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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하는 히어로-71화 (71/411)

71. 애프터 파티

나강인이 해적 낙귀를 갑판에 꽂았다. 동남아 바다에서 악명이 자자한 해적 낙귀는 패대기친 개구리처럼 팔다리가 쭉 펴지며 기절했다.

나강인이 낙귀를 처리하고 손을 가볍게 털며 신은하에게 물었다.

“괜찮아?”

신은하가 나강인을 째려보았다.

“나쁜 새끼.”

“저 해적 새끼가 나쁜 새끼긴 하지.”

“총에 맞아 죽는 줄 알았잖아!”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구나. 저놈이 널 겨누던 총으로 너 대신 나를 겨누게 하려고, 일부러 저놈 왼쪽으로 탄창이 빈 권총을 밀었어. 그래야 그 빈 총으로 널 겨누고 총알이 남은 총은 날 겨눌 테니까. 저놈 오른손잡이거든.”

설명이 좀 길긴 했지만 신은하는 알아들었다.

“그걸 다 계산하고 그렇게 한 거야?”

“당연하지.”

“그래도… 미리 신호라도 줬으면 좋잖아. 진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나 아직도 심장이 막 뛰어.”

“너한테 신호를 줬다가 저 새끼가 눈치채면 네가 위험해. 그 정도는 감수해라.”

신은하가 표정을 풀고 허기를 직각으로 꺾으며 공손히 배꼽 인사를 했다. 그녀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아래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강인 오빠. 또 구해줘서 고마워. 진짜 진짜 고마워. 이건 진심이야.”

“알면 됐다.”

그녀가 허리를 편 후에 머리를 휙 넘기며 말했다.

“이제 욕 계속해도 돼?”

“어…. 나중에?”

“사람들 없는 곳에서 할게. 내가 그 정도 양심은 있어.”

“너한테도 있었구나. 양심이.”

***

해적 낙귀는 유람선의 조타실과 갑판부터 장악하고 기관실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조리실은 우선순위가 제일 낮았다.

그런데 갑판에서 일이 틀어져 부하들이 쓸려나갔다. 아래로 내려보낼 병력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낙귀가 기관실에 부하를 안 보낸 건 아니다. 해적 한 놈을 미리 보내긴 했다.

그놈은 조리실에서 갑판으로 가던 나강인에게 걸려 일찌감치 기절했다.

조리실에 있던 출장파티 업체 조리사들은 전투가 끝날 때까지 해적을 구경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총격전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위협을 당한 적도 없었다. 그저 총소리만 조금 들었을 뿐인데, 그나마도 조리실에서 들어서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총소리가 아니라 폭죽 소리 아니냐는 조리사가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들은 상황이 끝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강인이 만들어둔 디저트를 갑판으로 옮길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그 디저트와 함께 따뜻한 차, 음료, 커피가 제공됐다.

조리사들은 술도 갑판으로 들고 올라왔다. 맥주와 와인, 샴페인 등이 갑판에 놓였다.

사람들은 오늘 느꼈던 공포를 털어버리려고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었다.

칼에 맞은 해적들은 모두 2층에 있어서 파티 장소인 갑판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기절한 낙귀도 2층으로 옮겨놓았다.

이태호가 티라미수 스타일 잡탕 케이크를 먹으며 말했다.

“사건이 끝난 후에 먹는 이 케이크는 참 맛있단 말이야. 내가 전에도 이걸 먹….”

그는 강원도 세트장에서도 이민지 납치 사건이 해결된 후에 이 케이크를 먹다가 장미정에게 탈탈 털렸다.

이태호가 장미정을 슬그머니 돌아보았다.

장미정은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조명과 어우러진 그녀의 모습이 마치 CF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내 와이프지만 역시 배우는 배우구나.’

장미정은 이태호가 어디를 보는지 깨닫고 피식 웃었다.

“좋냐?”

“흐흐. 좋지.”

“이따가 실컷 봐. 밤새도록.”

당황한 이태호가 시선을 돌렸다.

“어? 어…. 오늘 밤은 경찰하고 이야기할 게 많지 않을까? 아니, 경찰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장미정은 나강인이 그녀와 이태호에게 눈빛과 손짓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눈빛만으로도 의사를 확실히 전달할 능력이 있다더니, 진짜였어.’

손짓은 연습하면 따라 할 수 있지만, 그런 눈빛이나 표정은 연기에 재능이 없으면 표현하기 어렵다.

‘배우가 아닌데도 어떻게 그런 눈빛 표현이 가능하지?’

AI 전지인이 침투 작전에서 쓰는 무음 의사전달 스킬로 나강인의 표정을 보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연기력을 타고났나?’

이태호는 전부터 나강인이 연기를 잘한다고 주장했다. 장미정은 그동안은 남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장미정은 영화와 드라마 출연 경력이 화려한 중견 배우다. 그녀가 나강인을 보며 생각했다.

‘저 좋은 재능을 놔두면 아깝잖아.’

