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 잘하는 히어로-73화 (73/411)

73 조준기

철인기공 설계팀 차지희가 설명했다.

“드래곤 플레이트의 새 시제품이 나왔어요. 재질이 바뀌었으니까 새로 테스트해야 하는데, 설계하신 분이 확인하셔야 해서 찾아왔어요.”

“음…. 가서 봅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식사 중인데.”

“아! 괜찮아요.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어요.”

“그럼….”

한 명을 세워놓고 둘만 밥을 먹기는 좀 그렇다. 그가 신은하에게 물었다.

“많이 남았는데 같이?”

신은하가 툴툴댔다.

“남은 건 집에 싸가려고 했는데.”

“갔다 와서 새로 만들어줄게.”

“으…. 알았어.”

차지희는 나강인이 덜어준 매운 요리를 먹으며 연신 감탄했다.

“와. 요리 잘하신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진짜…. 와. 팀장님 여친은 행복하겠어요.”

신은하가 경고했다.

“간 보지 마세요.”

“네? 에이. 아니에요.”

“계속 아니어야 할 거예요.”

배우 신은하가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휙 넘기며 말했다.

“괜히 상처받아요.”

나강인은 술은 그만 마셨다.

AI 전지인이 말했다.

- 요원님의 해독 능력은 이 정도 술에 취할 정도로 약하지 않습니다.

그는 술을 마셔도 취하지는 않지만, 마시는 동안은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의 약한 취기는 느낀다.

“술 냄새 풍기면서 테스트할 수는 없잖아.”

- 신은하가 다 마셔버리기 전에 술병의 마개를 막으십시오.

신은하가 술을 마셔 발그레해진 얼굴로 물었다.

“강인 오빠. 나도 따라가도 돼?”

“그건 철인기공이 동의해야 하지 않을까?”

매운 요리를 열심히 먹던 차지희가 멈칫했다.

“네? 어, 그건…. 회사에 전화해 볼게요.”

차지희는 한쪽에 가서 회사에 전화했다.

차지희가 소속된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은 본부장 직속이다. 본부장 이태성이 말했다.

- 신은하 씨라면 우리보다 나강인 씨를 더 잘 알 겁니다. 괜찮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차지희가 자리로 돌아와 말했다.

“같이 오셔도 된대요.”

신은하가 술병의 뚜껑을 닫았다.

“그럼 나도 그만 마셔야지. 술 냄새 풍기면서 강인 오빠랑 같이 다닐 순 없으니까.”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신은하가 물었다.

“왜?”

“아니다.”

***

그들은 식사를 마친 후에 철인기공으로 이동했다.

나강인의 제작실과 철인기공 사이에는 고속화 도로가 뚫려 있어서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나강인은 신은하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운전은 차지희가 맡았다.

나강인이 물었다.

“네 차는 아무나 운전해도 되냐?”

신은하가 대답했다.

“당연하지. 우리 로드나 박 실장 오빠가 나 대신 운전할 때가 있어서 누구나 몰아도 되는 보험 들어놨어.”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요원님의 체내 알코올 수치는 정상 수준입니다. 이미 해독을 마쳤습니다. 운전하셔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그걸 알지만, 남들이 보기엔 음주운전이다. 그렇다고 벌써 알코올이 다 분해됐다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철인기공에 도착해서 그들이 제일 먼저 만난 건 실무자가 아니라 본부장 이태성이었다.

이태성이 신은하를 보며 말했다.

“신은하 씨는 우리 회사 일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신은하가 방긋 웃었다.

“강인 오빠 일에 관심이 많은 거예요. 앗! 혹시 비밀 이야기면 저는 빠질까요? 복도에 서서 기다려도 되는데. 다리는 아프겠지만요.”

“어…. 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은하 씨니까 괜찮겠지요.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태성이 상황을 설명했다.

“드래곤 플레이트 아홉 벌을 추가로 주문받았습니다. 이번에 설계하신 것까지 하면 열 벌입니다.”

“인증받은 게 전혀 없어서 우리나라 관공서에서는 살 수 없을 텐데, 생각보다 많군요.”

드래곤 플레이트는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규격화된 방법으로는 인증받기 어렵다. 게다가 자체 테스트할 물량도 빠듯해서 인증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인증받은 게 없으니 관공서에 정식으로 납품할 수도 없다.

이태성이 설명했다.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방탄복이 아니라 기능성 의류입니다. 그런데도 주문이 들어온 건, 이 고객이 드래곤 플레이트의 방어력을 직접 봤기 때문입니다.”

이태성이 동아시아 국가에 출장을 갔다가 겪었던 전투를 설명했다. 그날 이태성은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복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그때 적의 타깃이었던 소피아 디아즈가 그때 그 방탄복의 성능을 직접 봤다.

“그 회의는 그 나라 경찰용 보호장비 계약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회사 외에도 세 개 업체가 경쟁 중인데, 이걸 팔면 우리 회사가 좀 유리해지죠. 기술력 차이를 확실히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경찰용 보호장비 계약이 결정되기 전에 효과를 보려면 빨리 제작해야겠군요. 신체 사이즈 측정은요?”

