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70화 (70/411)

70. 낙귀 III

나강인이 AI 전지인에게 말했다.

“너 진짜 사람 다 됐다.”

스칼렛이 물었다.

“네?”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을 한 겁니다.”

스칼렛이 웃으며 말했다.

“여긴 듣는 사람이 많긴 하죠. 나중에 따로 말해주세요.”

신은하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나중에 따로 왜 만나요?”

스칼렛이 둘러댔다.

“강인 씨가 날 구하려고 이렇게 싸웠으니까, 고마워서요?”

“아닌데요? 누가 봐도 날 구한 건데요?”

“해적들이 날 노리고 쳐들어왔잖아요.”

“날 구하려고 총까지 맞았다고요.”

스칼렛은 화들짝 놀랐다.

“네? 총에 맞았어요? 어디요! 가, 가슴에 구멍이!”

그녀가 다급히 나강인의 가슴을 손으로 만졌다. 손에 맨살이 아니라 금속 감촉이 느껴졌다.

“어머?”

그녀가 나강인의 구멍 난 옷을 조금 벌려보았다. 안쪽에서 금속 재질이 보였다.

제시카가 스칼렛의 옆에서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쇠로 되어 있어. 역시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었어. 맞아. 그래야 그 능력이 말이 되지.”

스칼렛은 오메가테크의 사장이자 연구 총책임자다.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방탄조끼?”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총에 맞긴 했는데 보다시피 다치진 않았죠.”

“잠깐만요. 이건 금속으로 만든 거잖아요. 통짜 방탄판도 아니고요. 이런 형태면… 충격 분산 방식인가? 으응? 어떻게 이런 형태로 그게 돼요?”

AI 전지인이 말했다.

- 더 감탄하라고 하십시오.

스칼렛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녀가 이태호를 돌아보았다. 이태호는 철인기공 본부장 이태성 대신에 이 선상파티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태호는 나강인과 아는 사이다.

스칼렛은 최근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혹시 이게 철인기공에서 만든 신제품 방탄조끼, 그러니까 드래곤 플레이트예요?”

“드래곤 플레이트를 아시는구나.”

철인기공에서 만드는 건 양산품이고 이건 강화영이지만, 둘 다 드래곤 플레이트이긴 하다.

그녀가 방탄조끼 표면을 유심히 살폈다.

“금속 구조물들이 파괴되면서 충격을 감쇄시키는 방식인가?”

총알 자국은 나강인의 가슴에 있다. 그녀가 그걸 들여다보는 모습이 마치 나강인에게 머리를 안긴 것처럼 보였다.

신은하가 스칼렛을 잡아당겼다.

“뭐하는 거예요?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 내가 연구에 빠지면 다른 게 보이지 않는 타입이라 그래요. 그럼 어디 조용한 데 가서 단둘이….”

“단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나강인이 스칼렛을 슬쩍 밀며 말했다.

“전투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네?”

“갑판 아래에 있어서 못 봤겠지만, 해적단 두목이 도망쳤습니다.”

“네? 어디로요?”

“이 배 조타실로 갔겠죠. 거기 부하들이 있을 테니까.”

갑판 아래쪽으로 대피했던 몇 사람이 위로 올라왔다. 총에 맞은 경호원은 올라오지 못했다.

강남 7층 빌딩에서 스칼렛이 팔에 총을 맞았을 때는 나강인이 치료해주었다.

스칼렛이 말했다.

“아! 강인 씨. 총에 맞은 사람이 있어요. 응급조치가 필요해요.”

“그런 말은 일찍 좀 해요. 구급상자라도 가져와요!”

파티 공간 구석에 대형 구급상자가 비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손님 중에 의사는 없었다.

나강인은 총상을 입은 경호원의 권총을 이태호에게 맡겼다.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갑판 위는 발목을 다친 무장 경호원이 올라와서 지켰다.

장미정이 권총을 든 이태호에게 물었다.

“넌 국방부 홍보부대 나왔잖아. 왜 총을 받아?”

“철인기공 사격장에서 쏴봤어. 쏠 줄은 알아.”

나강인이 총에 맞은 경호원의 상처를 살폈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뼈와 중요 장기, 신경계, 동맥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나강인이 상처 주변을 소독하고 붕대를 지혈이 될 정도로 단단히 감아주며 말했다.

“생명에 지장은 없으니까 병원에 가서 제대로 치료받아요. 총알이 중요 부위는 건드리지 않아서 후유증도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총에 맞은 경호원이 어색한 한국어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나강인이 망가진 무전기를 보며 말했다.

“일단 여기 상황을 알려야 하는데….”

“무전기가 망가지기 전에 여기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그럼 곧 해경이 올 겁니다. 항생제 정도는 가져오면 좋겠는데.”

나강인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갑판 위의 탁자 등을 쌓아 엄폐물을 만들었다.

그들은 갑판 아래로는 내려가지는 않았다. 거기는 워낙 좁은 곳이라 부상자를 간호할 사람만 남겼다.

나강인은 이태호에게 맡긴 권총을 받았다.

