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61화 (61/411)

61. 드래곤 플레이트 II

나강인이 말했다.

“저 얇은 게 총탄을 막는지 못 막는지 테스트는 해봐야죠.”

민간인 방탄조끼 제작자가 충고했다.

“하긴. 그렇게 실험하고 망쳐가면서 하나씩 배우는 거죠.”

그가 자기가 만든 방탄조끼를 가리키며 자랑했다.

“저야 뭐 그 단계는 이미 옛날에 넘어서 이렇게 완성품을 만들었지만.”

AI 전지인이 그 사람이 만든 방탄조끼를 평가했다.

- 초기형 드래곤 플레이트입니다. 크고 무거워서 지구 연합군은 후방 지역 경보병도 저런 건 안 씁니다. 방어력은 있으니까 낙후된 지역에서는 사용하긴 합니다.

“지금 시대 기준으로는?”

- 지금 기준으로 봐도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고 무게가 무겁습니다. 이미 판매되는 레벨3 방탄조끼와 비교해도 경쟁력이 없습니다.

“우리 물건은?”

AI 전지인이 자랑했다.

- 우리 드래곤 플레이트는 얇아서 활동성이 좋습니다. 무게가 가벼워 전투력을 깎아 먹지도 않습니다.

“저걸 우리 것과 비교하면?”

- 2082년 전장에서는 방어력 때문에 기동성을 잃으면 쉬운 표적이 됩니다. 좋은 방어 장비는 무게가 가벼우면서 방어력이 높아야 합니다. 우리 드래곤 플레이트가 압도적으로 우수합니다.

나강인이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2082년식 방탄조끼를 내가 쓰는구나.”

- 그건 아닙니다.

“어?”

- 우리가 만드는 건 열화형 방탄조끼입니다.

나강인은 살짝 당황했다.

“지인아. 너 나한테 2082년식 방어 장비를 만들어주는 거 아녔어?”

- 장비와 소재 탓입니다. 지금 제작 거점의 장비로는 높은 레벨의 방어 장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소재 기술도 너무 떨어집니다.

“소재는 또 왜?”

- 충격 반응 경화 겔과 방탄 소재용 합금을 사용해야 열화형이 아니라 표준형 드래곤 플레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어…. 넌 그런 소재는 만들 줄 모른다며.”

- 저는 생산 AI가 아닙니다. 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걸 만들어낸 것도 대단한 겁니다.

나강인도 그건 이해했다.

“어쨌든 우리가 만들려는 방탄조끼가 저것보다 낫잖아. 그럼 됐지.”

- 민첩에 마이너스 옵션이 잔뜩 붙어있을 것 같은 저런 구형 방탄조끼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못합니다.

나강인이 피식 웃으며 권총 사격대로 들어갔다.

“그래. 네가 만든 게 최고다.”

민간인 제작자가 사격장 관리자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더미에 총알구멍이 나면 수리비 받는다면서요? 저런 얇은 팔찌는 총에 맞으면 백 프로 뚫립니다. 그리고 권총으로 쏘니까 빗나가면 팔뚝이 아니라 몸통에 맞을 수도 있겠는데요?”

관리자가 설명했다.

“선생님이 쏜 것도 더미 몸통에 손상을 줬기 때문에 수리비는 청구될 겁니다.”

“어? 왜요? 난 구멍은 안 냈는데요?”

“보기보다 충격이 꽤 크게 들어가서 더미 인형 몸통에 금이 갔습니다. 수리해야 합니다.”

나강인이 권총에 탄약을 딱 한 발만 넣었다.

AI 전지인이 총의 종류를 설명했다.

- 글록17.많이 사용되는 9mm 권총입니다. 테스트용으로 적당합니다.

“알아.”

나강인이 권총을 들자마자 더미 인형의 팔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9mm 총탄이 날아가 더미 인형의 왼쪽 팔뚝에 정확히 꽂혔다.

총탄이 맞은 부분에서 불꽃이 팍 튀었다. 그 불꽃은 순식간에 팔찌 전체로 퍼졌다. 그 퍼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마치 팔찌 전체가 동시에 불꽃을 뿌린 것처럼 보였다.

그 불꽃은 잠깐 반짝이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강인이 탄창을 분리하고 내부에 남은 탄약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 권총을 옆에 내려놓았다.

이태호는 영화 업계에 있긴 하지만, 본가가 철인기공이라 방어 장비에 관한 지식이 어느 정도는 있다. 그런 그도 방금 그 현상은 처음 보았다.

“강인 씨. 도대체 뭘 만드신 겁니까? 팔찌에서 불꽃이 막 튀던데요?”