선상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은 놀란 가슴을 술과 음식, 디저트로 달래며 떠들었다.

“갑판으로 총알이 막 날아올 땐 진짜 죽는 줄 알았어.”

“내 인생 최고의 모험을 오늘 한 것 같다.”

“우리가 한 건 없지 않나?”

손님이 나강인 쪽을 슬쩍 보았다.

초등학생 이민지는 나강인의 옆에서 주스와 케이크를 먹었다. 신은하와 스칼렛 켈리도 그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저 아가씨들이랑 꼬마는 왜 저 남자랑 계속 같이 있지?”

“저 사람 옆이 제일 안전하잖아. 나도 저기로 가고 싶다.”

오늘 전투를 떠올린 손님이 나강인을 보며 말했다.

“저 사람 말이야. 분명히 총에 몇 번이나 맞는 걸 봤는데 왜 저렇게 멀쩡해? 사람이 아니라 로봇 아냐”

“방탄조끼를 입었겠지.”

“그걸 옷 속에 입으면 겉에서 볼 때 표가 나지 않나? 전혀 안 나는데?”

“요즘은 얇게 나오는 방탄조끼도 있다더라.”

이 파티에 초대된 손님 중에는 어디서 한자리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 몇 명이 한쪽에 모여 쑥덕거렸다.

“저 사람이 입은 방탄조끼는 어디서 파는 거지? 나도 하나 살까?”

“우리나라에서 방탄조끼를 왜 사?”

“필요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 봐. 필요하잖아.”

바로 오늘 권총으로 무장한 해적이 서해에서 유람선을 습격했다.

다른 손님이 피식 웃었다.

“에이. 이런 일이 또 일어나려고.”

“그럼 나만 살게.”

피식 웃던 손님이 정색했다.

“아니야. 나도 만약을 대비해서 하나 사야겠다. 우리 김 비서한테 사오라고 해야겠어.”

“그래? 그럼 사는 김에 내 것도 사라. 잘 쓸게.”

“있는 새끼가 더하다더니. 김 사장아. 네가 나보다 더 부자야.”

방탄조끼가 아니라 나강인의 얼굴을 보는 사람도 많았다.

젊은 여자 두 명이 나강인을 힐끗거리며 속삭였다.

“저 남자는 도대체 누구야?”

“싸움 실력 진짜 장난 아니다.”

“같이 다니면 엄청 든든할 거 같지 않아?”

젊은 여자가 입맛을 다셨다.

“꼬셔볼까?”

“옆에 신은하 안 보여? 국가대표급이 골대를 지키는데 어떻게 꼬셔?”

“에이. 설마 둘이 사귀는 사이겠어?”

“아닌가?”

“당연히 그냥 아는 사이겠지.”

“그런데 말이야. 만약 진짜 사귀는 사이라면….”

“부럽다.”

“그치. 부럽지.”

그들의 사이에 젊은 남자가 끼어들었다.

“나도 부럽다.”

여자가 물었다.

“너도 신은하가 부러워?”

“아니. 저 남자. 동서양의 미녀가 좌우에 있잖아. 저게 바로 양손에 꽃이지.”

젊은 남자는 지금 두 여자의 사이에 서 있었다.

나강인을 꼬셔볼 궁리를 하던 여자가 차갑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서 좀 빠져 줄래?”

“응?”

“꺼지라고.”

“응.”

제시카가 스칼렛에게 다가와 말했다.

“경호원의 무전기가 완전히 망가졌어.”

“아까 잠깐이라도 무전이 된 게 어디야. 이제 배도 도로 되찾았으니까 이 배의 무전기로 연락하면 되잖아.”

제시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해적이 이미 부쉈어. 배를 점령하자마자 무전기부터 부순 것 같아.”

“그럼 한국 경찰은 우리가 위험하다는 것만 알고, 이제 안전해진 거 모르는 거 아냐?”

“배가 인천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레이더만 봐도 알지 않을까?”

스칼렛이 고개를 위로 들었다. 한국 공군 전투기가 근처를 날아갔다.

“설마 우리를 해적으로 착각하고 쏘진 않겠지?”

***

공군 전투기는 멀리서 경계만 할 뿐 배에 접근하지는 않았다.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건 해경 헬기였다.

해경 헬기가 배에 바짝 접근했다.

헬기에 탑승한 해경 구조대원이 쌍안경으로 배를 보며 무전으로 보고했다.

“배는 인천항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건 레이더로 이미 파악했다.

- 배 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구조대원이 머뭇거렸다.

- 피해가 말도 못할 정도로 큽니까!

구조대원이 쌍안경으로 배 위를 다시 확인했다. 가까운 거리에서 고배율 쌍안경을 쓴 덕분에 사람들이 뭘 먹는지까지 다 구분할 수 있었다.

“갑판에서 샴페인을 마시면서 파티를 하고 있습니다.”

