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소소한 팁
나강인이 철인기공의 호크아이 조준기를 눈높이로 들었다. 그 옆에는 AR 렌즈로 구현한 반투명 스피드스타 조준기 형상이 떠 있었다. 당연히 스피드스타의 모습은 그의 눈에만 보였다.
그가 그 두 개를 같이 놓고 비교하며 말했다.
“조준선이 가느다란 십자선이네요? 표창처럼 생긴 십자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추가 정보는 조준선의 색과 모양을 변경해서 표현하고요.”
조준기 개발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나강인이 사격 기록용 볼펜으로 기록용지에 십자를 그렸다. 그가 그린 건 가운데가 두껍고 바깥은 좁았다. 그건 십자선이 아니라 십자 표창처럼 보였다.
그는 그 옆에 다시 작은 별을 또 그렸다.
“예측 포인트는 이 옆에 이렇게 별 모양으로 표시하면 좋겠네요.”
“예측 포인트요? 뭘 예측한다는 겁니까?”
AI 전지인이 설명했다.
- 고속 이동 개체 사격용 예측 포인트입니다.
“이렇게 예측 포인트를 추가하면 고속으로 움직이는 적을 쏠 때 명중률이 올라갑니다.”
“고속 이동이요? 아아. 드론을 쏠 때 쓰라는 이야기군요?”
“어…. 그렇지요?”
“그런데 소총용 조준기에 그런 기능까지 넣을 필요가 있을까요?”
나강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강원도 세트장을 무너뜨린 놈에게 엿을 좀 먹이고 싶어서 업그레이드 팁을 줬지만, 상대가 알아듣지 못하면 할 수 없다.
“저야 뭐 제안만 하는 겁니다. 미래 전장에서는 이 기능이 꼭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개발팀장은 당황했다.
“예? 미래요?”
나강인이 얼른 둘러댔다.
“오늘 기준으로는 내일도 미래죠.”
“하긴. 시간은 계속 흐르니까요. 말씀하신 점은 참고하겠습니다.”
상대가 협조적으로 나왔다. 나강인은 알려주는 김에 2040년식 스피드스타 조준기와의 차이점을 조금 더 설명했다.
“여기 외형도 형상을 좀 더 각지게 바꾸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여기 이 홀로그램 모듈은 지금 형태도 나쁘진 않지만, 아래쪽 좌우 두 방향에서 영상을 쏘는 건 어떠십니까?”
“예? 대각선 두 방향이요?”
“그러니까 이게….”
기술적인 부분은 나강인도 모른다.
“그림으로 그려주면 만들 수 있으려나?”
AI 전지인이 보고했다.
- 철인기공의 호크아이와 2040년식 스피드스타의 홀로그램 모듈은, 외형과 성능의 차이가 크지 않아 보입니다. 현재 부품을 잘 개조하면 구현할 수 있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모르지?”
- 저는 전투지원 AI이지 개발지원 AI가 아닙니다.
“그럼 아예 저 형상을 대놓고 그려주자.”
나강인이 사격 기록용지 뒷면에 2040년식 스피드스타 조준기를 그렸다. 손의 움직임은 AI 전지인이 보조했다. 덕분에 조준기를 정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그는 하는 김에 홀로그램 모듈의 형태와 장착 위치, 방향도 그렸다. 부품 내부까지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모듈의 조립 각도는 정확히 그렸다.
“이렇게 이중으로 이쪽에서도 쏘고 저쪽에서도 쏘면, 그리고 반사판을 이 각도로 하면 더 보기 좋을 겁니다.”
그렇게 하면 뭐가 나아지는지는 나강인도 알지 못한다.
‘지금보다 18년이나 뒤에 나온 모델이니까 뭔가 좋아지는 점이 있겠지.’
조준기 개발팀장이 고개를 계속 갸웃거렸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의견을 줬다면 농담인 줄 알고 웃어넘길 텐데 그럴 수가 없다. 나강인은 드래곤 플레이트의 개발자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조준기 개발팀장도 드래곤 플레이트가 어떤 식으로 총탄을 방어하는지는 안다. 그런데 그걸 설계하는 방법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걸 만든 나 팀장이 말하는 거니까, 확인은 해야겠지?’
“알겠습니다. 우리 애들한테 시험해보라고 하겠습니다.”
신형 조준기 테스트가 끝났다. 이제 새로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 방탄복을 시험해야 한다. 그게 그가 여기 온 진짜 목적이다.
시험은 방탄복을 향해 한 발씩 사격한 후에 정밀 측정 장비와 현미경 등을 사용해 손상 정도를 파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방탄복을 입혀놓은 더미에는 충격을 계측하는 센서가 잔뜩 붙어 있었다.
그 테스트는 드래곤 플레이트의 방어력이 다 소모돼 파괴될 때까지 차근차근 진행됐다.
테스트가 끝난 후에 AI 전지인이 평가했다.
- 철인기공의 가공 및 조립기술이 향상됐습니다. 우리가 직접 만든 것만은 못하지만 초탄에 뚫릴 정도의 취약지점은 없습니다. 가르친 보람이 있습니다.