“같이 확인하시죠.”

나강인과 이태호가 더미 인형을 향해 걸어갔다.

이태호가 방탄팔찌를 보며 말했다.

“와. 가까이서 보니까 이거 완전히 망가졌군요. 이 작은 부품들이 전부 다 찌그러졌습니다.”

나강인이 더미 인형의 팔뚝에서 팔찌를 벗겼다.

“그래도 뚫리진 않았습니다.”

“그러게요. 당연히 뚫릴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을 따라온 사격장 관리인이 더미의 팔에 감긴 실리콘 테이프를 풀어본 후에 당황했다.

“어? 이게 왜….”

이태호가 물었다.

“왜 그럽니까?”

“더미의 팔뚝이 멀쩡한데요?”

“팔찌가 총알을 막았으니까 멀쩡한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손상이 없습니다.”

“네?”

관리인이 조금 전에 방탄조끼를 테스트한 몸통 쪽을 가리켰다. 총탄에 맞은 자리마다 조금씩 금이 간 채로 찌그러져 있었다.

“이건 소총탄으로 실험한 거니까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도 총탄에 맞을 때의 충격으로 이렇게 더미가 손상돼야 하는데….”

이태호도 더미의 팔뚝을 다시 확인했다.

“어?”

총에 맞은 자리가 약간 눌리긴 했지만, 몸통에 금이 간 것과 비교하면 손상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이태호가 나강인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나강인이 망가진 팔찌를 들어 보였다.

“충격을 완전히 흡수했으니까요. 불꽃이 튀는 거 보셨잖아요. 팔찌가 부서진 대신에 권총탄 한 발은 막은 거죠.”

“그 얇은 팔찌가요?”

“겨우 한 발 막은 겁니다.”

“어, 어떻게요?”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실리콘 테이프를 감아둔 게 도움이 됐나 보죠.”

“어…. 그런가요?”

나강인은 오늘 철인기공의 보안점검을 해주고 천만 원을 받았다.

덤으로 만들던 중인 방어 장비의 실사격 테스트까지 했다.

나강인이 철인기공을 나오며 말했다.

“오늘 여러모로 짭짤했다.”

- 이쪽 지역 맛집 리스트를 확보했습니다. 가는 길에 식사하시면 딱 좋습니다.

“돈 벌었으니까 좋은 거 먹자.”

-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

철인기공 본부장 이태성이 비용 명세서를 보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한 시간 점검하고 천만 원? 시급이 천만 원이네요?”

직원이 보고했다.

“대신에 우리 회사 서버 보안 시스템의 문제점 세 개를 지적받았습니다.”

“그것도 당장 처리해야 할 정도로 시급한 건 아니라면서요.”

“그래도 천만 원보다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급하세요.”

“예. 그리고 저….”

“다른 문제가 있습니까?”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외부 공개 사격장에서 특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태성이 관심을 보였다.

“좋은 물건이라도 나왔습니까?”

철인기공은 외부 사격장을 민간인에게 개방한다. 그곳에서 테스트한 민간인의 장비가 우수하면 담당 부서에 바로 보고된다.

담당 부서는 그 정보를 분석해 회사가 배울 게 있으면 배우고, 좋은 기술이 있으면 개발자와 협상해 기술을 산다.

“영상을 먼저 보시죠.”

보고하던 직원이 태블릿PC로 영상을 재생했다.

***

THO 엔터 사장 이태호는 철인기공 사장실로 불려갔다.

사장 이정민이 말했다.

“넌 회사로 들어와서 일이나 하랬더니 영화감독을 한다고 설쳐서는. 감독도 못 될 거였으면서.”

“아버지. 그거야 독립영화 찍던 옛날이야기잖아요. 저 이제 충무로에서 잘나가는 제작자예요. 우리 회사도 이번 영화로 돈 많이 벌었어요.”

“그 돈은 다음 영화가 망하면 도로 날아가는 거 아니냐?”

“아니, 뭐 투자자를 모아서 영화를 찍으면 망해도 그 정도까지는….”

“내가 널 몰라? 시나리오 좋은 거 들어오면 또 직접 투자할 거지?”

이태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그는 손태민 감독의 차기작을 직접 투자해 제작할 생각이다.

“영화판에서 번 돈, 영화판에서 써야 하지 않겠어요?”

“공연은? 너희 회사는 공연도 기획하잖아. 그거 하다가 관객이 안 들면 이번에 영화로 번 돈 다 날려 먹을 수도 있겠네?”

“아버지는 왜 자꾸 안 된다는 말만 하세요? 잘한다고 좀 해주면 안 돼요?”

