더미 인형에게 방탄조끼를 입힌 후에 실사격 실험이 시작됐다. 민간인 제작자는 철인기공이 제공한 돌격소총으로 직접 사격했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총알이 방탄조끼에 박혔다. 충격으로 인체 모형이 크게 흔들렸다. 제작자는 소총을 딱 한 발만 쏜 후에 결과를 확인했다.
총알은 방탄조끼를 뚫지 못했다. 제작자가 활짝 웃었다.
“으하하하. 이것 좀 보세요. 소총탄을 완벽하게 방어했습니다!”
제작자는 방탄조끼를 벗기고 더미 인형의 상태도 확인했다.
“봐요. 더미도 깨지지 않았다고요.”
AI 전지인이 평가했다.
- 더미의 피해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이 대비하지 않은 상태로 총에 맞으면 갈비뼈가 부러질 수 있습니다.
사격장 관리 직원도 말했다.
“더미 인형의 상태를 보니까 사람이라면 갈비뼈에 금이라도 갔겠는데요?”
민간인 제작자는 당당했다.
“5.56mm에 맞았는데도 금만 가고 안 죽었잖아요. 그럼 됐죠.”
“그건 그렇죠.”
사격 테스트는 몇 발 더 이어졌다. 수제 방탄조끼는 네 발째에 완전히 뚫렸다.
- 총탄에 맞을 때마다 타격 지점부터 그 주변까지 방어력이 감소하는 구조입니다.
“우리 방어구도 그렇다며.”
- 드래곤 플레이트 계열의 방어구는 대부분 그렇습니다.
“우리 것도 꼭 실사격 시험을 해서 방어력을 확인해야겠다. 내 몸에 총알이 박히는 건 싫으니까.”
민간인 제작자의 방탄조끼 테스트가 끝났다.
여기서는 테스트를 한 사람이 현장 정리도 해야 한다. 제작자는 그가 만든 방탄조끼를 벗긴 후에 탄피를 주웠다.
나강인이 그 모습을 보며 이태호에게 물었다.
“저도 신청하면 방탄조끼를 실험할 수 있습니까?”
“나강인 씨야 뭘 신청하든 바로 프리패스죠.”
“괜히 저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하셔야 하는 건 아닌가 해서요.”
“에이. 설마요. 철인기공이 나강인 씨에게 신세 진 게 얼마나 큰데요.”
영화 ‘햇살 좋은 날’이 망했다면 THO 엔터는 물론이고 철인기공까지 경영권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나강인이 영화 제작에 참여한 덕분에 철인기공은 그런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런 위기가 있었다는 걸 알려준 사람도 나강인이다. 철인기공은 그 일을 계기로 경영권을 더 단단히 다졌다.
이태호가 말했다.
“방탄조끼든 철모든 뭐든 가져만 오세요. 다 테스트하셔도 됩니다.”
“조끼까지는 아니고요.”
나강인이 왼팔을 걷었다. 팔뚝에는 AI 전지인이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 시험판이 감겨 있었다.
“어? 이게 뭡니까?”
“방금 테스트한 분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본 겁니다.”
“예? 이게 방탄조끼라고요?”
“크기가 작으니까 방탄 팔목보호대 정도 되겠군요.”
“방탄팔찌 아니고요?”
“지금 상태에서는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군요.”
이태호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걸 왜 만드신 건지….”
나강인이 적당히 둘러댔다.
“저번에 그 7층 건물에서 싸울 때, 총 쏘는 놈이 많았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방어 장비가 좀 필요하겠다 싶어서요.”
이태호도 그때 그곳에 있었다.
“아아. 그때 진짜 위험했죠. 총알도 막 날아다니고. 그래서 이걸 만드신 건 알겠습니다. 알겠는데….”
이태호는 방탄조끼는 여러 번 보았지만, 방탄팔찌는 처음 보았다.
“이런 건 원래 영화 속 히어로의 아이템 아닙니까? 막 이걸로 총알도 막고…. 설마 여기서 거미줄도 나가는 건 아니지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방어력을 조금 포기하면 손목 쪽에 작은 수납공간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런 거 안 나갑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어쨌든 실험이야 바로 할 수 있죠. 저 더미의 팔에 채우고 쏴보시죠.”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더미의 팔뚝 형태가 요원님의 팔과 다릅니다. 실리콘 테이프로 형태를 수정해야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실리콘 테이프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없으면 붕대를 감아도 되는데요.”
“물론 있습니다만 그건 왜….”
“이건 개인 맞춤형 방어구라서 더미 인형의 팔뚝 모양이 저랑 비슷해야 합니다.”
실리콘 테이프는 보수용 자재 창고에 넉넉히 쌓여 있었다. 나강인이 그 테이프를 더미 인형의 팔뚝에 감았다.
이태호는 오늘 하루 휴가를 썼기 때문에 시간이 많았다. 그는 옆에서 구경하며 말했다.
“진짜 강인 씨 팔뚝하고 비슷한 형태로 감으셨군요. 테이프 감는 것까지 잘할 줄은 몰랐습니다.”
나강인은 실리콘 테이프를 다 감고 그의 팔과 비교해보았다. 이제 팔뚝의 모양이 비슷해졌다.
그는 더미 인형의 왼팔에 팔뚝용 드래곤 플레이트를 장착한 후에 사격 위치로 돌아왔다.
민간인 제작자는 돌아가지 않고 남아서 구경했다. 그 사람이 물었다.
“저기요. 저거 소재는 뭘 쓴 거예요? 티타늄 합금? 아니면 리퀴드 메탈?”
“알루미늄 합금과 스뎅의 적층 복합 구조를 썼습니다.”
“네?”
“두 가지 재질로 만든 교차 구조 부품이 부서지면서 총탄의 충격을 흡수하는 방식입니다.”
“아니, 잠깐만요. 스테인리스 스틸이 단단하긴 하지만, 냄비 만드는 데 쓰는 쇠로 저렇게 얇은 걸 만들면 총알을 어떻게 막아요? 알루미늄은 말할 것도 없고요.”
민간인 제작자가 장담했다.
“저걸로는 총탄을 절대 못 막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