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64화 (64/411)

64. 해외 테스트

나강인이 제안했다.

“밥 먹으러 왔다고 했지? 여긴 컵라면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먹을래?”

신은하는 겨우 컵라면을 얻어먹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게 아니다.

“강인 오빠가 요리할 게 아니면 당연히 나가서 먹어야지. 가자. 내가 살….”

그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이거 그려주면 설계비 받는다며? 오빠가 사. 갈비찜 먹자.”

“은하야.”

“응?”

“너 배우이잖아. 관리 안 해?”

“괜찮아. 요즘 휴식기야. 그리고 갈비찜은 살 안 쪄.”

“사이비 교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갈비찜이 살이 안 찌면 그게 바로 현세의 기적이지.”

“웅…. 내가 살게.”

나강인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자. 마침 갈비찜이 먹고 싶었다.”

***

철인기공은 나강인이 보내준 설계도를 바탕으로 실물 방탄조끼를 제작했다.

처음 하는 작업이라 초반에는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문제가 생기면 나강인에게 사진과 영상을 보내고 해결 방법을 물어야 했다.

나중에는 나강인이 직접 찾아와 제작 설비 세팅을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시간을 며칠 까먹었다.

결국 테스트용 방탄조끼 두 벌이 완성된 건 도면을 받고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철인기공 회의실에서 담당자가 테스트 결과를 보고했다.

“신형 개인 맞춤형 방탄조끼는 9mm 권총탄을 다섯 발까지 방어했습니다. 초탄은 완벽하게 방어에 성공했으며, 피탄될수록 더미에 전해지는 충격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사장 이정민이 물었다.

“여섯 번째 총탄은?”

“다섯 발을 방어한 후 방탄조끼가 완전히 파괴되어, 여섯 발째에는 방어력을 상실, 총탄이 더미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혔습니다.”

“다섯 발까진 괜찮다는 거군.”

“예.”

이정민은 만족했다.

“평상시에 몸통에 총탄이 다섯 발보다 많이 꽂힐 일은 거의 없지?”

“물론입니다.”

“대단하군. 아주 만족스러워.”

“감사합니다.”

“자네가 개발한 것도 아닌데 감사는.”

“아, 그게….”

이정민이 물었다.

“그럼 소총탄도 실험해 봤나?”

“예. 5.56mm 총탄 한 발은 완벽하게 방어했습니다만, 두 발째에 조끼가 관통되었습니다. 다만, 두 발째의 공격도 치명상을 면할 수준의 방어는 했습니다.”

“그 정도면 5.56mm 나토탄을 쓰는 저격총도 방어하겠어. 저격총탄이 연달아 두 발이나 박히진 않겠지. 7.62mm는?”

“더미 테스트용 방탄조끼는 두 벌만 제작돼서, 아직 7.62mm는 테스트하지 못했습니다. 추가로 제작해 테스트하겠습니다.”

“5.56mm 테스트 결과를 보면 7.62mm도 한 발은 막겠는데? 설사 뚫린다 해도 치명상은 피하겠지.”

“저희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이정민의 눈빛이 조금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그 얇은 방탄조끼가 어떻게 그런 방어력을 보여주는지 그 원리는 알겠어?”

“죄송합니다. 충격이 분산되는 방식을 부품 한두 개 단위로는 이해할 수 있는데, 이걸 전체에 적용해 계산하는 건 무리입니다.”

“흐음….”

이정민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설계도는 두 개를 받았다고 했지?”

“예. 더미 테스트용 하나, 인체 테스트용 하나입니다.”

“그럼 그 둘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 분석을 했을 거 아냐?”

“두 모델은 부품 조합이 상당히 다릅니다. 왜 그렇게 다르게 조합했는지 분석해봤지만,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이정민이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방탄조끼를 철공소에서 혼자 만드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 연구소는 왜 설계도면과 실물이 다 있는데도 분석조차 못 할까? 그 사람이 대단한 거야? 아니면 우리 연구소가 능력이 부족한 거야?”

“아무래도 그 사람이….”

“잘 생각해서 대답해. 연구비 확 깎아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죄, 죄송합니다.”

본부장 이태성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말했다.

“인체 테스트용은 제 몸을 스캔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일 완성됩니다.”

사장 이정민은 당황했다.

“어? 그걸 왜 네 몸에 맞춰서 만들어? 네가 총에 맞을 것도 아니면서?”

“어차피 사람한테 입히고 실험할 순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출장 갈 때 입고 다니면서 얼마나 편한지 직접 테스트하겠습니다.”

이태성의 몸에 맞춘 설계도면이긴 하지만 그것도 제품을 한 벌만 만드는 건 아니다.

“물론 추가 테스트를 위해 제 체형 그대로 더미 인형을 주문했습니다. 그 인형이 오면 사격 테스트도 할 수 있겠죠.”