철인기공은 드래곤 플레이트를 제작하다가 잘 안 되면 나강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면 AI 전지인이 어디가 문제의 원인인지 정도는 가르쳐주었다. 다만 해결법은 철인기공이 찾아야 했다.
드래곤 플레이트는 부품이 조금이라도 잘못 만들어지면 약한 부분이 생긴다. 그런데 지금 테스트한 방탄복은 크게 문제 되는 부분은 없었다.
나강인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대로 만들면 되겠군요.”
AI 전지인이 단서를 달았다.
- 고객이 보내준 신체 데이터에 오차가 있으면 방어력은 지금 테스트한 것보다 낮아집니다.
“우리가 테스트한 것보다 방어력이 약하다면 그건 신체 사이즈를 잘못 측정한 고객 책임이니까, 오늘 테스트 결과를 보내주면서 그걸 꼭 이야기하세요.”
드래곤 플레이트 설계팀 차지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본부장님께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
나강인은 테스트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본부장 이태성을 다시 만났다.
이태성이 질문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테스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서요?”
“철인기공의 제작 공정이 안정됐더군요. 제품이 잘 나왔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드래곤 플레이트는 사용자의 체형 변화를 어느 정도 고려해서 만들잖습니까?”
“그렇지요.”
“측정 데이터에 오차가 있으면 방어력도 감소하고요. 클라이언트에게는 그렇게 이야기를 전할 텐데요.”
이태성은 다른 계획이 있어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체형이 비슷한 사람은, 같은 설계도로 만든 드래곤 플레이트를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음….”
AI 전지인이 즉시 설명했다.
- 2082년 전장에서도 보급 문제로 동료의 장비를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체형이 다른데도?”
- 가능하면 체형과 체지방 비율이 비슷한 동료의 장비를 사용합니다. 그래도 방어력은 감소하지만, 한 번이라도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면 입는 것이 낫습니다.
“하긴.”
나강인이 이태성의 질문에 대답했다.
“방어력이 많이 떨어질 겁니다.”
이태성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도 한 발은 확실히 막겠지요?”
“체형 차이가 적다면 그렇겠죠.”
이태성이 활짝 웃었다.
“그래서 양산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강인은 이미 양산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태성도 계획이 있었다.
“드래곤 플레이트를 개인 맞춤형 고급형 모델과 양산 모델로 나누는 겁니다. 당연히 현재 방식으로 만드는 게 고급형입니다.”
“양산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고객이 기존에 생산된 고급형 모델의 사용자와 체형이 비슷한 경우에, 기존 도면으로 미리 제작해둔 제품을 할인해서 판매하는 거죠. 그게 양산형입니다.”
“음…. 그런 게 팔릴까요?”
“총탄 한 발을 확실히 방어할 수 있다면 민수용 수요는 충분합니다. 고객 체형이 원형과 비슷할수록 막아내는 총탄도 늘어나겠죠.”
“같은 제품인데 성능이 차이 나면 불만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보증하는 건 총탄 한 발인데, 고객이 운이 좋으면 더 많이 막아낼 수도 있다고 홍보하면 됩니다.”
나강인이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가만? 이러면 양산 모델은 내가 굳이 설계를 안 해도 자동으로 나오겠네?’
그러면 나강인도 손해 볼 건 없다. 어차피 제품 판매 대금의 일부는 로열티로 들어온다.
나강인이 단서를 달았다.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만들려면, 테스트를 많이 하셔야겠네요.”
“다양한 사이즈의 원형을 만들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하하하.”
“그럼 그러시죠.”
***
나강인이 신은하의 차를 몰고 제작 거점으로 향했다.
신은하는 조수석에 앉아서 나강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 뚫어지겠다. 왜?”
“정체가 뭐야?”
“뭐가?”
“혹시 박사학위도 있어?”
“없다.”
신은하는 인터넷으로 나강인 같은 사람이 또 있는지 찾아봤었다.
“미국은 특수부대 출신이 막 의사도 하고 박사도 하고 그러는 경우가 있다던데, 그런 거야?”
“특수부대 출신 아니다.”
“아이큐 몇이야? 막 백오십도 넘고 그래?”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 돈 벌었으니까 내가 쏜다.”
자문료는 나중에 은행 계좌로 받기로 했지만, 그 돈을 번 건 오늘이다.
“밥?”
신은하는 갈등했다.
좋은 식당은 철공소를 개조해 만든 제작실보다 분위기가 좋다.
맛은 제작실에서 나강인이 만들어준 음식이 확실히 맛있다.
그러다 생각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잠깐! 아까 먹은 거, 철인기공 갔다 와서 다시 만들어준다며!”
“밥 먹고 만들어줄 테니까 싸가라.”
“아싸아!”
***
나강인은 신은하에게 밥을 산 후에, 제작실로 돌아가 요리를 만들었다.
신은하는 고기가 듬뿍 들어가고 채소가 적당히 어우러진 매운 요리를 커다란 밀폐용기에 담아 집으로 갔다.