“원래는 구매자를 우리 회사로 데려와서 측정해야 하는데, 그건 그쪽에서 거절했습니다. 경찰용이 아니라 요인 보호용으로 주문하는 거라서 그렇다더군요.”

“그 나라 정부의 고위층이 올 순 없겠죠.”

“대신에 우리 회사의 측정 기준을 그쪽에 자세히 설명하고 그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측정하는 것만큼 정확하진 않을 겁니다.”

이곳의 측정 시설은 나강인이 세팅에 직접 관여했다. 그런데도 오차가 좀 있었다.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측정한 데이터는 오차가 더 클 게 뻔하다.

나강인이 계속 말했다.

“데이터가 정확하지 않으면 방어력이 낮아진다는 건 알리셨을 테고.”

“물론입니다.”

“어차피 약간의 체형 변화는 고려해서 설계하니까, 오차가 좀 있어도 최소한 권총탄 두세 발 정도는 방어할 겁니다. 데이터가 정확하면 더 막을 테고요.”

“예. 저희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요구사항이 더 있습니다.”

이태호가 손바닥 크기의 그림을 하나 보여주었다.

“방탄복에 이걸 붙여달라더군요.”

“이게 뭡니까?”

“그 나라 국기입니다. 옷이 찢어졌을 때 국기가 보여야 한다더군요.”

나강인이 피식 웃었다.

“정부 요인이 총에 맞는 상황이 오면 옷을 찢으면서 건재함을 보이려나 봅니다.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연설도 한 번 하고. 인기는 끌겠네요.”

“그런데 이런 걸 붙여도 방어력에 문제가 없겠습니까?”

나강인이 제안했다.

“첫 손님인데 서비스 팍팍 넣어드려야죠. 설계할 때 표면에 국기 그림을 각인 처리하겠습니다. 옷을 찢으면 그 나라 국기가 아주 크게 보일 겁니다.”

“아! 그렇게도 됩니까? 그럼 앞으로는 유료 각인을 선택 옵션으로 추가해야겠습니다. 하하하.”

회의가 끝난 후에 신은하가 말했다.

“강인 오빠. 이러니까 진짜 엄청 지적으로 보여. 대형 스크린 앞에서 와이셔츠 입고 팔 걷은 채로 브리핑하면 되게 멋있을 거 같아.”

“그건 네가 출연한 영화에 나온 장면이잖아.”

“앗! 봤구나? 3년이나 지난 영화인데!”

“어? 어…. 밤에 할 일이 없어서 그냥.”

회의가 끝난 후에 이태성은 다른 업무를 하러 갔다.

설계팀의 차지희가 나강인을 제품 테스트를 위한 사격장으로 안내했다.

차지희가 설명했다.

“보내주신 설계도면대로 테스트용을 만들었어요.”

“각인처리된 수정 도면은 내일까지 보내드리죠. 방어력은 비슷하니까 테스트용을 추가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테스트 사격은 차지희 씨가 합니까?”

“네? 나 팀장님이 하셔야죠.”

“내가요?”

“전 당연히 그런 줄 알았는데….”

“뭐, 그럽시다.”

나강인이 사격장에 비치된 총을 잡았다. 그런데 그가 사격하기 전에 처음 보는 사람이 달려왔다.

“잠깐만요!”

차지희가 소개했다.

“소형 화기 조준장치 개발팀장님이세요.”

개발팀장이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나강인 씨죠?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을….”

“사격의 스페셜리스트라면서요. 그것도 실전에서 증명된.”

“아, 뭐.”

“사격 테스트할 때 이것도 부탁드립니다.”

개발팀장이 내민 건 소총용 조준기였다.

나강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우리 팀이 신형 조준기를 만들었는데, 나강인 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런 걸 외부인인 제가 만져도 됩니까?”

개발팀장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비상근이긴 하지만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장님이잖습니까? 괜찮습니다. 하하하.”

차지희가 설명했다.

“그 신형 조준기는 이미 수출 협상 중이라 기밀은 아니에요.”

조준기 개발팀장이 얼른 말했다.

“성능 개선을 위해서는 실전으로 단련된 베테랑 슈터의 데이터가 많이 필요합니다. 나강인 씨는 다른 슈터와 달리 공학적인 측면에서도 평가하실 수 있겠죠.”

“저에 대한 소문이 뭐라고 도는 겁니까?”

“실전에서 증명된 베테랑 슈터에, 최첨단 기술로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의 설계팀장님이시라고….”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물론 사례는 하겠습니다. 테스트 슈터에게는 백만 원 지급됩니다.”

AI 전지인이 얼른 말했다.

- 공짜 예산 확보 기회입니다. 얼른 받으십시오.

신형 조준기는 배터리가 들어가는 홀로그램 타입 장비다.

