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72화 (72/411)

72. 팀장

자칼 일당의 강남 7층 건물 점령 사건은 합동수사본부에서 맡았다. 그런데 그 사건 수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서해 해적 사건이 터졌다.

자칼과 낙귀는 목적이 같았다. 그래서 이 사건도 합수부로 넘어갔다.

강남 자칼 사건 때 나강인에게 건물 도면을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한 합수부 형사가 나강인과 다시 만났다.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이렇게 또 만나네요.”

“그러게요. 이런 식으로는 안 만나는 게 서로 좋은데.”

형사가 해적 두목의 사진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별명은 낙귀.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해적입니다.”

“한국말을 잘하던데요.”

“할아버지가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파악이 안 됐습니다.”

형사가 헬기에서 배의 갑판을 찍은 사진과 해적들을 하나하나 따로 찍은 사진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사진 속 해적들은 2층 보조 갑판 위에 쓰러져 있었다.

“화끈하게 하셨던데요.”

“사정을 봐주면서 싸울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그건 그렇죠. 해적들은 모두 권총을 갖고 있는데 선생님은 식칼과 젓가락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해적들을 상대로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셨는지…. 혹시 이번에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하신 겁니까?”

“제가 오늘 하루 그 배에 고용된 입장이라서요. 일터에서 문제가 생겼으니까 해결해야지요.”

형사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스칼렛 켈리 씨가 선생님을 경호원으로 고용한 거군요.”

“아니요. 조리실 알바로 고용했습니다만.”

“예? 조리실이요? 아니, 거기서 뭘….”

“음식 점검도 하고, 디저트도 만들었죠.”

“아. 그래서 식칼이랑 젓가락으로 해적단을…. 어? 잠깐만요.”

형사가 혼란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현장 상황이 이해될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묘한 설명인데요? 그러니까 선생님께서는 비밀 경호원이 아니라 요리사로 고용되신 거라고요?”

“예. 하루짜리 알바로요.”

“게다가 알바….”

나강인이 제안했다.

“형사님.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죠. 제가 디저트를 만드는 거나, 싸워야 하니까 싸운 걸 본 목격자가 많습니다.”

“그쵸. 목격자가 많죠. 그런데 목격자들도 자기가 본 걸 잘 믿지 못하던데요? 하도 놀라워서요.”

***

목격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보 수집 자료와 현장 분석 자료가 합수부에도 전해졌다.

회의실에서 합동수사본부장이 한숨을 쉬었다.

“자칼 사건 수사도 안 끝났는데 이번엔 뭐? 해적 낙귀? 도적 다음은 해적입니까?”

경찰 간부도 같이 탄식했다.

“사건이 아주 펑펑 터지는군요. 왜 나강인이 있는 곳에서 사건이 자꾸 터지는 겁니까? 이거 혹시 나강인이 흑막 아닙니까?”

다른 합수부 간부가 말했다.

“두 번 다 스칼렛 켈리 때문에 터진 사건입니다. 그리고 오메가테크 측에서는 나강인을 파티시에로 고용했다더군요.”

“네? 경호원이 아니라 파티시에요?”

“디저트를 만들어온 걸 봤다는 목격자가 많습니다. 스칼렛 켈리는 나강인을 파티요리 검수를 위해 고용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저희 측에서는 당연히 이런 사태를 대비한 조치였을 거라고 봅니다만.”

“그러니까 나강인이 파티시에로 위장했다는 겁니까?”

“위장은 아니랍니다.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정말 맛있었다더군요.”

행안부 간부가 말했다.

“지난번에 조사한 자료를 보면 요리와 디저트 만드는 실력이 대단한 건 맞습니다.”

“그 자료는 나도 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피시방에서 밥을 팝니까? 연예계에 인맥도 상당하던데.”

“요즘은 피시방에서 매일 파는 건 아니고, 가끔 들러서 잠깐 판다더군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합수부장이 끼어들었다.

“요리 이야기도 중요한 건 아니지요. 그건 각자 알아보기로 하고.”

합수부장이 물었다.

“목격자 진술에 의하면 나강인이 총을 몇 발 맞았다면서요? 그런데도 멀쩡했다고요?”

“예.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습니다.”

“옷 속에 입으면 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얇았다던데요?”

경찰 간부가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 사진을 띄웠다. 나강인이 직접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는 증거물로 제출되었다.

“해적들이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걸 증명할 증거라 일단은 저희가 갖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방탄조끼하고 많이 다르게 생겼네요? 저건 마치 작은 조각들을 조립해서 만든 것처럼 보입니다.”

“맞습니다. 총탄의 충격을 조끼 전체로 분산시키는 방식의 방탄조끼입니다. 총에 맞을 때마다 부품 사이의 연결 구조물이 파괴됩니다. 그래서 총탄을 몇 발 맞으면 방어력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래도 대단하군요. 한 발도 아니고 몇 발이나 막았으면 방탄조끼의 기능은 충분히 한 거죠.”