신은하의 본가는 나강인의 아파트와 같은 동네에 있다. 그녀는 요즘 휴식기라 본가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그녀가 식탁에 밀폐용기를 올려놓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이게 뭐니? 네가 만들었을 리는 없고, 가게에서 포장한 것도 아니고.”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간 맛있게 매운 조림요리.”
“이름이 왜 그래?”
“이름 묻는 걸 까먹어서.”
그녀의 남동생 신영석이 말했다.
“엄마. 오늘 저녁은 이거 먹자. 깐깐한 누나가 받아올 정도면 당연히 맛있겠지.”
그녀의 어머니도 동의했다.
“그러자. 저녁 준비하기 귀찮았는데.”
신은하가 물었다.
“아빠는?”
“약속 있다고 늦는대. 어디서 또 술 마시고 있겠지.”
“아빠는 맛있는 거 먹을 복이 없네.”
신은하는 이미 밥을 먹고 왔다. 그녀의 어머니와 동생이 식탁에 간단한 반찬과 밥을 놓고 조림요리를 먹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맛을 보자마자 감탄했다.
“어머나. 이거 진짜 맛있다.”
그녀의 동생은 맛을 보더니 곧바로 커다란 사발을 가져와 밥을 담고 고기 조림을 듬뿍 넣어 비벼 먹었다.
“캬아. 이거지! 소주를 부르는…. 아냐. 엄마. 감탄사야. 감탄사. 나 밥 먹을 때는 술 안 마셔.”
신은하가 어떤 대답이 나올지 알면서 일부러 물었다.
“맛은 좀 있나 몰라?”
그녀의 어머니가 웃었다.
“진짜 맛있어. 이거 어디서 났니?”
신은하가 자랑했다.
“아는 사람이 만들어줬어.”
“그 사람이 요리사니? 혹시 너랑 전에 방송 같이 나왔던 그…. 이름이 뭐더라? 아. 오규철 셰프야?”
“에이. 아냐. 어디 그런 아저씨를 들이밀어?”
“나이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는 건 아니구나?”
“어? 어. 그렇지.”
“다행이네.”
그녀의 어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도 외박은 안 돼.”
“그런 거 아니라고!”
신영석이 밥을 퍼먹으며 엄지를 세웠다.
“난 식당 하는 매형 찬성.”
“식당 안 한다고.”
“그럼 매형은 맞아?”
“용돈 끊기고 싶니? 집에서 받는 거로 충분해?”
신영석이 즉시 꼬리를 말았다.
“닥치고 밥 먹을게.”
***
사흘 뒤에 철인기공 회의실에 사장과 본부장, 연구소장과 이사 몇 명이 모였다.
대형 스크린 앞에서 보고하는 사람은 개인화기 조준기 개발팀의 조 팀장이었다.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었다. 조 팀장이 설명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걸 정리하면, 나강인 씨가 제안한 건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조준선의 홀로그램 형상 변경, 고속 이동 물체용 보조 조준점 추가, 홀로그램 모듈 추가, 외형 변경입니다.”
윤주성 이사가 물었다.
“테스트해봤어?”
“조준선의 홀로그램 형상은 우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시험했습니다만, 별다른 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윤주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사장님까지 모셔서 브리핑하는 거야?”
“실제 구현 테스트는 결과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나강인이 사격용지에 그린 그림이 떴다.
“드래곤 플레이트를 개발한 나 팀장의 제안을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 판단하고 끝낼 수는 없었습니다.”
조 팀장이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나 팀장이 제안한 대로 홀로그램 생성 모듈을 두 개로 늘리고, 배치도 나 팀장이 그려준 이 그림 그대로 조정했습니다.”
“와. 그림 진짜 잘 그리네.”
“예. 그림이 워낙 정밀해서 모듈 배치가 수월했습니다. 그림 속 각도 그대로 배치하면 됐으니까요.”
“테스트용 제품을 만들 때 돈은 얼마나 들었어?”
“고속 이동 물체 예측 사격용 보조 조준점은 개발비가 많이 들고, 설사 개발에 성공한다 해도 제품 단가가 너무 올라가기 때문에 제외했습니다.”
AI 전지인은 지금 기술로도 그걸 만들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반면에 남는 모듈을 하나 더 배치하고 홀로그램 소프트웨어를 손보면 되는 다른 작업은, 저희 팀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테스트 모델을 만들었더니.”
화면이 변했다.
조준기 내부 투명판에 비치는 홀로그램 조준선이 입체로 보였다.
“입체감이 장난 아니네?”
“이것 자체는 특별한 기술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고 나니, 나 팀장이 처음 제안했던 조준점 형상 변경의 효과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3레벨까지는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4레벨과 5레벨 사격 테스트에서 점수가 유의미하게 올라갔습니다.”
“어? 뭐? 5레벨?”
“예. 이것만 바꿔도 빠르게 이동하는 물체를 쏠 때 명중률이 높아졌습니다.”