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65화 (65/411)

65. 꿀알바

적은 기관단총 한 탄창을 연사로 갈기고 곧바로 도주하려 했다. 그런데 지나가던 차가 총격전에 당황해 핸들을 틀면서 문제가 생겼다. 급히 출발하던 범인들의 차는 그 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탈출에 실패했다.

지나가던 차는 충돌 후에 재빨리 도망쳤지만, 기관단총을 난사한 차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차를 향해 경찰과 경호원의 사격이 쏟아졌다.

갑자기 차가 한 대 더 나타났다. 경찰차가 아니라 적의 지원부대였다. 그 차에서도 총구가 툭 튀어나더니 총탄을 소나기처럼 쏟아냈다.

호텔 앞이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소피아의 경호원이 그녀를 향해 달려오다가 총탄이 다리를 스치는 바람에 앞으로 넘어졌다. 경호원이 쥐고 있던 권총은 손에서 빠져나가 앞으로 미끄러졌다.

이태성은 발밑으로 굴러온 권총을 보자마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가 오른손으로 권총을 잡고 왼손으로는 가슴을 만져보았다.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는 9mm 탄환 세 발을 방어했다. 첫발은 완벽하게 방어했지만 두 발째부터는 충격이 들어오긴 했다. 그런데 세 발째까지도 충격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아직 방어력이 살아있어.’

그는 드래곤 플레이트의 방어력만 믿고 벌떡 일어났다.

적 차량 두 대가 보였다. 그는 그중 한 대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9mm 권총탄 세 발이 적의 차에 정확히 꽂혔다. 하지만 문짝 안쪽에 덧대어진 방탄판을 관통한 총탄은 한 발도 없었다.

상관없었다. 그는 적을 잡으려고 총을 쏜 게 아니다. 그는 지금 고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는 중이다.

‘이 정도 보여줬으면 됐겠….’

그런데 그의 공격이 적에게 위협이 됐다. 적의 총구가 즉시 이태성 쪽을 향했다.

‘헉!’

이태성은 얼른 화단 뒤로 자세를 낮췄다.

적이 발작적으로 쏴댄 총탄이 화단 위로 휙휙 지나갔다.

소피아가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요? 당신 지금 총에 맞았잖아요!”

이태성이 굳이 일어나서 총을 쏘는 모습을 보여준 건, 상대의 이런 반응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가 자랑했다.

“방탄조끼의 방어력이 높아서 괜찮습니다.”

“조금 전에 세 발이나 맞았는데 괜찮아요?”

“전혀요. 충격을 완벽하게 방어했거든요.”

총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전투가 끝났다.

이태성이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후에 천천히 일어나 소피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안전합니다.”

소피아가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총에 맞아 신음을 흘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적 차량 두 대는 이미 도주하고 없었다.

이태성이 말했다.

“차가 벌집이 된 걸 봤는데 그 상태로 도망을 치네요. 방탄판이라도 붙인 차인가?”

무장 경찰들이 총을 든 채로 바쁘게 뛰어다녔다. 소피아를 향해 달려오는 경찰도 있었다.

소피아가 손을 내밀어 그 경찰을 제지했다. 그런 후에 이태성에게 물었다.

“고마워요. 철인기공이죠?”

“철인기공 본부장 이태성입니다.”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던데, 특수부대 출신인가요?”

“우리 회사의 장비를 항상 테스트했더니 기술이 몸에 익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녀가 그의 가슴에 손가락을 댔다.

“이 방탄조끼는 어디서 산 거예요?”

이태성이 씩 웃었다. 이제 기술력을 자랑할 때다.

“상품명은 드래곤 플레이트. 우리 회사에서 만든 신제품 방탄조끼입니다.”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는 설계는 나강인이 하고 생산과 판매는 철인기공이 맡았다.

엄밀히 말하면 철인기공의 기술로 만든 건 아니지만, 제작한 곳이 철인기공인 건 사실이다.

이 나라에서 이전에 이런 습격 사건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 정도는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소피아가 직접 공격당한 건 처음이다. 그래서 그녀는 살짝 충격받은 상태였다.

그녀는 겁먹은 걸 숨기려고 일부러 방탄조끼에 더 신경을 썼다.

“이거, 보통 물건이 아니네요?”

“명품이죠.”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조끼라고 하셨죠? 이 제품의 납품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요. 이렇게 얇은데 이만큼 우수한 방어력이 있으면 수요가 많을 거예요.”

이태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 방탄조끼는 제조 공정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대량생산이 불가능합니다.”

“네?”

“이건 개인 맞춤형으로만 만듭니다. 고객의 몸에 딱 맞게 설계해서 고유 디자인으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소피아가 진심으로 말했다.

“그래요? 더 마음에 드네요. 살게요.”

“아직 시제품이라서 주문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만.”