“맞습니다.”

합수부장이 흥미로운 얼굴로 화면을 보며 물었다.

“요리사가 저런 건 어디서 났답니까? 직접 만들진 않았을 거 아닙니까?”

직접 만들었다.

“철인기공에서 개발한 신제품입니다.”

“아아. 철인기공. 가격은 얼마나 합니까?”

“대량생산이 불가능한 개인 맞춤형이라 굉장히 비싸다더군요.”

“그런 귀한 물건을 왜 요리사가 갖고 있습니까?”

“철인기공 이정민 사장의 둘째 아들이 THO 엔터 사장 이태호입니다. 이태호는 영화를 찍을 때와 자칼 사건 때 나강인의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건 나도 압니다. 그래서 선물로 받았다?”

“나강인 씨의 전투력이 워낙 출중하니까, 제품 테스트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까진 확인을 안 했습니까?”

“나강인 씨가 범인은 아니잖습니까? 사람들을 구한 영웅인데 취조하듯이 캐물을 수가 없어서….”

“그래도 확인해보시죠?”

“알겠습니다. 철인기공 쪽에 문의하겠습니다.”

***

나강인은 주거 거점인 아파트로 돌아갔다.

그는 TV를 켜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역시 집이 최고다.”

바로 옆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강인이 누운 채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은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 강인 오빠. 어디야?

“집.”

- 나도 거기로 가려고 했는데, 기자들이 따라붙어서 안 되겠어.

“고생해라.”

- 오빠가 와서 ‘내가 해적단을 때려잡은 그 사람이다.’ 한 마디만 해주면 다 해결되는데?

“너만 해결되겠지. 그때부터는 그 기자들이 나를 괴롭힐 테니까.”

- 쳇. 여긴 기자를 많이 만나본 내가 해결할 테니까 내일…. 아니다. 이거 하루에 안 끝나겠네. 모래 맛있는 거 만들어줘.

“제작실로 와라.”

그곳에는 작은 싱크대가 하나 있다.

- 오케이!

“거기서 뭘 좀 만들어 먹으려면 재활용센터 가서 중고 냉장고라도 한 대 사야겠다. 휴대용 가스레인지도 사고.”

- 아냐! 내가 4도어 냉장고하고 3구 인덕션 주문할게! 앞으로도 내가 먹을 거 만드는데 쓸 건데 당연히 좋은 거 사야지!

***

이튿날 합수부 형사가 철인기공을 방문했다.

본부장 이태성이 그를 맞았다.

형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방탄조끼를 담당하시는 분만 뵈면 되는데 왜 굳이 본부장님이….”

“제가 담당자입니다.”

“예?”

“드래곤 플레이트는 제가 직접 관리하는 제품입니다.”

“드래곤 플레이트요?”

“충격 상쇄형 신형 방탄조끼의 상품명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몇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형사는 먼저 방탄조끼의 성능부터 물었다. 그렇게 몇 가지를 질문한 후에 본론을 꺼냈다.

“나강인 씨가 어제 사건 현장에서 그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습니다. 총탄을 몇 발 맞았지만, 방탄조끼 덕분에 부상은 없었습니다. 혹시 철인기공에서 나강인 씨에게 실전 테스트를 의뢰한 겁니까? 그래서 나강인 씨가 그걸 입고 있었던 겁니까?”

“오해가 좀 있으시군요.”

“무슨….”

이태성이 설명했다.

“나강인 씨는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의 팀장입니다.”

“예?”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드래곤 플레이트는 개인 맞춤형이라 고객의 몸에 맞게 부품 설계를 매번 새로 해야 합니다. 그 설계를 책임지는 팀장이 나강인 씨입니다.”

드래곤 플레이트의 설계는 나강인이 한다. 철인기공에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이 있긴 한데, 팀원들은 그걸 설계할 기술이 없다.

그들의 현재 업무는 고객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하거나 나강인이 보내준 도면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다.

형사는 당황했다.

“아니, 그게 무슨…. 나강인 씨는 무술감독이나 요리사 아닙니까?”

“총도 잘 쏘죠.”

“그거야 나강인 씨는 총권도의 창시자니까….”

이번에는 이태성이 당황했다.

“예? 총권도요? 그게 뭡니까?”

“모르셨구나. 나강인 씨가 만든 무술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강인 씨가 철인기공의 설계팀장이라고요? 여기 직원이란 말입니까?”

“우리 회사 소속 정직원은 아니지만, 팀장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형사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다.

“혹시 다른 일처럼 이것도 알바로?”

“잘 아시는군요.”