예비 탄창은 없었다.

경호원 두 명은 비밀 경호 임무를 받고 온 상태라 소형 반자동권총 한 자루씩만 소지하고 있었다.

나강인이 탄창을 확인했다.

- 다섯 발이 남았습니다.

“넉넉하진 않네.”

신은하가 그 모습을 보며 걱정했다.

“강인 오빠. 설마 또 싸우러 가려는 건 아니지?”

“맞아.”

“위험하잖아.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나강인이 배의 뒤쪽을 가리켰다. 스크루가 빠르게 돌아서 항적이 커졌다.

“놈들이 속도를 높였다. 이 배는 아마 최고속도로 가고 있겠지. 방향은 중국 쪽이고.”

“아…. 우리 다 중국에 가는 거구나.”

“못 가게 막아야지. 멀쩡한 중국 항구로 가는 건 아닐 테니까.”

“으…. 잠깐만!”

신은하가 옆으로 뛰어가더니 젓가락이 가득 담긴 통을 가져왔다.

“강인 오빠. 내가 무기 많이 가져왔어.”

“그건 거리가 멀 때나 쓰는 거지 좁은 공간에서는 뭐 굳이.”

손이 닿는 거리라면 젓가락을 꽂으나 주먹을 꽂으나 치명적인 건 마찬가지다.

그녀가 시무룩해졌다.

“도움될 줄 알았는데.”

“좀 전에 도움 많이 됐다.”

나강인이 그 통에서 젓가락을 하나만 꺼냈다.

“이건 예비로 가져갈게.”

신은하의 얼굴이 대놓고 밝아졌다.

“응!”

“손거울 있어? 작은 거로.”

“응? 있긴 있는데….”

신은하가 핸드백에서 명품 상표가 찍힌 손거울을 꺼냈다.

나강인도 그 상표를 안다.

“거기선 손거울도 만드냐?”

“얘네들 별거 다 만들어.”

“깨져도 되는 싼 거울은 없냐?”

“그냥 이거 써.”

나강인이 가볍게 점프해 2층 난간의 부착물을 잡았다. 그런 후에 손거울을 위쪽으로 슬쩍 올렸다.

AI 전지인이 거울에 반사된 정보를 모아 2층 상황을 홀로그램으로 만들었다.

- 활동하는 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강인이 몸을 당겨 위층으로 쓱 올라갔다.

2층에는 나강인이 던진 칼에 맞아 기절한 놈들만 있었다. 움직이는 적은 보이지 않았다.

“조타실 위치 확인해.”

AI 전지인이 조타실 위에 표식을 띄웠다.

- 진입 경로를 표시합니다.

조타실 외부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 내부로 들어가 안쪽 문을 여는 길, 그리고 지붕으로 올라가 전면 유리를 부수고 들어가는 방법이 제안됐다.

나강인은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배 위로 올라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다가 조타실 앞으로 뛰어내렸다. 권총은 앞을 겨누었다.

조타실은 텅 비어있었다.

“음?”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모터보트 발견! 적이 도주 중입니다!

나강인이 바다를 보았다.

해적들이 침입할 때 쓴 고속 고무보트 한 대가 중국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보트의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나강인이 권총을 들어 배를 조준했다.

AI 전지인이 경고했다.

- 유람선이 이 속도로 직진하면 중국 해군이 나포할 수 있습니다. 배를 돌려야 합니다.

“저 새끼부터 잡고.”

나강인이 방아쇠를 당겼다. AI 전지인이 사격을 보조했다.

배 위에서 권총으로 멀리 떨어진 모터보트를 잡는 건 어렵다. 바다는 바람이 강하게 불고 모터보트는 파도 때문에 출렁거렸다.

발사된 총탄은 모터보트 근처 바다에 꽂혔다.

나강인이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순식간에 남은 네 발을 다 쏟아냈다. 총탄 한 발이 모터보트를 스쳤다. 하지만 명중탄은 없었다.

- 바다 위에서 이 거리의 고속기동 표적을 권총으로 맞히는 건 어렵습니다.

“그러네.”

나강인이 조타실로 들어갔다.

“배 몰 줄 아냐?”

- 구형 선박의 조종법은 기본 탑재되어 있습니다.

“배 돌리자.”

AI 전지인이 홀로그램 영상을 이용해 시범을 보였다. 나강인이 그 영상을 보며 배의 방향을 틀었다.

***

신은하는 총소리를 듣고 걱정했다.

“설마 강인 오빠가 맞은 건 아니겠지?”

스칼렛이 말했다.

“당신은 강인 씨에 대한 믿음이 없군요.”

“믿는 거랑 걱정하는 거는 다른 거거든요?”

그들의 말싸움은 길지 않았다. 배가 선회를 시작했다.

이태호가 주먹을 높이 들며 외쳤다.

“배가 인천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이겼다!”

장미정이 이태호를 구박했다.

“창피하니까 좀 그만해.”

“미정아. 넌 안 좋아?”

“좋지.”

이태호가 신나서 말했다.