이정민은 납득했다.

“알았어. VIP 고객에게 팔 명품 방탄조끼니까 착용감도 좋아야지. 네가 직접 테스트 많이 해.”

***

오메가테크 사장 스칼렛 켈리가 인천공항에 내렸다.

스칼렛이 두 팔을 쫙 펴며 말했다.

“아. 고향에 온 거 같아.”

그녀의 친구이면서 비서인 제시카가 지적했다.

“네 고향 아니잖아.”

“우리 할머니 고향이 내 고향이야.”

“도대체 언제부터 한국이….”

스칼렛이 얼른 말했다.

“일이나 하자.”

“공항에서부터?”

“응. 파티 준비는?”

제시카가 보고했다.

“대여한 유람선은 오늘부터 준비에 들어가. 사흘 뒤 선상파티까지 시간은 충분해.”

“파티 음식은?”

“최고의 출장파티 업체와 계약했어.”

“손님들은?”

“초대장은 모두 발송했어. 그중 65%가 참석하겠대.”

“나머지 35%는?”

“현재 국내에 없거나 다른 스케줄로 참석이 어려운 케이스야.”

“나한테 필요한 게 있으면 대리인이라도 보내겠지.”

“맞아. 15%는 대리인을 보내겠다고 했어. 아무도 안 오는 건 20%뿐이야.”

“초대장을 받은 다섯 중에 넷은 참석이라. 나쁘지 않네.”

스칼렛이 참석자 명단을 훑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 나강인 씨는 왜 명단에 없어?”

“거절한 20%에 있잖아.”

“어? 거절했어? 왜?”

“바쁘대.”

스칼렛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그냥 손님으로 초대한 거야?”

“네 손님 맞잖…. 아니야?”

“파티 요리 자문역으로 초빙했어야 오지! 그냥 오라고 하면 안 올 사람인 거 몰라?”

“당연히 모르지! 정체가 뭔지 파악조차 안 되는 사람인데!”

스칼렛이 손을 흔들어 얼굴에 손바람을 부쳤다.

“제시카. 실망이야.”

“아이고. 사장님. 그럼 실망스러운 저를 다른 부서로 보내시죠. 아니면 몇 달 휴직시키든지요. 난 무급 휴직도 좋아.”

“아니. 그건 아니고. 너 없이 나 혼자 어떻게 일해?”

제시카가 한숨을 내쉰 후에 말했다.

“나강인 씨는 파티 자문역으로 계약할게. 파티 당일에 와서 음식 준비를 도와주고, 파티가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파티에도 참석하게 유도하면 되지?”

“역시 제시카! 내가 원한 게 딱 그거야.”

***

이태성은 해외 출장을 위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는 공항 로비에서 비서와 이야기하는 스칼렛을 발견했다.

“미스 스칼렛 켈리?”

스칼렛도 이태성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아. 철인기공 본부장….”

이름까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제시카가 옆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태성.”

“이태성 씨군요.”

이태성이 물었다.

“한국을 방문한 지 얼마 안 되신 거 아닙니까? 방문이 잦으시네요.”

“할머니가 한국사람이에요. 한국은 저에겐 고향 같은 곳이죠.”

이태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에는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다고 아는데….’

스칼렛이 말했다.

“아. 사흘 뒤 파티 초대장을 철인기공에도 보냈을 텐데….”

제시카가 옆에서 명단을 확인하며 말했다.

“철인기공은 대리인이 참석합니다.”

“대리인 누구?”

“이태호입니다.”

이태성이 설명했다.

“제 동생이 대신 가기로 했습니다. 보다시피 제가 오늘 출국해야 해서….”

스칼렛은 이태호도 자칼 일당에게 붙잡혔다가 구출됐다는 걸 떠올렸다. 그녀는 이태호를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녀는 5층과 6층 사이 계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

동아시아 국가 정부에서 경찰 특수부대용 보호장비를 신규 발주하겠다고 공고를 냈다.

철인기공과 다른 나라의 세 회사가 그 계약을 놓고 경쟁했다.

그 네 회사는 같은 날 그 정부의 고위 관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했다.

프레젠테이션 장소는 그 나라 도시의 고급 호텔이었다.

호텔 앞에서 이태성이 한국 정부에서 나온 공무원에게 말했다.

“이번에 박 과장님께 신세 졌습니다. 덕분에 우리 회사가 이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민간 기업을 위해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그런데….”

박 과장은 조금 찜찜해 했다.

“제가 도와드리긴 했는데, 괜히 헛고생하시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낙찰 회사가 내정되어 있다는 말이 있어서요.”

“저희도 압니다. 그래도 이런 작업이 헛고생은 아닙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다른 사업에서 성과가 나곤 합니다.”

“아. 이건 다음 계약을 위해 밑밥을 까는 건가요?”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요.”