- 어…. 뭐? 거기 어딥니까! 지금 다른 배 보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2층 보조 갑판에 사람이 여럿 쓰러져 있습니다. 칼을 맞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 그러니까 갑판에서는 샴페인을 마시면서 파티를 하는데, 2층에는 사람들이 쓰러져 있다고요? 그러면 갑판과 2층 중에 어느 쪽이 해적입니까?

“그, 글쎄요?”

배에 탄 사람들은 헬기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헬기다!”

“우리 해경이야! 우리를 구하러 왔어!”

“좀 늦으셨네. 이미 다 끝났는데. 하하하!”

해경 구조대원이 헬기에서 보고했다.

“우리 헬기를 보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해적이 손을 흔든다는 겁니까?

“아닙니다. 2층에 칼을 맞고 쓰러진 사람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복장을 보면 일반인이 아니라 해적 같은 무장 병력이 쓰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 환장하겠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총으로 무장한 해적이 배에 쳐들어왔는데 왜…. 일단 배 주변에서 대기하십시오. 너무 가까지 가진 말고. 그 배 좀, 아니, 많이 이상합니다.

***

해경의 대형 함정이 선상파티용 유람선에 접근했다. 해군 군함은 먼 거리에서 호위했다.

해경 배에서 출발한 고속단정이 유람선에 달라붙었다. 해경 특공대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배에 올라왔다.

배에 올라간 해경들은 어느 쪽이 민간인인지 쉽게 알아보았다. 갑판 위에는 유명 연예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2층에 올라간 해경 특공대원이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했다.

“해적은 모두 제압된 상태입니다. 멀쩡한 놈이 하나도 없습니다.”

해경 함정에 있는 상관이 무전으로 물었다.

- 전부 칼에 맞은 거야?

“칼 맞은 놈들도 있고, 젓가락에 맞은 놈도 있습니다.”

- 어? 뭐? 젓가락?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진짜입니다. 젓가락에 당한 놈이 한둘이 아닙니다. 제가 사진 찍어서 보내…. 스마트폰에 안테나가 뜨면 바로 사진 보내겠습니다.”

유람선이 인천항에 도착했다.

인천항에는 그 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건 배가 서해에서 납치돼 중국으로 갈뻔한 사건이다. 그래서 정보기관은 물론이고 군에서도 사람이 나왔다.

부상자를 기다리는 구급차도 많았다. 그런데 그 구급차 중에 파티 손님을 태운 차는 두 대밖에 없었다. 나머지 구급차는 기절한 해적을 병원으로 옮겼다.

배를 조사하러 온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와. 중상자가 도대체 몇 명이냐?”

“해적 몸에 젓가락 꽂힌 거 봤어? 칼은 그렇다 치고 젓가락이 왜 꽂히냐?”

“젓가락에 당한 해적이 하나가 아니야. 더 있어.”

“저 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미국 대사관에서도 사람을 보냈다.

대사관 직원이 스칼렛에게 다가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미스 켈리. 벌써 두 번째입니다. 이럴 거면 경호원을 더 쓰셨어야죠.”

“썼잖아요.”

“그 두 명은 우리가 붙여드린 거고요. 오메가테크 보안요원들 실력 좋잖습니까? 아. 그 직원들은 한국에서는 총을 쓸 수 없으니까 좀 그런가요?”

“아니, 그 두 분 말고요. 물론 그분들도 도움이 됐지만.”

스칼렛이 나강인을 돌아보았다. 나강인은 경찰차가 아니라 형사가 몰고 온 승용차에 탔다.

“제 경호원은 저기 있잖아요.”

미국 대사관 직원은 배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는 모른다. 그는 스칼렛이 개인 경호원을 따로 고용했다고 착각했다.

“저 사람을 계속 고용할 수 있습니까? 그럼 다행이고요.”

“저는 그러고 싶은데, 바쁜 사람이라서요.”

미국 대사관 직원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럼 다른 경호원이라도 고용하시죠. 무장 허가는 저희가 어떻게든 받아줄 테니까.”

스칼렛은 걱정하지 않았다.

“괜찮아요. 연구소 기밀 서버 보안등급을 두 단계나 높였어요. 이제 접속코드만 알아봤자 소용없어요. 절 잡아봤자 외부에서 기밀 서버에 접속하지 못한다고요.”

대사관 직원은 당황했다.

“어? 그러면 저 해적 놈들은 왜 미스 켈리를 노린 겁니까?”

“요원님도 우리 회사 상황을 몰랐잖아요. 저놈들도 몰랐던 거죠. 그러니까 소문이나 좀 퍼트려주세요. 이제 나를 건드려봤자 자칼이나 저 해적처럼 쫄딱 망하기나 하지 얻는 건 하나도 없다고요.”

“음….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럼 처음부터 보안등급을 높여놓으면 편했을 것을….”

스칼렛이 불평했다.

“그러면 접속이 굉장히 어려워져서 우리도 연구하기 불편하거든요. 그런데 어쩌겠어요.당분간은 그렇게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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