“그래. 이번 영화는 잘했다. 재미는 있더라.”

“흐흐. 그렇죠?”

이정민은 철인기공의 경영권을 노리는 세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강인에 대해 들었다.

“거, 나강인이라는 배우는? 잘 좀 챙겨줬고?”

“오늘 우리 회사 보안점검을 맡겼어요. 천만 원짜리로.”

“응? 보안점검? 태호야. 신세를 갚으려면 좋은 배역을 꽂아줘야지 뜬금없이 보안점검이라니?”

“형이 부탁해서 제가 소개한 거예요. 나강인 씨는 해커 잡는 실력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좋거든요.”

“그래? 하긴. IT 보안 전문가가 대역배우를 할 수도 있지. 원래 직업이 IT 쪽이었나 봐?”

갑자기 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본부장 이태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 이정민이 불평했다.

“저 자식은 이젠 노크도 안 해. 확 잘라버릴까?”

이태성이 태블릿PC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뭔데?”

태블릿 PC에서 나강인이 팔뚝보호대를 테스트한 영상이 나왔다. 총알에 맞는 순간 팔뚝보호대 전체에서 불꽃이 튀었다.

이태호가 그걸 보고 자랑했다.

“아. 저거? 저 테스트 때 내가 같이 있었는데, 저 얇은 팔찌가 진짜 총알을 막더라니까? 효과도 마치 영화처럼 화려해. 나중에 영화 소품으로 쓸 수 있겠어.”

이태성이 타박했다.

“영화 소품? 너는 같이 있었으면서도 저게 어떤 건지 몰랐냐?”

“응?”

“저 충격 흡수력 말이야.”

“더미 인형의 팔뚝에 손상이 거의 없는 거? 근데 그건 실리콘 테이프를 감아서 그런 거잖아.”

“그게 아니다.”

이태성이 동영상을 다시 재생하고 팔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총탄을 맞을 때 잘 봐라.”

이태호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불꽃이 좀 튀긴 하지만 총탄은 잘 막았잖아. 왜?”

“더미 인형의 팔이 뒤로 거의 안 밀렸잖아.”

“어?”

이태성이 다른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건 오늘 민간인 제작자가 소총으로 방탄조끼를 테스트한 영상이었다.

더미 인형은 총탄에 맞을 때마다 뒤로 밀렸다가 돌아왔다.

“소총탄과 권총탄의 위력이 다르긴 하지만, 맞은 부위도 몸통과 팔이니까 크기가 달라. 그러니까 더미의 팔에 권총탄이 명중했을 때 팔이 뒤로 크게 흔들려야 한다고.”

이태호가 영상을 다시 재생하고 더미의 팔을 자세히 보았다. 총알에 맞을 때 더미의 팔은 뒤로 살짝 밀리다 말았다.

“어…. 이거 왜 이래?”

“직접 본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아야지. 그 방탄팔찌는 어떤 방식이었어?”

“나야 잘 모르지. 총알 한 발 막으니까 완전히 망가지던데?”

이태성이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역시 방어 장비 전체에 충격을 분산시키는 방식인가?”

“아! 맞아. 그런 방식이라고 했어. 복합 적층 구조가 부서지면서 충격을 흡수한다고.”

“타격 당한 부분만이 아니라 팔뚝을 감싸는 부위 전체로 충격을 분산시킨단 소리군.”

이태호는 철인기공의 사업을 겉핥기 정도로밖에 모른다.

이태호가 물었다.

“그렇다고 저렇게 팔이 뒤로 안 밀리고 충격이 흡수되나? 당구공을 정통으로 때린 것 같은 건가?”

“당구공과는 다른데, 일단은 그렇게 이해해도 되겠지. 어쨌든 저렇게 얇은 구조물로 충격을 저렇게 완벽하게 분산시키는 기술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저 기술은 어디서 개발한 거지?”

“나야… 모르지?”

사장 이정민이 영상을 노려보며 지시했다.

“태성아. 그 기술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아내서, 우리가 통째로 살 수 있으면 사고, 안 되면 라이센스라도 받아라.”

“바로 진행할게요.”

***

이태호가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 강인 씨. 그래서 우리 형이, 아, 그러니까 철인기공 이태성 본부장이 강인 씨를 오늘 당장 만나고 싶어 합니다.

“음…. 제가 지금 작업하는 게 있어서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데 말이죠.”

- 아. 그럼 계신 곳으로 가겠습니다.

“주소 보내드리죠.”

나강인이 서울 동북부 외곽에 만든 제작 거점의 주소를 보냈다. 철인기공 본사는 경기도 동쪽 지역에 있어서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 곧 출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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