다른 세 회사의 담당자들도 호텔 앞에 와 있었다.

잠시 후에 이 나라의 정부 마크가 찍힌 차량이 무장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했다.

박 과장이 말했다.

“이 본부장님. 여긴 총을 가진 사람이 워낙 많아서, 우리나라하고 분위기가 많이 다릅니다.”

이 나라는 대형 쇼핑몰 입구를 총으로 무장한 경비원이 지키는 곳이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신세 많이 졌는데, 오늘 회의가 끝나면 같이 한잔하시겠습니까?”

박 과장이 웃었다.

“그러려고 도와준 게 아닙니다. 하하하.”

정부 차량에서 흰색 정장을 입은 젊은 여자가 내렸다.

박 과장이 설명했다.

“소피아 디아즈. 정부 실력자의 딸인데, MIT를 졸업한 수재로 업무능력도 뛰어납니다. 저 아가씨가 이 입찰의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태성이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세 회사 사람들도 다가갔다.

하지만 먼저 말을 붙이지는 못했다. 소피아가 그중 한 회사 사람에게 대놓고 친한 척을 했기 때문이다.

이태성이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사전에 낙찰된 건 저 회사군.’

어차피 오늘은 계약을 따러 온 게 아니다. 인맥을 만들어서 다음이나 다다음 대형 입찰을 노리는 게 목표였다.

그러려면 먼저 좋은 인상을 줘야 한다.

소피아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회사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인사했다. 마지막에 참여한 회사인 철인기공의 이태성과는 제일 짧게 간단한 인사만 했다.

갑자기 뒤쪽에서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가 들렸다.

이태성이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섰다.

“뭐지?”

근처를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급정거했다. 창문은 열려 있었다. 그 열린 창문에서 9mm 탄을 쓰는 기관단총이 쑥 튀어나왔다.

이태성은 그걸 보자마자 적의 목표부터 예상했다. 그래야 목표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 있다.

‘저 회사 사람들? 아니야. 여기서 제일 중요한 인물이라면… 어? 이 아가씨?’

문제가 생겼다. 이태성은 지금 소피아 디아즈의 바로 앞에 서 있다.

그가 뭘 해보기도 전에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적의 목표는 소피아였다. 그녀의 앞에 서 있는 이태성의 가슴에 총알이 퍽퍽 꽂혔다.

이태성은 군과 경찰용 장비를 만드는 철인기공의 본부장이다. 그는 평소에도 회사에서 만든 장비를 착용하고 테스트하는 일이 많았다. 테스트는 중에는 특수부대 훈련과 비슷한 것도 있었다.

그 훈련이 도움이 되었다.

그는 즉시 소피아를 끌어안고 근처 화단 뒤로 뛰어들었다.

곧바로 현장에 배치된 경찰과 경비원이 반격했다. 기관총을 난사한 차가 급하게 출발하는 소리와 요란한 총성이 뒤섞였다.

소피아가 급히 이태성의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지혈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빨리 구급차 불러!”

이태성이 말했다.

“전 괜찮습니다.”

소피아가 그녀의 손을 보았다. 피가 묻어있지 않았다.

“어?”

그녀가 이태성의 가슴을 보았다.

9mm 총탄이 세 발이나 박혔다. 와이셔츠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와이셔츠 안쪽에서 금속 부품을 조립해 만든 조끼가 보였다.

“방탄조끼?”

그녀는 이렇게 보기 전에는 이태성이 방탄조끼를 입은 줄 몰랐다. 그만큼 방탄조끼가 얇았다.

기존에도 이렇게 얇은 타입의 방탄조끼는 있다. 그런데 그건 총에 맞았을 때 죽지만 않게 해주는 물건이라서, 맞으면 더럽게 아프다.

그런 조끼를 입고 기관총탄을 세 발이나 맞으면 갈비뼈가 몇 대는 나가고 충격으로 쓰러져야 한다.

그런데 이태성은 너무 멀쩡해 보였다.

이태성도 많이 놀랐다. 그는 손으로 가슴을 만져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방탄조끼 실사용 테스트를 내 몸으로 할 줄은 몰랐는데.’

이 나라에 오면서 방탄조끼를 입긴 했지만, 진짜로 총에 맞을 줄은 몰랐다. 원래 목적은 해외 출장 중에도 방탄조끼가 불편하지 않는지 시험하는 활동성 테스트였다.

‘방어력이 이 정도로 대단할 줄도 몰랐고.’

9mm 총탄을 확실히 방어한다는 건 알았지만, 권총이 아니라 기관단총에 맞았는데도 이렇게 하나도 안 아플 줄은 몰랐다.

‘방어력이 더미 테스트로 분석한 것보다 더 좋아. 이유가 뭐지? 더미가 아니라 사람이 입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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