“예약할게요. 내 거랑 우리 아빠, 엄마, 동생들 것까지.”

철인기공은 오늘 경찰 장비 납품 입찰을 협의하러 이곳에 왔다.

“일단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에 이야기하시죠. 그런데….”

이태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호텔 앞에서 방금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상황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해도 되겠습니까?”

소피아가 큰소리쳤다.

“물론이죠. 난 이 정도로는 흔들리지 않아요. 들어가시죠. 철인기공 본부장 이태성 씨.”

***

오늘 전투에서 사망자는 없었다. 그런데 부상자가 몇 명 있었다. 입찰에 참여한 회사 중에도 부상자가 나온 곳도 있었다.

그런데도 소피아는 일정을 예정대로 진행했다.

네 개 회사가 돌아가면서 입찰에 참여할 제품을 설명했다.

이태성은 총에 맞아 구멍이 세 개나 난 셔츠를 입고 사람들 앞에 섰다.

경쟁 회사 사람들은 이태성의 셔츠 속에 슬쩍 보이는 드래곤 플레이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뭔지 묻지는 못했다. 여기서 기술력이 밀린다는 티를 조금이라도 내면 이번 입찰은 날아간다.

네 회사가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오늘 당장 이 나라 정부가 어느 회사와 계약할지 결정되는 건 아니다.

어쨌든 이태성의 이번 출장 업무는 그걸로 끝났다.

그는 그날 저녁때 한국 정부의 박 과장에게 술을 샀다.

박 과장도 오늘 호텔 앞에서 총격전을 직접 목격했다. 그 충격을 지우려면 술이 필요했다.

조용한 술집에서 술이 몇 잔 오간 후에 박과장이 물었다.

“이 본부장님. 아까 총에 몇 발 맞으셨잖습니까?”

“세 발 맞았죠.”

“그런데 왜 그렇게 멀쩡하시죠? 아. 실례했습니다. 제가 좀 놀라서 말을 너무 막….”

“아닙니다. 이게 다 우리 회사 신형 방탄복 덕분이죠.”

그는 드래곤 플레이트의 성능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런 후에 오늘 그가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의견을 더했다.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총에 맞으면서도 반격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장점이죠. 좁은 곳에서 서로 마주쳐서 동시에 방아쇠를 당기는 상황이라면, 이 방탄복을 입은 쪽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훈련받은 요원이 입는다면 효과는 극대화되겠죠.”

그는 박 과장에게 드래곤 플레이트를 열심히 홍보했다. 박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입니다. 경호원보다는 요인 본인이 더 원할 것 같지만요. 방탄조끼가 되게 얇아 보여서요. 아. 무게는….”

“제가 오늘 하루 입고 다녔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가볍습니다.”

“그럼 찾는 분이 더 많겠네요.”

***

그 사건은 한국 언론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 총격전 한복판에 한국 업체가 있었다는 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라서, 그 업계에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 한국의 철인기공이 대단한 방탄조끼를 만들었다더라.

- 나도 들었는데, 방어력이 과장됐겠지.

- 목격자가 있어.

- 정식으로 테스트한 게 아니잖아. 속에 뭘 더 입고 있었는지 누가 알아?

오메가테크도 그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

비서 제시카가 스칼렛 켈리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CCTV에 찍힌 영상이야. 여기 이 부분, 철인기공의 이태성이 총에 맞는 부분을 봐.”

스칼렛이 화면을 보다가 영상을 확대하고 다시 앞부분부터 재생했다.

“이 사람, 세 발이나 맞았는데도 별로 충격받은 것 같지가 않네?”

“맞아. 그 이후 움직임도 자연스러워.”

“사람 몸이 총알을 막을 순 없으니까 당연히 방탄조끼를 입었다는 건데, 겉으로 보면 입은 줄도 모르겠는데?”

“옷 밖으로 표시가 전혀 나지 않는 초슬림형 방탄조끼야.”

“이 정도 방어력을 가진 초슬림형은….”

스칼렛은 심각해졌다.

“불가능한 거 아녔어?”

제시카가 진지하게 말했다.

“철인기공이 기술도약에 성공한 것 같아.”

“철인기공 이태성. 그러고 보니까 이 양복은 공항에서 만났을 때 본 그 옷이잖아. 그때는 전혀 눈치 못 챘는데 옷 속에 이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단 말이지.”

제시카는 그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맞아. 일부러 보란 듯이 네 앞에 나타났다가 떠났지.”

스칼렛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역시 철인기공은 만만한 상대가 아닌 것 같아.”

“원래 만만치 않았어.”

“어쨌든 이게 시장에 풀리면 기존 방탄조끼 업체는 다 문 닫아야겠네.”

제시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사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그건 아니야.”

“응?”