나강인이 조준기를 총에 장착하고 전원을 켰다. 작은 십자선이 조준기의 투명한 판에 떴다.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요원님. 지구연합군 스피드스타 조준기의 원형을 발견했습니다.

“어?”

나강인이 개발팀장을 돌아보았다.

“이게 수출 협상 중인 제품이라고요?”

“하하. 맞습니다. 세계 각국에 특허등록도 진행 중입니다. 이 조준기를 쓰면 기존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표적을 조준할 수 있습니다.”

나강인이 조용히 물었다.

“지인아. 이게 2082년에 지구연합군이 쓰는 장비라고?”

- 2082년 지구연합군은 몇 가지 타입의 보병용 조준기를 사용합니다. 그중 하나인 스피드스타의 초기 모델입니다.

“그럼 그 초기 모델은 철인기공 제품이겠네?”

- 아닙니다. 하데스 암즈 제품입니다.

“2022년식?”

- 2030년식입니다.

나강인이 개발팀장에게 물었다.

“하데스 암즈라고 아십니까?”

“아뇨? 처음 듣습니다만?”

나강인이 작게 물었다.

“지인아. 하데스 암즈가 지금 시대에도 있냐?”

- 인터넷으로 검색한 적이 있습니다만, 제가 아는 하데스 암즈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네가 처음부터 알던 철인기공 제품 중에는 이게 있고?”

- 제 메모리에서는 철인기공에서 만든 스피드스타 조준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나강인이 상황을 정리했다.

“영화사를 망하게 해서 철인기공의 경영권을 흔들려던 놈이 있었잖아. 그놈이 이 회사를 인수했다면, 이 조준기를 다른 이름으로 팔아먹겠지. 아니면 기술만 다른 회사에 팔아먹든지.”

아직은 그놈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일단 초기 모델의 성능 좀 보자.”

나강인이 총을 들어 표적을 겨누었다.

“테스트 사격 시작합니다.”

홀로그램 조준기의 성능은 훌륭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족족 총알이 표적에 꽂혔다.

나강인이 30발짜리 탄창을 비운 후에 말했다.

“잘 맞네요.”

“흐흐. 그렇죠? 우리 팀의 역작입니다.”

“이것과 비슷한 방식의 조준기가 혹시 다른 회사에도 있습니까?”

팀장이 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건 없습니다. 우리가 최초입니다. 국제 특허도 출원했습니다.”

“음…. 이 조준기의 이름이 있습니까?”

“우리 팀에서 부르던 원래 이름은 매의 눈입니다만, 수출까지 고려해서 정식 명칭은 바뀌었습니다.”

“그게 혹시 스피드스타입니까?”

“아니요. 호크아이 조준기입니다.”

이름이 달랐다.

나강인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작게 말했다.

“이름이 달라. 그러면 철인기공을 망하게 한 놈이 이 회사 기술을 팔아먹었다고 봐야겠지?”

- 지금 기준으로는 미래지만 2082년 기준으로는 과거에, 그런 일이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개발팀장이 물었다.

“어떠십니까?”

“좋은 조준기군요.”

“혹시 개선점으로 제안할 만한 것이 있으십니까?”

“개선점이라….”

개발팀장이 웃었다.

“물론 세계 최초로 개발한 조준기라 딱히 할 말은 없으실 것 같지만요. 하하하.”

차지희가 불평했다.

“조 팀장님은 자랑하러 오신 거 같습니다.”

“그렇게 보였어? 하하. 맞아. 드래곤 플레이트의 개발자한테 테스트도 부탁하고 겸사겸사 자랑도 좀 하러 왔어. 하하하.”

나강인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지인아. 이 회사를 노린 놈이 강원도 세트장도 무너뜨렸을 거야.”

나강인이 없었다면 신은하는 그때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었다.

“그놈에게 엿을 좀 먹이고 싶은데, 이런 구형 장비는 어떻게 업그레이드해야 할까?”

- 저는 전투지원 AI이지 장비개발 AI가 아닙니다.

“그래도 필요한 건 현장에서 만들어 쓰잖아. 이런 구형 장비가 손에 들어왔는데, 성능을 높여 전투력을 향상하고 싶다면? 그러니까 스피드스타의 원형 정도로 말이야.”

눈앞에 홀로그램 영상이 떴다.

- 스피드스타 조준기의 원형인 2030년식 모델입니다. 철인기공의 2022년식 원형과 차이점이 거의 없습니다.

“진짜 그대로 베꼈네. 그럼 2040년식은 어때?”

- 지금 기술로는 2040년식 스피드스타 조준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거야 여기서 알아서 하겠지. 난 그냥 팁이나 좀 주려는 거야. 설명서 좀 보자.”

즉시 2040년식 스피드스타 조준기의 모습과 기능별 설명문이 AR 렌즈에 주르륵 떴다.

“복잡한 건 빼고 간단한 기능만 남겨봐.”

설명문 일부가 사라졌다. 그래도 몇 개는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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