***

사건 이틀 뒤에 나강인의 제작 거점에 신은하가 찾아왔다.

신은하는 살짝 들떠 있었다.

나강인이 물었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맛있는 거 먹을 생각하니까 좋아서.”

그녀가 술병을 들어 보여주었다.

“좋은 술도 가져왔어.”

그녀가 가져온 건 일반 마트에서 파는 소주가 아니다.

“이거 우리나라 전통주 명인이 꽃으로 빚었대. 나도 선물로 받은 건데 오늘 따자.”

나강인이 조립하던 부품들을 내려놓았다.

“그래. 밥부터 먹자.”

신은하가 물었다.

“근데 뭐 하고 있던 거야?”

“방탄조끼가 망가져서 새로 만드는 중이야.”

해적들과 싸울 때 쓴 방탄조끼는 사건 증거물로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 그걸 돌려받아도 내구도가 떨어진 상태라 그대로 쓰기는 어렵다.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게 더 쉽다.

그래서 그는 그 작업을 하는 중이다.

신은하는 당황했다.

“뭐야? 그 방탄조끼가 직접 만든 거였어? 그럼 오빠는 수제품만 믿고 나를 위해 목숨을 건 거야?”

나강인은 그 방탄조끼를 입고 신은하 대신 총을 맞았다.

신은하가 감동한 얼굴로 두 손을 맞잡고 콧소리를 냈다.

“오빠앙.”

“밥 먹자.”

“정말 밥…. 응? 밥? 지금 이 분위기에 밥이 중요해? 다른 건 안 중요해?”

“넌 안 먹을 거냐?”

“으…. 먹어야지. 술도 가져왔는데.”

오늘 식재료는 신은하가 가져왔다. 나강인이 요리하기 전에 손부터 씻었다.

신은하가 냉장고와 인덕션을 가리켰다.

“저거 어때?”

AI 전지인이 평가했다.

- 낡은 기술이 사용된 구형이라 성능이 형편없습니다.

“쓸 만하더라. 물도 빨리 끓고.”

“흐흐. 둘 다 이번에 나온 최신형인데, 바로 배송되는 곳에서 웃돈 주고 주문했어.”

나강인이 새 인덕션으로 요리를 만들었다.

신은하가 활짝 웃었다.

“진짜 맛있어 보인다.”

“매운 게 당길 거 같더라.”

맛있게 매운 요리는 스트레스를 조금 풀어준다. 신은하는 이틀 전에 해적 사건을 겪었다. 나강인은 일부러 매운 요리를 만들었다.

그들은 제작실 앞 공터에 탁자를 펼쳐놓고 술과 식사를 즐겼다. 술병이 비어갈수록 신은하의 웃음이 많아졌다.

“오늘 참 좋다. 날씨도 좋고, 요리도 맛있고, 술도 맛있고.”

신은하가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홀짝 마셨다. 그런데 술을 마시는 그녀의 눈에 그곳으로 오는 택시가 보였다.

“응? 누구지?”

택시에서 젊은 여자가 내렸다. 그녀가 물었다.

“저기, 여기가 지구연합 제작실인가요?”

술이 좀 들어간 신은하가 여자의 외모를 확인하며 살짝 커진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철인기공 설계팀 차지희예요.”

“네? 철인기공이요? 거기는 이태호 사장님 본가 아녜요? 거기서 왜….”

나강인이 설명했다.

“내가 철인기공에서 알바를 좀 해.”

“응? 철인기공 구내식당에서도 일해?”

차지희가 얼른 말했다.

“나 팀장님은 저희 팀의 팀장님이세요.”

신은하가 깜짝 놀라 물었다.

“앗! 오빠 팀장이야? 난 왜 몰랐지?”

“나도 몰랐다.”

나강인이 물었다.

“내가 왜 팀장입니까?”

차지희가 얼른 설명했다.

“어제 형사가 본부장님을 찾아와서 드래곤 플레이트에 관해 물어보고 갔거든요. 근데 본부장님께서 형사에게 나 팀장님이 우리 설계팀 팀장님이라고 말해버리는 바람에…. 어제 바로 발령이 났어요.”

“난 철인기공의 직원이 아닙니다만?”

“팀원은 저희 회사 직원이고 팀장만 외주로 맡긴 거죠. 그러니까 대학교 교수님을 팀장으로 초빙하는 그런 느낌?”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상황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올 거면 연락이라도 하시지?”

“나 팀장님 휴대폰이 꺼져 있어서요.”

그는 방탄조끼를 새로 만드는 동안 휴대폰을 꺼놨다. 신은하는 미리 약속하고 왔기 때문에 그래도 상관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왔습니까?”

차지희가 신은하를 슬쩍 보며 망설였다.

나강인이 말했다.

“은하는 들어도 됩니다.”

신은하가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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