“이 방탄조끼의 제품명은 드래곤 플레이트. 이건 약점이 하나 있는데, 개인의 체형에 맞춰서 매번 새로 설계해야 한대. 그래서 대량생산이 불가능할 거래.”

스칼렛이 손을 가슴에 얹었다.

“휴우. 그럼 시장에 큰 영향은 없겠네? 주식 안 팔아도 되겠다.”

제시카가 즉시 구박했다.

“스칼렛! 넌 주식은 하지 마! 또 말아먹으려고 그래?”

“야! 어디 나만 말아먹었냐? 뉴튼도 주식 하다 말아먹었어!”

“그걸 아는 사람이!”

스칼렛이 손을 흔들었다.

“됐고. 제시카. 우리도 이거 한 벌씩 사자. 철인기공에 주문 넣어.”

“우리만 입어?”

“당연히 우리 연구소에서 분석할 샘플까지 사야지. 넉넉히 주문해.”

“오케이! 차명으로 우회해서 주문 넣을게.”

스칼렛이 다른 걸 물었다.

“선상파티 준비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나강인 씨 섭외가 생각보다 어려워.”

“왜?”

“요즘 바쁘대. 왜 바쁜지는 파악하지 못했어.”

스칼렛이 기지개를 켰다.

“알았어. 내가 가서 직접 담판을 지을게. 샵 예약해.”

“어? 샵이라니?”

그녀가 손바닥을 자신의 얼굴 앞에 대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날 더 예쁘게 만들어줄 샵 말이야. 전투태세로 쳐들어가야지.”

***

스칼렛이 나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한국 왔어요.”

- 제시카 씨에게 들었습니다. 내가 일이 좀 있어서 파티 참석은 어렵겠군요.

나강인은 그가 쓸 드래곤 플레이트를 직접 제작하는 중이다.

“지금 어디예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나강인이 주소를 문자로 보내주었다.

스칼렛이 스마트폰에 뜬 주소를 옆자리에 보여주며 말했다.

“제시카. 운전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서울을 살짝 벗어난 경기도 산자락 아래였다. 그곳에는 예전에는 철공소였던 작은 2층 건물이 하나 있었다.

스칼렛이 간판을 보며 제시카에게 물었다.

“지구연합 제작소? 이름이 왜 이래? 나강인 씨는 여기서 뭐 한대?”

“몰라.”

“응? 안 알아봤어?”

“알아봤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

스칼렛이 건물 벽에 붙어 있는 큼지막한 ‘출입금지’ 안내판을 보았다.

그 안내판은 아크릴판을 잘라 글자로 만들고 그걸 다시 금속판에 붙여 만들었다.

“이상한 곳에 공을 들였네?”

“나강인 씨 취향이 특이한 거겠지.”

“그냥 인쇄한 것보다 되게 있어보이긴 한다.”

스칼렛이 벨을 눌렀다. 잠시 후에 나강인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여기까지 왔습니까?”

“일단 안으로 초대해서 차라도 주는 게 어때요?”

“뭐, 그러시든가.”

나강인이 그들을 안으로 들였다.

스칼렛은 내부를 보고 멈칫했다.

“뭐죠? 이 어색함은?”

고물 절삭기계와 최신 레이저 절삭기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

한복판에 있는 건 대형 모니터 네 대였다. 그건 누가 봐도 일반 웹서핑용 모니터는 아니었다.

나강인이 설명했다.

“알바 하는데 쓰는 것들입니다.”

스칼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있는 최신 절삭기들은 개인이 쓰기엔 비싼 것들이다.

“이런 좋은 장비로 알바를?”

그녀가 아는 나강인은 요리사이자 배우이며 특수부대 베테랑이다.

그런데 여기서 본 건 또 다른 모습이었다.

“무슨 알바를 하는데요? 뭔가 만드는 것 같은데.”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방어구 같은 거?”

스칼렛이 고개를 갸웃했다.

“방어구? 갑옷? 코스프레에 관심 있어요?”

나강인이 말을 돌렸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왔습니까?”

스칼렛도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 선상파티에 초대하려고 왔죠.”

“내가 좀 바빠져서. 그냥 좋은 요리사를 써요.”

“당연히 최고의 출장요리 회사를 썼죠. 강인 씨는 내일 와서 요리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만 하면 돼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스칼렛의 비서는 요원님이 파티에 참석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너 눈치도 많이 늘었구나. 나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 저 비서에게 엿도 좀 선물하고, 이 세상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도 선상파티를 경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석하시죠.

“넌 최고의 출장요리 회사가 만든 요리가 궁금한 거겠지.”

AI 전지인은 남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좋아한다.

- 이건 밥도 먹고 작전 예산도 늘어나는, 꿩도 먹고 알도 먹는 꿀알바입니다. 참석만 하면 날로 먹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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