“내가 조타실로 가서 도와줄게. 나 요트 몰 줄 알잖아!”

신은하가 얼른 따라붙었다.

“이 사장님. 같이 가요!”

“은하 씨는 왜?”

“멍든 데 있으면 호 불어주려고요.”

“강인 씨가 멍이 든 곳이라면….”

적의 총탄 몇 발이 나강인의 방탄조끼에 꽂혔다. 모두 가슴과 배 위치였다.

“어우. 은하 씨 보기보다 화끈….”

장미정이 이태호의 옆구리에 주먹을 먹였다.

“닥쳐!”

“켁!”

두 사람이 조타실로 가는 걸 보고 스칼렛과 제시카도 따라갔다.

갑자기 2층 갑판 아래쪽에 있는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해적단 두목 낙귀가 튀어나왔다.

제일 앞에서 걷고 있던 건 신은하였다.

낙귀가 신은하의 팔을 잡고 확 잡아당겼다. 동시에 총을 사람들에게 겨눴다.

“전부 비켜!”

깜짝 놀란 사람들이 뒤로 우르르 물러났다.

낙귀가 신은하의 목에 왼팔을 두르고 갑판 위로 나왔다.

“비키라고! 거기 너! 총 버려!”

무장 경호원은 다리를 다쳐 움직이기 쉽지 않았지만, 총을 버리진 않았다. 그의 경호 대상은 스칼렛이지 신은하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 위치에서 낙귀를 쏠 수도 없었다.

낙귀는 신은하를 방패로 삼고 갑판 뒤로 이동했다. 그쪽에 레저용 모터보트가 있었다.

낙귀가 갑자기 2층을 휙 돌아보았다.

나강인이 2층에서 갑판으로 가볍게 뛰어내리며 말했다.

“모터보트를 타고 도망친 건 조타실에 있던 놈이었구나. 넌 부하가 먼저 튈 줄은 몰랐나 봐?”

낙귀가 악을 썼다.

“그 새끼는 내가 잡아서 죽일 거다!”

나강인이 낙귀를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교도소에서 그러긴 어려울 텐데.”

“거기서 멈춰! 더 다가오면 이 여자는 죽는다!”

“차라리 여자는 놔주고 날 인질로 삼지 그래?”

낙귀가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크흐흐. 내가 미쳤냐? 난 이 여자가 딱 좋다!”

“그건 그래.”

“뭐?”

나강인이 권총을 흔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총과 그 여자를 교환하자. 그 모터보트도 줄 테니까 타고 가라.”

낙귀가 눈알을 굴리다 외쳤다.

“먼저 총부터 이쪽으로 보내!”

나강인이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에 발로 툭 찼다. 권총이 미끄러지다가 낙귀의 발밑에서 멈췄다.

낙귀는 신은하에게 총을 겨눈 채로 그 권총을 왼손으로 집었다.

이제 낙귀는 권총이 두 자루가 있다. 나강인은 총이 없다.

낙귀가 실실 웃었다.

“흐흐흐. 멍청한 새끼.”

그가 왼손의 권총을 신은하의 몸에 댔다. 그런 후에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이 여자부터 쏴버리겠다.”

낙귀는 오른손잡이다. 그는 오른손의 권총을 나강인 쪽으로 향했다.

“그대로 움직이지….”

나강인이 갑자기 쇠젓가락을 던졌다.

쇠젓가락이 화살처럼 날아가 권총을 때렸다. 권총이 손에서 빠져나와 옆으로 날아갔다.

“억!”

낙귀는 즉시 왼손에 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는 신은하의 몸통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어?”

나강인이 낙귀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그 권총은 총알이 떨어졌거든. 탄창이 비면 무게만 가벼워지는 게 아니라 무게중심도 변하는데, 그 차이를 못 느끼나 봐?”

신은하는 탄창이 비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강인 쪽으로 뛰었다.

당황한 낙귀가 그녀를 쫓아가려고 했다.

나강인이 앞으로 성큼 걸어 신은하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계속 걸어가면서 낙귀의 목에 팔을 덜컥 걸었다.

“켁!”

낙귀는 목덜미를 잡힌 채로 뒤로 끌려갔다.

나강인이 낙귀의 목을 잡고 배 바깥으로 밀었다.

“누가 시켰냐?”

난간에 반쯤 걸쳐진 낙귀가 사정했다.

“모, 몰라. 사, 살려….”

“모르면 그냥 바다에 떨어지든지. 수영 잘하냐?”

낙귀가 서둘러 말했다.

“브로커가 접속코드만 알아내면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한 거야! 더 더는 몰…. 아니야! 알아! 날 살려주면 그 브로커가 누군지 다 말해줄게!”

AI 전지인이 말했다.

- 거짓말입니다. 이 포로는 브로커의 정체를 모릅니다.

“경찰이 알아서 찾아내겠지.”

나강인이 배 난간에 걸쳐진 낙귀를 앞으로 당겼다. 낙귀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살았….”

나강인이 낙귀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갑판 바닥에 콱 꽂았다.

“케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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